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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서사문 쓰기 2 - 가치 있는 글은 어디서 오는가 (2/2)
친구 이야기를 쓴 글
다음은 취업을 앞둔 여고 졸업반 학생이 먼저 일자리를 잡아 나간 친구를 찾아갔던 이야기를 쓴 글이다. 이 글을 읽고 다음 네 가지 물음에 대답할 준비를 해 보자.
첫째, 일고 난 느낌이 어떤가?
둘째, 표현이 잘 되었다고 생각되는 대문이 있으면 말해 보자.
셋째, 이 글에서 흔히 우리가 쓰는 글과 다른 점이 있다고 보는가? 있다면 어떤 점인가?
넷째, 이 글에서 다듬어야 할 말이 있으면 말해 보라.
친구를 찾아서 - 홍성실
친구가 취업을 나갔다. 안성주유소 판매직으로, 갈 때는 물론 기대감으로 잔뜩 들뜬 마음이었겠지. 하지만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지금, 자주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하곤 한다. 힘들다는 거다. 사람들도 보고 싶고, 사실 이런 모습을 보니 안타깝기도 하지만 겁이 난다. 난 과연 적응할 수 있을는지, 그리고 적응하는 데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자신이 없어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누구보다 잘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까지 있었는데. 오늘은 얼굴이라고 한번보고 오려고 찾아갔다. 갑자기 찾아온 손님이 더 반가운 거라 하기에 연락하지 않고. 일요일이라서 휴게소 안은 몹시 붐볐다. 국수나 커피를 사가지고 가다가 부딪혀 다 쏟게 되는 일이 벌어질 정도로. 나도 그 사람들 사이로 헤집고 들어가 국수 판매하는 곳을 찾았다.
그곳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글세, 너무 바빠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도 모르고 땀까지 흘려가며 국수에 국물을 부어주고 있었다. 부를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길게 늘어선 줄 뒤로 가서 섰다. 한 사람, 두 사람 줄더니이제는 내 차례다. 친구는 받은 돈을 정리하느라 머리를 숙인 채 무얼 드릴까요 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도 능청스레 여기 국수 맛있어요? 라고 되묻고는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목소리를 알아듣고 쳐다볼까 봐서.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를 듣더니 성실아 하고 부르는 거다. 옆모습이라 알아보지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내 얼굴엔 도장이 찍혀 있단다. 주근깨 말이다. 역시 펄쩍펄쩍 뛰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하지만 자꾸 몰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몇 마디밖에 나눌 수가 없었다. 더 기다려도 시간이 날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간다고 말하고는 뒤돌아서는데,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잘 적응이 되어가고 있는데, 괜스레 마음만 흩트려 놓은 것 같아서. 걱정도 되고. 그러나 이젠 믿기로 했다. 잘 이겨 나갈 거라고.
(안성여고 생활글쓰기 반 우리끼리 얘긴데요 제3집 93.12)
앞에서 말한 네 가지 물음에 대답해 본다. 첫째, 이 글에는 친구를 생각하는 글쓴이의 따스한 마음이 배어 있다. 졸업도 하기 전에 일자리를 구해 나간 친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걸어오는 전화를 자주 받고(첫째 문단), 자기가 가야 할 일자리 걱정도 하면서(둘째 문단), 그냥 있을 수가 없어 어느 날 그 친구를 찾아가 만나고 온 일(셋째 문단)을 썼는데, 그렇게 만나러 가서 본 친구의 모습과 행동, 그리고 자기가 한 일들이며 생각을 쓴 말들에 정이 넘쳐 있는 좋은 글이다. 남들은 어떤 느낌이 드는지 모르지만 내가 읽은 느낌은 그렇다. 두 번째 물음인 표현이 잘 된 대문은 본 것과 한 것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쓴 대문과 생각을 잘 잡아서 쓴 대문, 그리고 어떤 형편을 요령있게 잘 말해 놓은 대문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문단에서는 친구의 형편을 아주 짧은 글로 요령있게 썼다. 띄어 쓴 자리를 넣어서 모두 55자밖에 안 되는 이 문단에 글월이 6개나 들어 있으니, 평균해서 한 글월의 길이가 9자밖에 안되는 셈이다. 글이 얼마나 간결하게 씌어져 있는가, 그래서 얼마나 읽기 좋은 글이 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 다음 문단에서는 친구의 소식을 듣고 곧 닥쳐올 자기의 앞날을 걱정하여 불안스럽게 생각하는 마음을 짧은 말로 잘 적어 놓았다. 셋째 문단이 이 글의 중심인데, 여기서는 휴게소가 붐비는 모양을 국수나 커피를 사 가지고 가다가... 되는 일이 벌어질 정도로 이렇게 설명하는 말로 쓰지 말고 바로 어떤 일을 본 그대로 잡아서 가령 한 아주머니는 국수를 사 들고 가다가 옆 사람에 부딪혀 국수물을 쏟았다 이렇게 썼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 다음에 친구를 본 것을 그런데 글세, 너무 바빠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도 모르고 땀까지 흘려가며 국수에 국물을 부어주고 있었다 고 썼다. 친구가 땀을 흘리면서 바쁘게 일하고 있는 모습을 잘 잡아서 썼다. 이렇게 해서 친구를 보고는 글쓴이가 어떻게 했고, 어떻게 두 사람이 만나 어떤 말을 주고 받았는가 하는 것이 이 글의 중심이자 막바지로 그 다음에 잘 씌어 있다. 좀 길지만 다시 들어보자.
...부를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길게 늘어선 줄 뒤로 가서 섰다. 한 사람, 두 사람 줄더니 이제는 내 차례다. 친구는 받은 돈을 정리하느라 머리를 숙인 채 무얼 드릴까요 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도 능청스레 여기 국수 맛있어요? 라고 되묻고는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목소리를 알아듣고 쳐다볼까봐서.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를 듣더니 성실아 하고 부르는 거다. 옆모습이라 알아보지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내 얼굴엔 도장이 찍혀 있단다. 주근깨 말이다. 역시 펄쩍펄쩍 뛰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하지만 자꾸 몰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몇 마디밖에 나눌 수가 없었다.
이것은 마치 연극의 한 판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꾸며낸 연극이 아니고 삶의 한 순간이다. 몸으로 겪은 것을 그대로 잘 생각해 내어서 쓰면 꾸며낸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고 감동을 준다. 생각하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저마다 가지각색으로 다른 연극을 연출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런 귀한 연출을 하면서도 그것이 귀한 것인 줄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렇게 자기가 보고 듣고 말한 것과 행동한 것을 소중하게 여겨서 그것을 자세하게 붙잡아 차근차근 쓸 줄 아는 사람만이 슬기로운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에 쓴말을 보자.
그래서 간다고 말하고는 뒤돌아서는데,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잘 적응이 되어가고 있는데, 괜스레 마음만 흩트려 놓은 것 같아서. 걱정도 되고. 그러나 이젠 믿기로 했다. 잘 이겨 나갈 거라고.
얼마나 알뜰한 자기 살핌인가? 따스한 친구 생각인가? 이 대문에서도 한 글월의 평균 길이가 열 자밖에 안 되도록 간결하게 썼다.
세 번째 물음은, 이 글이 우리가 흔히 읽는 글에 견주어 다른 점이다. 글월이 짧다는 것도 특색이지만 그보다도 더 남다른 것은 글월의 맺음말씨끝(어미)이 -다 로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글은 글월이 모두 32개인데, 그중 20개는 -다 로 끝맺어 놓았고, 나머지 12개는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 있다.
* -로(으로) 2개
* -겠지 1개
* -고 4개
* -는데 2개
* 때문에 1개
* 봐서(-아서) 2개
이와같이 -다 말고 여섯 가지 씨끝(어미)을 맺는꼴로 쓰고 있다. 누구나 잘 아다시피 소설이든지 수필이든지 평론이든지 생활글이든지 우리가 쓰고 읽고 하는 글은 한 글월의 마지막에 나오는 풀이씨(용언)가 거의 모두 -다 한 가지로 되어 있다. 그래서 그만 글이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 어쩌다가 달리 씌어졌다고 해도 기껏해야 한두 가지로 다른 꼴이 나타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글은 2백자 원고지 4장 반쯤 되는 길이에 -다 가 아닌 말끝이 여섯 가지나 나와 있으니 놀랍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여러 가지 모양으로 글월이 끝맺는 결과로 이 글을 읽어보면 아주 독특한 맛이 난다. 그 맛이란 무엇인가? 글이 살아 있다는 느낌, 글이 글에 그치지 않고 살아 있는 말로 씌어졌다는 느낌이다. 살아 있는 말은 방안에 앉아서 생각만 해서는 나올 수 없고, 책을 읽어서 많은 지식을 얻었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책만 읽고 몸으로 겪은 일이 없으면 도리어 죽은 말(책으로 읽힌 글말)만 늘어놓게 된다. 살아 있는 말은 다만 현실 속에서 나날이 살아가는 삶속에서만 나올 수 있다. 이 글도 절실한 삶을 본 대로 들은 대로 생각한 대로 말한 대로 행한 대로 자세하게 붙잡아 썼기에 자기 자신의 말이 되어 이런 글로 나타난 것이다. 무슨 문장 이론 공부를 해서 그 이론에 맞게 써서 이런 글이 된 것도 아니다. 요즘 글쓰기 공부의 귀한 방법처럼 모두가 여기고 있는 그 논리 공부를 해서 논리에 맞게 쓰려고 했다면 이런 살아 있는 글은 결코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여러 가지 씨끝(어미)에 나타나는 글월의 성격을 좀 알아 보기로 하자.
안성휴게소 판매직으로.
이 글월은 마지막에 나갔다 란 풀이말을 줄인 형태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풀이말을 줄인 까닭은, 바로 앞에 나갔다 로 끝난 글월의 맺음꼴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두 글월로 나누지 않고 보통은 한 글월로 해서 친구가 안성 휴게소 판매직으로 취업을 나갔다. 이렇게 쓴다. 한 글월로 써도 이 경우에 긴 글이 아니다. 그러나 짧은 글도 이 학생은 이렇게 두 글월로 나누어서 앞에 쓴 글월은 -다 로 맺고, 뒤에 쓴 글월은 여러 가지 형태의 풀이씨나 토로 맺어서 글이 더 싱싱한 느낌이 나도록 했다. 이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무슨 이론을 배워서 이렇게 쓴 것이 아니고 우리가 실제로 입으로 하는 말이 이렇게 되어 있어서 입말을 그대로 썼기 때문이다. 초등 학교 1,2학년 학생들이 쓴 글을 보면 때로 아주 살아 있는 입말을 쓰는데, 이것은 어른들이 쓰는 글말을 흉내낼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이 글에는 이 밖에도 한 글월로 쓸 것을 이렇게 두 글월로 나누어 쓴 대문이 많다.
힘들다는 거다. 사람들도 보고 싶고.
이것은 사람들도 보고 싶고, 힘들다는 것이다 로 쓰지 않고 앞쪽의 반을 떼어서 따로 한 글월을 만들어 뒤에다 쓴 것이다. 난 과연 적응할 수 있을는지...
이렇게 시작되는 글월도, 아주 길기는 하지만 그 다음에 오는 글월 얼마전까지만 해도.. 가 그 안에 들어가 두 글월이 한 글월로 될 수도 있는 형태인데, 이렇게 나누어 놓았다. 오늘은 얼굴이라고 한번 보고 오려고 찾아갔다. 갑자기 찾아온 손님이 더 반가운 거라 하기에 연락하지 않고. 이것도 갑자기 찾아온 손님이 더 반가운 거라 하기에, 오늘은 얼굴이라고 한번 보고 오려고 연락도 하지 않고 찾아갔다 고 쓸 수 있다.
일요일이라 휴게소 안은 몹시도 붐볐다. 국수나 커피를 사 가지고...
벌어질 정도로 이것은 일요일이라 휴게소 안은, 국수나 커피를 사 가지고 가다가 부딪혀 다 쏟게 되는 일이 벌어질 정도로 붐볐다
고 쓸 수도 있는 것을 두 글월로 나누어 썼다.
나도 그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국수 판매하는 곳을 찾았다. 그곳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도 앞에 그 보기가 있듯이, 뒤에 따로 떼어 놓은 글월을 앞의 글월 앞쪽에 갖다 놓고 그대로 이어서 한 글월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나도 능청스레 여기 국수 맛있어요? 라고 되묻고는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목소리를 알아듣고 쳐다볼까봐서.
이것은 뒤의 글월을, 앞의 글월에 있는 되묻고는 과 얼굴을 사이에 끼워 넣으면 된다.
그러나 이제는 믿기로 했다. 잘 이겨 나갈 거라고 이것도 그러나 이제는 잘 이겨 나갈 거라고 믿기로 했다 고 쓸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글월을 둘로 나누어서 앞의 글월은 -다 로 맺고, 뒤의 글월은 다른 여러 가지 형태로 맺어서 말을 살려 놓은 것이다.
갈 때는 물론 기대감으로 잔뜩 들뜬 마음이었겠지. 하지만..
이것은 ..마음이었겠지만.. 이렇게 해서 이어갈 수도 있는데 이렇게 끊어서 딴 글월을 만들었다.
그동안 잘 적응이 되어가고 있는데 괜스레 마음만 흩트려 놓은 것 같아서.
이 글월 끝에는 그렇다 는 말을 줄였다고도 볼 수 있다. 걱정도 되고
다섯자로 된 이 짧은 글월은 걱정도 되지만 하고 그 다음 글월에 이어질 수도 있는 말이다. 아무튼 이와 같이 글월을 짧게 끊어 써서 싱싱한 말이 되게 한 것이 이 글의 특색이요 좋은 점이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다듬어야 할 말인데, 이렇게 살아 있는 입말로 쓴 글이 되어 있어서 글에서마나 쓰는 잘못된 말은 없다. 이 정도로 깨끗한 우리말로 쓴 글을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글이 말까지 병들게 해서 입에서 나오는 말도 잘못된 것이 많아 이 글에서도 한 두가지가 보인다.
- 국수 판매하는 곳을 찾았다.
이렇게 나오는 판매하는 은 마땅히 파는 으로 써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쉬는 곳 에 휴게소 란 이름이 붙고, 파는 이 가 판매직 이 되어 버린 자리에서 국수 판매하는 곳 이란 말도 저절로 나올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래도 다듬어야 할 말이라고 본다.
- 무얼 드릴까요? 라고 물었다.
- 여기 국수 맛있어요? 라고 되묻고는..
이렇게 두 군데나 나오는 라고 는 하고 로 써야 본디 쓰던 우리말이 될 것이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이 글은 감상문인가 서사문(이야기 글)인가 하는 문제다. 이야기가 있는 감상문 같기도 하지만, 감상이 적힌 이야기글이라 하는 것이 더 알맞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글이든 감상문인지 서사문인지 어중간하게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 따라서 글을 쓸 때는 어떤 이야기를 쓰더라도 느낌이나 생각을 쓰는 데에 더 무게를 두어서 감상문으로 하든지, 느낌이나 생각이 얼마쯤 들어가더라도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있는 서사문으로 쓰든지 해서, 처음부터 어떤 형태의 글을 쓴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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