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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제17교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병 아닌 병
- 삶의 즐거움과 진실을 간직하는 기행문
1. 역마살, 그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병 아닌 병 "당신의 아들딸이 귀하고 예쁘고 아름답다고 생각되면, 낯선 곳을 혼자서 여행하게 하라." 이 말은 아들딸을 정말로 참되게 키우려면 여행을 보내라는 뜻이다. 즉 여행을 통해서 참다운 삶이 무엇인가를 알아 차리게 하고, 또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하라는 말이다. 이를 테면 여행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 방법이라는 것이다. 나는 나의 형체를 이루는 몸뚱이와 가슴속에 담겨 있는 마음과 머릿속에 들어있는 정신(혼)과 함께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 만큼 내 몸 내 마음 내 정신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하루 24시간 가운데서 언제쯤 화장실에 가야 건강에 좋은지, 무슨 음식이 입에 잘 맞는지, 친구들 중에서 누가 가장 다정스럽고 편안한지, 머리는 어느 이발소에서 어떤 모양으로 깎는 것이 가장 나답게 되는지, 잠결에 콧구멍을 후비는 버릇은 아직도 남아 있는지 등등...... 그런데도 이따금 까닭없이 몸을 앓게 되거나 감기에 걸려 고통받는 수가 있다. 그럴때면 괜히 슬퍼지고 외로워지고 화가 나고 심술이 난다. 나로서도 나의 몸속, 이 변덕스런 심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30년 가까이 소설을 써오는 동안, 그저 남의 이야기를 이렇게 저렇게 꾸며서 지껄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이 창조해 낸 등장인물들을 통해 어떤 사건인가를 독자들에게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것이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어찌보면 그것은 모두 나의 이야기인 셈이다. 그 모든 것이 곧 나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으니까. 삶에대한 공부를 하고 또 하여도 확실하게 알아낼 수 없는 나 자신 -내 몸과 마음과 정신 -을 더욱 확실하게 알기 위하여 나는 그런 이야기 들을 풀어내며 살아간다고나 할까.
여행을 하는 것도 그와 같다. 언뜻 봐서는 낯선 곳을 떠돌아 다니며 새로운 풍물들을 살피고 신선한 감동을 받는데 그치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도 결국은 미처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의 또 다른 면을 알아내는(발견하고 탐구하는) 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품이 아무리 따뜻하고 포근하다 해도 자꾸만 우리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한다. 드높은 하늘을 날고 싶고, 끝없이 넓은 풀밭을 달려가고 싶고, 출렁이는 바다를 건너가고 싶고, 낮선 거리를 하염없이 걸아 다니고 싶다. 비행기 여행, 기차 여행, 버스 여행, 도보여행, 그 어떤 것이든지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혼자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낮선 포구와 바다, 외로운 섬을 정처 없이 떠돌고 싶고, 다른 나라의 도시와 농촌을 여행하고도 싶다. 그렇게 머릿속으로만 여행을 꿈꾸다가, 어느날 갑자기 우리는 실제로 짐을 꾸려 그런 곳들을 찾아 길을 떠난다. 이처럼 어디론가 떠돌고 싶어 환장할 것 같은 마음, 정말로 그렇게 떠돌아다니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을 지닌 사람을 가리켜 흔히 역마살이 끼였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다 그렇게 운명적으로 떠돌고 싶어하고, 또 떠돌게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김동리의 <역마>라는 소설은 바로 그러한 점을 잘 파헤친 작품이다.
2. 낯선 곳에서의 신선한 감동 혹은 새로운 자기 찾기.
여행을 하다보면, 차를 타고 보내는 시간들이 심심하고 지루하다고 옆사람과 가위바위보 묵찌빠 놀이를 하거나, 배낭에 넣어 가지고 온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의 입장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채 왁자하게 떠들며 화투 놀이나 카드 놀이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이러한 행동들은 매우 미련 스런 것이다. 그것은 마치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여행)을 먹는 도중에, 사탕(책이나 놀이)을 입에 넣어 우물거림으로써 그 좋은 음식의 맛을 몽땅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하고 같으니까. 여행을 할 때는 여행 그 자체만을 즐겨야 한다. 여행 자체만으로도 넉넉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여행은 그 어떤 훌륭하고 고귀한 책을 통한 깨달음, 그 어떤 진기한 놀이를 통한 즐거움, 그 어떤 명상이나 사색을 통한 지혜보다 더 많은 영양소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여행을 하는 사람은 지나가는 산과 들판, 또 그 곳에서 일하는 농부와 흘러가는 구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반짝 거리는 강물, 쏟아지는 햇살, 장대처럼 내리치는 빗줄기, 나비처럼 팔랑거리는 함박꽃 닮은 눈송이, 풀을 뜯고 있는 염소 들을 모두 눈여겨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낯선 거리나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 부두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짐을 싣고 부리는 노동자들, 고기잡이를 하거나 그물을 기우는 어부들, 야수에게 잡아벅히는 작은 동물들, 먹을 것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며 구걸을 하는 거지들, 시장 바닥에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장사꾼 어머니의 자애로운 눈길들을 속속들이 살펴야 한다. 물론 그러한 것들 중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장면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내 눈길을 잡아 끄는 것은 언제나 되풀이 되는 일상 생활 속에서는 쉽사리 맛볼 수 없었던 새로운 느낌과 감동을 전해 주기 때문이다. 어느 사이엔가 우리는 그 곳만이 지니고 있는 이색적인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에서 새로운 삶의 진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떄껏 알지 못했던 나의 새로운 얼굴을 맞딱뜨리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이렇듯 새로운 것은 반드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나와 대상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 진다. 바로 그러한 것들, 곧 여행을 하던 중에 보고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감동받은 것을 자유롭게 기록하는 글을 기행문이라 한다.
3. 기행문을 어떻게 쓰나
그렇다면 기행문은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것일까? 딱히 정해진 형식은 없지만, 기행문이라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요소들은 몇 가지 있다. 즉 여행하는 사람이 언제, 어디를 거쳐서 여행했는지를 일러주는 여정과 무엇을 보고 들었는가 하는 견문, 그리고 어떠한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꼈는가 하는 감상이 그것이다. 기행문에 여행문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으면 생생한 여행의 기록이 될 수 없으며. 언제 어디에서 어디까지 갔다는 여정만이 보이고 견문이 나타나 있지 않으면 단순하고 건조한 글이 되기 쉽다. 그리고 글쓴이의 독특한 감상이 나타나지 않은 글은 그 기행문만이 가지는 특유의 개성을 지니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이 세 가지 요소를 어떻게 해야 잘 담아 낼 수 있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할까?
첫째, 기행문은 별다른 형식이 없는 글이므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느낌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을 택하면 된다. 가령 매일의 생활을 기록하는 일기 형힉을 띠어도 좋고,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에게 띄우는 편지 형식을 취해도 좋다.
둘쨰, 글의 첫머리에는 여행을 떠나는 목적이나 동기, 상황, 날씨 같은 것을 쓴다. 그리고 독자의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길을 떠나는 사람의 기대나 흥분 따위를 담아 내어도 좋다.
셋째, 여정에 따른 견문과 감상을 구체적으로 적는다. 독자가 글쓴이와 더불어 여행에 동참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러므로 어디어디를 여행했는지 여정이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쓰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들은 하릴없이 기행문을 쓰는 사람의 혀행길을 졸졸 쫓아 다니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모든 과정을 너무 친절하게 늘어놓아서 마치 여행 안내서 같은 분위기를 풍기게 되면, 독자들에게 쉬이 지루함을 안겨 주므로 주의해야 한다. 되도록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나를 발견하게 할 만큼 신선한 충격이나 감동을 안겨준 대상)을 중심으로 그려내야 한다.
넷째, 그 지방만이 가지는 색다른 특색을 담아 내는 것이 좋다. 그 지방에 전하는 신화나 전설 시 들을 살짝 곁들이는 것은 괜찮지만, 국사책에 나오는 문화재들을 고증이라도 하듯이 전문적으로 파고 드는 것은 독자들에게 짜증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기행문은 역사적인 사건이나 문화재에 대해 해설하는 글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다섯째, 집을 떠나는 사람들이 으레 느끼게 되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실어도 괜찮다. 사람은 어느 정도의 외로움과 슬픔을 맛보아야 진실해 질 수 있고, 또 아름다워 질 수 있으니까.
여섯째, 여행이 끝난 뒤의 성과에 대해 반성을 하고 앞날에 대한 각오를 다진다. 얘기로만 듣거나 책에서만 읽었던 곳을 실제로 가본 감회를 서술하는 것도 좋다. 물론 그 사이에 생겨나는 차이점을 비교해 보는것도 괜찮다. 말하자면 여기는 여행을 마무리 하는 대목이므로, 총체적으로 정리를 해야 한다고 보면 되겠다. 같은 시각에 같은 곳을 다녀와도 사람에 따라 받는 느낌은 각각 다르다. 그점을 잘 살려서 자신만이 느낀 독특한 감상을 적어야 독자로부터 진한 감동을 자아낼 수 있다.
4. 좁은 골목길에서 느끼는 삶의 진실
일상생활 속에서 늘 오갔던 좁은 골목길에서 느끼는 삶의 지실이 유난히 눈부신 글이 한 편 있다. 읽어보도록 하자.
나의 일상에서 가장 자주 지나치는 거리가있다. 좁은 골목을 지나고 레코드 가게를 지나, 육교를 통과하여 학교에 다다르는 곳 하지만 항상 등,하교길의 바쁜 보행으로 나는 거의 아무 생각 없이 3년동안 그 길을 지나쳐 왔고, 내일도 물론 그 곳을 (그렇게) 지날 것임을 알고 있다. 이 디귿 자 모양의 길은 나의 똑같은 일상이 반복됨을 말해주는 아주 단순하고도(단순한), 출발점에 서서도 그 도착점이 보이는 아주 재미없는 미로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모든 문명의 보호막에 가려져 초자연적인 두려움과 접해보지 못한 내 마음에 작은 돌로(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키고 싶은 충동을 느낄때가 있다. 내가 항상 지나는(지나치는) 이 똑같은 길을 이탈해, 전혀 가보지 못한 새로운 거리로 접어들었을 때(의 느낌), 또는 깜깜한 아프리카 초원 한가운데에서 나를 주시하고 있는 노란 광채를 띤 야수의 두 눈과 마주쳤을 때의 느낌이란(느낌은), 결코 성적이 좋지 않아 부모님을 뵙기 민망할 때의 그것과는 다른, (어쩌면) 최초의 인류 또한 느낄 수 있를법한 그런 두려움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최초의 인류가 느꼈을 듯한 그런 두려움들과 한 종류가 아닐까). 내가 거리를 지날 때 종종 느끼고 싶은(느끼곤 하는) 이런 감정은 획일화 된 나의 일상에서의 탈피하고픈 바람이 빚어 낸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렌지색 간판으로 인해 태양빛으로는 연출할 수 없는 또 다른 느낌을 내뿜는 밤의 거리를 좋아하낟. 그 곳은 낮보다는 공기가 더 차갑고 신선한 느낌을 주며, 검은색 바탕은 안정된 느낌과 이국적인 색감을 창조한다. 밤거리를 걷고 있는 빠른 사람들의 흐름 속에 가만히 서 있어도 그들과 함께 어디론가 가고있는 듯한 나를 발견한다. 그것은 혼자 서 있다는 외로움이나 어색함이 아닌, 내가 걷고 있을떄 보다 더 신선하고 재미 있는 경험을 느끼게(하게) 한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복사하고 있는 그 곳에 까맣게 번진 잉크 자국은 보이지 않는 이탈을 추구하는 밤의 모습이다.
이 글의 지은이는 글을 너무 어렵게 쓰려는 버릇이 있는 듯 하다. 그 바람에 더러 투명하게 와 닿지 않는 문장들이 눈에 띄어서 몇 군데 고쳐 보았다. 하지만 이 글의 지은이는 사물을 대하는 생각이 놀라우리 만큼 깊어서, 앞으로 꾸준히 노력한다면 정말로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는 짜질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다음에는 <미륵사지 탑을 견학하고 나서>라는 제목의 기행문을 감상해 보자. 탑을 아주 충실하게 보고 난 뒤, 자기 나름의 느낌을 차분하게 진술하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범 소풍을 미륵산으로 갔다. 미륵산은 익산 시에서 가까운 금마에 위치해 있고 누구나 다 가 본 산이라서 그곳에 있는 유적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점심을 먹고 산책이나 할 겸 돌아다니다가 미륵사지 탑을 보게 되었다. 그냥 있는 탑이려니 생각했던 미륵사지 탑이 갑자기 아름답게 보였다. 나도 모를게 탑 근처로 발을 옮기게 되었다. 석공들이 온갖 정성을 쏟아 부었던 흔적이 탑의 곳곳에 남아 있었다. 원래는 미륵사라는 절도 있었고 탑도 중앙에 3개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미륵사지 탑 한 개가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다. 마지막 남은 한 개의 탑마저도 벼락을 맞아서 한쪽 부분이 무너져 내렸고 간신히 시멘트로 메워 놓은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이렇게 유적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니...... 게다가 주위에는 돌 조각이 그대로 쌓여 있었고, 표지판은 낡아서 (다시는) 와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탑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안타까웠다.옆에는 요즈음 새로 지은 탑이 있었다. 난 그 탑을 보기 위해 뛰어가서 탑의 여기 저기를 자세히 살펴 보았다. 그 탑은 3개의 탑 중의 한 개였는데, 부서지고 나서 다시 똑같이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이런 탑을 만들어서 백제의 문화를 알게 해 준 것이 고맙기만 했다. 돌아오는 길에 백제인이 만들었던 아름다운 탑을 그동안 업신여겼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혼과 정성을 불어 넣어 섬세하고도 부드러운 탑을 만들어, 삼국시대에 문화의 꽃을 피웠던 백제인의 후손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뿌듯해 졌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와서 좀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
생각해 봅시다.
1. 사람들은 대개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홀연히 떠나고 싶어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듯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행을 떠난 그 곳에는 무엇이 있어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끄는지 각자의 생각을 말해 보자.
2. 여행을 하던중에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감동 받은 것을 기록하는 글을 기행문이라 한다. 이러한 기행문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소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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