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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제11교시 - 첫머리 쓰기는 서서 숟가락질 하기
- 잘 쓴글과 못쓴글은 '서두'에서 판가름 난다.
1. 첫머리 쓰기는 첫 숟가락질하기와 같다.
어머니께서 식탁 위에 저녁밥을 차리셨다. 이 날의 특별 요리는 갈비찜이었다. 그래서 식탁 한가운데는 갈비찜 냄비가 놓여 있었고, 그것을 중심으로 하얀 밥.된장국.생선구이.김치.구운 김.젓갈.깍두기 들이 둘러 앉아 있다. 자, 우리는 이제 그 식탁 앞에서 무엇부터 먹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먼저 젓가락을 들 것인가, 숟가락을 들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정할 수 있으니까. 그 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얹힐까 싶으니까 국부터 한 숟가락 떠 먹고 다른 것을 먹기 시작 해라, 천천히 꼭꼭 씹어서"
어머니께서 국을 한 숟가락 떠 먹고 나서 다른 음식을 먹으라고 하는 것은, '먼저 입 안을 국물로 적시어 혀가 잘 움직일 수 있게 한 다음, 목구멍과 위에게 음식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고 일러주려는 뜻이다. 만일 어머니의 말씀이 옳다면, 이 날 특별하게 많이 먹어야 할 음식이 갈비찜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젓가락 보다는 숟가락을 먼저 들고 국물부터 떠 먹어야 한다. 양식당에서 식사할 때도 그렇다. 우리는 자리를 잡아 앉은 뒤, 차림표를 보고 음식을 주문한다. 하지만 우리의 식탁위에 가장 먼저 놓여지는 것은 방금 주문한 그 음식이 아니다. 그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수프와 야채 등의 가벼운 음식(전채요리)으로 미각을 돋운 뒤에야 비로소 주문한 음식(주요리)을 먹게 된다. 그 식사를 마치고 나면, 끝으로 후식이 나온다. 다시말해 전식(전채요리)과 본식(주요리), 후식의 순서를 밟는다는 것이다. 이 때, 전식은 대체로 국물(수프)이고, 본식은 주문을 한 음식이며, 후식은 차나 과일인 경우가 많다(이것은 글쓰기의 짜임과 똑같다).
즉, 동양이나 서양이나 첫 숟가락질은 대부분 국물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 한다는 것이다. 국물 있는 것은 대개 부드러우므로 그리 오래 씹을 필요가 없으며, 목구멍으로 쉽게 넘길 수 있다. 먼저 입 안의 천장과 혀와 목구멍과 위 속을 적셔 놓아, 그것들이 음식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해 놓은 다음 본식을 먹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갈비나 돈가스가 식탁 위에 차려져 있는 것을 보면, 한 점이라도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아아, 맛있는 갈비다!", "야아, 돈가스다!"하면서 고기부터 집어먹을때가 있다. 이렇듯 국물로 목을 축이지 않은 채 질긴 갈비나 기름진 돈가스를 먼저 먹게 되면 위가 놀라 체하게 마련이다.
가령 우리가 영양 보충을 하기 위해 그것을 먹어야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먹어야만 체하지 않는지, 또 몸 속 곳곳에서 고른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화가 고흐는 화폭에 그려야 할 '무엇'이 깃들기 전에는 붓을 들지 않았다고 한다. 화폭에 '무엇'인가가 깃들이게 되려면, 먼저 머릿속에 어떤 그림인가 그려져야 한다. 또 머릿속에 어떤 그림이 그려지게 하려면, 그 전에 그려야할 대상을 세심히 관찰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왜 그 대상을 그리려 하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 그림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쓰려는 내용이 종이 위에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으면 펜을 들지 않아야 한다. 어떻게 써야겠다는 대강의 요령이 떠올랐다고 해서 섣불리 펜을 들면, 가장 중요한 부분 몇 마디, 즉 글의 중간에 나와야 할 말들이 먼저 튀어나와 버리기 쉽다. 그렇게 되면 겨우 그 몇 줄만 써 놓고 난 뒤, 다음을 이어 쓰지 못해 쩔쩔매게 된다.
2. 첫 문단, 첫 문장, 첫 낱말
나는 그믐달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달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샏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애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나도형의 <그믐달>중에서
이 글은 첫 문장을 '나'로 시작하고 있다. 이처럼 '나'로부터 시작하는 글쓰기는 매우 평범하고 쉬운 서두법(첫머리 쓰는 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글쓰기를 즐겨 하는데, 이방법은 글이 매우 순탄하게 풀린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나'라는 말을 반드시 앞에 써야 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하지 않다도 '나'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글도 있으니까.
오늘아침 자습시간에 같은 반 친구 은영이로부터 빨간색 색지에 쓴 고운 편지를 받았다. 편지 속 이야기를 대하던 중, 가장 반가웠던 사연은 '믿음아, 오늘 눈이 온다더라'였다. 또 글의 제목이 명사일 경우에는, 바로 그 명사를 첫머리의 낱말로 삼을 수도 있다.
겨울, 내가 '겨울이구나' 하고 생각이 든 때나,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면, 내 마음은 고삐 풀린 망아지 혹은 갈 속 없는 떠돌이 처럼 괜히 들뜨고 설레인다. 글쓰기에 자신이 없는 사람일수록 첫 문장은 길게 쓰지 않는 편이 좋다. 첫 문장이 길어지면, 그것을 매끄럽게 마무리하기가 힘들어 지기 때문이다. 첫 문장은 가능한 짧게 끊어 쓰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해, 첫 문장에서부터 멋을 잔뜩 부려 장황하게 쓰려고 하면, 내용이 얽히고 설켜서 써 나갈 방향을 놓쳐 버리기 쉽다는 것이다.
3. 주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첫머리
사람은 누구든지 어머니 뱃속에서 막 태어날 때, "응아!"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것은 절대로 아파서 내는 소리가 아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알리는 외침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 자기가 분명하게 있다는 사실(존재)의 확인인 셈이다. 사람들은 그 '응아' 소리를 질러 대는 순간부터 자기 갊의 폭과 깊이를 조금씩 넓혀 나가기 시작한다. 자기로부터 가족으로, 가족에서 나라로, 나라에서 세계 인류사회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나 가치'는 태어나면서 외친 그 첫소리, 즉 '응아' 소리가 가지고 있는 의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 장차 직장인이 되어 나와 내 가족, 내 나라, 세계 인류를 위하여 끊임없이 분투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기의 존재 확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글의 첫머리도 태어남의 첫소리인 그 '응아' 소리와 마찬가지다. 새로 태어난 아기가 그 우렁찬 소리로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듯이, 글의 첫머리에도 읽는 이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응아' 소리의 우렁찬 정도를 두고 사람들이 아기의 건강과 미래를 점치게 되는 것 처럼, 글의 첫머리에서도 말하려는 대상이나 내용, 그 글을 쓰는 목적 등을 내 비춰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읽는 이가 글의 방향을 쉽사리 잡아낼 수 있으니까. 다시말해, 글의 첫머리는 주제로 나아가는 길목의 안내자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다음 글은 첫 문장과 주제가 아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 글의 지은이가 첫 문장을 왜 그렇게 시작했는지 글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면서 꼼꼼히 살펴보길 바란다.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 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 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는 물질력으로 3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 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이라는 우리 국조 단군의 이상이 이석이라고 믿는다. -김구의 <내가 원하는 나라> 중에서
4. 모든 글은 '나'와의 간계로부터
찬바람이 불면 코와 귓불이 유난히 빨개져 겨울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 나이지만, 눈만 오면 끈 풀린 강아지처럼 유난을 떨며 무조건 밖으로 나가고 본다. 아파트 옆 터미널의 시끄러움 가지 덮어버린 새하얀 눈 위에서 마음껏 뒹굴고 뛰어다닌다. 그러다 보면, 이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듯한 기분에 휩싸여 코 아래로 흘러내리는 콧물까지 잊어버리기 일쑤이다. 깊은밤에 아무도 모르게 내려 발목까지 수북히 쌓인 눈 그것도 모르고 깊이 잠든 사람들을 제쳐두고 아무도 밟지 않은 그것을 밟고 호흡할때의 기분은 게으름뱅이들은 알지 못하는 아주 특별한 것이다. 눈부시도록 하얀 눈을 바라보면서 그것은 어쩌면 산타 할아버지가 만인에게 주는 유년의 꿈과 추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어른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낭만을 선물하고...... 코트에 묻은 눈을 털고 흐르는 콧물을 힘껏 들이킨 뒤 다음번의 더 희고 깨끗한 눈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집 쪽으로 이끈다. 안에서 내다본 눈이 유독 새하얀 거울이다.
글쓴이가 이 글에서 나와 '눈', 혹은 나와 '겨울의 추위'와의 관계를 이야기 하려 한 듯하다. 글은 이렇게 자기와 관계 깊은 사람, 즉 절친한 친구나 부모님, 형제 등 누구한테 이야기를 하듯이 편한 마음으로 써 나가는 것이 가장 좋다. 글은 자기가 쓰려고 하는 대상(글감)이 이러이러할 때에, '나'는 그것에 대하여 어떤 반응을 나타내는가를 잘 관찰하여 말(진술)하는 것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그 진술 속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들어 있어야 한다. 그 대상은 나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나는 왜 하필 그 대상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 대상에 비추어 볼 때 결국 '나'라는 인간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글의 첫머리는 바로 그러한 이야기들의 첫 실마리를 풀어내는 곳이다.
앞서 인용한 글은 첫머리와 중간부분을 아주 매끄럽게 진술하고 있다. 하지만 끝으로 가면서 조금씩 힘이 없어지더니 나중엔 다소 엉뚱하게 끝을 맺어 버려 읽는 이로 하여금 아쉬움을 자아내게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 대상(글감)은 나에게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나는 그 대상에 대하여 왜 이런 진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채 펜을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써 놓은 한 편의 글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실력을 한데 합쳐서 만들어 낸 조형물(모양을 가진 물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기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해 낼 만한 실력을 기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생각해 봅시다.
1. 한편의 글에 있어서 첫 문장은 처음 마주치는 사람의 첫인상 과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첫 문장은 그 글에 있어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 그렇다면 좋은 글을 쓰기 위헤서는 첫 문장을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지 서로 이야기해 보자.
2. 글의 첫머리는 주제로 나아가는 길목의 아내자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글의 첫머리에는 어떠한 내용을 담는 것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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