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제10교시 - 왜 볼펜 방아잘만 하고 있는가?
- 글을 쓰기 전에 제목과, 소재, 주제에 관한 생각을 다듬어라.
1. 누구든지 볼펜 방아질을 한다.
여기저기에서 봄이 왔다고들 야단이다. 그러나 한 아이는 그 봄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 아이는 봄을 절실하게 느껴 보고 싶어서 들로 나가 보았다. 남쪽에서 훈훈한 바람이 불어오고, 사람들이 농사를 준비하고...... 정말로 봄인 것 같은데, 그 아이의 가슴속 깊은 곳엔 봄이 와 닿지 않았다. 산으로 올라가 보았다. 앞산과 지평선 저쪽에서 아지랑이가 수런거리고, 보리밭에서 종달새가 표롱표롱 날아다니고, 새까만 염소가 풀을 뜯고, 마을 쪽에서는 꼬끼오 하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그래도 '아 이것이 봄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내 감성이 둔해서 그런가 보다.' 그 아이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쓸쓸하게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아이는 자기 집의 돌담 앞에서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그 아이가 찾아 헤매던 봄의 실체가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돌담 사이에서 바야흐로 돋아 나오고 있는 명아주 풀의 새순 하나.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봄은 약동하는 계절이다. 그 약동을 느끼게 하는 실체는 어디에 있을까?' 그 아이는 어렴풋이나마 이러한 생각을 한 채 산과 들을 헤메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그 아이는 봄바람이나 아지랑이나 종달새나 수탉이나 염소에게서는 그 생명의 약동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했다 매우 뜻밖에도 돌담 사이에서 돋아 나오고 있는 어린 새싹 하나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느꼈다.
이 이야기를 글쓰기에 견주어 보자. 그 아이가 느끼려고 한 '봄'은 좋은 글감(대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글감이라 할지라도 그 큰 것을 통째로 글 속에 담아 내려고 하면 글쓰기가 힘들어 진다. 그것의 부피와 높이와 길이가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것을 다 담아 내려고 욕심을 부리다 보면, 끝내는 그것의 반의 반쪽도 담아 낼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작은 보자기 속에 산이나 바다를 담으려는 바보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처음부터 큰 것을 잡으려고 하다 보면 글쓰기에 실패하기가 쉽다.
옛날에 김황원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그는 시짓기에 통달했다고 은근히 뽐내면서 스스로 오만함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친구인 평양 감가를 찾아 유람을 떠났다. 평양감사는 그를 반가이 맞아들인 위 을밀대로 안내하였다. 그 곳에는 대동강의 아름다운 정경을 읊은 시를 새긴 현판들이 여기 저기에 걸려 있었다. 그 시들을 찬찬히 읽어 보던 김황원은 그 시에 담겨 있는 저급한 내용들을 참을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 현판들을 모조리 뜯어 내어 불살라 버리고 말았다. 그러고는 당황하여 어쩔줄 몰라 하는 평양 감사에게. 자기가 그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덮어 버릴 수 있는 명작을 지어 보이겠다고 큰소리 쳤다. 이윽고 그는 을밀대의 난간에 기대어 서서, 푸른 비단을 펼쳐 놓은듯한 강물을 굽어보며 시를 읊기 시작했다.
긴 성 한쪽으로 강물은 출렁거리며 흐르고, 드넓은 들판 동쪽 머리에는 산들이 점점이 늘어서 있구나.
한데 그 두줄을 읊고 나니 글줄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머리를 이리 짜고 저리 짜 보아도 다음 구절이 이어지지 않았다.그는 자신의 글재주가 겨우 이정도 밖엔 되지 않는가 하고 깊은 절망에 빠져 들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마음속 깊이 한탄한 나머지, 울면서 을밀대를 내려와 버렸다.
자신의 글재주에 대해 그토록 자부심이 강했던 그가 왜 시를 두줄밖에 읊지 못했을까? 그 까닭은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너무 큰 글감(대동강의 기막힌 장관)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에 대한 감동이 너무 큰 나머지 그만 시인이 눌려 버린(압도당한) 경우이다. 둘째는, 첫머리에서 너무 큰 내용(장관)을 읊어 버린 까닭이다. 이렇게 되면, 뒤에 이어 쓸 수 있는 더 큰 말을 찾기가 몹시 어려워 진다. 셋째는, 처음 두 줄에서 눈앞에 나타난 경치를 읊었으나, 다음에는 인간사를 끌어내어 읊어 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었을 거라는 짐작이다.
글을 제법 쓴다는 선비들도 이러한 걸 보면, 이제 글쓰기 공부를 막 시작하는 여러분들이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고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글의 제목을 받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 쓸 거리가 얼른 잡히지 않기 때문에 볼펜 끝으로 애꿎은 종이 한복판을 꾹꾹 쑤셔댄다. 종이 가장자리에다가 자기도 알 수 없는 지렁이들을 새까맣게 그려댄다. 그러다가 쓸거리가. 언뜻 떠올라서 '아, 이것이다.!' 하고는 몇 글자르 ㄹ써 나가다가, '아니야 이게 아니댜!'하고 절망하면서 썼던 것들을 북북 그어 버린다. 마치 실이 나오지 않아 자기가 들어갈 집을 짓지 못하는 누에처럼 고개를 홰홰 내젓곤 한다. 그리고 또 얼마쯤 뒤에 '그렇지, 바로 이거야!' 하고는 서너 줄쯤 써 나가다가 이번에는 종이를 아예 구겨 던져 버린다. 자기 머리를 쿵쿵 때려 보기도 하고, 쩝쩝 쓴 입맛을 다셔 보기도 하고...... 우리는 이렇듯 글의 제목을 앞에두고 고통스러워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렇게 되면 글을 쓰는 일이 재미있는 게 아니라 고문을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 버리고 만다.
2. 너무 큰 제목과 글감에 깔려 질식하지 말라.
자, '가을' 이란 제목을 받았다고 가정하자. 물론 이렇게 미련스런 제목을 주는 사람들은 애초에 글 쓸 사람들을 고문하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이거나, 좋은 글을 받아 낼 의사가 없는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가을'이라는 제목은 아직 인생을 배워가는 입장에 있는 여러분 들이 쓸 수 있는 글의 제목치고는 엄청나게 큰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쓸 여러분들이 보듬어야 할 대상(제목)이 너무 크면, 그것이 여러분들의 품속으로 들어오지 않을 뿐 아니라 여러분들의 힘으로서는 감당조차 할 수 없게 된다. 그것(제목)을 보듬기는커녕 그 밑에 깔려 죽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대게 이런 경우, 여러분들은 그 제목만큼 커다란 글감과 주제를 처음부터 들고 나선다. 자기가 감당할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나도 여러분들만할 때는 그랬으니까.
가을 그렇다. 가을은 퇴락하는 계절이고 이별의 계절이다....... 중학생 시절, 작문 시간에 나는 글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했다. 이 얼마나 거창한 말인가? 한껏 고심한 후에 써 낸 첫 문장이 이렇듯 큰 말이면 다음 말을 이어 쓸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 때 연필방아만 내내 찧어대다가, 결국 글다운 글을 쓰지 못하고 말았다.
3. 작은 이야기부터 시작하라
큰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조그마한 샘물에서 시작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샘물에 다른 샘물이 보태지고 또 다른 샘물이 보태지면서, 물줄기는 점차 커지다가 마침내 강물이 되는 것이다. 글쓰기도 그와 같다. 앞에서 우리는 봄을 찾기 위해 온 산과 들을 헤매어 다니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돌담 사이에 돋아난 어린 새싹에게서 그것을 느끼게 되는 한 아이를 보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씨름도 나(글쓴이)보다 힘이 약하고 체구가 작은 사람과 하게 되면 상대가 만만하게 여겨져서 마음대로 꾀를 부려 힘을 쓸 수가 있다. 하지만 나보다 힘이 세거나 체구가 큰 상대(너무 큰 제목이나 글감)를 만나면, 여느때 자기가 잘 쓰곤 하던 꾀나 힘을 제대로 한 번 써 보지도 못한 채 상대(제목이나 글감)에게 지고 만다. 가령'가을'이라는 커다란 글감이 주어졌다면 대개 당황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범위를 좁혀서 '귀뚜라미'나 '낙엽', '기러기' 따위로 글감을 삼는다면 한결 덜 부담스러워 진다. 그러면 '낙엽'에 관한 작은 이야기를 써 보낸 독자의 글을 한편 읽어보자.
올 가을도 어김없이 갈색 옷을 입은 낙엽이란 손님이 우리를 방문한다. 자신에게는 죽음이랄 수 있는 그 순간까지 아름다움을 뽐내며 우리에게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하는 그들...... 나는 그들을 보며 한 해도 이제 거의 저물어 가고 있다는 생각과 올해 나는 만족할 만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수업시간에 아무 생각없이 그저 하늘을 쳐다 볼 때, 하늘에 닿을 듯 우뚝 솟아 있는 나무는 나약한 나를 나무라는 듯이 미동도 없다. 그러나 전혀 변하지 않을 듯이 보이는 그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치장하며 나를 마주본다. 이제 그는 벌거벗은 몸으로 내년의 또 다른 영광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흘러가는 나날처럼 한 장 한 장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는 나는 과연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변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내실 있는 꾸준한 변화로 미래를 준비하는 나무와는 달리 나는 겉으로는 화려하게 보이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아무것도 없는 실속 없는 행동을 너무 많이 행했던 것 같다. 낙엽이 또 한 장 떨어진다. 손을 뻗어 떨어지는 낙엽 한 장을 잡아 책갈피에 곱게 끼워 넣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나뭇잎이 바삭바삭 마르고, 이 나뭇잎이 있던 자리에 새순이 돋아날 때쯤이면 나는 다시 새로운 계획을 세워 내 자신을 좀더 향기 있게 가꿀 수 있을 것이라고...... 이 나뭇잎 한 장을 항상 떠올리며.
이글의 지은이는 감수성이 아주 예민하여 대상을 자기의 정서 속에서 잘 소화하고 있고, 문장 또한 차근차근 밀도 있게 쓰고 있다. 생각을 잘 정리하여 진술하는 힘도 믿음직스럽다.
4. 작은 이야기(글감)속에 큰 이야기(주제)를 담으라 논술을 쓸 떄 유의할 점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글을 쓰기 전에 먼저 마음속으로 큰 이야기(강=주제)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머릿속으로 먼저 큰 강을 그려 놓은 뒤, 그것의 연원(작은 샘물 =소재)에서 강으로 더듬어 내려가야 한다. 이번에는 '은행나무는 은행이라는 열매를 성취한 존재이다. 나도 그것처럼 목표를 달성하자'는 큰 생각(주제)을 한 다음, 작은 강줄기를 따라 글을 써 내려간 독자의 글을 한 편 읽어 보도록 하자
요즘들어 우리 학교 운동장 보도 쪽에는 은행잎들이 상당히 많이 떨어져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 학교의 은행나무들은 얼마 되지 않은 은행잎으로 가지를 가리고 있었지만, 지금 운동장에 나가 보면 앙상하게 가지만 내어 놓고 있다. 전에는 가끔씩 창 밖을 보면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잠시나마 옛 생각을 떠올릴 수 있지만, 이제는 창 밖을 보아도 앙상하게 나와있는 가지밖에 볼 수 없어서 무척 안타깝다. 그렇지만 이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다시 봄이 오면 앙상했던 은행 나뭇가지엔 새파란 은행잎이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여름이 오면 열매를 맺고 가을이 오면 잎이 노랗게 물이 들어 겨울이 다가오면 다시 잎이 떨어지는 것을 반복할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이 바랐던 것을 이루고 다시 다른 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서 이루는 것이나 은행나무가 그러는 것이나 비슷하다. 나는 이 때까지 무엇을 겨냥하여 열심히 노력하여 그것을 이룬적이 없는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어떤 것을 목표로 정하여 그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여 그 목표를 달성할 것이다.
이 글은 문장이 좀 서투르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흠이 있기는 하지만, 자기의 주장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먼저 큰 생각(주제)를 분명하게 머릿속에 담고 이 글을 써 나갔고, 또한 은행나무의 삶을 세심하게 관찰한 뒤 그것을 우리의 삶에 비유하여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자, 이제 앞에서 공부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보도록 하자. 글의 제목을 받고 나서 볼펜방아만 짷고 있지 안흐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1) 무턱대고 큰 이야기부터 하려고 하면 글줄기가 막혀 버려서 실패하게 된다.
(2) 먼저 큰 강(주제)을 머릿속에 그려 놓은 뒤,
(3) 그 강을 거슬러 올라가 조그마한 샘물(소재)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한다.
(4) 제목은 절대로 크게 정하지 말고,
(5) 자기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작은 것으로 정해야 한다.
봄을 느끼기 위하여 산과 들을 헤매어 다녔지만 결국 느끼지 못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오다가, 돌담 사이에서 돋아 나오고 있는 새싹 에게서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는 한 아이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멀리 떨어져 있는 덩치 큰 것을 이야기하려 애쓰지 말고, 가까운 곳에 있는 자기의 작은 이야기부터 시작하라는 뜻이다.
생각해 봅시다.
1. 우리는 글쓰기 과제를 받고 난 뒤, 얼른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하고 연필만 원고지 위에 콩콩 찍어 댈 때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제목을 어떻게 정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글의 제목을 어떻게 정해야 글을 무리없이 잘 써 내려갈 수 있는지 설명해 보자.
2. 좋은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은 소재와 주제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크게 달라진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소재와 주제를 어떻게 형상화 해야 하는지 각자의 생각을 말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