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가 쏟아지는 우리 선인들 이야기 - 이훈종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신라 때 경문왕이라면 861년에 즉위하여 874년까지 왕위에 있었으니, 백제에 이어 고구려까지 멸하여(668) 통일된 지도 어언 2백년이요, 왕의 14년 최치원이 당에서 그 과거에 급제하였고 3년 뒤인 877년 고려의 왕건 태조가 태어났으며, 그뒤 935년에 신라는 왕조가 막을 내리는 그러한 시기다. 아니 18세에 화랑으로서 헌강왕의 잔치에 참가했을 때 왕은 그에게 물었다.
“낭은 국선으로 사방을 둘러보았겠는데, 무어 특이한 것을 본 적이 없는고?” “예! 훌륭한 행동 세 가지를 보았사옵니다. 남보다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몸을 낮춰 겸손할 줄 아는 이가 그 하나였고, 누구보다도 부호로 잘 살면서 검소한 생활을 하는 이가 둘째였사오며, 귀한 지위에 있어 세력도 있건만 그것을 내보이려 않는 이가 셋째였사옵니다.”
왕은 그의 말이 마음에 들어 “내게 두 딸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에게 장가들어 주지 않겠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그런데 `둘중의 맏이는 추물이요 둘째가 절세미인이라 모두 둘째를 얻으라`고 하는 중에, 낭도 중에 식견 높은 이가 있어 따로 만나 권하는 것이었다.
“맏이를 얻으시면 세 가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니, 내 말을 들으십시오. 아니면 내 이 자리에서 목숨을 버리겠습니다.”
그런 지 석달만에 왕의 병이 위중해 숨을 거두게 됐는데, 아들이 없으니 `맏사위로 대를 잇게 하라`고 유언하였다. 그 말을 따라 왕위에 오른 그에게, 앞서 권하던 동지가 찾아와 치하한다.
“그것 보십쇼, 맏이를 얻었기에 왕의 자리가 굴러 들어왔고, 어여쁜 둘째는 저절로 껴잡아 얻게 됐으며, 주위에서 모두 기뻐들 하시니 이 얼마나 경사스럽습니까?”
그런데 이분이 왕위에 오르면서부터 귀가 점점 자라 당나귀 귀처럼 커지고 말았는데, 왕비나 궁중의 가까이 모시는 이들도 누구하나 눈치 챈 이가 없었다. 그러나 왕의 복두를 만드는 이만은 모를 까닭이 없다. 물론 기록에는 없으나 왕은 그 자에게 눈을 부라렸을 것이다.
“이놈! 입밖에만 내 봐라. 네 목숨은 열이 있어도 모자랄 것이니...”
그래 평생토록 참다참다 이제 죽을 때가 임박해, 도림사 대밭 속 아무도 없는 곳에 들어가 엎드려서 털어 놓았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같단다...”
그 뒤 바람이 불면 대밭에서 소리가 났다.
“우리 임금 귀는 기일-다.”
여기까지가 삼국유사에 실린 얘기의 내용이다. 그런데 이와 똑같은 얘기가 그리스 신화에 있으니 신기한 노릇이다. 미다스(Midas)왕은 신에게 두 번이나 참혹한 형벌을 받아야 했다. 왕은 욕심쟁이어서 금이 많이 생겨지라고 빌었던 때문에, 디오니소스의 잔혹한 형벌을 받아 만지는 것마다 모두 금이 돼 버리는 것이었다. 그릇을 만지면 그릇이 금이 되고,음식을 먹으려고 손을 대면 금방 금이 돼 버리고, 딸의 손을 만지면 그 딸이 금이 되고... 어쩔 수 없이 신전에 가 여태까지의 소원을 없애달라고 빌어서 간신히 모면하였다. 태양의 신이요, 음악의 신이기도 한 아폴로와 목축의 신인 판이 음악 솜씨를 겨루었는데 신도, 사람도 모두 아폴로 쪽이 낫다고 했건만 미다스왕만이 무슨 고집인지 판쪽이 이겼다고 내버티어서, 화가 난 아폴로는 미다스왕의 귀를 떼어내고 대신 당나귀 귀를 붙여주고 말았다. 왕은 그 귀가 남의 눈에 띄는 것이 싫어서, 언제나 관을 써서 덮고 지냈는데 머리를 매만지는 이발사에게만은 보이지 않을 방도가 없다. 그래서 머리손질을 할 적마다 끝나고 나서는 이발사를 반드시 죽이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여러 사람이 죽어 나갔는데, 이발사 하나는 손질할 차례가 되자 애걸을 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절대로 말 않겠다는 서약을 하겠는가?”
열번 백번 절해서 맹세하고 정작 일을 시작해 보니 이런 변이 있나? 임금님 귀가 이게 뭐람? 무사히 일을 마쳤고 목숨마저 부지했으니, 잘만 하면 왕의 단골이발사로 일평생 영화를 누렸겠는데, 그의 복이 그뿐이었든지 그는 병이 나서 덜컥 눕고 말았다. 의사를 불러서 보였더니 예상한 대로다.
“다른 것이 아니라,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을 참다가 참다가 난 병이니, 나로선 손 쓸 방도가 없소이다.”
그래서 환자는 억지로 기력을 차려 일어나서 땅바닥에 구덩이를 파고 거기다 머리통을 쳐박고 속삭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란다.”
그리고 흙을 덮고 시치미를 떼었는데 거기서 버드나무가 한 그루 났다. 그것이 커서 바람이 불어 가지가 흐느적거릴 적마다 말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이발사가 말했던 그대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란다.”
이렇게 신기하도록 일치하는 동서양의 두 얘기를 놓고 생각해 본다. 어떤 정치가는 설명한다. 귀는 남의 말을 듣자는 기관인데, 신의 뜻으로 운영되는 것인 줄로만 알던 세계에서, 차츰 인간냄새 나는 세상으로 옮겨가는 과정에, 민중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으로 발생한 설화라는 말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많은 설화를 접하고 있는데, 저 유명한 `나뭇꾼과 선녀`얘기는 멀리 노르웨이서부터 동으로 일본에까지 분포되어 있고 유명한 신데렐라공주 얘기는 콩쥐팥쥐 얘기로 우리나라에 뿌리 내리고 있다. 특히 불경 가운데 많은 얘기가 민화에 스며들고 있어서, 몸이 변하고 딴 물체로 변하거나 하는 요소는 다분히 불교설화의 영향으로 보인다. 서양에서는 폭풍에 쓰러진 고목에 치어 고생하는 요정을 구해줬더니, 당신네가 바라는 세 가지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바다 용왕의 아들을 고난에서 구해 줬더니, 연적을 하나 보답으로 주면서 한쪽면을 문지르며 빌 적마다 한 가지씩 소원이 이루어지리라고 한 얘기가 있다. 이 연적은 네모 반듯하다고 했으니 윗면과 바닥까지 하면 정육면체이다. 그것을 손에 넣은 청년은 일생을 같이 살 예쁜 아가씨, 어디나 타고 다닐 수 있는 좋은 말, 잘 잘 듣고 충성스런 하인,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좋은 집을 차례로 요구해 그 모두를 얻어냈다.
“이제 남은 한면에다는 무엇을 비는 것이 좋을까요?”
수수께끼로 이어지는데, 아무래도 개화 이후에 들어왔을 아라비안나이트의 냄새가 약간 풍긴다. 수수께끼의 대답은 간단하다.
“이와 똑같은 연적을 하나 더 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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