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하) - 편저자 : 강효석, 역자:권영대, 이정섭, 조명근
2. 기사환국과 신임사화
황룡이 버드나무에 걸려 있는 꿈을 꾸고 장원 급제한 이만성
이만성(1636~1708)의 본관은 우봉이고 자는 사추, 호는 귀락당이다. 숙종 8년(1682)에 진사가 되고 22년에 문과에 장원하였다. 그의 과거시험성적을 매길 때의 일이다. 대제학 최석정(소론)이 시관 이세재를 시켜 대독하게 할 적에 그 글귀에 비점(시문이 잘된 곳에 찍는 둥근 점)을 하고 이의가 있을까 염려하여 말아서 무릎 앞에 두니, 김진규(노론) 등 여러 사람이 그를 의심하여 나아가서 보기를 청하고 문제를 삼으려 하다가 그 글이 아름답기 때문에 실행하지 않았다. 시험 답안지의 이름을 열어보게 되어서는 곧 기뻐하며 말하였다.
"사람을 지나치게 의심하여서는 안 된다. 참다운 인재를 잃을 뻔하였다."
초방(급제자 명단을 기초한 것)이 새벽에 나붙었는데 이만성이 2등이었다. 이만성이 믿지 않으면서 말하였다.
"과거시험을 응시하지 않았다면 그만이려니와 응시한 이상 반드시 장원일 것이다."
무릇 이만성의 꿈에 황룡이 문앞 버드나무에 걸려 있었는데, 손안에 있는 푸른 매를 놓자 매가 멀리 위에 올라가 그를 쪼으니 피가 흘러 자기 옷에 가득하였으므로 매우 자신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정방이 이르자 과연 장원이 되었다. 천성이 강직하고 엄숙하여 그의 조카 도암(이름은 재임)을 엄격하게 가르치고 조그마한 잘못이라도 용납하지 않았다. 하루는 도암의 어머니 민 부인이 그에게 떡을 사서 먹이니. 이만성은 이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 마침내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었다. 민 부인이 그 까닭을 물으니, 이만성은 말하였다.
"어린아이에게 자정이 깊다고 하여 떡을 사서 먹이면 아이의 습관이 어떻게 되겠으며, 앞으로 어떻게 사람다운 사람이 되겠습니까? 가르쳐도 쓸데없을 것이므로 가르치지 않겠습니다."
민 부인이 그만 사과하고 매우 부끄럽게 여겼다.
과객의 풍자시를 보고 술자리를 거둔 김창집
김창집(1648~1722)의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여성, 호는 몽와이다. 현종 14년 (1673)에 진사가 되고 숙종 6년91680)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강화유수로 있을 때의 일이다. 문루를 중수하고 낙성연을 베풀 적에 그의 아우 삼연 김창흡이 좌중에 있으면서 시를 읊으려 하는데, 갑자기 누 아래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리므로 그 이유를 물으니, 한 유생이 누에 올라와서 참여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김창집이 그 유생에게 술자리로 올라오게 하니, 그의 옷과 갓이 때가 묻고 해어졌으며 행색이 걸인과 같았다. 김창흡이 말하였다.
"그대는 시를 지을 줄 아느냐?" 이어서 운자를 보이고 술을 대접했더니 그 유생이 말하였다. "갈 길이 바쁘오." 그리고 곧 율시를 읊었다.
한 줄기 장강은 만석문을 둘렀는데 하늘이 형승으로 동쪽나라 보호케 했네 지난날 병자호란 그때의 일 생각하면 완손이라 변방의 혼 얼마나 애끓게 했더뇨 오늘날 제공들은 술잔을 들지 마오 당시의 대장들도 술 마시기 좋아했다오 서생의 소매 속에 삼척검이 우노니 북산 향해 옛 원한 씻으려 하도다
시를 다 읊고 난 유생이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김창집이 말하였다. "이 시는 나를 깨우치는 것이다." 곧 술잔치 지리를 거두었다.
숙종 32년(1706)에 정승에 임명되어 영의정에 이르렀다. 숙종이 승하하고 3년이 지난 경종 2년(1722) 4월에 성주의 적소에서 사약을 받았다. 사약을 받아 죽을 때 민진원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옛사람이 절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일을 논하고 웃고 말하는 것이 평소와 같았다. 시 여섯 수를 지었는데, 그 중의 한 수는 다음과 같다.
등잔불 깜빡깜빡 몇 경이 지났느냐 운명에 다다르니 생각이 자연 화평하기 어렵구나 이웃집 닭 울어대니 밤은 어이 짧은고 성 모퉁이 노랫소리 먼동이 이미 밝도다 좋은 소식 잠시 전하는 것 어찌 다시 기뻐하랴 흉한 소식 잇따라 와도 놀랄 것이 없도다 저승으로 이번에 떠나 여러 아우 상종하니 이승에서 홀로 구차히 사는 것보다 낫도다
또 읊었다
임금 사랑 아버지처럼 사랑했으니 하늘의 해가 이 충심을 알아주리 선현(조정암을 일컬음)의 이 시구의 말은 비절하기 예나 지금이나 같도다
문충공 이이명, 충익공 조태채, 충민공 이건명과 같이 화를 당하였는데, 세상에 노론 사대신이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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