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송도 계원에도 들지 못한 한명회
한명회(1415-1487)의 본관은 청주이다. 젊었을 적에 불우하게 살았으며 4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개성의 경덕궁 문지기가 되었다. 명절을 맞아 관료들은 만월대에 모여 유쾌하게 놀았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모두들 언약하기를 "우리들은 모두 남쪽에서 이곳 개성으로 와서 벼슬하게 된 고향 친구들이다. 오늘 우리는 계모임을 만들어서 영원한 우의를 다지자!"고 하였다. 외로움을 느낀 한명회도 이 계모임에 넣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였지만 모두들 흘깃흘깃 쳐다보기만 하고 허락해 주지 않았다. 한명회를 무시했기 때문에 끼워 주지 않은 것이다. 그 이듬해가 되자 세상이 바뀌었다. 계유정난 때 세조를 도와 공을 세운 한명회는 일등 공신에 녹훈되었을 뿐 아니라 부원군이 되어 그 권세가 막강하게 되었는데 지난날의 송도 계원들은 모두 힘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하여 조그만 세력을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자를 일컬어 '송도 계원'이라고 부르는 말이 유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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