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점쟁이의 아들을 살려준 홍윤성
홍윤성(1425-1475)의 본관은 회인이고, 자는 수옹이다. 천성이 사납고 잔인하여 살생을 좋아하였다. 문종 즉위년(1451)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세조가 수양대군으로 있을 때 제천정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수십 명의 장사들이 배에 올라가 뱃사공을 위협하여 배가 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를 본 홍윤성이 몸을 날려 배 위에 올라가 노를 부러뜨리고 그들을 모두 물에다 던져 버린 뒤 자신이 직접 배를 저어 한강을 건넜다. 이를 본 수양대군이 그를 오라고 하여 만났다. 홍윤성은 수양대군에게 절을 하지 않고 고개만 약간 숙이면서 말하였다.
"지금 임금은 유충하고 나라는 뒤숭숭하며 대신들은 임금을 따르지 않고 백성들은 의지할 데가 없거늘, 대군께서 이렇게 뱃놀이에만 빠져있고 부하들은 길가는 나그네를 괴롭히니 매우 한심합니다. 어찌하여 나를 불렀습니까?"
수양대군은 그 말을 기특하게 여기고 그와 은밀하게 친분을 맺어 두었다. 뒤에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홍윤성은 정난공신이 되어 인산부원군에 봉해지고 형조 판서가 되었다. 이보다 앞서 홍윤성은 홍계관의 점이 용하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찾아가 점을 쳤는데, 점쟁이 계관이 한참 있더니 다시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말했다.
"매우 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모년 모월 모일에 형조 판서에 오를 것입니다. 그때에 저의 자식놈이 죄에 연루되어 죽음을 당할 신세가 될 터인데 제발 오늘을 잊지 마시고 저의 자식을 살려주십시오"
계관이 자기 아들을 불러내 홍윤성 앞에서 말하였다.
"모년 모월에 너는 죄를 짓고 감옥에 갈 것이다. 그러면 형조 판서 어른께 누구의 자식임을 말씀드려야 한다"
이 말을 들은 홍윤성은 매우 놀라고 정신이 없어 그 말에 대답조차 하지 못하였다. 과연 그 뒤에 추국이 있을 때 스스로 점쟁이 홍계관의 아들이라고 이름을 밝히는 자가 있었다. 홍윤성은 지난 일을 잊지 않고 그를 풀어 주었다.
세조 14년(1468)에 우의정과 영의정에 올랐으며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홍산에 살면서 백성들을 못살게 굴었고 홍산 수령 역시 괴로움을 많이 받았다. 세조가 온천에 갔는데, 홍산 사람 나계문의 아내 윤씨가 밖에서 울면서 호소하였다. 세조가 그 소리를 듣고 사람을 시켜 여인에게 그 사연을 들었다.
"홍윤성의 집 종들이 세력을 믿고 자기 남편을 때려서 죽게 하였지만 현감 최윤은 홍윤성의 권세를 겁내어 자기 남편을 직접 때려 죽게 한 사람만 가두고 다른 사람은 불문에 부쳤습니다. 또 홍윤성 집의 종들이 와서 갇힌 죄수를 데리고 갔으며, 감사 김지경은 현감에게 부탁하여 그 죄수를 사면하라고 하고 도리어 저의 아버지 윤기에게 홍윤성을 모해하였다는 죄를 뒤집어씌워 공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호소를 듣고 난 세조는 윤씨 여인을 불쌍히 여겨 감사 김지경과 현감 최윤 그리고 홍윤성을 모두 잡아들여 국문하게 하고 윤성의 집 종들을 모두 극형에 처하였다. 얼마 후에 임금이 홍윤성을 지난 공을 참작하여 특별히 사면하고, 이어 명하였다.
"윤씨 여인이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남편의 원수를 갚았으니 그 절의가 가상하다. 그 여인에게 쌀 열 가마를 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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