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글짓기에는 이기고 속임수에는 진 이석형
이석형(1415-1477)의 본관은 연안이고, 자는 백옥, 호는 저헌이다. 그의 아버지 이회림은 늦도록 자식이 없어 그 부인과 더불어 삼각산에서 기도하고 그를 낳았다. 그의 어머니가 임신 중에 아버지가 꿈을 꾸었다. 꿈을 막 깨자 아들이 태어났음을 알려 왔으므로 이름을 석형이라고 지은 것이다. 공은 출산되었을 때 푸른 보자기에 싸여 나왔다. 푸른 보자기를 째고 보니 태아의 살갗이 검고 뼈마디가 늘씬늘씬하였고 전신에 털이 있었으므로 그 어머니는 상서롭지 못하다고 아이를 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보고는 "참으로 기이한 사내아이구나" 하고 크게 기뻐하였으므로 버릴 수가 없었다. 이석형은 볼기에 손바닥만한 검은 점이 있었는데 그 모양이 거북 모양을 닮았다. 이석형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면 꿈에 볼기의 거북점이 거북으로 살아나 이석형의 몸을 맴돌곤 하였다. 이석형은 차츰차츰 자라나면서 모습이 씩씩하고 도량이 넓어졌으며 배움을 부지런히 하였다. 생원시, 진사시를 거쳐 세종 23년(1441) 문과시에 장원하고 동왕 29년 중시에 합격하였다. 세종이 팔준도를 직접 만들고 그 그림에 쓸 글을 지어 오도록 신하들에게 명했다. 이때 이석형이 전의 두련을 만들었다.
하늘이 도와 임금을 내시니 성인이 천년 운세에 감응하고 땅의 쓰임이 말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니 신물이 있는 힘을 다 바치네
이 글을 본 성삼문은 '이번 과장에서는 이석형의 글이 가장 우수하구나'라고 생각하고 이석형을 보고 속임수를 써서 말했다.
"그대가 시골 학자를 본따서 이 글을 지은 모양인데 말 마자와 임금 군자를 대로 만든 것은 부당하지 않느냐?"
이석형은 점잖은 사람이라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지어 놓은 글을 버리고 다시 시를 지었다. 성삼문이 그 글을 훔쳐서 전을 만들어 일 등을 차지하였다. 이석형이 성삼문을 보고 말했다.
"내 무릎은 남에게 굽힌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성삼문이 이석형에게 응수했다. "나는 남에게 무릎을 굽히지 않은 사람의 무릎을 굽히게 하는 사람이오"
이 사실이 당시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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