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후원을 거닐다가 미복 차림의 왕을 만나 큰소리친 최지
최지의 본관은 전주이다. 세종 20년(1438)에 문과에 급제했다. 따스한 봄날 시를 읊조리면서 대궐 후원을 산책하다가 미복을 입고 나온 세조를 만났다. 최지는 허리를 구부려 업을 하였을 뿐 공손하게 절을 하지 않았다. 세조가 물었다.
"너는 누구이기에 감히 내지에 들어와서 이렇듯 무례하게 구느냐?" 최지가 대답하였다. "나는 문사요. 궁중에는 상감 한 분만 계실 뿐인데 어찌 당신에게 특별하게 예의를 표할 필요가 있겠소?"
이때 최지는 마음속으로 그가 왕자 중의 한 사람일 거라고 짐작했다. 최지가 길가에 걸터앉자 세조가 그에게 말했다.
"네가 원양(공자의 옛 친구이다. 원양이 걸터앉아서 공자를 기다렸는데 그를 만나자 공자가 막대기로 정강이를 치면서 "젊어서는 무례하더니 늙어서는 죽지도 않는구나" 하고 놀려 준 고사가 논어에 전한다)이냐? 어찌하여 걸터앉느냐?"
조금 후에 시녀와 내시가 잇따라 왔다. 최지는 놀라 떨면서 사죄하였다. 세조 임금이 그를 편전으로 불러서 경서를 강론하자 최지는 세조가 묻는 대로 척척 대답하였고 경서의 깊은 뜻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풀이 하였다. 세조는 크게 기뻐하여 술을 권하였다. 최지는 술이 얼큰하게 취하였다.
"이 선비가 성리학에 밝구나. 서로 만남이 늦은 것이 한이구나"
세조는 즉시 최지를 성균관 사성에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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