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육신전'을 지어 충의를 세상에 알린 남효온
남효온(1454-1492)의 본관은 의령이고, 자는 백공, 호는 추강, 또는 행우이다. 김종직에게 글을 배웠는데 김종직은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언제나 '우리 추강'이라고 불렀다. 김굉필, 정여창, 김시습, 안응세는 남효온을 형제처럼 대해 주었다. 성종 때 공은 18세의 나이로 상소하여 소릉(문종의 비 현덕왕후의 능호)의 복구를 청하였는데, 상소가 받아 들여지지 않자 세상을 단념하고 명승지를 찾아 소요하였다. 세속의 일에 분개하여 모악산에 올라 통곡했으며 위태롭고 과격한 말을 거리낌없이 하였으므로 김굉필, 정여창이 늘 조심할 것을 당부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김시습은 늘 남효온을 보면 이렇게 물었다.
"나는 세종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서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공은 다르지 않은가? 어찌하여 세상을 등지는가?" 그때마다 효온은 이렇게 대답했다. "소릉의 일은 천지의 큰 변일세. 소릉을 복위한 뒤에 과거를 보아도 늦지 않네"
그 뒤로 시습은 다시 권하지 않았다. 남효온이 '육신전'을 짓자 문인들이 화를 당할까 두려워 적극 말렸으나 효온은 듣지 않았다.
"내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여 대현 충의의 이름을 매몰되게 둘 수 있는가?"
'육신전'은 드디어 야사가 되어 세상에 전파되었다. 뒷날 그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과거에 응시해 성종 11년(1480)에 진사에 합격하였다. 술을 즐긴다고 어머니가 꾸짖자 그는 지주부를 짓고 10년 동안 술을 끊었다. 성종 23년(1492)에 39세의 나이로 죽었는데, 연산군 10년(1504)에 부관참시되었다. 정조조에 이조 판서에 증직되었다. 시호는 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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