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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편저자:강효석
역자:권영대, 이정섭, 조명근
차례
대동기문 서
1. 창업의 문
이성계에게 옥새를 바친 개국일등공신 배극렴
궁궐 공사로 손발이 갈라 터진 심덕부
왕자의 난에 희생당한 당대의 석학 정도전
끝내 중이 된 태조 이성계의 친구 이지란
살아 돌아온 함흥차사 성석린
새끼 딸린 말로 태조의 마음을 돌리고 죽은 박순
개국공신을 조롱한 송도의 명기 설중매
이성계가 왕이 되는 꿈을 해몽한 예언자 무학대사
기생을 사랑하여 눈물 흘린 박신
누런 용이 옆에 누워 자는 꿈을 꾼 박석명
억울함을 참고 거위의 목숨을 살린 윤회
백발백중 명사수 김덕생
살아서는 왕의 형, 죽어서는 부처님의 형 양녕대군
중이 되어 왕좌를 양보한 효령대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박안신
꿈을 잘 해몽하여 자라를 살려준 권홍
뛰어난 외교관, 두주불사의 술꾼 최치운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다"의 황희
비 새는 집에서 살았던 맹고불 맹사성
앉아서 세종의 술잔을 받은 최윤덕
방안에서 우산을 써야 했던 청백리 유관
역졸들의 고통을 임금에게 낱낱이 아뢴 노한
어린 나이에 자신의 무죄를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해결한 슬기로운 신개
굶어 죽은 왕자 광평대군
육신보다 격이 더 높은 사람 최덕지
하늘의 조화를 부른 절개를 지킨 정본
'신'자 대신 '거'자를 써서 세조에게 항거한 박팽년
"사직이 위태로울 때는 죽는 것이 영광일세" 이개
세조로부터 받은 봉록을 고스란히 쌓아둔 하위지
세조의 공을 치하하는 글을 쓰고 통곡한 유성원
서생들과는 아무 일도 도모할 수 없다고 한탄한 유응부
태어날 때 세 번 묻더니 죽을 때도 세 번 신문 당한 성삼문
오세 신동, 끝없는 방랑자 김시습
육신전을 지어 충의를 세상에 알린 남효온
호랑이를 타고 청량포를 건너가 단종의 시신을 거둔 조려
단종 복위에 실패한 후 평범한 농부로 살았던 성담수
강물을 피로 물들인 비운의 왕자 금성대군
죽음으로 옥새를 지킨 혜빈 양씨
귀머거리, 미치광이 흉내로 일관한 권절
군자는 때에 따라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상소한 조상치
단종의 장례를 치른 호장 엄흥도
제주도민에게 장례법을 가르친 기건
평생을 괴물과 함께 살았던 신숙주
국을 식게 만드는 사람 권람
우리 집에도 선조의 문집이 있다고 익살을 부린 강맹경
온종일 벌주를 마신 구 정승 구치관
남이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죽은 강순
얼굴에 분바른 귀신 때문에 장가든 남이
달의 이상 현상을 보고 어머니의 죽음을 안 서거정
후원을 거닐다가 미복 차림의 왕을 만나 큰소리친 최지
빌려온 신숙주의 책을 뜯어 벽에 바른 김수온
글짓기에는 이기고 속임수에는 진 이석형
점쟁이의 아들을 살려준 홍윤성
송도계원에도 들지 못한 한명회
오랑캐들을 벌벌 떨게 한 이징옥
미인계를 써서 반란을 일으킨 이시애
시로써 신숙주를 굴복시킨 윤자운
끝내 삼림 밑에서 죽은 윤필상
용상을 가리키며 이 자리가 아깝다고 예언한 손순효
외손 30여 명이 규장각의 관원이 된 양성지
어릴 때부터 대가가 될 것이라고 촉망받은 신항
높은 벼슬에 등용되지 못하더라도 아내를 버리지 않겠다고 한 권경희
과거에 낙방하고도 장래 대제학감으로 평가받은 김종직
귀갑이라는 점괘가 정말로 들어맞은 김홍도
어린 나이에 소를 올려 아버지를 구한 김규
춘추를 잘 외워 하루아침에 대사간이 된 구종직
명함에다 시를 써 박원형의 마음을 움직인 윤효손
2. 사화의 소용돌이
폐비사건을 보고 갑자사화를 예견한 이세좌의 부인
일부러 말에서 떨어져 폐비 사건에 말려들지 않은 허종
부인이 호랑이에게 물려가 큰 화를 면한 유순
4대에 걸쳐 정려문이 여섯 번이나 세워진 정성근
연산군의 청혼을 거절하여 죽은 홍귀달
금갑옷을 바다에 던져버린 청백리 이약동
성종으로부터 친구 대접을 받은 유호인
평생 소학을 가까이했던 소학동자 김굉필
신선로를 만든 은둔자 정희량
이극돈의 죄를 사실대로 쓴 김일손
연산군의 연회를 신랄하게 비판한 박한주
홀아비로 살 적에 기생을 거절한 이자건
병풍에 시를 썼다가 죽음을 당한 임희재
연산군으로부터 큰 소인이라고 비난받고 시체가 강물에 던져진 조지서
익살과 풍자로 연산군에게 간언한 표연말
"한치의 땅도 더 늘리지 말라" 하며 사들인 땅을 되돌려 주게 한 윤석보
자라 여덟 마리를 살려주고 아들 여덟을 얻은 이원의 아버지
조의제문으로 유배되고, 지난 일로 부관참시당한 조위
영의정의 청을 거절한 올곧은 부사 정붕
평생 김종직을 미워하며 옛 원한을 앙갚음한 유자광
마부의 옷을 입고 중종을 위기에서 건진 영산군
연산군에게 극력 간하다가 호랑이밥이 된 내시 김처선
홍귀달의 원혼을 따뜻한 술로 달래 보낸 송질
3. 왕도정치의 시작
영욕이 번복되는 일생을 살았던 정광필
"젊어서 사직을 기울게 하였다"라고 시문을 고쳐 단 심정
꿈을 빙자하여 형의 재산을 빼앗은 심의
중국 사신을 경탄게 한 시단의 노장 이행
고양이 덕분에 죽음을 면한 장순손
신인에게 시를 받아 장원급제한 김안로
산골짜기 노파와 농부들까지도 우러러보았던 조광조
"사람과 귀신의 길이 다르다"며 귀신을 물리친 성수침
부서진 배에다 선량한 선비를 비유한 최수성
남이 보내오는 물건을 꼼꼼히 기록한 김안국
신인의 현몽에 따라 소를 도로 거둔 김정국
사필은 아무나 잡는게 아니라고 항변한 채세영
잘린 여자 속옷을 항상 옆에 두고 후손을 경계한 박영
관곡을 빌려 먹을 정도로 청빈했던 최명창
홍패는 몰수되고 백패마저 도둑맞은 신잠
유기장이의 딸을 정부인으로 삼은 이장곤
병의 근원을 치료했던 명의 안찬
문장에는 뛰어났으나 일처리 능력이 모자랐던 신광한
남곤을 구부러진 매화등걸에 빗대어 시를 지은 남추
이항복에게 귀신으로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한 복성군
작서의 변에 옥사가 공평치 못하다며 위관을 나무란 미관말직의 허굉
변방으로 유배가는 회재에게 옷을 벗어준 장언량
문과급제한 뒤에 손을 펴니 손톱이 손바닥을 뚫고 들어간 양연
기생에게 한 약속을 끝까지 지킨 박신규
빈궁하게 40살 영달하게 40살 산 조원기
기생의 원한을 풀어준 천추사 조광원
황진이의 유혹에도 동요하지 않은 서경덕
지극한 효성으로 명당자리를 얻은 김언겸
"썩은 노끈으로 사형수의 목을 맨단 말인가" 죽음 앞에서도 호통을 친 홍순복
돌부처에 미혹된 자들을 깨우친 이인형
종신토록 장가를 못 들어도 김안로의 사위는 되지 않겠다고 한 정희등
글은 배우되 과거에 응시하지 말라고 아들을 가르친 임형수
왕희지의 필법과 한퇴지의 문장으로 일컬어진 김구
예견과 지혜로 엄청난 화를 면한 이자
술을 마구 마셔 위장이 못쓰게 된 유운
조정과 저자를 숙연하게 한 대사헌 최숙생
"남자가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하고 중종반정을 도모한 성희안
이시애난 때 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신용개
대사간을 시켜준다고 꾀는 심정을 꾸짖은 성세창
천수를 다하고 부귀를 누린 사람으로 손꼽히는 소세양
백년 후를 내다보고 소나무를 심은 황형
관찰사를 훈계한 뒤 군수 자리를 버리고 떠난 조언형
"직제학이 아니라 곡제학"이라고 준열하게 풍자한 주세봉
우스갯소리로 세상을 풍자했던 어득강
소인이란 비난을 면치 못한 주초위왕의 주인공 남곤
청맹과니라고 칭탁하고 청렴하게 산 남포
성균관 뜰에다 손수 은행나무를 심어 교훈을 남긴 윤탁
인종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김인후
아버지의 묘소에 언문으로 비를 세운 이문건
배가 침몰되는데도 태연했던 유희춘
4. 사림파의 수난
김안로가 나라를 그르칠 줄 미리 알고 걱정하였던 이언적
정미사화를 빚어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간 정언각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은 상진
제멋대로 권세를 휘둘렀던 명종의 외삼촌 윤원형
누이동생 난정을 미리부터 멀리했던 정담
귀신 같은 점을 치고도 오해받아 사형 당한 점쟁이 홍계관
임진왜란을 예고한 남사고
밥알을 내뿜어 나비가 되게 한 전우치
고을의 품관들에게 나물죽을 대접했던 이지함
천기를 누설한 정렴
아내가 죽자 다시 장가들지 않고 천수를 다한 정작
꿈에 과거 시험 문제를 미리 본 임백령
구차하게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개탄한 이해
비석을 세우지 말라고 유언으로 경계한 이황
임진왜란을 미리 안 이이
묘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던 허엽
백마강부가 동방에 크게 전파된 민제인
곤장 크기가 넓적다리만 하니 오늘 목숨이 다할 것이라고 한 박광우
소인들이 조정에 있으면 붕당을 만든다고 임금에게 책임을 물은 임권
영월군수가 되자 단종의 신위를 설치하여 괴상한 변고를 없앤 김륵
무뢰배 생활을 청산하고 훌륭한 학자가 된 이항
고집쟁이 선비 최영경
윤원형의 패망을 미리 안 박사종
시문을 지어 소도둑을 석방하게 한 옥봉
소나무를 심어 관을 만든 박계현
비오는 날의 나막신 구실을 한 정사룡
주인의 원수를 갚은 유관의 여종 갑이
하인에게 거지 사윗감을 골라주고 뒷일을 부탁한 이준경
요망한 중 보우를 죽인 변협
세도가의 상납 요구를 떳떳하게 물리친 김렴
대동기문 서
오확(전국시대 진나라의 역사)은 무게 천 근을 드는 장사였지만
자신의 몸은 들지 못하였으니 어찌하여 물건을 드는 데는 강하고
자신을 드는 데는 약하였던가. 이주의 시력은 가을 털끝은 살필
수 있어도 자신의 눈썹은 볼 수 없었으니 어찌하여 털끝을 보는 데는
밝고 눈썹을 보는 데는 어두웠던가. 이는 형체에 구애된 때문이다.
초나라 무당은 남을 위하는 데는 혼령도 불러내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재앙도 물리칠 수 없었고, 진나라 의원은 남의 목숨은 살려냈지만
자신의 병은 낫게 하지 못하였다. 어찌하여 남에겐 신비한 효험을 보이면서
자신에겐 보이지 못했을까. 이는 사심에 가리워진 때문이다.
노나라에 살면서 '춘추(노나라의 역사서)'는 읽지 않고
'승(진나라의 역사서)'이나 '도올(초나라의 역사서)'을
읽는다거나 송나라에 살면서 장보(송나라 의관)를 착용하지
않고 깃털 모자를 쓴다면, 이는 형체에 구애된 때문일까. 아니면 사심에
가리워진 때문일까. 여기에서 우리는 어리석고 미혹되기 짝이 없음을
느낄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제점은 어디에 있을까? 새것을 좋아하고 기이함을
숭상하며 우리 것은 업신여기고 남의 것을 배우기에 급급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주, 진, 한, 당 등 중국 역사에 대해서는 부녀자나
아이들까지도 거침없이 설명하면서 단군, 기자 등 우리 역사에 대해서는
노숙한 선비를 자처하는 사람들까지도 상세하게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세대가 내려올수록 더욱 어둡고 우리와 가까운 일일수록 더욱 소홀하다.
의로움과 이로움을 가리지 못하여 도척을 순임금으로 잘못 아는가
하면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혼동하여 은을 철이라고 우기며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여 주황색을 자주색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 아니
이러한 자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사람의 이름은 알면서 그 사람이 산 시대는 알지 못하는가 하면 그
사건은 알면서 그 사건이 누구에 의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며, 성은
알면서 본관을 알지 못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심한 경우에는 자기
조상에 대한 역사는 캄캄하여 누가 물으면 아예 입도 벌리지 못하고 딴전만
피다가 외국 역사에 대해 말하게 되면 신바람이 나서 바다 건너
멀고먼 불모지까지도 마치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말하듯 소상하게 설명하며
그칠 줄을 모른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병폐인가? 우리들의 의문은 여기서 더욱 심하게
된다.
나의 벗 금천자는 이 땅 대동에서 태어나 이 땅에서
늙은 사람이다. 언젠가 그는 내게 말하기를, 고려 이전의 일은 이미 기록이
정비되어 있으니 두어두고, 조선 태조부터 고종까지 사이에 일어난
기괴한 일들을 기록하여 4권 1책으로 만들어 이름을 '대동기문'으로
했다고 하였다. 또 나도 이 땅 사람이란 이유로 그는 나에게
서문을 쓰도록 하였다.
이 책은 기이한 일을 실은 책이므로 괴이한 이야기도 있고 익살맞은
사실도 실렸으며 야인의 사적도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역사 속의 패사라면
말이 되지만 그저 평범한 일상적인 글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 이 속엔 이름난 공과 큰 업적에 관한 이야기며 뛰어난 충신, 효자
이야기며 숭고한 도학과 빛나는 문학 이야기가 실려 있으니 어찌 단순히
한낱 패사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 속엔 아름다운 이야기와
추악한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고 좋은 이야기와 나쁜 이야기가 섞여 있으니
그 가치 판단은 마땅히 독자가 해야 한다.
만약 새것을 좋아하고 우리 것을 소홀히 여기는 자가 곁에 있다가 하하
웃으면서, 이 책이 진부하면 진부했지 기이할 게 무엇이냐고 비웃는다면
아마 자네는 틀림없이 송나라 사람은 송나라 관을 써야 되고 노나라
사람은 노나라 역사를 읽어야 하듯이 이 나라 사람은 이 나라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고 말할 걸세.
을축(1925년)년 죽취일(음력 5월 13일, 대를 심는 날)
번천 김영한이 서문을 쓰다.
* 윤영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6-07 0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