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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뒤흔든 여인들 - 구석봉
용꿈 꾸고 얻은 '주름 왕자' -장화 왕후 오 소저는 제쪽에서 열을 올려 왕건의 목을 쓸어안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왕건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의 남성을 뽑아 버리는 것이었다. 그로 인하여 토정은 모두 자리 위에서 흥건하게 묻어 버리고 말았다. 오 소저는 깜짝 놀라 이번에도 몸을 발딱 일으켰다. 그녀는 자리 가까이로 입을 벌리고 가서 토정한 왕건의 그것을 모두 목으로 넘겼다. '이 어른이 내가 임신하는 걸 원치 않으시지만 난 기필코 이 어른의 아기를 낳고 말 테다.' 이튿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왕건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리 위에다 사정하는 것이었으나 그 때마다 오 소저는 자리 위의 정액을 모두 목으로 넘겨 버리는 것이었다. 며칠 밤을 그렇게 오 소저의 집에서 묵고 왕건은 다시 길을 떠났다. 몇 년 뒤 왕건은 북으로 궁예의 군사를 누르고, 남으로 견훤의 후백제를 토평한 뒤 급기야 개경에 도읍을 정하고 고려를 세웠다. 그 사이 아들을 낳은 오 소저는 태조 왕건의 부름을 받고 개경으로 올라왔다. 왕후에의 꿈을 안고 달려간 오 소저에게 왕건은 그녀를 제 1왕후로 맞아들일 수 없는 사유부터 설명했다. 제 1왕후 유씨는 왕건이 남정을 떠나는 길에 정주에서 얻은 여자라 했다. 정주 부호 유천궁이 유씨의 아비여서 왕건은 그녀의 집에서 군자금을 보태어 쓰기도 했다는 것이다. "나와 중전(유씨)이 처음 만난 곳도 그대처럼 우물터에서였소." 왕건은 회상에 잠겼다. 유 중전이 아직 물 오른 수양버들 가지처럼 여리고 싱싱하던 시절. 어느 해던가, 더위 속을 달려 우물터에 다다른 왕건은 두레박 속에 떠 있는 나뭇잎을 후후 불어 가면서 물을 마셨다. 물 한 두레박을 다 마시고 난 왕건은 그제서야 궁금한 것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내가 마시는 물에 버들잎을 띄웠는가." "예. 그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장군님을 뵈오니 먼 길을 달려온 듯 하와 너무 목이 마르던 참에 급히 물을 마시다 사례가 드시면 큰 일이다 싶어 버들잎을 띄웠나이다." "오, 그랬던가.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구먼." 유씨가 두레박 물에 버들잎을 띄운 슬기는 왕건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다. 그날 밤 자기 집에서 왕건을 모신 유씨는 그 뒤 소식이 끊긴 왕건을 기다려 지조를 정결하게 지켰을 뿐만 아니라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가 태조가 등극한 뒤 부름을 받아 왕후가 되었다. 오 왕후보다 한 발 앞서 대궐로 들어온 유 왕후에게는 웬일인지 아직 왕자가 없었다. 오 왕후는 그게 다행이다 싶어 자기 소생의 왕자 무를 왕건에게 보였다. 오씨 소생의 어린 왕자 무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왕건은 그만 실소를 금치 못했다. "마마, 이 아이의 얼굴에 무엇이 씌어 있기라도 한지요?"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니네만 무의 얼굴에 이 무슨 자리 자국인고?" "자리 자국이라니오, 마마!" "보시오, 얼굴에 분명한 이 자리 자국!" 기실 왕자 무의 얼굴에는 태어날 때부터 자리 자국이 선명하게 돋아나 있었는데,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오 왕후가 왕건과 시침할 때 자리 위에 사정한 정액을 목으로 넘겨서 임신한 때문이었다. 오 왕후 소생 무 왕자는 자라나면서 차츰 이상한 짓을 곧잘 했다. 무 왕자는 자기가 자는 자리 위에다 항상 물을 뿌려 두는가 하면, 또 큰 병에 물을 담아 놓고 팔꿈치 씻기를 좋아하였다. 이 모양을 본 대궐 안 사람들은 모를 두고, '용의 자식'이니 '용자'니 하고 수군거렸다. 용의 자식이라 물을 좋아하고 물로 씻기를 즐긴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오 왕후는 부끄럼 없이, "아무렴, 내 아들 무는 용의 자식이고 말고. 용꿈을 꾸고 마마를 모셨으니 용의 자식이고 말고." 하면서 대견해하였다. 어느덧 무의 나이 일곱 살이 되었다. 그 때까지 태조 왕건은 무를 태자로 봉하지 않고 있었다. 무의 용덕이 뛰어나고 담력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어머니가 미천하여 장차 사위함을 얻지 못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오 왕후 소생 무를 태자로 봉하는 데는 약간의 장애가 없지도 않았다. 원래 태조 왕건의 아들은 30명이나 되는 왕비와 후궁들 사이에서 스물 여섯이나 탄생하였으니 그 가운데서 차기 왕위에 오를 태자를 정한다는 것이 그렇게 수월한 노릇만은 아니었다. 오 왕후 소생 무를 비롯하여 제 16왕후인 광주원 부인 소생과 유검필의 딸 동양원 부인의 소생이 각각 태자와 왕위 계승을 동시에 노렸다. 오 왕후는 지난날 태조를 모실 때 일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매일같이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날 태조와 교섭을 가질 때 자리 위에 쏟아 버린 정액을 오 왕후는 재빨리 목으로 넘기질 않았던가. 그 때는 부끄러운 줄도 몰랐었고 불결한 줄도 몰랐었다. 오 왕후의 오직 한 가닥 바람을 그저 어떻게 해서든지 왕자를 낳아서 왕의 관심을 끌어 보자는 마음뿐이었다. 그녀의 욕심대로 태조의 아들을 낳기는 하였지만 왕자가 일곱 살이 되도록 아무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오 왕후는 자기보다 뒤늦게 대궐로 들어온 왕비들이 와자를 낳을 때마다 무가 밀려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오 왕후의 그 같은 기우는 뒤늦게 태조에게 전달되었다. 어느 날 태조는 오 왕후에게 옷상자 한 개를 하사하였다. "이는 옷상자가 아니옵니까, 마마?" "그렇소, 옷상자일세." "이 안에 무슨 옷이 들어 있나이까, 마마?" "상자를 열어 보면 알리라." 태조가 돌아간 뒤 오 왕후는 상자를 열어 보았다. "아, 이는 자황포가 아닌가." 자황포란 와아가 입는 옷이었다. 태조가 자황포를 보낸 것은 왕자 무를 태자로 삼겠다는 의사 표시였다. 오 왕후는 그 길로 대광 박술회를 찾아가 왕이 자황포를 내린 사실을 알렸다. 박술회는 태조의 뜻을 알고 무를 세워 태자로 삼을 것을 청하였다. 그리하여 오 왕후는 그녀의 숙원을 풀게 되었다. 뒷날 태자 무가 고려의 제 2대 임금이 되었을 때 그에게는 접왕이라는 별명이 붙어 다녔다. 접왕이란 곧 '주름진 임금'이란 뜻이니, 혜종의 어머니 장화 왕후 오씨가 자리에 버린 태조 왕건의 정액을 목으로 넘겨 태어났다는 내력이 그 접왕이란 말 속에는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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