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 - 道德經 : 第二十三章 (노자 - 도덕경 : 제23장)
希言自然, 故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孰爲此者, 天地, 天地尙不能久, 而況於人乎,
故從事於道者, 道者同於道, 德者同於德, 失者同於失, 同於道者, 道亦樂得之, 同於德者,
德亦樂得之,同於失者, 失亦樂得之, 信不足焉, 有不信焉.
희언자연, 고표풍부종조, 취우불종일.숙위차자? 천지! 천지상불능구, 이황어인호.
고종사어도자, 도자동어도, 덕자동어덕, 실자동어실. 동어도자, 도역락득지, 동어덕자,
덕역락득지, 동어실자, 실역락득지.신부족언, 유불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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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멈추는 순간 사라진다 - 유재용 저
스물 셋째 장
직역
자연은 말이 없다. 그러므로 회오리바람은 아침을 마칠 수 없고, 소나기는 하루를 마칠 수 없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하늘과 땅이다. 하늘과 땅도 이렇게 오래갈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야? 그러므로 도를 따라 섬기는 자는 알아야 한다. 도를 구하는 자는 도와 같아지고, 덕을 구하는 자는 덕과 같아지고, 잃음을 구하는 자는 잃음과 같아진다. 길과 같아지는 자는 길 또한 그를 즐거이 얻으리. 덕과 같아지는 자는 덕 또한 그를 즐거이 얻으리. 잃음과 같아지는 자는 잃음 또한 그를 즐거이 얻으리. 믿음이 부족한 곳에는 불신이 있다.
해석
자연은 만물을 키운다. 그러나 내가 키운다고 말하지 않는다. 경작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저 작물들을 키웠다고, 과연 그러한가 사람은 작물이 자라나는데 도움을 줄뿐이다. 그것을 키우는 것은 땅과 하늘이다. 그러나 내가 키웠다고 말하지 않는다.
회오리바람과 소나기는 하늘과 땅이 爲한 것이다. 그러나 하루를 가지 못한다. 하늘과 땅이 행한 것도 하루를 가지 못하는데 사람이 행한 것은 얼마나 가겠는가. 우리는 우리가 행한 것이 영구 불변하리라 생각을 한다. 로마제국을 세운 자들도 그렇게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삼풍백화점을 세운 사람도 그것이 무너지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이룬 업적은 영구 불변하리라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인간은 지구의 45억년의 삶에 극히 일부분을 점유하고 있을 뿐이다. 수억년동안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이 지금은 석유가 되어 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이 얼마나 갈 것인가.
도를 구하는 자는 도와 같아진다. 아름다운 말이다. 왜 도를 구하는 자에게 도가 내려오지 않는다고 했을까. 구도자는 도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그 속에서 그는 도와 동일시된다. 그러나 도를 자신에게 맞추려는 자는 도가 자신과 같아진다. 그때 변하는 것은 도이다. 그 자신이 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가 그 자신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변화는 없다. 도를 구하여 얻으려면 자신이 도가 되어야 한다. 자신을 뜯어고치지 않는 자는 결코 도에 다가갈 수 없다.
쉽게 풀어 보자. 영어를 공부한다. 그럼 내가 영어의 발음에 맞추어야 하는가 영어의 발음을 나에게 맞추어야 하는가. 그럼 도를 구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맹세는 어디서 오는가. 불신에서 온다. 사랑의 약속은 어디서 오는가. 불신에서 온다. 언어에 의한 계약은 불신에서 오는 것이다. 자연은 말이 없다. 진정한 믿음은 자연처럼 말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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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글 가장 새로운 글 노자 - 김석환 저
23.
들으려고 해도들을 수 없고 말은 자연의 무언의 말이다. 그러므로 회오리바람은 아침 동안 계속 물지 못하고 소나기도 온종일 내리지 못한다. 회오리바람을 불게 하고 소나기를 내리게 하는 것은 누구의 조화인가? 그것은 천지가 하는 일이다. 하물며 인간이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일을 어찌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도에 따라 행위 하는 이는 도에 동화되고 덕에 따라 행위 하는 이는 덕과 일치되고 실덕에 따라 행위 하는 이는 실덕과 하나가 된다. 도와 동화되면 도 또한 그를 얻은 것을 좋아할 것이며 실덕과 하나가 되면 실덕 또한 그를 얻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나에게 믿음이 부족하다면 남도 나를 믿지 아니 할 것이다.
주
희언 : 들을 수 없는 소리, 들을 수 없는 말, 즉 도를 의미함.
표풍 : 회오리바람.
취우 : 소낙비, 소나기.
종조: 날이 밝은 뒤 아침까지의 시간, 새벽부터 아침까지.
고종사어도자 : '도에 좇아 도의 가르침대로 하는 이는 무위를 으뜸으로 하며, 말하지 않음을 근본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왕필의 주)
이황 : 하물며
실 : 잘못, 과실, 실덕.
실자동어실 : 실덕에 따라 행위 하는 이는 실력과 하나가 된다.
해
도에서 나오는 말은 들으려고 해도 도무지 들을 수가 없다. 도는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진리를 저절로 알려주고 있다. 자연이란 저절로 그렇게 된다.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이다. 도는 바로 자연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소나기, 회오리바람 등은 자연현상의 일종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현상도 변덕스럽거나 난폭한 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잔인하거나 난폭한 일을 오래 행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사람은 각자의 수양 정도에 따라 도에 동화되기도 하고 실덕에 동화되기도 한다. 사람은 도의 무언의 가르침과 진실을 배워야 한다. 대체로 사람의 모든 주장은 이해관계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진실성과는 거리가 먼 궤변인 경우도 적지 않다. 맹약을 저버리고 식언을 예사로 하는 것도 인간의 자기본위 이기심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도는 믿음성을 저버리는 일이 없다. 밤과 낮의 바뀜, 춘하추동의 교체는 태초이래 단 한 번의 어김도 없이 행하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도리는 우리에게 깊은 신뢰감을 주고 있다.
우리가 믿음으로 상대를 대해 주지 않는다면 저쪽 역시 우리를 믿지 않게 될 것이다. 이 장에서 노자는 사람이 부자연스런 행위를 그만두고 도를 체득하여 인생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진리를 배워야 한다는 점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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