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 - 道德經 : 第十一章 (노자 - 도덕경 : 제11장)
三十輻共一轂, 當其無,有車之用, 埏埴以爲器, 當其無,有器之用,
鑿戶爽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삼십복공일곡. 당기무, 유거지용.선식이위기. 당기무, 유기지용.
착호유이위실. 당기무, 유실지용. 고유지이위리. 무지이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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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멈추는 순간 사라진다 - 유재용 저
열한째 장
직역
서른 개의 바퀴 살이 하나의 바퀴 머리에 모인다. 그 바퀴 머리의 빔에 수레의 쓰임이 있다. 찰흙을 빚어 그릇을 만든다. 그 그릇의 빔에 그릇의 쓰임이 있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든다. 그 방의 빔에 방의 쓰임이 있다. 그러므로 있음이 이롭게 되는 것은 없음의 쓰임 때문이다.
해석
노자는 참으로 자상한 인물이다. 그는 오천언으로 자신의 사상을 표현했다. 그러나 이 것은 너무 많다. 그래서 노자를 이해한 사람은 일장을 읽고 더 이상 읽지 않는다. 그러나 한 번 들은 것보다는 두번, 세번들은 것이 더욱 낳으리라는 생각에 노자는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할 뿐이다. 내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을 이해하라.
수레바퀴를 본 적이 있는가. 아니 자전거를 보자. 자전거의 바퀴 살이 가운데로 모인다. 가운데는 빈 대롱이 있어서 그 살들을 하나로 묶어 준다. 만약 가운데에 빈 대롱이 없고 꽉찬 대롱이 있다면 살들을 그렇게 쉽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 이때에 살이 사용하는 것은 대롱인가. 대롱의 비어 있는 공간인가. 어려우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자.
밥 그릇이 있다. 그런데 밥그릇에 흙이 가득하다. 그럼 밥을 담을 수 있는가? 밥을 담기 위해서는 흙을 덜어내야 한다. 그럼 그곳에 빈 공간이 생긴다. 그럼 밥은 어디에 담는가. 밥그릇인가. 밥그릇의 빈 공간인가. 물론 빈 공간에 밥을 담을 수는 없다. 그러나 밥이 놓여지는 곳은 밥그릇의 빈 공간이다. 그래서 노자는 밥그릇이 밥그릇으로 제대로 사용되는 것은 밥그릇의 비어 있음을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있음의 유용만을 생각했지 빔의 유용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노자는 그런 사고의 전환을 촉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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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글 가장 새로운 글 노자 - 김석환 저
11.
[서른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아져 있다. 그것은 바퀴통 속에 빈 구멍이 있기 때문에 바퀴의 회전이 가능하게 수레로서의 진흙 구실을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흙으로 그릇을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쓸모가 있게 되는 것은 그 속에 빈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지게문과 창문을 뚫어서 방을 꾸민다. 그것이 방으로서의 구실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빈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있는 것과 유익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의 구실 때문이다.]
주
폭, 복 : 차륜의 바퀴살.
곡 : 수레의 바퀴통으로 그 빈 구멍이 30개의 바퀴살로 연결됨.
무 : 빈 곳, 공간, 구망. 유는 무를 통하여 비로소 의미있는 것이 됨을 강조하고 있음.
선식 : 지흙을 반죽하는 것을 뜻함.
용 : 쓸모, 구실, 공효를 뜻함.
호유 : 출입문과 벽창문, 이것은 혈거 및 북방식의 점토벽돌의 가옥구조와 연관된 단어임.
해
우리는 유의 공효성에 때하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무의 효용에 대하여는 잘 알지 못한다. 노자는 유는 무가 있으므로 비로소 효용성을 발휘할 수 있음을 일상생활의 기물을 통하여 일깨워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차바퀴가 회전하기 위하여는 바퀴통 속에 빈 공간이 있어야 하고 그릇이 그릇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속에 있는 빈 부분 덕분이다. 방이 방으로써 유용할 수 있는 것은 방안의 빈 곳 때문이다. 그러므로 있는 것이 쓸모가 있게 되는 것은 없는 것(무)이 있기 때문이다. 만물은 다 그 나름대로의 존재가치가 있게 마련이다.
노자를 읽게 되면 우리의 상식적 가치판단이 범하기 쉬운 오류를 쉽게 깨닫게 된다. 동서양의 최고 지성들이 그에게 매혹 되는 것도 이와 같은 그의 사색의 깊이와 독창성 때문일 것이다. 없는 것(무), 빈 것(허)의 공효를 강조하는 그의 철학은 후세 동아시아의 예술에 깊은 영감을 주게 된다.
그림에 있어 여백의 미를 높게 사는 동양화의 심원한 멋은 노자의 무와 허의 사상과 정신적 맥락을 함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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