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9장 초나라로 쳐들어가다
5. 팔로 대군의 기치를 드높이며
제환공, 관중의 진언을 어기다
제환공이 물었다.
"모든 제후를 크게 합치면 초나라도 반드시 그만한 준비를 할 것이오. 그러고도 우리가 이길 수 있겠소?"
관중이 결연히 대답했다.
"지난날 채(蔡)나라가 주공께 죄를 진 일이 있어서 주공께서 그들을 치려고 하신 지도 이미 오래 됐습니다. 그런데 초나라와 채나라는 서로 국토가 접해 있습니다. 그러니 겉으론 채나라를 토벌한다고 명분을 내세우고 실은 초나라를 쳐야 합니다. 이것을 병법에선 아무도 생각 못한 곳을 친다는 것입니다."
그럼 지난날에 채나라가 제나라에게 죄를 졌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난날에 채목공(蔡穆公)은 그 여동생 채희를 제환공에게 시집보냈다. 그 채희가 제환공의 세 번째 부인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제환공은 채희와 함께 배를 타고, 연꽃을 따며 즐기었다. 채희는 제환공에게 연못 물을 손으로 튀기었다. 제환공은 당황해 하면서 그러지 말라고 타일렀다. 채희는 제환공이 물을 두려워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배를 요동시켜 물이 제환공의 옷에까지 튀게 했다. 채희는 남방 출신이라 물에 익숙했던 것이다. 제환공은 주의를 주고 여러 번 말렸다. 그런데도 채희가 듣지 않자 마침내 대로했다.
"너는 참으로 버르장머리없는 계집이다. 능히 임금을 섬길 줄 모르는구나!"
제환공은 그날로 수작에게 분부하여 채희를 친정인 채나라로 돌려보냈다. 출가한 여동생이 쫓겨온 걸 보고서 채목공도 크게 노했다.
"여자를 친정으로 돌려보낸 것은 서로의 관계를 아예 끊자는 것이로구나."
그 후, 채목공은 그 여동생 채희를 초나라로 개가시켰다. 이리하여 채희는 다시 초성왕의 첩이 됐다. 이 소문을 듣고서 제환공은 채목공을 몹시 괘씸하게 여겼다. 관중이 채후가 주공에게 지은 죄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일을 들춰 말한 것이었다. 제환공이 물었다.
"요즘 강(江), 황(黃) 두 나라 주인이 초나라 횡포에 견딜 수 없다면서 과인에게 와서 충성을 보이는 터이니 과인은 그들과 동맹을 맺을까 하고 있소. 그러니까 초나라를 칠 때 그들이 우리에게 호응하면 일이 쉽게 풀리지 않을까 생각하오."
관중이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강, 황 두 나라는 우리 제나라에선 멀고 초나라에선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초나라에 복종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나라들입니다. 그들이 초나라를 배반하고 우리 제나라에 순종한다면 초나라는 반드시 강, 황 두 나라를 칠 것이오니, 그 때 구원을 청해 온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들을 구원하자니 거리가 너무 멀고, 내버려두자니 동맹까지 맺은 처지에 약속을 지키지 못하니 의리만 잃게 됩니다. 결국 우리만 힘들거나 신의를 잃는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초나라를 치는 데는 여기 있는 중원의 제후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데 멀리 떨어진 소국(小國)에까지 힘을 빌릴 필요는 없습니다."
"머나먼 나라에서 과인의 의리를 사모하고 왔는데 거절을 한다면 장차 천하 인심을 잃을 것이오."
관중이 다시 충고했다.
"주공께선 제가 이 일을 방해하는 줄 아시지만, 강, 황 두 나라도 위급한 날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환공은 어찌된 일인지 관중의 충고를 듣지 않고 강, 황 두 나라 주장과 동맹을 맺고 명년 봄 정월에 함께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를 치기로 약속했다. 강, 황 두 나라의 주장이 아뢰었다.
"서(舒)나라가 초나라를 도와 갖은 못된 짓을 다하니 서나라를 쳐야 할 것입니다. 천하 사람들이 못된 것을 말할 땐 초서(楚舒)라고까지 합니다."
제환공이 대답했다.
"과인이 마땅히 서나라를 쳐서 초나라 우익부터 잘라 버리겠다!"
제환공은 마침내 서(徐)나라로 서신을 보내 서(舒)나라를 칠 것을 명했다. 제환공의 두 번째 부인 서희(徐姬)는 서자(徐子)의 딸로서 제환공과 혼인한 후로 친밀한 사이가 돼, 서(徐)나라는 늘 제나라의 호의에 의존해 왔다. 이러한 인척 관계가 있고 또 서(徐)나라와 서(舒)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제환공은 서(舒)나라를 칠 것을 그에게 명했던 것이다. 제환공의 서신을 받은 서자는 즉시 군사를 몰아 서(舒)나라를 단숨에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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