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9장 초나라로 쳐들어가다
1. 노나라의 내란
경부의 반란과 애강의 망명
한편 노민공이 제나라에 갔다온 이후 정승에 공자 계우가 앉는 등 군위가 점차 안정되어 가자 공자 경부는 매우 초조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다가 애강의 성화도 대단했다. 그녀는 어서 빨리 어린 노민공을 해치우고 경부가 임금이 되라고 앙탈을 부렸다. 그러던 어느 날 경부에게 문지기가 들어와 대부 복의(卜義)가 왔음을 알렸다. 경부는 복의를 서실로 영접했다. 복의는 얼굴에 잔뜩 노기를 띠었으므로 경부가 찾아온 뜻을 물으니 복의가 대답했다.
"내 땅은 태부(太傅: 군후의 스승) 신불해(申不害)의 전장(田莊)과 인접해 있는데 나는 까닭없이 신불해에게 전답을 빼앗겼소. 억울해서 주공께 호소하니, 주공은 태부만 편애하여 나에게 그 땅을 양도해 주라고 하셨소. 내 참을 수 없어 공자를 찾아왔으니 주공께 잘 말씀해 주기 바라오."
공자 경부는 이 말을 듣자 좌우를 물리고, 복의와 단둘이 속삭였다.
"주공은 나이 어리고 철이 없어 내가 말해도 듣지 않을 것인즉 만일 큰일을 한번 해볼 생각이라면 대부를 위해 내가 신불해를 죽여 버리겠소. 대부의 뜻은 어떠시오?"
"그런 일은 공자 계우의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아마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오."
"주공은 아직 어리므로 밤이면 무위문을 나가서 거리로 돌아다니며 놀지요. 대부는 무위문 밖에 사람을 매복시켰다가 그 어린 것이 나오면 단칼에 처치해 버리시오. 그러고 나선 도적의 소행이라 하면 누가 이 일을 알겠소? 임금이 없으니, 국모의 명에 의해 새로운 임금을 세우고 공자 계우를 외국으로 추방하면 그 때부터는 모든 것이 손바닥을 뒤집는 일보다 더 쉬운 일이지요."
복의는 마침내 동의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사람을 물색해서 추아(秋亞)란 자를 얻었다. 복의는 추아에게 날카로운 비수 한 자루를 내주어, 무위문 밖에 매복하게 했다. 밤이 됐다. 무위문에서 어린 노민공이 나왔다. 추아는 자기 앞까지 노민공이 오길 기다려 나는 듯이 뛰어나가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비수를 휘둘렀다. 노민공은 가냘픈 비명을 지르며 피를 뿜고 쓰러지니, 그제야 좌우 시중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검은 그림자를 추적하면서 사방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 놈 잡아라!"
검은 그림자는 곧 사로잡혔다. 그 때 복의가 거느린 무장한 부하들이 나타나 추아를 구해 달아났다. 한편 공자 경부는 사병(私兵)을 거느리고 가서 태부 신불해를 그의 집에서 소리없이 처치해 버렸다. 공자 계우는 이러한 변을 듣자 즉시 공자 신(新)의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려 자고 있는 공자 신을 발길로 차서 깨우며, 경부가 난을 일으킨 것을 알리고 그날 밤으로 둘이 집을 떠나 주나라로 달아나고 말았다. 임금이 피살되고, 공자 계우가 타국으로 망명했다는 소문을 들은 노나라 백성들은 복의와 경부를 원망하였다. 이날 노나라 시장은 모두 철시를 하고, 천여 명의 군중이 복의의 집으로 몰려가 에워쌌다. 순식간에 복의와 그 가족은 분노한 백성들에게 몰살당하고 그의 부중은 불타고 말았다. 성난 군중들은 공자 경부의 부중으로 몰려갔다. 사람들의 수효도 점점 늘어났다. 백성들이 자기를 미워하는 것을 안 경부는 도망칠 생각을 했다.
'일찍이 거나라 힘을 빌어 제후(齊侯)가 나라를 차지한 일이 있었다. 그렇다. 제와 거 두 나라는 서로 은혜를 입고 있는 사이다. 거나라로 하여금 제나라에게 나의 형편을 변명해야겠다. 그렇지. 더구나 지난날 문강(文姜)은 거의(拒醫)와 서로 정을 통한 일이 있지 않은가! 나와 보통 사이가 아닌 애강은 바로 문강의 질녀다. 이러나 저러나간에 이건 예사 인연이 아니다. 이런 연줄로 일을 꾸며 나가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공자 경부는 그날 밤 백성 옷으로, 마치 마구간지기처럼 가장하고 뇌물로 쓸 금은 보배를 헙수룩한 수레에 잔뜩 싣고서 거나라를 향해 달아났다. 궁에서 과부 애강은 공자 경부가 거나라로 달아났다는 소문을 들었다. 정부(情夫)를 잃은 애강은 몹시 불안했다. 아니 좌우가 허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애강도 정부의 뒤를 쫓아 거나라로 달아날 준비를 했다. 좌우 사람들이 간했다.
"부인께선 공자 경부 때문에 백성에게 죄를 저질렀은즉, 이제 또 거나라에 가서 모두 한곳에 합치면 누가 이를 용납하리이까. 백성들은 지금 주나라에 가 있는 공자 계우를 신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인은 차라리 주나라에 가서 공자 계우에게 의지하고 동정을 비십시오."
이에 애강은 주나라로 갔다. 애강은 주나라에 가서 공자 계우와 만나기를 원했다. 그러나 공자 계우는 애강을 만나 주지 않았다. 공자 계우는 이제 본국에 공자 경부와 애강이 다 없다는 걸 알았다. 마침내 공자 계우는 공자 신을 데리고 본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동시에 사람을 제나라로 보내어 이번에 일어난 일들을 자세히 고하도록 했다. 한편 제환공은 노나라에서 또다시 임금이 죽고 변란이 터졌다는 보고를 받자 관중에게 물었다.
"아예 군사를 일으켜 노나라를 우리 제나라와 합치는 것이 어떻겠소? 이거 자꾸만 신경 쓰이게 해서 될 일이오?"
관중이 대답했다.
"비록 임금을 죽이는 소동이 계속되지만 아직 노나라는 옛 주공의 인심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분간 지켜보시면 수습이 될 것입니다."
제환공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 때 뒤쪽에서 묻는 이가 있었다.
"우리 제나라에서는 그냥 보고만 있으라는 말씀은 아니시지요?"
돌아보니 상경 벼슬의 고혜였다. 관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모시면서 말했다.
"마침 대부께서 수고해 주실 일이 있어 사람을 보내 청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어떤 일인지 하명만 하시면 즉각 분부대로 하지요."
관중이 계교를 일러 주었다.
"무장병 3천을 거느리고 노나라에 가셔서 동정을 보아가며 형편에 따라 처리해 주시오. 즉 공자 신이 과연 노나라 사직을 담당할 만한 자격이 있거든 곧 그를 군위에 세워 제, 노 양국간에 우호를 맺으시고, 그렇지 못하거든 아예 노나라를 우리 제나라에 합병시키도록 일을 진행시켜 주십시오."
고혜가 노나라에 당도했을 때였다. 마침 주나라에 가 있던 공자 신과 공자 계우도 노나라에 돌아온 참이었다. 고혜는 공자 신의 얼굴을 보자 의젓한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 그래서 이것저것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보니 생각 외로 의식이 조리가 정연했다. 고혜는 마음속으로 공자 신을 노나라 군위에 올려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고혜는 공자 계우와 함께 의논하고 공자 신을 군위에 올려 모셨다. 공자 신이 바로 노희공(魯僖公)인 것이다. 고혜는 다시 3천 명 병사로 하여금 노나라 사람을 도와 녹문성을 쌓아줬다. 즉 주, 거 두 나라에 대한 국방을 튼튼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공자 계우는 공자 해사(奚斯)에게 고혜를 따라 제나라에 가서 제환공에게 나라를 바로잡아 준 은공을 감사드리게 했다. 동시에 공자 계우는 사람을 거나라로 보냈다. 거나라에 당도한 사자는 극악무도한 경부를 처치해 주면 많은 뇌물을 보내겠다는 공자 계우의 뜻을 전했다. 지난날 공자 경부는 거나라로 도망갔을 때 노나라 보물을 싣고 가서 거의의 손을 거쳐 거후( 侯)에게 다 바쳤었다. 거후는 그 보물을 받았건만 또 노나라 뇌물에 탐이 났다. 그래서 사람을 공자 경부에게 보냈다.
"거나라는 보잘것 없는 조그만 나라입니다. 공자 때문에 우리 나라와 노나라 사이에 의가 상해서 혹 싸움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두렵구려. 그러니 미안하지만 공자께서는 다른 나라로 속히 떠나 주십시오."
그러나 공자 경부는 떠나려 하지 않았다. 거후는 마침내 공자 경부를 국외로 축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공자 경부는 지난날 자기가 제나라 수작에게 많은 뇌물을 주고 서로 친했던 일이 생각났다. 추방령을 당한 공자 경부는 거나라를 떠나 주나라를 거쳐 제나라로 갔다. 그러나 국경선에서 제나라 관리들은 원래부터 공자 경부의 나쁜 소행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예 입국을 허락하지 않고 오히려 붙잡으려고 했다.
여덟 살 행부의 지혜
공자 경부는 도망쳐 문수 근방에 머물렀다. 때마침 공자 해사가 제환공에게 제나라의 보살핌에 대한 은덕을 감사하고 돌아오는 도중이었다. 문수가에 당도해 보니 초라한 꼴의 공자 경부가 있었다. 그래서 함께 귀국할 것을 권하니 경부는 울상이 되어 머리를 숙이고 간곡히 말하였다.
"계우가 나를 용납치 않을 것이오. 그대가 이번에 나를 위해 계우에게 말좀 잘해 주기 바라네. 우리가 어머니는 다르지만 선군의 피를 이어받은 형제가 아닌가. 원컨대 이 목숨만 살려 주면 백성이 되어, 죽어도 그 은혜를 잊지 않겠노라고 꼭 좀 전해 주기 바라네."
해사는 경부와 작별하고 귀국해서 제나라에 다녀온 경과를 보고하고, 도중에서 경부를 만났던 일과 그의 말을 전하니 노희공은 이 말을 듣고 측은한 생각이 들어 공자 경부의 과오를 용서하려 했다. 그러나 공자 계우가 극구 반대를 했다.
"임금을 죽인 자를 죽이지 않으면 무엇으로 뒤에 오는 사람들을 경계하시렵니까?"
그날 계우는 해사를 자기 집으로 불렀다.
"곧 문수로 가서 공자 경부에게 내 말을 반드시 전하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뒤 이을 자손을 세워 대대로 제사라도 지내 주겠다 하더라고."
계우의 명을 받고 문수로 간 해사는 경부에게 차마 그 말을 전할 수가 없었다. 해사는 경부가 거처하는 집 문 앞에 가서 소리 높이 통곡하니 경부는 방 안에서 울음소릴 듣고 해사가 온 뜻을 직감하고 크게 통탄을 했다.
"해사가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슬피 울기만 하니, 죽음을 면치 못하겠구나!"
마침내 경부는 띠를 끌러 나무에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해사는 경부의 시체를 관에 넣어 돌아왔다. 노희공은 그 소식을 듣고 길이 탄식해 마지 않았다. 그 뒤 노희공은 급한 보고를 받았다.
"거후( 侯)의 동생 영나가 군사를 이끌고 우리 나라 경계에 와서 공자 경부가 죽었으니 이제 약속한 뇌물을 내놓으라 억지를 부립니다."
그 말을 듣자 불쾌한 기색으로 공자 계우가 아뢰었다.
"거나라가 경부를 잡아 보내지도 않고 이제 와서 공을 내세우니, 말로는 해결이 되지 않겠습니다. 신이 군사를 이끌고 가서 적절히 상대하겠습니다."
노희공은 재상 계우에게 허리에 차고 있던 보도를 끌러 주며 말했다.
"이 칼의 이름은 맹로(孟勞)라 하오. 길이는 1척이 못 되나 날카롭기는 천하에 다시 없소. 숙부는 이 칼을 소중히 간직하여 노나라의 위엄을 떨치기 바라오."
칼을 받아 옷 속에 찬 계우는 성은에 감사한 후, 군사를 거느리고 출발해 역이란 곳에 당도해 보니, 거나라 공자 영나가 진을 치고 있었다. 계우는 한 가지 계책을 생각했다.
'우리 노나라는 임금을 새로 세워 아직 국사가 안정되질 않았으니, 만약에 싸움에 이기지 못하면 민심이 동요할 것이다. 욕심만 많고 죄가 없는 곳이 거나라이니, 내 마땅히 계략으로 영나를 무찌르고 말리라.'
계우는 이렇게 생각하고 적진 앞에 나가 영나에게 수작을 걸었다.
"공자는 힘이 세고 씨름을 잘한다 하니 우리 둘이 각기 맨 손으로 자웅(雌雄)을 겨루는 것이 어떻겠소?"
"그것 아주 좋은 말이오."
계우의 제안에 영나는 선뜻 응하며 나섰다. 두 나라 군사들은 물러서서 구경만 하기로 했다. 계우와 영나는 서로 어울려 싸웠으나 씨름은 좀처럼 승부가 나질 않았다. 이들은 무려 50여 합을 싸우고 있었다. 계우의 아들 행부(行父)는 여덟 살이었다. 그가 옆에서 싸우는 것을 보니 아버지가 이길 것 같지 않았다. 행부는 앉아서 부르짖었다.
"맹로(孟勞)야! 맹로야! 너 어디 있니!"
계우는 이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이 번쩍났다. 계우는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뒤로 슬슬 물러서며 칼이 들어 있는 속옷 사이로 손을 돌려 칼을 잡았다. 영나는 계우가 물러서자 좋다구나 하고 황소처럼 달려들었다. 순간 계우는 몸을 피하면서 속옷 허리에서 맹로를 꺼내 번개같이 찔렀다. 칼은 영나의 이마를 지나 어깨까지 들어갔다.
"으악!"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거나라의 영나는 그 자리에 고꾸라져 그대로 죽고 말았다. 거군(拒軍)은 주장(主將)이 무참히 죽어 자빠지자 싸울 겨를도 없이 각기 달아났다. 계우는 이렇게 하여 개선가를 부르면서 돌아갔다. 노희공은 친히 교외에까지 나가서 군사를 영접하고 계우를 상상(上相)으로 삼고 비읍(費邑) 땅을 주어 녹을 더 받게 했다. 그러나 계우는 이를 사양했다.
"신은 경부와 숙아와 함께 세상을 떠나신 환공(桓公)의 아들입니다. 신은 사직을 위해서 숙아를 참살하고 경부로 하여 금 스스로 목을 매어 죽게 했습니다. 결국 대의를 위해 형제를 죽인 것은 부득이한 일이라고 합시다. 이제 그 두 사람은 죽고 자손도 없는데 신만 홀로 외람되게 영화와 벼슬을 누리고 큰 고을을 받는다면, 장차 지하에 돌아갔을 때 무슨 얼굴로 아버지 환공을 뵈오리까."
노희공이 고개를 흔들었다.
"두 사람은 반역하고 스스로 죄를 지었소."
계우가 다시 옷깃을 가다듬고 아뢰었다.
"두 사람은 반역하려고 했을 뿐 실지로 반역한 건 없으며 또 정정당당한 처벌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마땅히 그 뒤를 이을 자손이나 세워주소서. 주공께선 형제를 사랑하는 높은 덕을 베푸십시오."
노희공은 계우의 말에 감동하고 그 말대로 했다. 이리하여 공자 경부(慶父)의 아들 공손 오(公孫 敖)로써 경부의 뒤를 계승하게 하고 성을 맹손씨(孟孫氏)로 고쳐 성읍(成邑)의 녹을 받게 하고, 또 공손 자(公孫 玆)로써 공자 숙아(叔牙)의 뒤를 계승하게 하고 성을 숙손씨(叔孫氏)로 고쳐 후읍의 녹을 받게 했다. 그리고 계우는 비읍(費邑)의 녹을 받은 동시, 문양(汶陽)의 전답을 더 받고 성을 계손씨(季孫氏)로 고쳤다. 그후로 계(季), 맹(孟), 숙(叔) 세 집이 솥발처럼 서서 노나라 정권을 잡았다. 그들 세 집을 세상에서 삼가(三家) 또는 삼환(三桓)이라고 불렀다. 이건 나중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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