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9장 초나라로 쳐들어가다
1. 노나라의 내란
공자 경부와 어인 낙
한편 노장공은 형제 가운데서 동복 동생인 공자 계우(季友)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지혜로웠고 성품이 어질었다. 그런데 이복 동생에 숙아(叔牙)라는 이가 있었다. 그는 덕이 없었다. 다만 매사에 눈치가 빨라서 그럭저럭 탈없이 자기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다. 그럼 노장공에게는 형이 없었던가? 아니 있었다. 서형(庶兄) 경부(慶父)가 있었다. 그 경부의 부중에서 마구간 일을 맡아 보는 어인(御人) 낙이라는 자가 있었다. 이 자는 풍류가 있어 이곳저곳을 다니며 젊은 여자를 유혹하는 등 행실이 난잡한 자였다. 그런데 노래를 잘했다. 그래서 공자 경부는 낙이라는 자를 곁에 두고 꽤 총애했다. 지난 겨울이었다. 대부 양씨(梁氏)네 집에서 음악 연주가 열렸다. 양씨에게는 딸 하나가 있었다. 그녀는 자색이 매우 아름다웠다. 그런데 양씨 딸은 이미 사귀는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가 바로 노장공의 맏아들 공자 반이었다. 공자 반은 자기보다 연하인 서모(庶母) 애강 때문에 대놓고 양씨 딸과 혼담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을 뿐 사실상 공자 반과 양씨 딸은 내연의 관계였다. 이날 양씨 딸은 마당에서 연주하는 풍악을 구경하고자 내당의 담에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어인 낙이란 자가 이 음악을 들으러 갔다가 양씨 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평소부터 여성에게 추근거리기 잘하는 그인지라 담장 밑에 가서 의젓이 노래로 수작을 걸었다.
桃之夭夭兮
凌冬而益芳
中心如結兮
不能踰牆
願同翼羽兮
化爲鴛鴦
간들거리는 복숭아꽃은 겨울을 이기고 더욱 향기로워
마음은 붙들어 맨 듯 담을 뛰어넘을 수 없네
바라건대 날개를 함께 달고 한 쌍 원앙새가 되고지고
이 때 공자 반도 양씨네 집에 와서 음악 연주를 듣고 있었다. 공자 반은 어디선지 남자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기에 수상히 생각하고 밖으로 나가 보았다. 이런 줄도 모르고 어인 낙은 노래로 양씨 딸에게 수작을 걸다가 공자 반에게 들켰다. 공자 반이 대로하여 좌우에게 분부했다.
"저 놈을 당장 잡아오너라."
붙들려 온 어인 낙은 곤장 3백 대를 맞았다. 어인 낙은 피를 흘려서 땅바닥을 벌겋게 물들였다. 그 때 공자 경부가 보낸 심부름꾼이 와서 전하기를 그저 목숨만 살려달라고 했다. 공자 반은 그래서 어인 낙을 일단 풀어 주고 이 일을 아버지인 노장공에게 가서 고했다. 노장공이 걱정했다.
"그런 놈은 아예 죽여 버려야 후환이 없는 법인데 살려 준 건 실수다. 혹 그 놈이 원한을 품는다면 여러 가지로 너에게 좋을 게 없다."
공자 반은 아버지의 말을 별로 유의해 듣지 않았다.
"보잘것 없는 마구간지기 놈입니다. 그까짓 놈을 염려할 것 뭐 있겠습니까?"
그러나 노장공은 공자 경부에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일부러 서동생인 공자 숙아를 불러들여 슬쩍 물었다.
"내 죽은 후 이 나라를 누구에게 맡기면 좋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공자 숙아는 대뜸 공자 경부를 극구 칭찬하면서 중언부언하는 것이었다.노장공은 그저 참고로 들어 두는 척했다. 공자 숙아는 한참 떠든 후에 물러나갔다. 노장공은 다시 친동생 공자 계우를 불러들여 앞일을 물었다. 공자 계우가 말했다.
"형후께서는 지난날 맹임과 어떻게 약속하시었습니까? 그토록 천지신명께 맹세하고도 부인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지난날에는 그녀를 정실 부인으로 대접하지 않았는데 이제 또 그 아들까지 버리시려고 하십니까?"
노장공은 크게 무안했다. 그래서 계우의 물음에 대답은 않고 다른 것만 물었다.
"숙아는 과인에게 경부를 추천하던데, 네가 볼 때 경부의 품성이 어떠한가?"
공자 계우가 펄쩍 뛰었다.
"경부는 심성이 잔인하고 덕이 없습니다. 임금의 그릇이 결코 아닙니다. 숙아는 모두 그들 패거리입니다. 형후께서는 절대로 그들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노장공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임금이 될 인물
노장공은 관중에게 이런 노나라 궁중의 전후 사정을 모조리 이야기했다. 그리고 장차 노나라 궁중이 시끄러워지면 모든 것이 자신의 부덕함 때문이라면서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거듭했다. 관중은 자신의 힘이 닿는 한 군후의 부탁을 저버리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다. 그제서야 노장공은 환한 얼굴이 되어 소곡 땅을 떠나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리오.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노장공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병세는 나아지지 않고 조금씩 악화되었다. 노장공은 아무래도 자신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날 밤 노장공은 공자 계우를 불렀다. 그는 동생의 손을 잡고 한동안 말 한마디를 못했다. 그러다가 간신히 입을 열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 선군의 갑작스런 변고로 군위에 오른 지 벌써 서른 두 해가 되었다. 그 동안 나라 안팎으로 많은 일이 있었음은 동생도 아는 바라. 이제 몸도 병들어 다시 일어나기 어려울 듯하다. 동생은 뒤를 잘 감당하여라."
공자 계우는 사세가 매우 급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궁실에서 나오자 즉시 내시를 불렀다.
"공자 숙아에게 가서 주공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전하여라. 즉, 숙아는 대부 검계의 부중으로 가서 기다리면 곧 과인이 특별한 분부를 내리리라."
내시는 곧 공자 숙아에게 가서 그 말을 전했다. 공자 숙아는 희색이 만면해서 곧 검씨 집으로 갔다. 그는 장차 좋은 소식이 있을 줄 알았다. 한편 공자 계우는 독주 한 병을 검계에게 보내고 공자 숙아를 죽이도록 지시했다. 이는 숙아를 죽임으로써 경부의 경거망동을 견제하는 일면도 있고, 한편으로는 공자 반을 거부할지 모르는 그를 미리 없앰으로써 공자 반의 군위를 굳건히 다지고자 하는 뜻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날 밤 노장공은 세상을 떠났다. 공자 계우는 공자 반을 받들어 상주(喪主)로 삼고, 다음 해에 개원(改元)할 것을 백성들에게 선포했다. 아직은 공자 반이 세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공자 반의 외가(外家)에서 상을 당했다. 평소에 외가인 당씨(堂氏)네 은혜를 잊지 않았던 공자 반이 외가로 문상을 가게 되었다. 이날 공자 경부는 어인 낙을 비밀리에 불렀다.
"네 지난날 곤장을 맞던 그 원한을 잊었느냐? 물 밖으로 나온 교룡(蛟龍)쯤 필부(匹夫)도 능히 제압할 수 있는 법. 너는 왜 당씨네 집에 가서 지난날의 원한을 갚지 않는 것인가? 내가 너의 주인이기에 특별히 말해 주는 것이니라. 알겠느냐?"
어인 낙이 대답했다.
"공자께서 소인을 도와 주신다면 어찌 복수를 시키는 그대로 하지 않겠나이까?"
이에 어인 낙은 날카로운 비수를 품고 밤중에 당씨네 집으로 갔다. 때는 이미 삼경이었다. 그는 몰래 담을 넘었다. 그리고 중문 옆으로 가서 숨었다. 어느덧 동쪽에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중문이 열리면서 조그만 내시 하나가 물을 길러 나가자 이틈을 타서 그는 사랑채 침실로 뛰어들어갔다. 공자반은 이 때 막 잠자리에서 일어나 침상에 걸터앉아서 신을 신고 있었던 참이었기에 어인 낙이 뛰어들어오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 당황해서 소리쳤다.
"네 어찌 이 곳에 들어오느냐!"
어인 낙이 눈을 부라리며 대답했다.
"나는 지난 해 곤장 맞은 원한을 갚으러 왔다."
공자 반은 급히 침상 머리에 있는 검을 잡아 낙을 내리쳤다. 칼은 어인 낙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았다. 그러나 칼집을 벗기지 못하고 그대로 내리쳤으니 큰 상처도 내지 못하고 공자 반의 자세만 흐트러졌다. 이 때 그는 재빨리 공자 반을 껴안으면서 품속의 비수를 꺼내어 옆구리와 배를 깊숙이 찌르니 공자 반은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쓰러져 죽고 말았다. 마침 내시가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이 장면을 보고 놀라서 집안 식구들에게 알렸다. 당씨 일가는 곧 가병까지 이끌고 사랑채로 달려가 어인 낙을 치니 그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떡이 되고 말았다. 한편 공자 계우는 공자 반이 살해당했다는 보고를 받자 공자 경부의 소행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그러나 자칫하다가 자신에게도 화가 미치는 것이 아닌가 하여 그날로 진(陳)나라를 향해 도망쳤다. 공자 경부는 이제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는 이 사건의 모든 죄를 어인 낙에게 씌워 그 일가족을 모조리 도륙하여 백성들의 의혹을 벗은 후, 내궁으로 가서 선군의 부인 애강(哀姜)과 다음 임금에 대해 상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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