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시백의 화평책
북행 땅 회가 끝나는 즉시로 제환공은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수성(遂城)으로 향해 가서 단번에 항복을 받았다. 그리고 군사를 돌려 제수(濟水)가에 주둔시키고 노나라의 태도를 살피며 기다렸다. 한편 노나라에서는 정세가 이쯤되자 겁이 났다. 노장공은 모든 신하를 모아 계책을 물었다. 공자 경부가 아뢰었다.
"제나라 군사는 두 번이나 우리 나라에 왔지만 조금도 위협이 되지 못했습니다. 원컨대 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그들을 멀리 쫓아 버리겠습니다."
그 때였다. 한 사람이 일어나서 외쳤다.
"그건 안 될 말이오."
노장공이 보니 바로 시백이었다. 이에 노장공이 시백에게 물었다.
"그대에게 좋은 계책이 있다면 어서 말하시오."
시백이 거침없이 아뢰었다.
"신은 예전부터 말해 왔습니다. 제나라 정승 관중은 백 년에 하나 태어날까말까한 천하 기재(天下奇才)입니다. 그가 계산없이 우리를 위협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무엇인가 복안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나라 군사와 싸워 이롭지 못하다는 첫째 이유입니다. 또한 제나라는 북행 땅에서 맹회를 열어 왕명을 높이 받들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노나라가 왕명을 어겨 참석하지 않았다는 점을 꾸짖고 있습니다. 명분은 제나라에 있고 허물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렇듯 명백합니다. 그러니 제군이 곧 왕군입니다. 따라서 그들 군사와 싸워 이롭지 못하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가 됩니다. 또 우리는 제나라에 많은 공로를 남겼습니다. 공자 규를 죽인 것도 그렇고, 왕희를 제나라로 출가시킨 일도 주공의 공입니다. 그런데 지난날의 수고한 바 공(功)을 버리고 어찌하여 두 나라가 원수를 맺고자 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우리 노나라에 이롭지 못하다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그러하오니 우리가 장차 세워야 할 계책은 제나라와 강화를 맺고 동맹을 청하는 길입니다. 그리하면 싸우지 않고 제나라 군대를 물러가게 할 수 있습니다."
대부 신수가 찬성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신도 시백의 의견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하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이렇게 서로 의논하는데 시신(侍臣)이 들어와 아뢰었다.
"제후의 서신이 왔습니다."
노장공이 뜯어 보니 다음과 같았다.
- 과인과 군후가 함께 주왕실(周王室)을 섬겼으니 정으로 말하자면 형제나 다름없으며 게다가 우리 선군 시절부터 서로 통혼한, 이를테면 척당(戚黨)지간입니다. 이번 북행 땅 회에 군후가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과인은 감히 그 까닭을 묻소이다. 만일 군후가 두 가지 마음을 품고 있다면 이는 양국 사이는 물론이고 주왕실을 위해서도 불행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때 노장공의 모친 문강은 이미 동생인 제환공의 서찰을 받아 본 뒤였다. 노장공을 불러 분부했다.
"제나라와 우리 노나라는 선대부터 서로 혼인한 사이다. 우리가 그들의 뜻을 어겼건만 오히려 저편에서 우호를 청해 왔다. 이러고야 어찌 도리를 다했다 하겠으며 장차 정리를 지킬 수 있겠는가."
노장공은 노부인의 말에 말대꾸도 못하고 쩔쩔맸다. 서둘러 시백으로 하여금 제환공에게 보내는 답장을 쓰게 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 과인이 근자에 병이 있어 이번 북행 땅 회에 참석을 못했습 니다. 이제 군후께서 꾸짖으시니 과인이 어찌 허물을 모르리오. 군후께서 군사를 거느리고 제나라 경계까지 일단 물러가시면 과인은 감히 옥백(玉帛)을 바치지는 못하나 불행한 일을 막고 잘못을 비는 뜻에서라도 마땅히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답장을 읽은 제환공은 크게 기뻐했다. 즉시 군사를 거느리고 제나라 가(柯) 땅까지 물러갔다. 이에 노장공이 모든 신하에게 물었다.
"이제 두 나라가 화해를 하려면 과인이 직접 제후와 회합하러 가야 한다. 누가 과인을 수행하여 이 일을 제대로 수행 하겠는가?"
조말(曹沫)이 앞으로 나서며 청했다.
"신이 가겠습니다."
"그대는 제나라 군사에게 세 번이나 패한 사람이다. 제나라 사람들이 비웃으면 어쩔 텐가?"
조말이 대답했다.
"세 번 패한 것이 부끄러워서 가는 것입니다. 이번에 가서 설욕할 생각입니다."
"가서 어떻게 설욕하려느냐?"
"주공께서는 제후를 맡으십시오. 신은 제나라 신하를 담당하겠습니다."
노장공은 약간 걱정이 되었다.
"이번에 경계(境界) 밖으로 나가는 것은 싸움이 아니라 제나라에 동맹을 청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주장한 것이 아니니 벌써 패한 것이나 다름없도다. 그런데 그대는 무슨 방법으로 과거를 설욕할 수 있겠느냐."
조말은 거듭 다짐했다.
"목숨을 걸고 성사시킬 각오입니다."
노장공은 마지못해 응했다.
"내 그대를 데리고 가리라."
마침내 노장공은 조말과 함께 떠났다. 노장공과 조말이 제나라 가(柯) 땅에 이르러 보니 제환공은 이미 흙으로 단을 쌓고 기다리고 있었다. 노장공은 사람을 보내어 먼저 사죄하고 동맹을 청했다. 제환공이 회담할 날짜를 정해 통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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