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5장
피 튀기는 옥좌
한편 공자 규의 부중에서 집사장(執事長)일을 하고 있던 소홀(召忽)이 달려와 관중에게 보고했다.
"아무래도 제양공의 신상에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변을 당한 듯싶습니다."
관중은 보고를 받자 미리 대비해 둔 듯 신중하게 상황을 살피며 대처하고 있었다.
"지금이 가장 위험한 때요. 어서 공자 규를 이 곳으로 모셔오고 부중의 모든 이들은 단단히 무장시켜 다음 분부를 기다리게끔 조치하시오."
관중은 소홀에게 당부한 후에는 부양에게 일렀다.
"아무래도 군부(軍部) 쪽에서 일어난 사건일 것이다. 만일 에 도성의 병사들이 난을 일으켰다면 제양공은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도성 밖에서 누가 무리를 지어 난을 일으켰다면 제양공이 살해당했을 것이다. 너는 지금 궁문으로 가서 누가 드나드는지 신중하게 주변을 살피거라. 그리 고 누구든 궁문을 점령하거든 어느 쪽 사람인지를 알아보고 내게 알려다오."
조금 있다가 공자 규가 관중의 집으로 급히 달려왔다. 그는 불안한 듯 도망칠 곳부터 찾으려했다.
"우리도 국외로 피신해야 되지 않겠소?"
관중이 공자 규를 안심시켰다.
"지금 상황은 극히 유동적이고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인지 식별이 되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가만히 은신하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자칫 서둘러 국외로 피신하다가 상대방 측의 인물로 오해받으면 오히려 큰 피해를 당하기 십상입니다. 경 거 망동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공자 규가 다시 물었다.
"무지가 군위에 오를까? 아니면 누가?"
"가능성은 반반입니다. 위험한 것은 무지 쪽이 아닐 때입니다. 만일 무지가 군위에 오른다면 제 생각으로는 공자께 협력을 청하리라 봅니다. 그러나 엉뚱한 인물이 군위에 오르 면 우선 공자부터 해치려 할 것입니다. 따라서 정세가 확연 해지기 전까지는 부중으로 가지 마시고 여기에 계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다음날 새벽이 되자 궁문을 살피러 나갔던 부양이 남문 쪽 상황을 보고하러 돌아왔다.
"연칭이 난을 일으켜 제양공을 죽였고 무지를 새 군위에 모신다고 합니다."
부양이 관중에게 그간의 파악한 사실을 보고했다. 관중은 보고를 받자 혼자 중얼거렸다.
"무지가 군위에 오른다면 더 이상 피 흘리는 일은 없겠구나. 다만 우리 공자의 입장이 더욱 난감하게 되었다."
추천받은 관중 무지는 군위에 오르자 지난날 언약한 대로 연비를 자기 부인으로 삼았다. 이어서 연칭을 정경(正卿) 벼슬에 임명하고 관지부를 아경(亞卿)으로 삼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벼슬은 그대로 두었다. 모든 대부들은 외견상 동요하지 않고 새 임금을 따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좋아하지 않았다. 다만 대부 옹름은 무지에게 무릎을 꿇고 아첨했다. 고국(高國) 같은 이는 아예 병들었다. 칭하고 조례에도 나오지 않는 등 실제로는 상당한 혼선이 있었다. 관지부가 무지에게 권했다.
"지금의 신하들만으로 백성의 신망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널리 방(榜)을 내걸어 어진 인물을 모으고 또 찾아야 합니다.그래야 새 임금의 권위가 생깁니다."
무지는 곧 그렇게 했다. 그리고 인재를 추천하라고 했다. 관지부가 아뢰었다.
"관중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저와는 성이 같지만 친척도 아니고 친분도 없는 사이입니다. 그는 지금 저잣거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지만 출중한 총명과 재주가 있습니다. 사람을 시켜 청하면 주공을 위해 큰 몫을 하리라 봅니다."
무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분부했다.
"매우 좋소이다. 경이 알아서 초대토록 하시오."
이렇게 해서 궁중에서 심부름하는 사람이 관지부의 명을 받고 관중을 찾아왔다. 관중은 깜짝 놀랐다. 자신은 무지와 일면식도 없다. 연칭과도 마찬가지였다. 관지부라고 하면...... 언젠가 포숙아의 소개로 한 번인가 만난 적이 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은 성이 같다고 해서 항렬을 따져 본 적이 있지만 그 이상은 아는 바가 없었다.
"분명히 이 관중을 청했단 말씀이오?"
관중은 의심을 풀지 않았다.
"틀림이 없습니다. 저잣거리에서 장사하시는 관중 선생이 바로 맞지요?"
"그렇소. 바로 나요."
관중은 궁으로 가지 않았다. 오히려 심부름 온 사람에게 급한 집안일을 끝마치고 며칠 후 궁으로 찾아뵙겠다는 뜻을 전해달라고 간곡히 당부하면서 돌려보냈다. 심부름 온 사람도 별 뜻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갔다. 관중은 곧 공자 규와 소홀, 부양을 청하고 서둘렀다.
"아무래도 국외로 피신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공자 규가 물었다.
"이제부터는 안전하다고 하지 않았소? 그리고 무지가 사람을 보내어 그대를 청하는데 좋은 기회가 아니겠소? 궁중 사정을 알 수도 있을 테고 말이오. 그런데 어찌 이제서야 외 국으로 달아나자고 하시는 것이오?"
관중이 웃으며 대답했다.
"무지가 하는 걸 보면 임금 자리가 쉽사리 안정될 것 같지 않습니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 하지 않습니까? 입으로는 어진 이를 구한다 하고서 행동으로 옮길 때는 마치 무뢰배를 모으듯이 해서는 어진 사람을 구할 수 없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 모두의 신세를 망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장차를 기약하기 위해 우선 제나라를 떠나는 것이 좋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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