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3장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여든다섯번째 이야기 - 불속에서 태어난 아이
옛날에 한 부유한 노인이 있었는데, 슬하에 자식이 없다가 뒤늦게 부인이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는 무척 기뻐하며 육사외도에게 달려가 태어날 아기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당신의 처가 잉태하고있는 아이는 딸인데, 태어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요절할 것이오."
이 말을 듣고 걱정이 태산 같아진 노인은 이번에는 부처님에게 달려가 물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부인은 아들을 낳을 것이오. 그 아이는 복도많고 장수할 운명을 가지고 있소."
부처님의 예언을 전해들은 육사외도는 임산부를 죽여 부처님의 예언이 엉터리라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했다.그래서 그들은 기회를 노리다가 임산부에게 독이 들어 있는 물을 마시게 해서 죽여버렸다. 노인은 부인이 죽은 것을 알고 망연자실해 있다가 예를 갖춰 화장을 하기로 했다. 화장 준비를 마치고 시신에 불을 붙이자 갑자기 부인의 배가 갈라지더니 한 남자아이가 울면서 튀어나왔다. 그 모습은 마치 활짝 핀 연꽃 속에서 원앙새가 날아오르는 것과 같았다. 이때 그 사실을 천안으로 알게 된 부처님은 제자 기바에게 말했다.
"네가 그 노인의 집에 가서 불 속에 있는 아이를 구출해 오너라."
기바는 곧 노인의 집으로 달려가 활활 타오르는 불 속으로 손을 뻗어 아이를 끌어안으려고 했다. 그때 육사외도가 기바에게 다가와 협박했다.
"네가 만약 그 아이를 데려간다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이에 기바가 말했다.
"나는 부처님의 명을 받고 이 아이를 구하러왔다. 너희들이 나를 아비지옥의 맹렬한 불 속에 집어넣는다고 해도 나를 조금도 해칠 수 없거늘, 하물며 인간 세상의 불로 나를 위협하려 드느냐?"
기바는 마치 시원한 강물에 들어가는 것처럼 활활 타오르는 불길도 아랑곳하지않고 불 속으로 들어가 아이를 구해 나왔다. 그리고 아이를 노인의 품에 안겨주었다. 노인은 무척 기뻐하며 아이를 안은 채 부처님을 찾아와 절을 하며 아이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부처님이 웃으시면서 말했다.
"이 아이는 불 속에서 태어났고, 불은 수제라고 부르니, 그 아이 이름은 수제가라 함이 좋겠구나."
<대반열반경>
여든여섯번째이야기 - 백 리 밖에 들리는 북
부처님이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의 일이다. 벽라라는 이름을 가진 천왕의 태자가 부처님을 찾아와 예배하고 물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옷과 음식, 칠보와 여러 가지 즐거움 그리고 관직과 토지를 가지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모두 부질없고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부처님께서 감탄하면서 말했다.
"대단한 질문이로다. 토지와 온갖 보배를 갖추고 있음에도 사람들을 구제하려는 마음을 가지다니..."
벽라가 계속해서 물었다.
"사람들을 구제하려는 마음을 가진 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크게 나누어 두 가지 행이 있다. 선을 행하면 복이 따르고 악을 행하면 재앙이 따름은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니라."
"정말로 그렇습니다. 바로 부처님 말씀 그대로입니다. 저는 전생에 왕으로 있을 때 사람의 목숨이 무상하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닫고 여러 신하들에게 보시를 베풀면서 말했습니다.
"백 리 밖에까지 소리가 울리는 커다란 북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겠소?"
이에 여러 신하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습니다.
"저희들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없사오나 광상이라는 신하는 능히 그것을 해낼 수있을 것입니다. 그는 충성심도 강하고 백성들을 자비로 보살피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그 광상이라는 신하를 불러 과연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대왕께서 원하시는 북을 만들 수 있사옵니다. 북을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을 저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매우 기뻐하며 창고를 열어 그 안에 있는 재물을 광상에게 모두 맡겼습니다. 그런데 광상은 그 재물들을 왕궁의 문 앞에 옮겨두고 북을 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인자한 대왕께서 한량없는 자비를 베풀어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고 수행자들에게 공양하고자 하시니 궁핍한 사람들은 모두 왕궁 문 앞으로 오라."
이 말이 전해지자 전국 각지의 가난한 이들과 심지어 이웃 나라의 거지들까지 몰려들어 왕궁 앞길은 인산인해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우리같이 가난한 사람들이 오늘에서야 살길을 찾았구나."
광상은 가난한 이들에게 재물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런일이 있은 후 1년이 지나자 저는 광상을 불러 물었습니다.
"북은 다 완성되었느냐?"
"완성된 지 이미 오래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 북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인가?"
"현명하신 대왕께서는 친히 국내를 돌아보사 불법의 북소리가 시방에 진동함을 직접 들어보십시오."
그래서 저는 마차를 타고 국내를 순시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백성들이 발디딜 틈도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우리 나라 백성들이 이렇게 많았더냐?"
이에 광상이 대답했습니다.
"대왕께서는 그 덕을 사방에 떨치고자 백 리 밖에서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커다란 북을 만들라고 저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낱 마른 나무와 죽은 가죽으로 대왕의 높은 덕을 선양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왕께서 북을 만들라고 주신 재물로 수행자들을 공양하고 또 가난한 백성들에게 아낌없이 보시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웃 나라 백성들까지 우리 나라로 몰려들어와 대왕께서 보시는 대로 백성들의 수가 이와 같이 늘어났습니다."
광상의 대답을 들은 저는 근처에 있는 백성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어디에서 왔느냐?"
"저희들은 백 리 밖에서 왔습니다. 대왕이 크게 덕을 베푸신다는 소문을 듣고 태어난 고향을 등지고 이 나라에 와서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잘된 일이로다. 백성이 가난한 것은 나라가 병을 앓고 있는 것과 같다. 내가 약을 주고 신하들로 하여금 죽을 주게 해서 그 병을 고치고 말리라. 여보게, 광상. 경은 앞으로 백성들이 바라는 대로 구제사업을 계속하고 일일이 내게 보고하지 않아도 되네."
나중에 저는 수명이 다하자 천상에 태어나 천묘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천상의 수명이 다하자 저는 다시 이 세상에 비행황제로 태어나 온갖 보물로 치장한 채 편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후 다시 천상에 태어나 천왕의 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이런 복을 누릴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계를 지키고 중생들을 구제한 공덕의 소치임이 분명합니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계를 받들어 몸을 올바로 하고 수행하면 얻지 못할 복이 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에 부처님께서 벽라에게 말했다.
"사람의 행동은 그림자가 그 형상을 항상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과보가 있게 마련이니라."
벽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기뻐하며 절을 하고 물러갔다.
<불설천왕태자벽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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