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3 - 엄광용 엮음
황제의 등창을 빨아 출세하다 <등통>
- 문제가 등통을 총애하는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어느 날 문제는 등창을 앓았는데, 등통이 입으로 그 종기의 고름을 빨아냈다. 문제는 그러면서도 전혀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 등통에게 크게 감동하였다.-
한나라 문제는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문제는 하늘로 오르려고 하는데, 도무지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때 황제가 타는 배를 모는 황두랑 하나가 뒤에서 밀어올려 하늘로 오를 수 있었다. 돌아다 보니 황태랑의 등쪽 띠 밑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꿈에서 깨어난 문제는 기분이 좋았다. 아무리 꿈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생생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문제는 곧 꿈속에서 자신의 몸을 밀어올려 하늘로 오를 수있게 해준 황두랑을 찾아보았다. 어느 날 문제는 황두랑으로 있는 한 미소년의 등쪽 띠 밑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며칠 전 꿈속에서 본 것과 똑같았다.
"그대 이름이 무엇인고?"
문제가 묻자 미소년이 대답하였다.
"성은 등이고 이름은 통입니다."
문제는 그때부터 등통을 가까이에 두고 총애하였다. 등통은 극진히 문제를 모셨다. 외부 인사와도 사귀지 않았으며, 휴가를 받더라도 외출하지 않고 황제 옆에 붙어 있었다. 문제는 때때로 등통의 집에까지 가서 놀았다. 이처럼 특별히 황제의 총애를 받은 등통은 관직이 상대부에까지 올라갔다. 어느 날 문제는 관상을 잘 보는 사람을 불러 등통의 관상을 보게 하였다.
"가난해서 굶어죽을 상입니다."
관상가의 말을 듣고 문제는 화가 났다.
"그래 좋다. 짐이 등통을 부유하게 해주어 관상가의 예언을 무색하게 만들고 말리라."
문제는 등통에게 촉 땅의 엄도에 있는 동산을 주고, 그곳에서 동전을 주조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였다. 이렇게 되자 등통이 찍어낸 돈은 천하에 널리 쓰이게 되었으며, 그는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문제가 등통을 이처럼 아끼는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어느 날 문제는 등창을 앓았는데, 등통이 입으로 그 종기의 고름을 빨아냈다. 문제는 그러면서도 전혀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 등통에게 크게 감동하였다.
"그대가 보기에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짐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나?"
등통이 말하였다.
"황태자께서 폐하를 가장 사랑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황태자를 불러들여 자신의 등창을 입으로 빨게 하였다. 얼떨결에 황태자는 아버지 문제의 등창에 입을 대고 고름을 빨았다. 그러나 황태자는 억지로 고름을 빨았기 때문에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그 일로 하여 문제는 황태자보다 등통의 사랑이 더욱 지극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처럼 문제가 등통을 총애하게 되자, 황태자는 은근히 등통을 싫어하였다. 문제가 세상을 떠나고 황태자가 제위를 물려받아 경제가 되었다. 경제는 등통을 면직시켜 집으로 돌려보내 버렸다. 그리고 얼마 후 등통이 집에서 돈을 주조하여 화폐를 국경 밖으로 빼돌리고 있다는 고발이 들어왔다. 이것은 국법으로 엄하게 금지하고 있는 사항이었다. 경제는 즉시 등통을 체포하라는 명을 내렸다. 심문한 결과 등통의 위법 사실이 밝혀졌다. 이로 인하여 등통의 재산은 모두 몰수되어 비녀 하나 남지 않았다. 등통은 전에 문제의 누이 장공주와 밀통하는 사이였는데, 장공주는 등통이 알거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옛정을 생각하여 경제 몰래 재물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관리가 재빨리 알아차리고 부채에 대한 변제금조로 모조리 몰수해 가버렸다. 장공주는 방법을 달리하여 등통에게 의복과 먹을 것을 조달하였지만, 그런 편법에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등통은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남의 집에 얹혀 사는 신세가 되었으며, 최후까지 단 한 푼도 소유하지 못한 채 끝내는 굶어죽고 말았다.
'가난해서 굶어죽을 상'이라던 관상가의 예언은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재력 :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재물은 자신의 재산이 아니다. 남에게 얻은 재산은 쉬 잃게 되는 것. 스스로 땀흘려 재산을 모을 때 재물을 지키는 힘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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