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2 - 엄광용 엮음
(세상과 나를 바꾸는 지혜 명인 40인의 성공처세학)
자신을 낮출수록 명예는 높아진다 - 신릉군
잠시 수레에서 내린 후영은 백정노릇을 하는 친구 주해를 만나 오랫동안 무슨 이야기인가를 나누었다. 그러나 수레에 앉아 말고삐를 잡은 채 기다리고 있는 신릉군의 얼굴은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위나라 공자 무기는 소왕의 막내아들이다. 소왕이 죽고 안희왕이 즉위했을 때, 그는 신릉군에 봉해졌다. 신릉군은 부귀한 몸이지만 가난한 선비들에게까지 겸손하였다. 그는 유능한 인물이면서 자신보다 못난 사람들에게도 머리를 숙여 더욱 존경을 받았다. 나이 칠순이 된 후영이란 선비가 있었는데, 그는 그때까지도 이문의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었다. 신릉군은 그가 현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후한 예물을 보내 빈객으로 초청하였다. 후영은 예물을 받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는 몸을 수양하고 행동을 조심하며 수십 년을 살아왔습니다. 제가 지금 곤궁하다 하여 공자의 재물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자 신릉군은 빈객들을 모아 술잔치를 베풀게 하고, 자신이 직접 가서 후영을 수레의 상석인 왼쪽에 앉게 하였다. 이때 예물조차 받지 않은 후영은 사양 한번 하지 않고 성큼 수레의 상석에 올라앉았다. 신릉군은 손수 말고삐를 잡고 말을 몰면서 더욱 정중하게 후영을 대하였다. 후영이 신릉군에게 말하였다.
"제가 잘 아는 사람 중에 저자거리에서 푸줏간을 하는 주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잠시 그 친구를 만나고 가시지요."
신릉군은 수레를 몰고 저자거리로 들어섰다. 잠시 수레에서 내린 후영은 백정노릇을 하는 친구 주해를 만나 무슨 이야기인가를 나누었다. 그는 사방을 곁눈질하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면서, 신릉군의 얼굴빛을 살폈다. 그러나 수레에 앉아 말고삐를 잡은 채 기다리고 있는 신릉군의 얼굴은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오히려 그 얼굴빛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온화해졌다.
한편 신릉군을 따르던 하인들은 자신의 주군을 오래도록 기다리게 하는 후영을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집에서는 지금 한창 주연을 벌이기 위해 위나라 장상들과 종실, 빈객들이 모여 신릉군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후영은 계속해서 주해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저자거리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신릉군의 행차를 구경하였다. 신릉군은 집에 도착하여 연회석상으로 나갈 때도 후영을 상석에 모셨다. 주연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 후영이 신릉군에게 술잔을 올린 후 말하였다.
"오늘 제가 공자님께 큰 무례를 범하였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용서라니요? 무슨 무례를 범했다고 그러십니까?"
신릉군은 웃는 낯으로 물었다.
"자자거리에서 무례를 무릅쓰고 제 친구 주해와 너무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무례라고 할 수 있나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옆에서 들어보니 두 분이 하는 이야기가 별로 중요한 것 같지는 않던데요?"
후영이 말하였다.
"맞습니다. 저는 그때 공자님께서 어떤 인품이신지 한번 시험해본 것뿐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할 이야기도 없는데 친구와 긴 시간을 끌면서 잡담을 나누어본 것입니다. 과연 공자님께서는 대단한 인품의 소유자십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화를내고 저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이 혼자 가버렸을 것입니다."
"허허허, 현명한 선비를 모시려면 그 정도 시간이야 기다릴 수 있어야지요."
"아닙니다. 그곳에서는 저자거리의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제가 하찮은 문지기이고, 제 친구가 푸줏간을 하는 백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레에 앉아 저를 기다리고 있는 분이 누구인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랬을 테지요."
"사실을 말씀드리면, 제가 저자거리에서 취한 행동은 공자님의 명예를 높여드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후영의 말을 듣고 신릉군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명예를 높이다니요?"
"이제 저자거리의 사람들은 저를 보고 소인배라고 수근댈것이고, 공자님을 성인이라 하여 더욱 존경할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낮의 일로 공자님의 명예는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신릉군은 감탄하였다.
"과연 그렇군요. 자신을 낮추면서까지 저의 명성을 높여주신 선비님의 깊은 심중은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그후부터 신릉군은 후영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겸손 : 가을 들판의 꼴불견은 고개 숙인 벼이삭들 가운데 뻣뻣하게 고개를 세운 피이삭이다. 잘 익은 벼일수록 고개는 아래로 숙여지는 법이다. 자연 현상은 그런데 인간 사회는 그와 반대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지위 높은 사람이 조금만 겸손해도 그는 존경받는 인물이 된다. 고개 숙일줄 모르는 사람은 대개 자신이 피이삭이면서 벼이삭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인의 때문에 왕명을 어기다
신릉군은 안희왕의 침실에서 병부를 훔쳐내는 데 성공하였다. 이 병부는 군사를 출동시킬 때 왕이 장군에게 주는 군사 통솔권의 표시로, 왕과 장군이 각각 반씩 쪼개어 지니게 되어 있었다.
안희왕 20년에 진나라 소왕이 조나라의 40만 대군을 격파하고, 곧바로 조나라 수도 한단을 포위하였다. 조나라에서는 곧 위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였다. 조나라 혜문왕의 동생 평원군은 위나라 신릉군의 누이를 아내로 두고 있었다. 따라서 조나라와 위나라는 사돈 관계인 셈이었다. 위나라 안희왕은 곧 장군 진비에게 10만의 군사를 주어 조나라를 구원케 하였다. 한편 이런 사실을 안 진나라 소왕은 즉시 위나라에 사자를 보내어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이제 조나라의 항복은 시간 문제요. 만일 위나라가 조나라에 가담한다면, 우리 진나라 군대는 조나라를 공략한 즉시 위나라에 보복을 할 것이오."
안희왕은 겁을 먹었다. 그래서 즉시 장군 진비에게 전령을 보내어 위나라 군대를 국경인 업성에 머물게 하고 조나라 한단이 어떻게 될지 관망만 하라고 명하였다. 조나라의 평원군은 다급하였다. 그래서 계속 처남인 신릉군에게 사자를 보내어 위나라 구원군으로 하여금 조나라 수도 한단을 포위한 진나라 군대를 공격하게 해달라고 독촉하였다. 신릉군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몇 번이고 안희왕에게 가서 국경에 머물러 있는 위나라 구원군의 출병을 간청하였다. 그러나 그의 간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 혼자라도 가야겠다."
신릉군은 식객들에게 호소하여 전차 백여 대를 준비해 진나라 군대를 토벌하러 가기로 결심하였다. 이때 이문의 문지기를 하는 후영이 신릉군을 찾아와 말하였다.
"분투를 빕니다. 이 늙은이는 따라가지 않겠습니다."
신릉군은 몇 리쯤 가면서 생각하였다. 후영을 현인이라 생각하여 평소 존경하였는데, 겨우 한다는 소리가 도움은 주지 못할 망정 '분투를 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가서 죽으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시 되돌아온 신릉군은 후영을 찾아갔다.
"다시 오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아무리 다급하기로 독단으로 식객들을 끌고 가서 진나라 대군과 싸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비유하건대 그것은 고깃덩어리를 굶주린 범에게 던져주는 것과 같아서 아무런 공도 세울 수 없습니다. 계책이 필요합니다."
"그 계책이 뭐요?"
신릉군은 두 번 절한 뒤 후영에게 물었다.
"제가 들으니 지금 10만 대군을 이끌고 국경에 가 있는 진비 장군의 병부가 대왕의 침실 안에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여희가 대왕의 총애를 받아 침실을 출입한다 들었습니다. 여희의 힘이라면 그 병부를 훔쳐낼 수 있을 것입니다. 공자님께서는 여희의 아버지 원수를 갚아준 분이니, 직접 부탁을 하면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병부를 가지고 진비 장군에게 가서 보여주면 공자님께서 군대의 지휘권을 인계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다급한 신릉군은 일단 후영의 말대로 여희에게 부탁하여 안희왕의 침실에서 병부를 훔쳐내는 데 성공하였다. 신릉군이 훔친 병부를 가지고 국경으로 출발하려 하자, 후영이 다시 찾아와 말하였다.
"전비 장군은 공자님께서 가지고 간 병부가 자신의 것과 꼭 맞다 하더라도 의심을 할 지 모릅니다. 그러니 저의 친구 주해를 데리고 가십시오. 그는 개나 돼지를 때려잡는 백정으로 그의 힘을 따를 자가 없습니다. 진비가 만약 공자님께 군사 통솔권을 이양하지 않을 경우 주해를 시켜 쳐죽이도록 하십시오."
"진비는 용맹스런 장군인데 꼭 그를 죽여야만 한단 말이오?"
신릉군은 진비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대를 위해 소가 희생될 수밖에 없질 않습니까?"
신릉군은 후영의 말대로 주해를 찾아갔다. 그 전에도 신릉군은 후영의 소개로 주해를 몇 번 찾아가 집으로 초청했으나 번번히 거절당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해가 아주 반가운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저같이 신분이 낮은 백정을 몇 번씩 찾아와 주셨는데, 이번에는 그 보답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전에 집으로 초청을 해주셨을 때 거절했던 것은, 저 나름대로 그런 하찮은 예의는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공자님께서 위난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이제 몸을 바쳐 그 은혜에 보답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주해는 당장에 만사를 걷어치우고 신릉군을 따라나섰다.
신릉군은 곧 훔친 병부를 가지고 위나라 국경인 업성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진비에게 왕명이라 속인후 병부를 내밀어 군사 지휘권을 인도하라고 요구하였다.
"지금 공자께서는 호위군도 거느리지 않고 와서 군사 지휘권을 달라고 하십니다. 병부는 틀림이 없으나 정말 왕명인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이때 신릉군 옆에 있던 주해는 40근짜리 철봉으로 진비를 내리쳐 죽였다. 이렇게 하여 진비의 군사를 장악한 신릉군은 전군에 포고령을 내렸다.
"군사들 중에서 부자가 함께 종군하고 있는 자는 아버지의 귀국을 허락하고, 형제가 종군하고 있으면 형의 귀국을 허락한다. 그리고 외아들인데 종군하고 있는 자는 돌아가서 부모님을 공양토록 하라!"
군사들은 신릉군의 이같은 배려에 모두들 머리 숙여 고마움의 표시를 하였다. 이렇게 하여 귀국을 하게 된 군사를 빼고 나자 8만의 병력이 남았다.
신릉군은 8만의 군사를 이끌고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향해 진군하였다. 한단을 공격하던 진나라 군대는 위나라 군대가 들이닥치자 포위망을 풀고 철수하였다. 조나라 왕과 평원군은 신릉군에게 정중하게 머리를 숙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로부터 현자라 불리어 온 사람은 많이 있었지만, 신릉군을 능가할 사람은 없습니다."
한편 위나라 안희왕은 신릉군이 병부를 훔치고, 왕명을 가장하고, 장군 진비를 죽인 사실을 보고받고 크게 분노하였다. 신릉군도 각오하고 있던 바였으므로, 일단 위나라 군대를 아래 장수에게 맡겨 귀국시킨 후 그는 식객들과 함께 조나라에 남았다.
인의 : 큰 인물은 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줄 안다. 그러나 버리는 것은 곧 또다른 것을 얻는 것이다. 재물을 버리면 명예를 얻고, 몸을 바치면 고귀한 이름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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