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1 - 엄광용 엮음
(세상과 나를 바꾸는 지혜 명인 40인의 성공처세학)
소의 꼬리보다 닭의 벼슬이 낫다 - 소진
"속담에 '차라리 닭의 벼슬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않겠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나라가 신하의 예로 진나라를 섬긴다면 소의 꼬리와 무엇이 다를 바 있겠습니까?"
소진은 동주의 낙양 사람으로 제나라에 있는 귀곡 선생을 찾아가 학문을 익혔다. 그가 공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누더기 옷에 초라한 몰골이어서 형제자매와 형수, 아내, 처첩들조차 비웃으며 냉대와 구박이 심하였다. 소진은 꾹 참고 방안에 틀어박혀 책만 읽었다. 그 당시 그를 유난히 사로잡은 것은 태공망의 병법서로 알려진 "주서의 음부"였다. 1년이 지나자 그는 스스로 '췌마'라는 특이한 독심술을 익힐 수 있었다. 즉 가만히 앉아서도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제는 내가 능히 제후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그 무렵 진나라 효공이 죽고 혜왕이 즉위하였다. 소진은 진나라로 가서 혜왕을 설득하였다.
"진나라는 사방이 산과 물로 이루어져 있어 천하의 요새입니다. 그리고 동쪽에는 함곡관과 황하가 있고, 서쪽에는 한중이 있으며, 남쪽에는 파, 촉, 북쪽에는 대군과 마읍이 있습니다. 따라서 진나라의 많은 선비들에게 병법을 가르친다면 대왕께서는 천하를 얻어 천자의 자리에 오르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혜왕은 바로 얼마 전에 상앙을 죽인 뒤라, 혀끝만 놀려 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을 극히 싫어하였다.
"새도 깃털과 날개가 다 자라지 않으면 날지 못하는 법이오. 우리 진나라는 아직 정치가 안정되지 못했으니 천하를 도모할 수 없소."
소진은 할 수 없이 조나라를 찾아갔다. 조나라 숙후의 아우 봉양군은 소진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소진이 연나라로 가서 무려 1년을 기다려 어렵게 문후를 만날 수 있었다.
"연나라 동쪽에는 조선과 요동이 있고, 북쪽에는 임호와 누번이, 서쪽에는 운중과 구원이, 그리고 남쪽에는 호타와 역수가 지세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 영토는 사방 2천여 리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편 연나라는 병력이 수십 만이나 되고, 전차가 6백 대, 군마가 6천 두에 이르며, 군량은 수년 동안 충분히 먹을만 합니다. 지금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는 곳은 연나라뿐입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아십니까? 그것은 조나라가 연나라의 남쪽에 있으면서 방패 역할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조나라와 진나라는 다섯 번 싸워 조나라가 세 번, 진나라가 두 번 이겼습니다. 그래서 두 나라 다 지쳐 있는 상태입니다. 연나라 입장에서 볼 때 조나라는 백 리 안에 있고, 진나라는 천 리밖에 있습니다. 연나라는 가까운 조나라와 합종하여 먼 진나라에 대항해야 걱정거리가 사라집니다."
소진의 말을 듣고 문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대의 말이 맞소. 우리 연나라는 작은 나라로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소. 그대가 조나라와 합종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오."
마침 조나라 숙후의 아우 봉양군이 죽었다. 그래서 소진은 어렵지 않게 조나라 왕을 만날 수 있었다.
"제가 가만히 천하의 지도를 살펴보니 제후들의 땅을 합하면 진나라의 5배가 되고, 군사를 합하면 진나라의 10배가 됩니다. 6국이 하나로 힘을 합쳐 진나라를 친다면 반드시 깨뜨릴 수 있습니다."
소진은 이렇게 숙후를 설득하여, 연, 조, 한, 위, 제, 초의 6국이 합종을 해야한다는 데 동의를 얻어내었다. 그 다음에 소진이 간 나라는 한나라였다. 그는 한나라에서도 6국이 합종을 하여 강국인 진나라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의 합종책은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나라의 입장을 설명한 후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속담에 '차라리 닭의 벼슬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않겠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나라가 신하의 예로 진나라를 섬긴다면 소의 꼬리와 무엇이 다를 바 있겠습니까?"
한나라 혜선왕은 발끈 화를 내면서 팔을 걷어붙이더니, 이내 소진의 말에 따르겠다고 말하였다. 소진은 한나라 다음에 위, 제, 초 3국을 차례로 방문하여 각 나라의 입장에서 6국 합종책을 설파하여 마침내 6국동맹을 성취시켰다.
위나라 양왕에게 소진은 이렇게 말하여 설득하였다.
"주서에 '새싹 때 끊지 않으면 덩굴이 길게 얽혔을 때 어찌할거나, 작을 때 베지 않으면 장차 도끼를 써야하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왕! 재빠른 사리판단을 하십시오, 장차 큰 근심이 되고 나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제나라의 선왕에게 소진은 이렇게 말하여 6국 합종의 동의를 얻어냈다.
"진나라가 제나라를 치려면 한나라와 위나라 땅을 등지는 입장이 되기 때문에 곤란합니다. 진나라가 제나라를 깊이 들어와 공격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유는, 이리가 언제나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는 것처럼 한나라와 위나라가 뒤쪽을 위협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속으로 두렵고 의심스러우니까 밖으로 공강치고 거만스럽게 굴면서도 진나라가 감히 전진해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왕께서는 진나라를 섬기다 오명을 쓰느냐, 아니면 나라를 부강케 하는 실리를 얻느냐, 양단간에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또한 소진은 초나라에 가서 이렇게 말하여 위왕의 고집을 꺾었다.
"옛말에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스리고,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대책을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환난이 온 뒤에 근심하면 이미 늦습니다. 진나라는 호랑이와도 같은 나라여서 온 천하를 삼키려는 야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나라는 천하의 원수입니다. 원수를 기르기 위하여 원수를 받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대왕께서 현명한 판단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소진은 이러한 말들로 설득하여 각 나라의 왕이 6국 합종에 동의할 수 있게 하였다. 6국의 합종을 문서로 만들어 진나라에 보내자, 진나라는 감히 함곡관 밖을 엿보지 못하였다.
이처럼 소진의 변론술은, 요컨대 치밀한 계산과 상대방의 심리적 약점을 찔러 그것을 조종할 줄 아는 능력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능력을 인정받아 6국의 재상을 겸임하였다. 평생 힘써 1국의 재상을 하기도 힘든데, 혀끝 하나로 6국의 재상이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합종 : 힘이 약할 때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과 힘을 모아라. 힘을 모으면 강대한 상대자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다. 중소기업이 공동의 브랜드를 만들어 대기업에 맞서는 것도 이같은 대응방법이다.
독초를 씹으면 삼키기 전에 뱉아라
"지금 연나라와 진나라가 쳐들어온다면 제나라는 위기에 처합니다. 아직 대왕이 삼킨 독초는 뱃속까지 들어간 것이 아니니, 이제라도 토해내시면 위태로운 제나라의 목숨을 구하실 수가 있습니다."
소진에 의해 6국 합종이 이루어진 이후 15년간 천하는 태평하였다. 그러나 진나라는 제나라와 위나라를 부추겨 조나라를 치게 함으로써 합종의 맹약을 깨뜨리는 계략을 꾸몄다. 제나라와 위나라가 쳐들어오자, 조나라왕은 소진을 불러 두 나라가 맹약을 깬 것에 대하여 문책하였다. 소진은 곧 자신이 연나라로 가서 왕을 설득해 조나라와 함께 합종을 위반한 제나라를 치게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이렇게 되자 두 나라는 군사를 거두고 예전대로 6국 합종을 지키겠다고 하였다. 이처럼 사태가 돌변하자 진나라 혜왕은 회유책으로 작전을 바꾸어 자신의 딸을 연나라 태자에게 시집보냈다. 그후 연나라의 문후가 죽고 역왕이 즉위하였다. 국상 중일 때 제나라 선왕이 연나라를 쳐서 10개 성을 빼앗았다. 연나라 역왕이 소진을 불러 말하였다.
"제나라가 저번에는 조나라를 공격하더니, 이번에는 국상중인 우리 나라를 쳐들어왔소. 이대로 참고 있는다면 우리 연나라는 천하의 웃음거리밖에 안 되오. 이렇게 되도록 씨를 뿌린 사람은 그대이니, 어서 제나라에 가서 우리의 빼앗긴 땅을 찾아주시오."
소진은 몸둘 바를 몰랐다.
"반드시 찾아오겠습니다."
소진은 곧 제나라로 가서 왕에게 크게 두 번 절하여 축하를 드린 다음, 다시 뻣뻣하게 고개를 세운 채 뜻하지 않은 불행에 대하여 조문하였다. 제나라 왕이 물었다.
"그대는 어째서 방금 경사를 축하한다고 말한 후 곧바로 말을 바꾸어 조문을 하는 거요?"
소진이 말하였다.
"옛말에 '굶주린 사람이 방금 굶어죽을 순간에 처해도 오훼(독초의 일종)를 먹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당장 배를 채우는 데는 좋으나 곧 죽음을 재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왕께서는 그 오훼를 드셨습니다. 그래서 조문을 한 것입니다."
"오훼를? 과인이 언제 그 독초를 먹었단 말이오?"
제나라 왕은 무슨 뜻인지 몰라 눈을 크게 떴다.
"연나라는 약소국이라고 하나 강국인 진나라와 사돈 관계입니다. 대왕께선 연나라의 10개 성을 얻었으나, 이제 진나라와는 원수지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지금 약한 연나라가 선봉을 서고 강한 진나라가 그 뒤를 엄호하여 쳐들어온다면 제나라는 위기에 처합니다 .아직 대왕이 삼킨 독초는 뱃속까지 들어간 것이 아니니, 이제라도 토해내시면 위태로운 제나라의 목숨을 구하실 수가 있습니다."
제나라 왕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 자신이 소진의 말처럼 독초를 입안에 넣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지경이었다.
"그럼 지금이라도 우리가 빼앗은 10개 성을 연나라에 되돌려준다면 괜찮겠소?"
"물론입니다. 그러면 제나라는 덤으로 이익을 얻습니다."
"어떤 이익이오?"
"우선 연나라는 이유없이 잃어버린 10개 성을 되돌려 받으니 기쁠 것이고, 진나라 역시 자신의 위력을 두려워하여 제나라가 10개 성을 되돌려주었다고 생각하여 어깨가 으쓱 올라갈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원수를 풀고 돌과 같은 굳은 친교를 얻게 되는 것'이니, 일거양득이며 또한 전화위복이라 아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제나라 왕은 곧 소진의 말을 옳게 여겨 연나라에게 10개성을 되돌려주었다.
실수 : 잘못은 빨리 인정할수록 좋다. 시기를 놓치면 사과를 해도 상대가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화해와 용서의 미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아교질 역할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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