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1 - 엄광용 엮음
(세상과 나를 바꾸는 지혜 명인 40인의 성공처세학)
세 치의 혀로 다섯 나라를 움직인다 - 자공
자공은 한 번 순행하여 다섯 나라에 큰 변화가 일어나도록 하였다. 즉 노나라를 존속시키고, 제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오나라를 무너뜨리고, 진나라를 강성하게 하고, 그리고 원나라를 패자로 만들었다.
자공은 공자보다 31세 어린 제자다. 그는 말재주가 뛰어났는데, 그래서 항상 공자로부터 '말을 경계하라'는 꾸중을 듣곤 하였다. 제나라의 대부 전상이 난을 일으키려 하나 고, 국, 포, 안 씨 사성의 대부들 때문에 머뭇거리고 있었다. 이때 전상은 강력한 군사를 놀리기가 아까워 아예 노나라를 치려고 하였다. 공자는 이 소문을 듣고 제자들을 불러 말하였다.
"노나라는 우리 부모의 나라며,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이처럼 나라가 위태할 때 너희들은 어찌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자가 없는가?"
그러자 용맹스런 자로가 나서기를 청하였다. 공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장과 자석이 나섰으나 공자는 이번에도 허락하지 않았다. 자공이 나서자 공자는 흔쾌히 허락하였다. 자공은 곧 길을 떠나 제나라로 가서 전상을 만났다.
"지금 노나라를 치려는 것은 잘못입니다. 노나라는 치기 어려운 나라입니다."
"어째서 그렇단 말이오?"
전상이 물었다.
"대체로 노나라의 성은 두께가 얇고 높이가 낮습니다. 못은 좁고 얕습니다. 군주는 어리석으며, 대신들은 거짓말을 잘합니다. 또한 백성들은 전쟁하기를 싫어합니다. 이런 나라와 전쟁을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차라리 오나라를 치느니만 못합니다. 대체로 오나라는 성의 두께가 두껍고 높이가 하늘을 찌릅니다. 못은 넓고 깊습니다. 무기와 장비는 튼튼하고, 모두가 최신의 것입니다. 군사들은 정선되어 있으며 식량은 풍족합니다. 또한 현명한 대부를 시켜 성을 다스리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나라는 치기 쉽습니다."
자공의 말에 전상은 벌컥 화를 냈다.
"내가 들어보니 대체로 그대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이 쉽다고 하고, 그대가 쉽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는 것이오. 지금 그대는 나를 놀리고 있는 게 아니오?"
"근심이 자기 안에 있는 사람은 강한 자를 치고, 근심이 자기밖에 있는 사람은 약한 자를 친다고 합니다. 지금 제나라는 근심이 나라 안에 있습니다. 상공께서는 제나라 군주로부터 세 번이나 봉을 받으려 하였으나 여러 대신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공께서 힘이 약한 노나라를 쳐서 제나라의 땅을 넓히면, 군주를 교만하게 만들뿐입니다. 싸움에 승리하여도 견제하는 대신들이 많아 논공행상에서 상공께서는 큰 이득을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노나라를 치는 것은 오나라를 치는 것만 못합니다. 강한 오나라를 쳐서 이기지 못하면 백성들은 나라 밖에서 죽게 되고, 대신들은 나라 안에서 그 지위를 잃는 자가 많게 됩니다. 그러면 상공께서는 적이 될만한 대신들이 적어지는 데 반하여, 군주는 백성들의 원성을 사게 됩니다. 즉 군주는 믿을만한 신하가 없고, 백성들이 믿지 않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고립됩니다. 이런 시기에 이르면 제나라를 제어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오직 상공뿐입니다. 자연히 군주는 상공께 매달리게 되지요."
자공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듯하였다. 전상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좋은 생각이나 벌써 군사를 노나라로 충동시켰소. 만일 도중에 진로를 오나라로 바꾸면, 대신들이 나를 의심하게 될 것이오."
"상공께서는 아무 염려 마십시오. 일단 노나라 국경에 군사를 머물게 하고 기다리시면 됩니다. 저는 곧 오나라로 가서 노나라를 구원하여 제나라를 치도록 만들겠습니다. 이때 상공께서는 노나라 대신 오나라 군대를 맞서 싸우십시오."
전상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자공은 곧 제나라를 떠나 오나라 왕에게 가서 말했다.
"흔히 왕자는 남의 나라 대를 끊어지지 않게 하고, 패자는 적을 강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대국인 제나라가 소국인 노나라를 쳐서 오나라와 그 강함을 다투려 합니다. 이것은 오나라에게 실로 위태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소국인 노나라를 구제하는 것은 이름을 드러내는 일이 되며, 제나라를 치는 것은 상대의 강한 기를 꺾고 오나라의 강함을 보여주는 좋은 기회라 생각합니다. 명분은 멸망하려는 노나라를 존속시키고, 실리는 강한 제나라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니, 오나라로서는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나라를 치십시오."
오나라 왕 부차가 말했다.
"좋은 계략이오. 그러나 과인이 일찍이 월나라를 친 일이 있는데, 지금 월나라 왕 구천은 지난 날 회계산에서 당한 치욕을 씻기 위해 자신을 괴롭혀 가면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소. 그러니 우리 오나라로선 먼저 월나라를 친 뒤에 제나라를 치는 것이 순서일 것 같소."
"그렇지 않습니다. 월나라는 노나라보다 강하지 못하며, 오나라의 강함은 제나라보다 우세합니다. 대왕께서 지금 제나라를 버려두고 월나라를 친다면, 그러는 동안에 제나라는 노나라를 평정하여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강자를 버려두고 약자를 치는 것은 결코 용자라 할 수 없습니다. 대체로 용기 있는 사람은 어려운 것을 회피하지 않으며, 어진 사람은 곤궁한 자를 궁지에 빠뜨리지 않으며, 지혜있는 자는 때를 잃지 않고, 왕자는 남의 나라의 대를 끊어지지 않게 한다고 합니다. 지금은 월나라를 존속시켜 제후들에게 대왕의 인의를 보여주고, 노나라를 구원하고 제나라를 쳐서 그 위엄을 진나라에 과시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면 제후들은 반드시 오나라로 달려와 조회에 임할 것이고, 자연히 대왕의 패업은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만약 대왕께서 월나라가 마음에 걸린다면, 제가 동쪽으로 가서 월나라 왕에게 군대를 동원토록 하여 제나라를 치기 위해 출정하는 오나라 군대에 종군할 수 있도록 설득하겠습니다. 이것은 실제로는 월나라의 성을 비우게 하는 것이고, 명분은 제후를 종군시켜 제나라를 치게 만드는 일이 됩니다."
자공의 말에 오나라 왕은 미소를 지었다.
"월나라가 그렇게만 해준다면 마음이 놓일 것 같소."
자공은 자신이 곧 월나라 왕 구천을 설득시키겠다고 오나라 왕과 굳게 약속하였다. 자공이 월나라로 들어서자, 왕 구천이 교외까지 직접 나와서 그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이곳은 오랑캐 나라와 근접해 있는 오지입니다. 선생께서는 어찌 이런 오지까지 찾아주셨습니까?"
월나라 왕은 자공을 자신의 마차에 태워 궁궐까지 안내하였다. 궁궐에 들어간 자공이 월나라 왕에게 말하였다.
"이번에 제가 오나라 왕에게 노나라를 구원하고 제나라를 치라고 설득하였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나라 왕은 '월나라를 정복한 후에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월나라는 크게 위태롭게 됩니다. 대체로 보복할 뜻이 없으면서 남으로 하여금 의심하게 하는 것은 졸렬한 처사이고, 보복할 뜻이 있는데 남으로 하여금 이를 알게 할 때처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일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소문이 나는 것은 위험천만이니, 이 세 가지를 경계해야 합니다."
자공의 말이 백 번 옳다고 생각한 월나라 왕은 두 번 머리를 숙여 절한 뒤 물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회계산에서 오나라 왕 부차에게 당한 치욕이 가슴에 맺혀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 분통함이 골수에 사무치고 입술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니, 부디 부차를 죽이고 원수를 갚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자공이 말하였다.
"오나라 왕 부차는 사람 됨됨이가 모질고 사나워서 군신들이 견디지 못하며, 나라는 잦은 전쟁으로 피폐할 대로 피폐하였으며, 사졸들은 사기가 저하되어 의욕을 잃었습니다. 또한 백성들은 왕을 원망하고 있으며, 대신들의 마음은 그 곁을 떠났습니다. 이제 대왕께서는 진실로 군사를 동원하여 오나라를 돕고, 귀한 뇌물을 바쳐 왕 부차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오나라 왕은 기필코 월나라보다 먼저 제나라를 치게 될 것입니다."
"아니, 군사를 일으켜 원수의 나라를 돕게 하고, 원수인 부차에게 귀한 선물을 보내란 말입니까?"
"네, 그래야만 오나라왕은 월나라가 자기네 나라를 칠 생각이 없다고 착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나라가 강한 제나라에 패할 경우, 대왕께는 비로소 복이 넝쿨째 굴러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오나라가 제나라와 싸워서 이기면 오만해져 그 기세를 몰아 진나라를 칠 것이니, 제가 이제 진나라 왕을 뵙고 오나라를 치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오나라는 제나라와 싸워 군대가 약화되고, 진나라가 쳐들어오니 안팎으로 피곤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 대왕께서 피폐해진 오나라를 공격하면, 반드시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입니다."
월나라 왕은 크게 기뻐하였다. 자공은 진나라로 가기 전에 우선 오나라로 다시 가서 왕부차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대왕의 말씀을 전하였더니, 월나라 왕 구천은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날 회계산에서 대왕이 자신을 풀어준 것에 대해 감사를 느끼고 있으며, 감히 음모는 생각할 수 없노라고 말했습니다."
자공의 말을 듣고 오나라 왕은 적이 안심하였다. 그로부터 5일 뒤 자공은 다시 월나라로 가서 대부 종으로 하여금 오나라 왕에게 다음과 같이 고하게 했다.
"동해의 역신 구천의 신하인 소신 종은 감히 대왕께 문안드립니다. 지금 가만히 들으니 대왕께서는 장차 대의로 군사를 일으켜 강국을 공략하고 약국을 구원하신다 합니다. 포악한 제나라를 제압하고 주왕실을 편안케 하시겠다니, 우리 월나라에서는 자청하여 사종 3천 명을 동원하고 대왕께서 친히 무기를 들고 선두에 서겠다 하십니다."
월나라 대부 종은 자공이 시킨 대로 이렇게 말하고는 갑옷 20벌과 창, 명검 등을 오나라 왕에게 선물로 바쳤다. 오나라왕이 크게 기뻐하고, 다시 자공을 불러 의논하였다.
"우리 오나라가 제나라를 치기 위해 출병하는데 월나라에서 군사 3천을 보내겠다고 했소. 월나라 왕 구천이 친히 종군하겠다는데,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것은 받아들이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남의 나라를 텅비게 하고, 남의 나라 왕으로 하여금 종군케 하는 것은 의가 아닙니다. 대왕께서는 그 예물과 원군만 받아들이되, 월나라 왕의 종군만은 사양토록 하십시오."
오나라 왕은 자공의 말을 받아들였다. 드디어 오나라 왕은 9군의 군사를 동원하여 제나라를 치기 위해 출병하였다. 자공은 바쁘게 진나라로 달려갔다. 그리고 진나라 왕에게 말하였다.
"모름지기 미리 계략을 꾸며 놓지 않으면 만약의 사태에 대처할 수 없으며, 군비를 갖춰놓지 않으면 적에게 승리할 수 없다고 합니다. 지금 오나라가 제나라를 치기 위해 출병하였습니다. 이 싸움에서 오나라가 지면, 그 기회를 노려 반드시 월나라가 원수를 갚기 위해 오나라를 점령할 것입니다. 만약 오나라가 제나라를 이긴다면, 오나라는 그 기세를 몰아 진나라를 공격해올 것입니다. 진나라의 입장에서 볼 때, 두 가지의 결과가 다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렇소. 우리는 오나라가 이겨도 져도 불만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군비를 정돈하고 사졸들을 쉬게 하여 만약의 전투에 대비토록 하십시오."
진나라 왕은 자공의 말대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자공은 기나긴 순행을 마치고 다시 노나라로 돌아왔다.
"선생님! 일을 무사히 끝냈습니다."
"수고했다. 네가 세치의 혀로 노나라를 구했구나."
공자가 말하였다. 한편 군사를 일으킨 오나라는 애릉에서 제나라 군대를 대파하였다. 그리고 나서 자공의 말대로 곧 진나라를 공격하였다. 진나라는 자공의 계략을 받아들여 완벽한 방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오나라 군대를 격파시켰다. 월나라왕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나라를 공격하였다. 진나라에 패하고 돌아온 오나라 군대는 다시 월나라 군대를 맞았는데, 세 번 도전하여 세 번 다 월나라에 패하였다. 이때 오나라 왕 부차는 자결을 하였으며, 그후 3년만에 월나라는 패자가 되었다. 이리하여 자공은 한 번 순행하여 다섯 나라에 큰 변화가 일어나도록 하였다. 즉 노나라를 존속시키고, 제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오나라를 무너뜨리고, 진나라를 강성하게 하고, 그리고 월나라를 패자로 만들었다.
이이제이 : 자신의 능력이 모자랄 때에도 승리의 방법은 있다. 상황을 정확히 분석하면 자신과 경쟁관계에 있는 세력과 적대와 견제의 관계에 놓인 또다른 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관계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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