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열전 1 - 김병총
10. 장의열전 張儀列傳
6국은 합종의 맹약을 하고 있었으나 장의(張儀)는 자기 주장을 밝히고 다시 열국을 흐트러뜨렸다. 그래서 제10에 <장의열전>을 서술했다. <太史公自序>
장의(張儀)는 위(魏)나라 사람이다. 일찍이 귀곡 선생에게 소진과 함께 사사하며 학술을 배웠다. 소진도 장의는 따르지 못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장의도 귀곡 선생게게 모두 배우고 나서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유세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인정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곤욕만 치렀다. 한번은 초나라 재상과 함께 술을 마셨는데 초의 제상이 도리옥(璧)을 잃어버렸다. "장의가 수상합니다. 평소 소행도 좋지 않으려니와 집안이 워낙 가난하거든요." 함께 연회에 참석했던 손님들이 모두 그렇게 장의를 몰아붙였다. 장의는 속절없이 수백 대의 매를 맞았다. "그렇지만 나는 훔치지 않았소." 훔치지 않았으므로 우직하게 시종일관 우겨댔다. 그로 인해 장의는 더욱 매를 맞았다. 너무나 많이 맞아 걸레처럼 되어 집으로 돌아오자 그의 아내는 한편으로는 억울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여보, 부질없이 책 같은 걸 읽어 유세만 하지 않았더라도 이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게 아니오." "가만! 내 여기를 보게. 아직도 혀가 붙어 있는가." "아직 혀는 붙어 있군요." 하도 어이없어 아내는 웃으면서 대꾸했다. "그럼 됐다. 혀만 붙어 있으면 충분하다."
그 즈음에 친구 소진은 벌써 조왕을 설득해 합종의 맹약을 맺는 데 성공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진은 진나라가 제후들을 쳐서 맹약을 깨며 합종국들이 서로 배반하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런 불상사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진나라에 적당한 인물이 등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시 장의밖에 없다. 그런데......." 소진은 비밀리에 수하를 장의한테 보냈다. "결코 내가 보냈다는 말은 하지 말게. 장의를 나한테로 일단 데리고만 와 주게." 그래서 수하는 장의한테로 가서 이렇게 속살거렸다. "무얼 이토록 고생하고 계십니까. 제가 듣기로 장 선생은 소진과 소싯적부터 친구 사이라면서요. 그는 지금 유세에 성공해 요로에 올라 있는데 당신은 어째 그에게로 가서 희망을 부탁하지 않으십니까. 헛고생 그만하시고 한 번 가 보십시오. 그가 친구이니 그토록 박대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대의 말이 옳소." 장의는 갑자기 의기양양해져서 조나라의 소진한테로 갔다. 그리고 당당하게 명함을 올렸다. 그러나 이레가 지나도록 소진을 면회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된 거요? 장의가 왔다는 한마디만 디밀면 맨발로라도 달려나올 텐데." "주인님은 바쁘십니다." "그럼 난 가겠소." "잠깐만 기다려 보십시오. 오늘쯤 주인님은 짬이 날 것 같습니다만." 이윽고 면회가 허락되었는데 소진은 장의를 당하(堂下)에 앉게 했다. 그래놓고서도 그를 덤덤하게 바라다볼 뿐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산해진미가 차려진 소진의 상 근처에는 접근도 못 하게 하면서 장의의 앞으로는 종들이나 먹는 보잘것 없는 음식상이 내려졌다. 구박은 그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다. 소진은 장의를 내려다보며 빈정거렸다. "내가 보기에 자네는 전날 재주깨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비렁뱅이 신세인 걸 보니 자네 재주란 게 허망하기 이를 데가 없었던 게지.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인데. 내가 인군께 말씀드려 자네에게 한 자리쯤 벼슬을 부탁해 볼 수도 있겠지만, 글쎄, 공연히 내가 자네를 추천했다가 나마저 곤욕을 겪으면 어떻게 되나." 친구의 모욕에 장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고래고래 욕설을 퍼부은 다음 밖으로 나가 버렸다. "요놈, 어디 두고 보자! 옛 친구라 믿고 찾아왔더니 나를 그토록 욕보여? 무어, 네놈이 합종이라? 나는 진나라로 들어가 연횡으로 네놈의 합종을 깨고 말걸!" 장의는 씩씩거리며 진나라로 향했다. 소진은 자기의 심복을 급히 불렀다. "장의는 천하의 어진 선비다. 나는 그의 발꿈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운이 좋아 내가 먼저 등용되었을 뿐이지. 그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더냐?" "진나라로 향하신 것 같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너는 그의 뒤를 따라가거라. 설사 그가 진나라로 가더라도 재력이 없어 등용되기 힘들 것이다. 금전과 폐백(幣帛)과 거마를 마련해 줄 터이니 그가 분발하여 진나라에 성공하도록 도와 주어라." "그분이 작은 이익에 만족하여 대성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셨습니까?" "그러하다. 그래서 그를 모욕 준 것이다. 다만 그가 성공할 때까지는 나의 도움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한 가지 의문은 그분이 진나라의 이익을 위하더라도 조나라에 피해는 없을 것인지요?" "진나라에 이익을 주어야 조나라에 큰 이익이 있다."
소진의 심복 수하는 모른 척 장의를 뒤쫓아 갔다. 우연인 것처럼 같은 숙사에 동숙하면서 장의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수하는 점차로 장의가 쓰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제공했다. 거마와 금전을 무한정으로 대주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소!" 그렇게 되어 장의는 진의 혜왕을 알현할 수 있었다. 그의 유세는 성공하여 드디어 진나라의 객경(客卿)이 되었다. 천하의 제후들을 정벌할 계략이 먹혀 들었던 것이다. "저는 이제 물러갈까 합니다." 소진의 수하가 이별할 뜻을 내비치자 장의는 깜짝 놀랐다. "무슨 말씀이오! 나 이제사 출세하여 비로소 당신한테 은혜를 갚으려 하고 있는데." "그 은혜는 소진 어른한테나 갚으싶시오." "무어라고?" "저는 선생의 인물됨을 전연 모릅니다. 선생을 아시는 분은 소군(蘇君:주인인 蘇泰이라는 뜻)밖에 없습니다. 선생을 격분시켜 진으로 가서 등용되도록 도와 주신 분은 제가 아니라 바로 소진 어른이십니다." "아, 그게 진정이오?" "그렇습니다. 선생께선 이미 등용되셨으니 명령대로 저는 지금 돌아가야 합니다." "이런, 제기랄! 소진의 술수 속에 놀아나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니, 역시 나는 소진보다 못한가 보오. 돌아가시거든 소군한테 이 말을 꼭 전해 주오. '내가 진의 재상으로 있는 한 조는 치지 않겠다'고. 뿐만 아니라 소군이 살아 계신데 내가 감히 무슨 말을 하며 무슨 일을 벌이겠소. 나는 소군의 속마음을 짐작하오. 진나라가 조나라를 쳐서 합종의 맹약이 그로 인해 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을 거요."
그 후 장의는 진나라 재상이 되었다. 우선 문서를 꾸며 초나라 재상에게 보냈다.
- 내가 처음 너와 술을 마셨을 때 너는 나를 구슬을 훔친 범인으로 몰았다. 그리고 수없이 나를 때렸다. 지금도 맹세하노니 나는 너의 구슬 따위는 훔치지 않았다. 이제 그 빚을 갚고자 한다. 너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네 나라를 잘 지켜라. 그러나 나는 너의 나라를 훔치고 말 것이다.
즈음에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저(菹: 邑, 四川省)와 촉(蜀, 四川省)이 싸움을 시작했는데 두 나라의 사자가 각각 진나라로 와서 구원의 요청을 한 것이다. "때는 바로 지금이다. 촉을 먹어 버린다!" 대신들이 모두 말렸다. "아니 됩니다. 촉은 길이 험하고 좁아 출동이 불가능합니다. 촉을 치는 사이에 한나라가 엿보면 어쩝니까?" "그렇다면 한나라부터 격멸하고 볼 일이 아니겠소." "지레 한나라를 겁낼 건 없습니다. 촉을 쓸어 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사마착(司馬錯)이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니까......." "아닙니다. 촉을 놓아두고 한나라부터 응징하십시오." 장의가 완강하게 나섰다. "그건 무엇 때문에 그렇소?" "멀리 보십시오, 대왕. 우리는 위나라와 초나라와도 가깝게 지냅니다. 우리 군대는 삼천(三川: 韓의 땅. 河南省)으로 내려보내 야곡의 입구를 막고 둔류(屯留: 山西省 長子縣 북쪽)의 길목을 지킵니다. 위를 시켜 남양(南陽)과의 연락을 끊게 하고 초에게는 남정(南鄭: 陝西省 萃縣 북쪽)에 입하게 하는 한편 진나라는 신성(新城: 河南省 密縣의 남동)과 의양(宜陽)을 치고 동.서 양주(兩周)의 국도에 포진하고 주왕의 죄를 꾸짖으며 초.위의 땅을 침입할 태세를 갖추는 척하면 주나라는 구원받지 못할 것을 깨달을 겁니다." "어디 주나라가 구정보기(九鼎寶器: 우왕(禹王) 때 구주(九州)의 金을 거둬 만든 솥. 두 개의 손잡이와 세 개의 발이 달렸음. 하.은.주 3대를 걸쳐 내려오는 천자(天子) 상징의 보물)라도 내놓고 굴복할 것 같소?" "그렇게 하도록 해야지요. 구정의 권위를 근거로 전국의 지도와 호적을 검토해 천자를 끼고 천하에 호령하면 듣지 않을 제후들이 없겠지요." "그렇게만 된다면 왕업(王業)을 이루는 격이겠지만......." "물론이지요. 차제에 서쪽에 치우친 오랑캐 나라 촉이나 치시려하니 저로서는 우려될 따름입니다. 촉 땅을 얻어 봐야 이익될 것도 없으며 백성과 병사만 지치게 할 뿐 명예로울 것도 없습니다. 명예를 다투는 것은 조정에서 하고 이익을 다투는 일은 장터에서 한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삼천과 주실(周室)은 실로 천하의 시장이며 조정입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여기서 다투지 않고 엉뚱하게도 오랑캐 땅이나 다투려 하시니 그것은 왕자의 대업과는 거리가 멀다고 밖에는 아뢸 길이 없습니다." 사마착도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나라를 부유하게 하려면 그 땅을 넓히기에 힘쓰고, 병사를 강하게 하려면 그 백성을 부유하게 하기에 힘쓰고, 왕이 되려고 하면 그 덕을 넓히기에 힘쓴다고 들었습니다. 이 세 가지 조건만 구비되면 왕업은 스스로 이뤄지게 마련입니다. 지금 대왕의 땅은 좁고 백성은 가난합니다." "사실은 그렇소." "그러니 우선 손쉬운 일부터 진행하십시요. 무릇 촉은 서쪽에 치우친 오랑캐 우두머리 나라입니다. 거기서 그들은 하(夏)의 걸왕이나 은(殷)의 주왕같은 난행을 자행하고 있으니 진나라가 이를 친다 해도 승냥이나 이리를 양떼들로부터 내치는 것처럼 명분이 당당합니다. 땅을 얻으니 국토는 넓어지며 재물을 얻으니 백성은 부유해 무기를 수선할 수 있습니다." "우리 병사가 크게 다치지 않고도 항복만 시킬 수가 있다면 한번 해 볼만 하겠소." "당연합니다. 더구나 촉을 정복해도 천하가 우리더러 포악하다고 비난하지 않을 것이며 오랑캐의 이익을 모두 우리가 대신 차지하더라도 우리가 탐욕스럽다고 비난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명실공히 일거에 얻는 것이 되지요." "난폭한 행동을 못하도록 금지시켰다는 명분도 얻게 될 것 같구려."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한나라를 쳐서 천자를 위협하면 악명만 남게 되며 이익이 된다고도 할 수 없고 불의한 짓이나 했다는 비방만 받게 됩니다." "천하가 하려 하지 않는 짓을 한다는 건 위험할 것 같소." "그렇지요. 주나라는 천하의 종실(宗室)입니다. 한나라는 주나라의 여국(與國)입니다. 주나라가 구정을 잃을 것을 알고 한나라가 삼천(三川)을 빼앗길 줄 안다면 양국은 힘과 계략을 합하고 제.조를 통해 초.위에 구원을 요청할 것입니다. 만약 주나라가 구정을 초에게 주고 땅을 위나라에 양도할 즈음에 가서는 대왕께서도 이를 제지할 방도가 없게 됩니다. 이것이 촉을 치느니만 못한다는 이유가 됩니다." "그대의 말이 옳소." 혜왕은 사마착의 의견을 받아들이며 장의의 계략을 사전에 봉쇄해 버렸다. 과연 진나라는 그대로 군사를 일으켜 시월에 촉을 쳐 없앴다. 촉의 평정이 끝나자 촉주(蜀主)의 칭호를 낮추어 후(侯)라 했다. 또한 진장(陳莊)을 촉의 재상으로 부임시켰다. 그로 인해 진나라는 더욱 강대해지고 더욱 부유해졌으며 더더욱 제후들을 깔보게 되었다.
진의 혜왕 10년이 되어 장의의 계략도 중용되었다. 장의는 공자 화(華)와 함께 포양(蒲陽: 魏의 읍, 山西省)을 포위해 함락시킨 것이다. "하지만 실속이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 장의가 혜왕에게 상주(上奏)했다. "과인의 생각도 그렇소." "포양을 다시 위나라에 돌려 주는 게 어떻습니까?" "무어요?" "공자 요(繇)를 위나라에 인질로 보내지요." "게다가 인질까지!" "그 대신 위왕을 설득시켜 보겠습니다." "어떻게 말이오?" 장의는 요를 인질로 위왕에게 맡기며 말했다. "진나라 대왕께선 이토록 위에 대한 대접이 두텁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위나라에서도 적절한 답례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인질에다 포양까지 돌려드렸는데 말입니다." "진에서는 무엇을 원하는 것 같소?" "상군(上郡: 陝西省)과 소량(小梁: 陝西省 韓城縣) 땅을 원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바쳐 은혜에 보답하지요." 혜왕은 몹시 기분이 흡족했다. 장의를 칭찬하면서 그를 재상에 임명했다. 그리고 소량을 하양(夏陽)으로 개칭했다.
장의가 재상이 된 지 4년이 되었다. "대왕, 이제는 왕위에 오르시어 천하에 위엄을 드높이시지요[진(秦)의 효공(孝公)에 이르기까지 공(公)으로 불리다가 혜문군(惠文君)도 그제서야 왕(王)이라 호칭됐다]." "그래도 괜찮겠소?" "지당하신 호칭입니다."
1년이 또 지나서 장의는 진의 장군이 되었다. 그런 후 섬(陝: 魏의 땅, 河南省)을 탈취하고 상군에다 요새를 구축했다. 그로부터 2년 뒤에는 사신이 되어 제.초의 재상들과 설상(齧桑: 江蘇省 沛縣 남서)에서 회합했다. 다시 동쪽으로 돌아온 장의는 진의 재상자리를 내놓고 위나라 재상이 되었는데, 어쨌든 그는 진나라의 국익을 위한 계략을 많이 썼다. 우선 그는 위왕에게 진을 섬기라고 건의했다. 게다가 다른 제후에게도 그런 관계를 본받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위왕은 장의의 권고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사정을 알아차린 진왕은 몹시 분개하여 위의 곡옥(曲沃: 河南省 陝縣 남서)과 평주(平周: 山西省 介休縣 남동)을 탈취해 버렸다.
-그대가 진나라를 위해 노심초사하는 사정을 여기서도 잘 알고 있소. 내놓고 진을 도울 수는 없겠지만 그대를 후하게 대접할 테니 은밀히 진을 위해 계속 애써 주오.
진왕은 장의에게 밀서를 보냈다. 장의가 위(魏)에 머무른 지 4년이었다. 위왕이 한사코 장의의 계략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장의 역시 진왕에게 내놓을 만한 공적도 쌓지 못했다. 그 때 위의 양왕(襄王)이 죽고 애왕(哀王)이 섰다[B.C.318]. 그래서 장의는 애왕에게 진을 섬기라고 권했다. 그러나 애왕 역시 거절했다.
-위왕은 도무지 제 말을 듣지 않습니다. 나름의 계략을 가지고 있으니 위나라를 슬쩍 때려 주십시오. 그리고 제나라를 충동질해 위를 치게 하십시오. 관택(觀澤: 河南省 淸豊縣) 땅을 치도록 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그 동안 진은 한나라를 치십시오. 틀림없이 대승할 것입니다. 진이 한을 깨뜨려야 여기서 위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진왕에게 밀서를 보낸 장의는 잠자코 있었다. 과연 진은 군대를 위로 보내 한바탕 강타했다. 연이어 제군도 관택에서 위나라에 큰 타격을 주었다. 진에서는 역시 장의의 계략대로 한나라로 쳐들어갔다. 진군은 한의 장군 신차(申差)의 군대를 깨면서 수급을 8만을 베니 천하 제후들이 모두 떨었다. 장의는 때를 놓치지 않고 다시 위왕에게 말했다. "위의 국토는 사방 1천 리가 못 되며 병졸은 30만이 고작입니다. 사방의 지세 역시 높은 산 큰 강도 막아 주는 것 없이 평평해 제후들은 사방에서 마음대로 쳐들어올 수 있습니다. 때문에 정(鄭: 이 무렵 韓에 속함)에서 양(梁: 魏의 國都. 河南省)까지는 기껏해야 2벽여 리라 수레가 달리고 사람이 뛰어도 금세 도착하는 거리입니다. 더구나 양(梁: 魏를 말함)의 남쪽은 초와 접경하고 서쪽은 한과 접했으며 북쪽은 조가 국경을 접하고 동쪽에는 제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위나라는 천하 제후들의 싸움마당입니다. 만일 위가 사방의 요새를 지키려면 10만의 병력이 필요하지요." "그 점이 문제인 것 같소." "남쪽으로 초와 제휴하면 제가 그 동쪽을 치고 제와 제휴하면 조가 그 북쪽을 칩니다. 한과 합세하지 않으면 한이 그 서쪽을 치고 초와 친하지 않으면 초가 그 남쪽을 칩니다. 이른바 사분오열(四分五裂) 형세에 처한 땅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나 합종의 맹약은 항차 국가를 평온하게 하고 군주를 존엄하게 하고 병사를 강하게 하기 위하여 서로 의형제가 되기로 환수(환水) 가에서 백마를 죽여 결속된 것이 아니겠소." "부모를 같이하는 친형제끼리도 금전이나 재산 때문에 크게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아무리 맹세하였다고 하나 합종의 맹약국인들 배신하지 말라는 법이 있겠습니까. 그까짓 사위(詐僞) 반목을 일삼는 소진 따위의 권모를 믿으신다는 건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위입니다." "그렇지만 합종의 맹약은 여전히 잘 지켜지고 있소." "합종의 맹약국이 아닌 진의 침입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 자가 어디로 침범한단 말이오?" "하외(河外: 황하(黃河) 이북 곡옥(曲沃).평주(平周)를 치고 권(卷).연(衍).연(燕)을 삽시에 말아먹고 산조(酸棗: 모두 河南省) 같은 곳에 웅거해 위(衛)를 위협하면서 양진(陽晋: 山東省 曹縣 북쪽)을 취할 게 뻔하지 않습니까." "그럴 경우......." "그까짓 합종의 길은 단박에 끊어집니다. 이것 보십시오. 그럴 경우 조는 남으로 내려와 위를 도울 수 없으며 조가 남하하지 못하면 위도 북상하지 못합니다." "위와 조의 연락 두절은 곧 합종의 단절이란 뜻이 아니오?" "그러합니다. 진이 한을 꺾고 위를 친다면 한은 진을 두려워해 복속할 것이며 진.한이 하나가 되면 위의 멸망은 단숨에 실현됩니다. 이것이 대왕을 위하여 신이 근심하는 바입니다." "그렇다면 미리 어떤 계략을 쓰는 게 좋겠소." "누차 말씀드렸지만 진을 섬기는 게 제일입니다. 그러면 초.한은 감히 위에 손대지 못하고 초.한의 근심이 없으니 대왕께서는 베개를 높이 하여 안면할 수 있고 국가에도 근심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진이 약화시키려는 나라는 초나라밖에 없으며 초를 약화시키는 데는 위나라밖에 없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초나라가 비록 부유하고 강대하다는 평판은 있으나 내용은 텅 비어 있습니다. 병사가 많다 하나 쉽게 도망치며 경솔하게 달아나고 지킴에도 끈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위의 전군을 투입해 남으로 초를 쳐 보십시오. 승리는 위나라의 것입니다." "초를 친다?" "초의 땅을 갈라 위의 국토를 보태며 또 초의 땅을 갈라 진에게도 바치면 그 화를 진나라에 전가시키는 꼴이 되어 위나라는 더욱 안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쉽게 결심이 서지 않는구려." "그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발상이십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진이 당장 강군을 몰아 위로 쳐 내려올 것인데 그 땐 어쩌시렵니까? 나중에 진을 섬기려 해도 이미 때가 늦습니다." "합종론자들의 호언장담이 하도 드세어서......." "그 자들, 제후 한 사람만 설득해도 후(侯)에 봉해지는데 어찌 천하의 유세객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뜨고 이까지 갈면서 합종의 이로움을 왜 역설하지 않겠습니까. 인군들은 그 자들의 변설에 현혹되어 현명한 자로 여기게 되니, 대왕 역시 그러할까 싶어 신은 몹시 걱정스럽습니다. 이는 마치, 가벼운 깃털도 쌓이면 배를 가라앉게 하고 가벼운 사람이라도 모아 태우면 수레의 축을 부러뜨리며, 여러 사람의 입은 금도 녹이며 비난이 쌓이면 뼈도 녹인다는 바와 같습니다. 대왕인들 어찌 합종론자들의 설득에 현혹되지 않았겠습니까." "으음......." 위왕은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장의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자, 이제는 대왕께서 결정하실 일만 남았습니다. 저는 잠시 자유를 얻어 위나라를 떠나고자 합니다." "무어요?" "말리지 마십시오. 대왕께서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합종을 깨부수는 신념입니다." "좋소. 나라를 들어 그대의 계략을 따르기로 하겠소. 진나라로 그대를 보낼 터이니 진왕께 화목할 것을 요청해 주겠소?" 위가 합종의 맹약을 배반케 하는 공로를 세운 장의는 진나라로 돌아와 다시 재상이 되었다. 3년이 지나서 위가 진을 배반하고 합종에 다시 가담했는데 진이 위나라의 곡옥(曲沃)을 새로 쳐서 빼앗자 놀란 위가 또다시 진을 섬기게 되고 말았다.
진이 제나라를 치려고 했다. 놀란 제가 초와 합종했다. 부득이 장의가 초나라로 갔다. 초의 회왕(懷王: B.C.328-299 在位)이 있었다. 회왕은 장의가 온다는 말을 듣고 상등 숙소를 비워 놓고 기다렸다. 장의가 도착했을 때 초왕은 그를 숙소로 안내하며 물었다. "이토록 누추하고 외진 나라로 선생께서는 무슨 가르침을 주시려고 몸소 오셨소." "이익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진정으로 초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나라를 들어 그대의 말을 좇겠소." "대왕께서 진심으로 제 말을 들어 주시려면 관문을 닫아걸고 제나라와의 합종 맹약을 끊어 주십시오." "예에?"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상.오(商.於: 河南省 內鄕縣 일대)의 땅 6백 리를 초에 바치고 진의 공주를 대왕의 기추지첩(箕추之妾: 키질이나 비질을 하는 側室, 謙辭)으로 삼도록 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진과 초 양국간에는 서로 며느리를 맞아오고 딸을 시집 보내는 장구한 형제의 나라가 됩니다[<戰國策>의 <秦策>에는 '북으로 제(齊)를 약화시키고 서로는 진(秦)에 이를 주고 또 商.於 땅을 사유하여 이(利)를 얻습니다'라고 되어 있어 이것이 타당한 듯하며 <史記>에는 지나치게 생략된 감이 있다]. 이것은 북으로 제를 약화시키고 서쪽으로는 진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 이보다 편리한 계략은 없습니다." 초왕은 몹시 기뻐하며 장의의 계략을 취하려고 했다. "아니 됩니다! 그것은 슬픈 일이올시다." 뭇신하들도 경하해 마지 않았으나 그 순간 진진(陳軫)만은 완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웬 일이오. 과인은 군사를 일으키지도 않고 6백 리 땅을 쉽게 얻게 되었는데 그대는 축하 대신 슬퍼하다니!" "신이 보기에는 전연 그렇게 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상.오의 땅을 얻기는커녕 제나라와 진나라는 결합까지 할 것입니다." "무슨 근거로?" "진이 초를 중하게 여기는 까닭은 제와 친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관문을 닫고 제와 합종의 약속을 끊으면 초나라는 고립됩니다. 진이 고립된 초나라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6백 리나 되는 상.오의 땅을 그냥 주겠습니까. 두고 보십시오. 장의가 진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대왕과의 약속을 어기고 말 것입니다. 더구나 북으로 제나라와의 교제를 끊게 되어 진나라와의 사이에 우환이 생겨도 초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이 됩니다. 더구나 진과 제 두 나라가 합류해 초로 쳐들어올 조짐까지 보입니다." "으음...... 최악의 경우 그럴 수도 있겠구려. 그렇다면 이런 처지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은가?" "최선의 방법은 제나라와 은밀히 내통은 하되 짐짓 절교한 것처럼 보이게 하십시오. 그리고 장의한테 사람을 딸려 보내십시오. 적어도 우리에게 땅을 내 주면 그 때 제나라와 절교해도 늦지 않습니다." "만일 땅을 내 주지 않으면?" "우리가 제나라와 합종의 맹약을 깨지 않은 상태이니 후환은 없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모략의 장점이라 하지요." 초왕은 그래도 장의의 약속에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대는 입 다물고 기다려나 보오. 과인이 땅을 차지하는 방법을 구경이나 하면서 말이오." 초왕은 장의에게 재상의 인수와 함께 후한 선물까지 주어 보냈다. 그러고는 관문을 닫아걸고 제나라와는 합종의 맹약을 끊었다. 물론 장군 한 사람을 장의에게 딸려 보냈다. 드디어 장의가 진나라에 도착했다. 그런데 수레에 오르다가 수(綏: 수레로 오를 때 잡는 끈)를 잘못 잡는 척하며 수레에서 떨어졌다. 그것을 빌미로 장의는 석 달씩이나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그런 소식을 들은 초왕은 초조했다. "장의는 과인이 제나라와 절교하는 방법을 두고 아직도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 용사 하나를 제나라로 소문나게 보냈다. 제나라와는 단교 상태였으므로 송나라로 가서 통행증을 빌려 준 후 북으로 가게 했다. 용사는 초가 천하에 제나라와의 단교가 확실하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 제왕을 크게 꾸짖었다. 제왕은 크게 노했다. "이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어디 두고 보자!" 제는 초나라와의 맹약 부절(符節)을 꺾고 진에 굴복하고 말았다. 진이 제와의 국교가 이루어지자 장의는 그재서야 털고 일어나 초의 장수를 만났다. "면목 없소이다. 나한테 6리(里)의 봉읍(俸邑)이 있으니 그것만이라도 가지고 가십시오. 진의 대왕께서는 듣지를 않습니다." "무슨 소리요. 나는 초왕한테서 상.오의 땅 6백 리를 받아오라는 명령을 받고 왔지 6리의 땅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소." "사정이 여의치 못한 걸 어쩝니까." 초의 사자가 돌아가 초왕에게 보고하자 초왕은 크게 노했다. "좋다. 진나라를 쑥밭으로 만들겠다!" 이 때 진진이 다시 나섰다. "이제는 진진이 입을 열어도 되겠습니까. 지금은 진을 치기보다 땅을 갈라 주는 게 유리합니다." "무슨 소리요?" "도리어 땅을 갈라 진에게 뇌물을 주고 그 대신 진의 병력과 함께 제를 치십시오. 우리가 땅을 진나라에 주고 뇌물로 바친 땅을 제에서 보상받게 되는 셈이니 좋지 않습니까. 그래야 대왕의 나라가 존속됩니다." "그대는 과인을 화나게 마오. 나는 진을 응징하겠소!" 초왕은 듣지 않고 군사를 내었다. 장군 굴개(屈개)를 시켜 진으로 쳐들어가게 했다. 그런데 진이 제나라와 함께 초군에 맞서 왔다. 뜻밖의 일이었다. 그로 인해 초나라는 장군 굴개가 전사하고 8만의 대병력이 손실을 입었으며 단양(丹陽)과 한중(漢中: 陝西省 남부에서 湖北省 북서부에 이르는 楚 땅)까지 빼앗겼다. "오냐, 이번에는 아주 결판을 내겠다!" 초왕은 지지 않고 이번에는 더욱 많은 병력을 내어 진의 남전(藍田: 陝西省 藍田縣 서쪽)을 습격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초나라는 대패했다. 할 수 없이 두 개의 성을 진나라에 넘겨 주고 가까스로 강화를 맺었다. 진왕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초의 검중(黔中) 땅이 탐이나 초왕에게 교환조건을 내걸었다.
-무관 밖 상.오의 땅을 드릴 터이니 검중을 우리에게 주시오.
초왕은 장의에 대한 분이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었다.
-땅의 교환은 원치 않고, 장의를 인도해 주신다면 검중 땅은 그냥 헌상하겠소이다.
"어허, 그 참......." 장의를 인도해 주고 검중 땅을 얻고 싶어했으나 차마 그 뜻을 입밖으로는 내지 못하고 있었다. 장의는 진왕의 뜻을 읽었다. "가겠습니다." "무어요? 초왕은 지금 그대가 상.오의 땅을 가지고 속인 것을 두고 화풀이하자는 셈인 것 같은데 초로 가겠다는 거요?" "설마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아니오. 반드시 주살될 거요." "진은 강국이고 초는 약합니다. 신은 근상(근尙)과 친구이며 근상은 또 초왕의 부인 정수(鄭袖)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초왕 역시 정수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 줍니다. 게다가 신은 도 대왕의 부절을 들고 초로 가는 사신입니다. 어떻게 함부로 대하기야 하겠습니까. 설사 주살되더라도 검중의 땅만 얻게 된다면 신은 진나라를 위하여 바라는 바입니다." 장의는 한사코 초나라로 갔다. 아니나다를까 초왕은 장의가 도착하자마자 잡아죽이려 했다. 한데 근상이 알고 재빨리 정수에게 접근했다. "큰일났습니다. 대왕의 총애가 식어 간다는 사실을 당신은 모르고 계셨습니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럴 만한 근거라도 있는 얘깁니까?" "장의가 지금 초나라에 잡혀 있습니다.[<史記>에는 <不欲出之>로 되어 있으나 <戰國策>의 <楚策>에는 <欲出之>로 되어 <不>자가 없다. 이 때 장의가 초에 잡혀 있었으므로 <不>자는 <必>자의 잘못인 듯하다]. 진왕은 장의를 몹시 사랑하니 반드시 그를 구출해 내려고 한답니다." "장의의 구원과 저의 총애와 무슨 관계라도 있나요?" "가만히 알아보니 진에서는 지금 초나라에 상용(上庸: 秦 땅. 湖北省 竹山縣 일대)의 땅 6현과 노래 잘하는 절세의 미녀들을 뇌물로 보내온답니다. 초의 대왕께서는 땅을 몹시 중요시하고 또 진나라를 존중하고 있으니 진에서 보낸 미녀 역시 우대할 게 뻔하지 않습니까. 그 땐 부인께서 대왕께로부터 배척받기 십상이지요."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하지요?" "여부 있겠습니까. 그런 음모가 진척되기 전에 어서 장의를 석방시켜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정수는 밤낮으로 초왕에게 졸라댔다. "신하된 자는 누구든지 자기 군주를 위해 충성하는 것입니다. 검중의 토지가 아직 진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진에서 장의를 보낸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진이 대왕을 지극히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아직 진에 답례도 하기 전에 장의를 죽여 버리면 어떻게 되지요? 진이 격노하여 초를 쳐올 게 빤하지 않습니까. 소첩은 싫습니다. 자식들을 데리고 강남(江南: 揚子江 남쪽)으로 옮겨가서 진나라에 짓밟히는 화나 모면하겠습니다." "그대의 생각이 옳소." 초왕은 후회하며 장의를 풀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더욱 두텁게 예우하였다. 석방된 장의가 아직 초나라를 떠나기 전이었는데 소진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이제야말로 스스로를 위하여 뜻을 펼 때이다!" 장의는 초왕에게로 달려갔다. "진의 국토는 천하의 절반이며 그 병력은 4개 국의 그것과 맞먹습니다.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이고 황하가 띠처럼 둘러쳐져 있어 사방이 가히 천연의 요새입니다. 호랑이처럼 용감한 군사 1백여 만 명, 전차 1천 대, 군마 1만 필, 양곡의 축적 또한 산봉우리만 합니다. 법령은 분명하고 사졸은 안심하고 전쟁터에 나가 죽으며, 인군은 현명하고 준엄하며 장군은 지략 있고 무용(武勇)합니다. 그러니 병사를 출동시키지 않고도 험준한 상산(常山)을 석권하고 천하의 척량(脊梁: 常山이 中原의 북쪽에 있으므로 사람의 등뼈에 비유)을 꺾을 것입니다." "진나라는 과연 그렇소." "이런 형세이니 그 어떤 열국도 빨리 항복하지 않으면 멸망합니다. 더구나 합종을 맹약하는 자는 맹호를 공격하는 양의 무리나 다를 바 없지요. 양이 호랑이에 대적할 수 없다는 건 대왕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알고 있소." "그렇지만 대왕께선 맹호 대신 양들과 손을 잡고 계십니다." "또 다시 합종의 얘기겠구려." "차제에 잘 생각해 보십시오. 천하의 두 강국이라면 어느 어느 나라이겠습니까." "그야 진나라와 초나라요." "그렇습니다. 그러하지 양국이 서로 다투면 둘 다 살아 남을 수가 없지요. 차라리 맹호인 진과 손을 잡으십시오." "진나라와 손을 잡지 않으면 어떻게 되오?" "만일 진나라가 초를 공격할 요량이라면 의양(宜陽)을 공격하겠지요." "의양을?" "한의 중심부 통로가 차단되어 초는 연락이 끊어집니다. 더구나 진이 하동(河東: 黃河의 동쪽)으로 내려와 성고(成皐)를 빼앗으면 한은 꼼짝없이 진나라의 신하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위나라 역시 바람부는 대로 흔들리다가 진을 따르게 되겠지요.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진이 초의 서쪽을 치고 한.위가 초의 북쪽을 공격해 오면 어찌됩니까." "그것은 위험하오." "초나라의 사직조차 위태롭습니다." "그래도 초나라는 강국이오." "판단 착오라는 말씀을 드릴 참이었습니다. 저 합종의 맹약을 한 나라들은 어떤 나라입니까. 약소국가들 아닙니까. 그런데 강국인 초나라가 그들과 맹약한 이유는 무슨 이유지요?" "그야......." "도대체 합종의 약소국들은 걸핏하면 최강국을 공격합니다. 적의 역량도 헤아리지 않고 경솔한 싸움을 걸고 빈곤한 국력을 가지고도 군사를 자주 일으키니 멸망하기 꼭 알맞은 짓들이지요. '병력이 부치면 도전해선 안 되고 곡식이 부치면 지구전을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합종론자들은 헛된 말을 꾸며서 군주의 절조가 높다느니 추켜 세우며 합종의 해로운 점은 말하지 않고 이로운 점만 잔뜩 지껄였습니다." "어디 그 해로움을 좀 들어 봅시다." "진의 공격을 초가 어떻게 당하는가부터 말씀드리지요. 진이 영유하고 있는 서쪽의 파.촉에서 큰 배에 곡식을 싣고 민산을 출발하면 거리는 약 3천 리입니다. 배들은 두 척씩 나란히 이어 한 배에 병사 50명씩과 석 달치 식량을 실어 양자강을 흐르면 하루에 3백여 리를 가는 배라 초의 한관(한關: 湖北省 長陽縣 서쪽)에 이르려면 단 열흘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우마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3천 리를 단숨에 달려 한관을 습격하면 국경[<전국책>에는 竟陵으로 되어 있다] 이동의 성들은 꼼짝없이 묶일 것이며, 그렇게 되면 검중.무군(巫郡)은 벌써 대왕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을 것입니다. 진나라가 기갑병을 출동시켜 무관으로 나와 남향으로 친다면 초의 북방지역은 연락이 두절됩니다. 진과 싸워서 대개 3개월이면 초에는 위난이 닥쳐오게 되는데 초가 제후국들에 구원을 요청하여도 반 년 후에나 도착하게 됩니다. 대체로 약한 나라의 구원을 기대하고 강대한 진나라의 침략을 잊는다는 일은 현명한 군주로서는 취하실 계략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대의 위협은 가정(假定)일 뿐 사실이 아니잖소." "현실입니다. 대왕게서는 전날 오나라와 싸운 적이 있지요." "다섯 번 싸워 세 번 이겼소." "그러나 출전했던 병사들은 전멸했고 간신히 점령한 성읍을 지켜 내려다 백성들에게 큰 괴로움만 남겼습니다. 이름이 크면 위태롭기 쉽고 백성이 피폐해지면 윗사람을 원망한다고 들었습니다. 위태로워지기 쉬운 공(功)을 지키느라 강한 진나라의 비위를 거스르는 일처럼 또 위험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한데, 진나가 15년 동안이나 함곡관을 뛰쳐나와 제.조를 치지 않은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오?" "원대한 음모를 꿈꾸며 천하를 병합하려는 야심을 가졌기 때문이지요." "우선 천하인심에 영합하려는 속셈이오?" "전날 초나라가 여러 나라 문제에 얽혀 진나라와 싸운 적이 있지요." "우리가 패했소." "그 때 싸움의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작위를 가진 자로서 죽은 자가 70여 인이며, 결국 한중까지 빼앗기지 않았습니까. 대왕께선 다시 노하여 진의 남전을 덮쳤지만 또 졌습니다. 그런 다음 어떻게 되었습니까. 진나라나 초나라는 함께 피폐해졌으며 한나라와 위나라만 온전하게 후방을 제어하는 이득을 주었습니다." "진나라가 군대를 출동시켜 위(衛)의 양진(陽晋)을 공격할 것 같다는 소문이 있소." "그 땐 대왕도 출동하여 송(宋)을 치십시오." "송을?" "진이 양진을 치게 되면 천하 제후들의 가슴을 누르는 꼴이 됩니다. 그러니까 대왕께서는 쉽사리 송을 취할 수 있으며 송을 이끌고 동쪽으로 진격하면 사상(泗上: 泗水 근처)의 12제후(전국시대 宋.魯.주.거 등 12제후가 서수 유역에 웅기했음) 땅은 모두 대왕의 영토가 됩니다." "합종의 맹약군들이 가만 있겠소?" "원래 합종으로 제후들을 맹약시킨 자는 소진입니다." "그 자는 죽었다고 들었소." "신도 듣고 있습니다. 그가 무안군(武安君)으로 봉해져 연나라의 재상이 되자 남몰래 연왕과 짜고서 제를 깨뜨리고 그 국토를 잘라먹을 계책을 짰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것처럼 꾸며 제나라로 도망쳐 들어갔지요.제왕은 그를 받아들여 재상으로 삼았는데 2년이 지나서 그 일이 발각되었습니다. 제왕은 몹시 노해 소진의 시체를 시장에서 거열형에 처했습니다. 일개 사기꾼 소진이 천하를 경영해 제후를 억지로 합종하려 했으니 그게 쉽사리 이루어지겠습니까. 어쨌든 모든 초는 진나라와 국경을 접해 있습니다. 지형으로 보아서도 반목해야 할 나라가 아니라 화친해야 될 나라입니다." "과인이 지금 진과 화친하고자 하면 그대가 중간에서 어떤 역할을 해 주겠소?" "진의 태자를 오게 해서 볼모를 삼도록 하겠습니다. 동시에 초에서도 태자를 진에 볼모로 보내십시오. 뿐만 아니라 진의 왕녀를 대왕의 시첩이 되게 할 것이며 1만 호가 넘는 도읍을 받아 탕목(湯沐: 그 땅의 부세로 휴양 비용을 삼는 邑)의 읍으로 삼게 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진과 초가 장구하게 형제의 나라가 되어 끝내 서로 공격하는 일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초왕은 장의를 이미 얻은 데다 또 검중의 땅을 내어 주기도 아까웠으므로 장의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때 굴원(屈原)이 나섰다. "불가합니다. 대왕께선 전날에도 장의에게 속지 않았습니까. 신은 장의가 오자마자 장의를 삶아 죽일 것으로 알았습니다." "이해타산을 해 보니 장의를 죽이지 않는 게 오히려 이로울 것 같소." "좋습니다. 정히 죽이기가 싫거든 그의 사설(邪說)이나 듣지 마십시오." "어째서 장의의 충고가 간사한 말이겠소. 또 장의를 용서한 대신 검중을 보전했으니 우리에게 큰 이득 아니오. 더구나 한 번 한 약속을 뒤에 어긴다는 건 옳지 않소." 초왕은 끝내 장의를 용서하고 진나라와 화친했다.
장의는 초나라를 벗어나가자 그 길로 한나라로 향했다. 한왕을 만나자마자 장의는 또 설득하기 시작했다. "한나라 땅은 험악하여 백성들 대부분이 산지에 살며 생산하는 오옥은 콩 아니면 보리입니다. 고로 백성들은 콩밥과 콩잎으로 끓인 국을 먹습니다. 더구나 단 한 해라도 수확이 없으면 백성들은 금세 지게미와 쌀겨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게 됩니다. 국토는 사방 9백 리에 불과하며 2년을 지탱할 식량도 없습니다. 병졸 역시 다 해 봤자 30만 명에 불과하고 그 중에는 시도(음식을 만들거나 허드렛일 하는 잡역부)와 부양(負養: 公家에 짐져 나르는 일꾼)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변경지대의 정차(亭次: 驛마을)나 요새수비대를 제외하면 실제 병력은 20만 명에 지나지 못합니다." "사실 한나라는 그만 못하오." "그에 비해서 진나라를 보십시오. 갑병(甲兵) 1백여 만 명, 전차 1천 대, 군마 1만 필, 호랑이처럼 날랜 병사, 맨발에 투구도 쓰지 않고 적진으로 뛰어드는 용사, 화살에 턱이 관통되어도 갈래창을 휘두르며 분전하는용사들까지 그 호맹하기가 이를 데 없는 사졸이 부지기수입니다. 진나라의 말은 명마들이며 기막히게 말을 잘 타는 기병들이며 그들이 한 번 뛰어 3심(三尋: 1심은 7자)입니다. 산동(山東: 함곡관 이동, 秦을 제외한 6국을 가리킴)의 병사들은 투구와 갑옷을 걸치고 전투하지만 진의 전사들은 알몸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왼손으로 적의 수급을 쥐고 오른손으로 산 채로 잡은 포로를 겨드랑이에 낍니다. 진나라 군사와 산동의 군사를 비교해 보셨습니까. 그것은 마치 용사 맹분(孟賁: 齊나라의 이름난 力士)과 겁쟁이의 대결 같습니다. 그런 진나라가 그 무서운 힘으로 산동의 군사를 누르면 마치 오획(烏獲: 千鈞, 3천 근을 들었다는 秦나라 武王 때의 力士)이 어린아이 대하는 듯하는 꼴이 되겠지요. 가히 맹분과 오획 같은 전사를 풀어 복종치 않는 약소국을 치는 것은 마치 3천 근의 무게로 새알을 누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두려워 합종을 맹약하고 있는 게 아니겠소." "그것은 미약한 국력과 좁은 국토는 생각지 않고 합종론자들의 감언과 호사(好辭: 듣기 좋을 말)에 넘어갔기 때문이겠지요. '우리들의 계략을 채택하면 나라는 강해져 천하를 제패할 수 있다'고 기염을 토하지 않던가요. 장구한 이익을 돌보지 못하고 순간의 이익에 집착하는 설만 듣는 것은 현명한 군주가 하실 일이 아닙니다." "합종을 깨고 진을 섬기라는 말씀 같구려." "진을 섬기지 않을 경우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진나라는 군대를 내려우선 의양을 점령하고 한나라의 중심부를 차단합니다. 동으로 진격해 성고.형양(瑩陽: 韓의 邑. 河南省 成皐縣의 남서)을 공략하면 홍대(鴻臺: 河南省 洧川縣의 서쪽)의 별궁.상림(桑林)의 궁궐은 벌써 대왕의 소유로부터 떠나게 됩니다." "성고에의 통로를 막고 중심부를 차단하면 한나라는 두 조각이 나겠구려." "그것은 실마리이며 실상은 멸망입니다. 위험을 택하지 말고 먼저 진을 섬겨 평안하십시오. 대체로 화근을 만들어 놓고 복이 돌아오기를 바란다면 그 계략의 얄팍함 때문에 진나라의 깊은 원한을 사게 됩니다. 진을 거역하고 초를 따르면 멸망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진나라가 우리 한나라에 대해서 바라는 바는 뭐요?" "진나라가 원하는 것은 우선 초나라를 약화시키는 것이니 그 역할을 한나라가 해 달라는 것이지요." "무슨 얘기요?" "한나라가 초보다 강해서가 아니라 지세가 그렇다는 뜻입니다. 대왕께선 서면하여 진을 섬기고 초를 치십시오. 진왕이 기뻐할 것입니다. 초를 쳐 그 국토를 얻고 화는 진으로 돌려버린다면 그보다 더 좋은 계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은 옳은 계책인 것 같소." 한왕이 장의의 계략을 받아들이자 장의는 곧 진으로 귀국했다. 진의 혜왕은 몹시 기뻐하며 다섯 개의 읍을 봉해 장의를 무신군(武信君)이라 불렀다. 장의는 진왕과 계략을 상의한 뒤 이번에는 동쪽의 제나라로 갔다. 장의는 제의 민왕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실상 천하의 강국으로 제나라 이상 가는 나라는 없습니다. 제의 대신들이나 왕족들은 은성(殷盛).중다(衆多).부유.안락합니다. 그런데도 대왕을 위해 계략을 세우는 신하들은 한때의 이익만 말씀드렸지 백세의 이익에 대해서는 도무지 돌본 게 없습니다." "백세의 이익이라......?" "합종론자들은 말하겠지요. '제나라 서쪽에는 강한 조나라가 있고 남쪽에는 한.위가 있고, 제는 바다를 등진 데다 땅은 넓고 백성은 많으며 군사는 용맹하나 설사 1백 개의 진나라가 있다한들 제나라는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라고." "또한 그렇게 믿고 있소." "그러시다면 그 실속은 전연 생각해 보시지 않으셨군요. 하기야 합종론자들이 만든 붕당들이니 합종론을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았겠지요. 전날 제나라가 노나라와 싸워 세 번 다 패한 적이 있었지요." "그렇소." "그런데 세 번 패한 제나라는 건재하고 세 번 모두 승리한 노나라는 왜 망했지요. 전승의 명예를 얻어 놓고도 망국의 실속밖에 남지 않은 건 왜일까요." "그 이유를 모르겠소." "제나라는 크고 노나라는 작았기 때문입니다." "?" "조나라는 진나라오 황하와 장수(장水) 가에서 싸워 두 번 다 이겼습니다. 또 조는 파오(番吾: 趙邑, 河北省 平山縣 남쪽)에서 진과 두 번 싸워 모두 이겼습니다. 네 번 모두 이긴 조나라가 그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전사자가 수십 만이나 되어 국도 한단의 명맥조차 간신히 유지할 정도로 국가는 파괴되었습니다. 그 이유 역시 진나라는 크고 조나라는 작았기 대문입니다." "......." "지금 강국들인 진과 초끼리는 공주를 시집 보내고 부인을 얻어오는 등 절친한 형제의 나라가 되었으며, 한나라는 의양을 바치고 위나라는 황하 서쪽을 내놓고 조나라는 면지(면池: 河南省 宣陽縣 서쪽)에 입조(入朝)하고 하간(河間: 黃河와 장水 사이의 땅, 河北.河南에 걸쳐 있다)을 베어 주어 진을 섬기고 있습니다." "과인이 진을 섬기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 같소." "한.위를 시켜 제의 남부를 공략할 것이며 조의 병사를 총동원해 청하(淸河)를 건너 박관(博關)을 지향해 쳐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임치(臨치)와 즉묵(卽墨: 齊邑, 山東省 平度縣 남동)은 대왕의 소유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일단 공격을 받으면 뒤늦게 진을 섬기려 해도 늦습니다. 숙고하시기 바랍니다." 제왕은 장고한 후 홀연히 머리를 들었다. "동해 먼 바닷가로 치우쳐 있는 나라라 국가의 장구한 이익을 들어 본 적도 없으며 그와 같은 위태로움도 깨닫고 있지 못했소. 이제 선생의 계략을 따르리다."
장의는 제나라를 떠나서 이번에는 서쪽에 있는 조나라로 서둘러 떠났다. 조왕을 만난 장의는 다시 설득하기 시작했다. "폐읍(폐邑: 자기 나라를 겸손하게 이르는 말)의 진왕께선 저를 시켜 우계(愚計)를 대왕께 드리라 합디다. 대왕께선 천하 제후를 거두어 진을 물리친 이후 진의 병사는 감히 15년 동안이나 함곡관을 넘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왕의 위령(威令)이 산동을 떨치고 있기 때문이지요. 진은 두려워서 엎드려 갑옷을 수선하고 병기를 갈고 차마를 정비하고 기사(騎射)를 익히고 경작에 힘쓰고 곡식을 쌓아 국내 수비를 근심하면서 감히 움직일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그건 진나라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꾸짖고 있다는 뜻이오?"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조나라를 두려워하기 때문이지요. 어쨌든 진왕께선 내치(內治)에 힘쓴 나머지 파.촉을 뺏고 한중을 병합하고 양주(兩周)와 아울러 구정(九鼎)을 옮기고[兩周와 아울러 구정을 옮긴 사실은 없다. 진이 양주를 병합한 것은 혜왕 때가 아니니 결국 조왕을 위협하기 위한 과장된 말이다] 백마(白馬: 河南省)의 나루터를 지키게 됐습니다." "그것은 내치가 아니잖소." "나름대로 진나라가 비록 먼 벽지의 나라이지만 내심 분노는 느끼고 있었지요." "그래서 어떻게 할 참이오?" "진나라는 비록 지치고 초라한 군대나마 가지고 일전을 불사하기 위하여 면지(면池)에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무어요?" "대왕께서 원하기만 하신다면 황하를 건너고 장수를 넘어 갑자일(甲子日: 周와 武王이 殷의 紂王을 정벌한 날)에 한단성 밑에서 대왕의 군대와 만났으면 합니다." "그건 마치 진나라를 주의 무왕에 비기고 우리 조를 은의 주왕에 비기면서 실력 대결을 선언하는 것 같구려." "저는 다만 진왕의 의도를 말씀드린 것뿐이옵니다." "음......!" "대체로 대왕께서 합종을 하게 된 소이는 소진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소진의 합종책은 옳았소." "그렇지만 소진이 제후들을 현혹시켜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 하여 제나라를 배반하려다가 결국은 들통나 시장 바닥에서 거열형에 처해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야......." "무릇 천하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지금 초나라는 진나라와 형제의 나라가 되고 한과 위는 진의 동쪽 울타리 역할을 하는 신하의 나라가 되었으며 제나라는 물고기와 소금이 나는 땅을 바쳤습니다. 바로 이 점은 조나라의 오른팔을 자른 것과 같은 형국이지요. 과연 오른쪽 팔을 잘린 채로 남과 싸우면 자기 원군도 없이 고군분투하는 일이 위태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건......!" "지금 진나라에서는 세 장군을 보내어 조를 칠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확실하오?" "1군은 오도(午道: 趙의 동쪽, 齊의 서쪽 地名)을 차단하고 제나라에 통고해 군대를 일으켜 청하를 건너 수도 한단의 동쪽으로 진군케 하려 하고 있습니다. 다른 1군은 성고에 진을 쳐서 한.위의 군대를 몰아 하외(河外)로 진군할 것이며, 또 다른 1군은 면지에 진친 뒤 진.제.한.위 4국이 연합하여 조를 때려부술 겁니다. 조가 항복하면 그 땅을 4등분으로 분할해 가질 것입니다. 조나라에의 침공은 기정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의도도 감추지않고 실정도 숨기지 않는 바입니다." "가만 계셔 보오. 조나라의 처지에서 좋은 계략이 없겠소?" "대왕께서 진왕과 면지에서 만나 얼굴을 맞대고 직접 우호를 맺으시겠다고 약속해 주시면 출동하려는 군대를 잠깐 억제시키기는 하겠습니다." 조왕은 덜컥 겁이 났다. "선왕(先王: 肅侯) 시대에는 봉양군(奉陽君: 숙후의 아우)이 정권을 잡아 권세를 휘두르고 있지 않았겠소. 과인은 연소하였기로 아직 사부(師傅)의 지도 아래 있었소이다." "그럼 아직 모계(謨計)에는 참여하지 않았다는 말씁입니까." "그러하오. 그 후 선왕께선 세상을 떠나사고 나이 어린 과인이 졸지에 왕위에 올라 종묘에 제사 받드는 일조차 서툴렀소. 그래서 고민만 하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면 제후들과 합종해 진나라를 섬기지 않는 일이 국가의 장구한 이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우유부단해하고 있었소이다."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시겠습니까." "그래서 마음을 고쳐 먹고 국토를 분할해 전날의 잘못을 뉘우치는 뜻으로 진나라로 서둘러 달려가겠습니다."
조왕을 설득시킨 장의는 끝으로 연나라로 갔다. 장의는 연의 소왕을 만나자마자 말했다. "대왕께서는 여러 나라 가운데 조나라와 친하시는 게 제일 낫겠지요. 그런데 말씀입니다. 옛날 조의 조상인 조양자(趙襄子: 본래 晋나라 사람. 이름은 無혈)는 자기 누이를 대왕(代王)의 아내로 보내어 대를 병합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조양자와 대왕은 구주산(句注山: 雁門山 혹은 西형山. 山西省 代懸의 북서)의 요새에서 만났습니다. 그 때 양자는 공인(工人)에게 시켜 쇠국자를 만들게 했습니다. 술자리의 흥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 미리 약속한 대로 요리사는 쇠국자로 대왕의 머리를 힘껏 쳤습니다. 대왕의 뇌수가 땅으로 쏟아졌지요. 조양자의 누이는 그 소식을 듣고 비녀를 갈아 스스로 찔러 죽었습니다. 그 곳이 지금 마계산(摩계山: 河北省 蔚懸의 남동. 여자 나이 15세면 비녀를 꽂고 어른이 된다)이죠. 대왕이 그토록 비참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토록 이리처럼 포악한 조나라와 친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조나라가 두 번씩이나 연의 국도를 침범해 과인을 위협한 적이 있소." "대왕께선 10개 성읍을 갈라 사과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두려워서 그랬소." "그런 조왕이 이제는 연지에서 입조하여 하간(河間)의 땅을 바쳐 진을 섬기고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인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대왕께서도 서둘러 진을 섬겨야지요. 만일 섬기지 않으면 갑병을 운중(雲中).구원(九原)으로 내려보내 조군과 합세하여 연을 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역수(易水).장성(長城)은 이미 대왕의 소유가 아닙니다." "조나라가 단독으로 쳐내려올 수는 없겠소?" "그것은 연나라 하기 나름입니다. 연이 재빨리 진을 섬기면 진의 일개 군현(郡縣) 같은 조나라는 진이 겁이 나서 병사를 일으키지 못하지요. 대왕, 생각해 보십시오. 서쪽으로 진의 강한 원조가 있고 남으로 제.조의 우환이 없어지는데 연으로서 이보다 더 좋은 계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연왕이 숙고한 뒤에 단호히 말했다. "과인은 미개한 벽지에 살고 있어 몸집은 어른이지만 생각은 어린애와 다름없소이다. 이토록 훌륭한 계책을 주시는데 어찌 듣지 않겠소이까. 서면하여 진을 섬기지요." 연은 항산(항山: 山西省 句注山에서 河北省에 이르는 陰山山脈의 일부)의 다섯 성시(城市)를 바쳤다.
장의는 스스로 기뻐하며 진왕에게 공적을 보고하기 위하여 서둘러 귀국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의가 아직 함양(咸陽)에 도착하기도 전에 진의 혜왕이 죽고 무왕(武王: B.C.310-307 在位)이 뒤따라 섰다. 무왕은 태자 적부터 장의를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새 왕의 신하들이 장의를 한없이 헐뜯었다. "그 자는 언행에 신의라고는 도무지 없는 자입니다. 좌우로 나라를 팔아가며 자신만 받들어지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진나라가 다시 그를 등용한다면 아마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겠지요." 그래서 진의 무왕은 장의를 쓰지 않았다. 제후들도 장의가 무왕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듣고는 연횡(連衡)의 약속을 포기하고 다시 합종을 했다. 그런 상태에서도 진의 신하들은 장의가 재등용될까 우려되어 끊임없이 참언했다. 장의는 자신의 신변으로 위험이 닥쳐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구나 제나라에서 조차도 장의의 불신행위를 문책해 왔으므로 필시 주살될 일만 남았다고 판단했다. 장의는 진의 무왕에게 상주했다. "신에게 어리석으나마 계략이 있습니다. 말씀드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무어요?" "동방에 큰 변란이 일어난 뒤에 대왕께서 그 변란을 계기로 많은 땅을 얻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그런 계략도 가능하오?" "불초의 몸이 자유를 얻어 위(魏)로 가고자 합니다." "하필 위나라요?" "제나라 왕이 신을 몹시 미워한다고 들었습니다. 신이 있는 곳이면 제왕은 반드시 군사를 일으켜 쳐올 것이므로 제와 위의 군사들이 성 아래에서 맞붙어 싸우느라 정신이 없을 때 대왕께서는 한을 공격하여 삼천(三川)으로 들어가 병사를 함곡관으로 내보내 공격은 하지 않고 위협만 가하면 주나라 천자의 제기(祭器)는 대왕의 손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천자를 끼고 그 지도와 호적을 점검해 천하를 호령하는 것이 바로 왕업을 이루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진왕은 그럴 듯하다고 생각하고 전차 30대를 갖추어 장의를 위로 들어가게 했다. 장의가 위나라에서 후대받고 있다는 소문이 나자 과연 제나라 군대가 위로 쳐들어왔다. 위왕은 덜컥 겁이 났다. "좋은 방법이 없겠소?" "근심하지 마십시오. 신이 제나라 군사를 물러가게 하겠습니다." 위왕을 일단 달랜 장의는 가신 풍희(馮喜)를 가만히 불렀다. "먼저 초나라로 들어가 초의 사신이라는 이름을 빌려 제나라 왕한테로 가라. 가서 말하기를......." 풍희는 초의 사신인 것처럼 해서 제의 왕한테 말했다. "대왕께서는 장의를 몹시 미워하는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그렇소." "그런데도 대왕께선 장의에 의탁하심이 진왕이 장의에게 의탁하심보다 더 큽니까?" "그 무슨 말이오. 장의가 위나라에 있다기에 군사를 일으켰거늘 과인이 어째서 장의에게 의탁하여 보호한다는 말을 하시오. 그 자가 미워 그가 있는 나라는 어디든 치겠소." "바로 그것이 대왕께서 장의를 진에 위탁해 보호하는 것입니다. 장의가 진에서 출국할 때 진왕과 무슨 약속을 했는지 혹시 아십니까." "무슨 약속이라도 있었소?" "'동방에 큰 변란이 일어난 뒤에 대왕께서 그 변란을 계기로 많은 땅을 얻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제왕이 신을 몹시 미워하여 반드시 신이 있는 곳으로 출병할 테니 제.위의 군대가 싸우느라 정신이 없을 때 한을 공격해 삼천으로 들어가 병사를 함곡관으로 내보내 공격을 가하지 말고 위협하면 주의 천자가 제기를 내놓을 것입니다. 그 지도와 호적을 가지고 점검하여 천하를 호령하는 것이 왕의 대업을 이루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답니다. 더구나 진왕은 그것을 인정하고 전차 30대를 갖추어 장의로 하여금 위로 들어가게 했던 것입니다. 제나라는 과연 군사를 일으켜 위를 쳤으니, 이것이야말로 대왕께서 안으로는 나라를 피폐케 만들고 밖으로는 동맹국과 적을 만들며 장의를 진왕한테서 신임받도록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대왕께서는 진왕보다 더욱 장의에게 의탁하고 보호하심이 크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럴 듯하다." 제왕은 대꾸한 뒤 얼른 군사를 풀게 했다. 장의는 위나라 재상으로 있은 지 1년 만에 위나라에서 죽었다.
진진(陳軫)도 유세하는 선비이다. 장의와 함께 진나라 혜왕을 섬겨 모두 중용되었으며 왕의 총애 또한 다투었다. 장의가 진왕에게 진진을 헐뜯어 말한 적이 있었다. "진진이 많은 선물을 가지고 초나라로 자주 사신을 가는 것은 국교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지금 진나라와 초나라가 더 가까워지는 것도 아닌데 초나라가 진진을 우대하는 이유는 진진이 자신만을 위하고 대왕을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진진이 또 진을 떠나 초나라로 가려고 하니 대왕께서는 그 까닭이나 물어 두십시오." 대왕이 진진을 불러 물었다. "그대가 초로 간다고 하던데 그게 진정이오?" "그렇습니다." "장의의 말이 사실이었군." "그건 장의 혼자만 아는 사실이 아닙니다.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들고 물어도 다 압니다. 옛적 오자서(伍子胥)는 그 인군에게 충성했기 때문에 천하의 인군이 그를 신하로 삼으려고 다투었고, 증삼(曾參)은 부모에게 효도하였기 때문에 천하의 부모가 그를 아들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노비를 팔 때 그 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팔리면 그것은 좋은 노비이며, 이혼당한 여인이 그 동네에서 재혼한다면 그녀는 필시 좋은 아내입니다. 진진을 두고 인군께서 그를 불충하다고 하시면 초에서도 역시 저를 충성스럽다고 하지 않습니다. 충성을 하고서도 저는 진나라에서 버림을 받는데 그렇다면 신은 초나라가 아니고 어디로 가지요?" "음, 과인이 잘못했소." 진왕은 그 이후로 진진을 후대했다. 진진이 진나리에 머문 지 1년 후에 진왕은 끝내 장의를 재상으로 임명했다. 그렇게 되자 진진은 초나라로 달아났다. 초에서 아직 진진을 중용하기도 전에 초왕은 그를 진에 사신으로 보냈다. 위를 지나치다가 갑자기 서수(서首)를 만나볼 일이 생겼다. 그래서 면회를 요청했는데 그는 만나 주지 않았다. 진진은 서수에게 편지를 넣었다.
-중요한 얘기를 할 것이 있어 찾아왔으나 그대가 만나 주지 않으니 나는 돌아가오. 두 번 다시 올 일은 없을 거요.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오.
편지를 받아본 서수는 아차 하고 진진을 반기러 나갔다. "용서하시오." "어쨌든......공께선 무엇 때문에 그토록 술을 좋아하시오?" "사실을 말씀드리면 술 마시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기 때문이오." "인에 신물이 나도록 해 드릴 수가 있는데, 해 보시겠소?" "그게 어떤 일이오?" "위의 재상 전수(田需)가 제후들과 합종의 맹약을 맺으려 하지만 초왕이 의심하고 믿으려 하지 않는구려. 그대가 위왕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겠소?" "어떤 말이오." "신은 연왕과 조왕과는 구면이며 친밀합니다. 자주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그대가 위나라에서 할 일도 없으면서 왜 우리를 만나러 오지 않는가'하고 보챕니다. 그래서 '가고자 하오니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하고 말하시오." "그런다면?" "설사 위왕이 가라는 허락을 내리더라도 수레를 30대쯤 마당에 늘어놓기만 하고서 연.조로 간다는 소문만 잔뜩 내시오." "무슨 기미가 있겠소?" "그대에게 좋은 일이 있을 거요." 서수가 진진이 시키는 대로 했더니 과연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위나라에 와 있던 연.조의 객들이 그 소문을 듣고 말을 달려 자기 나라 왕에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신들이 서수를 맞아가려고 법석을 떨었다. 초왕도 이 소식을 들었다. "전수는 과인과 약속한 바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서수가 연.조에 가다니 이건 전수가 나를 속인 게 아닌가. 과인은 전수의 합종책을 듣지 않겠다." 제나라에서도 서수가 북쪽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 그를 정중히 모셔 와서는 국사를 위임했다. 서수는 드디어 제.연.조 3국의 재상이 되어 3국의 정사는 서수에 의해서 결재되었다. 진진은 드디어 진에 닿았다. 그 무렵 한.위가 서로 공격하여 일 년이 지나도록 화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왕의 근신들은 좌우 두 패로 나뉘어져 있었다. "싸움을 말리는 것이 좋습니다." "아닙니다. 화해를 주선하지 않는 게 진에 유리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마친 진진이 진나라에 도착했다. 진왕이 반기더니 우선 물었다. "그대는 과인을 떠나 초로 갔었소. 거기서도 그대는 과인을 생각했소?" "대왕께서는 월나라 사람 장석(莊석)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십니까." "아직 듣지 못했소." "장석은 초를 섬겨 집규(執珪: 爵位)가 되었는데 얼마 뒤 병에 걸렸습니다. 초왕이 중얼거렸습니다. '장석은 본래 월의 가난한 사람인데 지금 초를 섬겨 부귀하게 되었지. 아직도 월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이 때 중사(中謝: 侍御하는 官吏)가 대답했습니다. '대개 사람이 고국을 생각할 때는 그가 병이 들었을 때입니다. 그가 월을 생각하고 있으면 월의 말을 쓸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초의 말을 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보냈더니 여전히 월의 말로 신음하고 있더랍니다'라고. 신은 지금 쫓겨나 초에 갔다 하더라도 어찌 진의 말을 쓰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몹시 흡족한 말이오. 그런데 말이오. 지금 한.위가 서로 공격한 것이 한 해가 넘었소. 지금 근신들은 진이 화해를 주선하는 게 좋으냐 나쁘냐를 두고 말이 많은데 어디 그대에게도 좋은 계략이 있겠소?" "지금까지 저 변장자(卞莊子)가 호랑이를 찔러 죽인 이야기를 대왕께 아무도 들려 드리지 않았나 봅니다." "그런 얘기가 있소?" "변장자가 호랑이를 찌르려고 하자 묵고 있던 여관의 머슴아이가 만류하면서 '두 마리의 호랑이가 소를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맛을 보게 되면 틀림없이 두 놈이 다툴 겁니다. 다투게 되면 반드시 한 놈은 부상하고 한놈은 죽을 것입니다. 기다리고 계셨다가 부상한 놈만 찌르면 두 마리 모두 잡을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답니다. 기다리고 있었더니 과연 머슴아이의 말대로 두 마리의 호랑이를 잡는 성과를 거뒀지요." "아, 알겠소. 지금 한.위가 싸우도록 방관하고 있으라는 얘기겠구려." "그러합니다." 과연 진진의 말대로 대국은 상하고 소국은 망했다. 나중에 진이 병사를 일으켜 양국을 크게 이겼다. 이것이 진진의 계략이었다.
서수(서首: 魏의 官名. 公孫衍 자신이 이 자리에 있었으므로 이렇게 부른다)는 위나라 음진(陰晋: 陝西省 華陰縣 남동) 사람이다. 이름이 연(衍)이고 성이 공손씨(公孫氏)이다. 장의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장의가 진나라를 위해 위나라로 가자 위왕이 장의를 재상으로 삼았다. 서수는 그것이 불리하다고 생각하여 사람을 시켜 한나라 공숙(公叔)에게 귀띔하도록 했다. "장의는 이미 진나라와 위나라를 동맹 맺게 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위나라는 한나라의 남양을 공격하고 진나라는 삼천을 공격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위왕이 장의를 소중히 여기는 까닭은 한나라의 땅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장의를 계속 두시면 남양 땅은 위나라에 빼앗기고 맙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위험한 일이구려." "차제에 어찌하여 공손연에게 조금치의 일이라도 맡겨 주어 위나라에 공을 세우도록 하지 않지요?" "공손연을?" "그렇게 되면 진과 위의 친교를 끊게 할 수 있고, 그런 뒤에는 위나라도 진을 칠 생각으로 장의를 버릴 것이며, 한나라와는 한편이 되어 공손연을 재상으로 삼을 것인데 말입니다." "그대의 말이 옳다." 공숙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옳겠다 생각하고 국사를 서수에게 맡겨 그에게 공을 세우도록 했다. 서수가 위나라 재상으로 부름받자 장의는 위나라를 떠났다.
의거(義渠: 西戎의 國名, 甘肅省)의 인군이 위나라에 입조했다. 서수는 장의가 다시 진나라 재상이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불리하다고 생각되어 의거의 인군에게 말했다. "귀국과는 길이 멀어 다시 오기는 어려울 것이니 이 곳 사정이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중원에서 제나라나 위나라 같은 산동의 제후들이 진을 치지 않으면 진은 아마 귀국을 불태우고 약탈하고 말 것입니다. 중원의 제국들이 진을 때려 주어야 진나라는 종종 귀국에 사신을 보내 귀중한 예물을 드리고 섬길 텐데 말입니다." 그 후 과연 5개국[楚.魏.齊.韓.趙]이 진나라를 쳤다. 때마침 진진이 옆에 있다가 진왕에게 말했다. "의거의 임금은 오랑캐나라 가운데서도 현명한 인군입니다. 뇌물을 보내어 회유해 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럴 듯하다." 진왕은 무늬 있는 비단 1천 필, 부녀자 1백 명을 의거에게 선물로 보냈다. 의거의 인군은 그제서야 생각난 듯이 군신들에게 소리쳤다. "맞아, 이것이 바로 공손연이 충고한 일이다!" 그래서 군사를 일으켜 도리어 진나라를 습격했다. 이백(李伯: 地名)부근에서 진을 크게 깨뜨렸다. 장의가 죽은 후에야 서수는 진으로 들어가 재상이 될 수 있었다. 그는 한때 5개국의 재상 인수를 띠고 합종책 혹은 연횡책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삼진(三晋: 韓.魏.趙)에는 임기응변.권모술수의 유세객들이 많았다. 합종책이나 연횡책을 말해 진나라를 강하게 만든 사람들은 대부분 삼진 사람들이다. 생각해 보면 장의의 행적이 소진보다는 더욱 악랄한 데가 많다. 그러나 세상에서 소진을 더욱 미워하는 것은 소진이 먼저 죽고 장의가 소진의 단점을 과장 폭로했기 때문이며 더구나 자기 주장을 도와 연횡론을 성공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이 두 사람은 참으로 위험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