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열전 1 - 김병총
5. 손자.오기열전 孫子.吳起列傳
신(信).염(廉).인(仁).용(勇)의 인간이어야 비로소 그 사람이 전하는 병법이나 그가 논하는 검법(劍法)이 대도(大道)와 합치하며 수신(修身)의 수단인 동시에 임기응변의 동작이라 이름할 수 있다. 그것은 군자가 덕을비교할 때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5에 <손자.오기열전>을 저술한다. <太史公自序>
원래 제(齊)나라 사람인 손자(孫子)의 이름은 무(武)다. 그의 특기는 병법이었다. 그는 오왕(吳王) 합려(闔廬: B.C.514-496在位)를 찾아갔다. "제 병법을 한 번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그대에게 관심이 많소. 나는 그대가 저술한 13편의 병서를 벌써 다 읽었거든. 그런데 말이오. 그대의 이론이 실제와 얼마나 맞아떨어질지 그게 궁금하단 말씀이야." "그야 이론과 실제는 똑같지요." "오호, 그렇소? 시험삼아 그대가 군을 지휘하는 것을 내가 볼 수 있을지." "좋습니다. 그럼, 어떻게 보여 드릴까요?" "훈련된 군인이 아니라 군사 훈련이라곤 한 번도 받아 본 일이 없는 아녀자를 가지고도 지휘가 가능하오?" "대왕의 후궁들을 데리고서도 가능합니다." "그으래요?" 합려의 눈은 호기심에 불탔다. 손무는 합려의 허락을 받아서 180명의 후궁들을 연병장으로 불러냈다. 손무는 그녀들을 두 대(隊)로 나누고 왕이 가장 총애하는 두 후궁을 각 대의 대장으로 삼았다. "폐하, 우선 저에게 대장군의 부월(작은 도끼와 큰도끼)을 내려 주십시오." "그건 부하들의 생살권(生殺權)을 상징하는 물건이 아니오? 장난으로 한 번 시험해 보는 건데 무어 부월까지......." "군문(軍門)에 장난이란 있을 수가 없으며 왕께서 대장검(大將劍)을 내리시지 않으면 군령(軍令)이 서지 않습니다." "......좋도록 해 보오." 오왕은 마지못해 손무에게 부월을 내렸다. 손무는 그제서야 후궁들 앞으로 다가갔다. "자, 잘 듣거라. 너희들은 자기의 가슴과 잔등과 오른손과 왼손을 알고 있는가." "예에, 그것도 모르는 바보가 어디 있겠어요." "모두들 알고 있다니 다행이다. 그럼 내가 '앞으로' 하고 호령하면 가슴이 있는 방향으로 보고 '뒤로' 하면 등 쪽을 바라보고 '우로' 하면 오른쪽을 바라보고 '좌로' 하면 왼손 쪽을 바라본다. 잘 들었는가?" "알아요." 손무는 꼭 같은 내용을 세 번 되풀이하고 다섯 번 설명했다. 그러고 나서 손무는 군고(軍鼓)를 쳐서 '우로' 하고 호령했다. 궁년들은 까르르 웃기만 할 뿐 아무도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손무는 그녀들에게 다시 말했다. "약속이 분명하고 호령에 익숙해지지 않은 것은 장수의 책임이다." 그러면서 손무는 다시 명령을 세 번 되풀이하고 다섯 차례나 똑같은 내용을 설명하고 나서 군고를 치며 '좌로' 하고 호령했다. 역시 후궁들은 웃기만 할 뿐 아무도 손무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손무는 다시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약속이 분명치 않고 호령이 철저하지 못한 것은 장수의 책임이다. 그러나 군령이 정확하게 전달되었는데도 병사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대장(隊長)의 책임이다. 응분의 벌을 받아야 한다." 손무의 부월을 들어 좌우 두 대장의 목을 치려 했다. 누대 위에서 구경하고 있던 오왕은 깜짝 놀랐다. "잠깐만! 그대는 지금 무얼 하려고 그러시오?" "군령을 어겼기로 목을 베려는 중입니다." "나는 장군의 용병술이 탁월하다는 것을 알았소. 그러니 제발 그 두 후궁을 살려 주시오. 그녀들은 나의 총희(寵姬)이니 그녀들이 없으면 내 식욕이 떨어질 것이오!" "아니 됩니다. 저는 이미 대왕의 명령을 받아 장수가 되었습니다. 장수가 군영에 있을 때에는 왕의 명령이라도 받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손무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두 대장의 목을 도끼로 내리쳤다. 눈 깜짝할 순간이었다. "아, 저자가!" 혼비백산한 것은 오왕뿐만 아니었다. 누대에서 아래를 굽어보던 대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연병장에 살아 남은 후궁들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자, 다시 해 본다. 이번에는 차석 후궁들이 대장을 해라." 손무는 다시 북을 치며 호령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앞으로 뒤로 오른쪽 왼쪽, 서고 꿇어앉고까지 한 치 빈틈없이 명령대로 이루어졌다. 자로 재고 먹줄을 친 것처럼 대오가 일사불란하면서, 군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얼마 후 누대를 바라보니 오왕은 이미 거기에 없었다. "근대의 기강이 완전히 잡히고 군령이 정돈되었습니다. 왕께서는 친림하시어 직접 시험해 보라 하십시오. 그저 왕께서 용병하고 싶으신 대로 저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 것입니다." 오왕의 전갈이 왔다. "장군께서는 어서 훈령을 끝내시고 숙사로 가서 휴식하라 하셨습니다. 폐하께서는 친림하실 의향이 없다 하셨습니다." 그러자 손무가 소리쳤다. "이제사 알겠소. 대왕께선 한갖 용병의 이론만 좋아하실 뿐 실제의 용병술은 좋아하지 않으시는구려." 오왕의 신하가 왕을 달랬다. "대왕, 고정하십시오. 손무의 용병능력을 탁월합니다. 천하의 귀재입니다. 천하의 패자가 되시려거든 손무의 힘을 빌리십시오." 오왕은 신하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손무의 능력을 인정하여 그를 장군으로 기용했다. 그 후 오왕은 서쪽의 강국 초(楚)를 꺾어 도성인 영(영)에 돌입하고 북의 제.진(齊.晋)을 위협해 제후들 사이에 명성을 떨쳤다. 모두 손무의 힘에 의해서였다.
손무가 죽은 후 백여 년 뒤에 손빈(孫빈)이란 인물이 태어난다. 그는 제(齊)나라의 아(阿).견(견) 지방 근처에서 태어났으며 손무의 후손이다. 손빈은 일찍이 방연(龐涓)과 함께 병법을 배웠다. 방연은 그 때 위(魏)의 혜왕(惠王)을 섬겨 장군이 되어 있었다. "어쩐다? 손빈이 있는 한 위왕을 천하의 패자로 만들 수가 없겠는데, 나의 능력이 손빈에게는 미치지 못하거든. 그를 제거할 방법이 없을까......." 방연은 가만히 손빈을 불렀다. 친구의 정중한 초대라 손빈은 좋아라 하고 위나라로 달려갔다. 그러나 손빈은 방연을 만나 보기도 전에 결박되어 투옥되었다. "무슨 짓이냐! 방연 장군의 초대로 찾아온 손님이다!" "어리석기는! 바로 그 방 장군이 너를 이런 식으로 대접하라고 하셨다!" 옥리의 대답이었다. 손빈은 두 다리를 잘리우고 얼굴에는 먹물이 떠졌다. "얼마 뒤엔 옥사할 테지. 설사 살아 남는다고 해도 저런 몰골로 어떻게 세상에 나서겠는가." 방연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느 날 손빈은 옥문 밖에서 요란하게 달려가는 수레소리를 들었다. "사마(駟馬: 四頭馬車)인 것 같소. 누구의 행차요?" 손빈은 옥리에게 무심코 물었다. "제나라에서 온 사신인 듯하오." "그분을 가만히 좀 만나게 해 줄 수가 없겠소." "당신이?" "박봉인 당신한테는 황금 백 금이면 매우 크오." "당신한테 그런 거금이 있겠소?" "내가 죽었노라 소문내고 위나라 도성인 대량(大梁)의 다리 밑에다 나를 버려 주면 2백 금을 주겠소." "글쎄, 당신한테......." "그 돈은 제나라 사자가 가지고 있소. 밑져야 본전 아니오? 좌우지간 그를 만나게만 해 주시오." 옥리는 제의 사자를 만나게 해 주는 일쯤 나쁠 게 없다 생각하고 가만히 사자를 손빈에게 다리놓아 주었다. 손빈은 제의 사자를 만나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 또한 자신의 포부를 설파했다. 사자는 손빈의 기재(奇才)를 알아보았다. "그대라면 2백 금도 아깝지 않소!" 제의 사자는 귀국길에 손빈을 몰래 수레에 태우고 돌아갔다. 손빈은 사자에 의해 제의 장군 전기(田忌)에게 소개되었다. 하루는 전기가 투덜거리며 손빈이 있는 객실로 들어왔다. "장군, 무슨 불쾌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글쎄 말이오. 마차경주내기를 했는데 오늘도 졌기 때문에 많은 돈을 잃었소." "대체로 내기 상대자들은 누구입니까?" "공자(公子)들과 장수들과 대신이오." "다음 시합 때에는 필히 저를 데려가십시오. 장군께서 거금을 따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전기는 긴가민가하면서도 이튿날 마치 경주에 손빈을 데리고 나갔다. 포장마차 속에서 바깥을 유심히 살핀 손빈은 전기를 불러 작전을 지시했다. "주력에 큰 차이는 없다 해도 어차피 상.중.하 등급의 말은 있게 마련입니다. 세 번의 경주 중 두 번 이기면 장군이 이기는 겁니까?" "그렇소이다." "그렇다면 저쪽에 있는 상등마에 장군의 하등마를 겨루게 하십시오." "내 말이 질 제 뻔하지 않소?" "대신 장군의 상등마는 저쪽의 중등마에게 이깁니다." "그럴 듯하구료. 내 중등마는 저쪽 하등마에게 이길 테고." "잘 보셨습니다. 오늘은 천금을 거십시오." 과연 손빈의 말대로 한 결과 전기는 통쾌하게 이겼다. 범상한 인물이 아니라 생각되어 전기는 마침내 손빈을 위왕에게 추천했다.
위왕은 손빈과 병법문답을 해 본 후 그 기량이 뛰어남을 알고 몹시 기뻐하며 장군으로 삼으려 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런 몸으로는 군령이 서지가 않지요." 그래서 전기를 장군으로 삼고 손빈을 군사(軍師)로 삼아 치거(輜車:포장수레) 속에서 군략을 세우게 했다. 때마침 조나라에서 제나라로 구원을 청해 왔다. 위나라가 쳐들어왔으므로 조가 위태롭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나라는 우리 제나라의 동맹국이오. 달려가서 도와주어야 하겠소." 전기의 말에 손빈은 단호하게 말했다. "군대를 조나라로 끌고 가선 안 됩니다." "그건 왜 그렇소?" "엉킨 실을 풀려면 주먹만 휘둘러서는 안 된다는 논리입니다. 맞붙고 있는 싸움을 말리려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의 빈틈을 보아 급소를 쳐야 싸움이 풀리지요. 지금 위와 조는 사생결단으로 맞붙어 싸우고 있기 때문에 양국의 정예병들은 모조리 일선으로 나가 있습니다. 결국 국내에는 늙고 병든 자만이남아 있지요. 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해집니다. 위나라 수도인 대량으로 쳐들어가는 일입니다. 위나라는 대경실색해서 조나라의 포위를 풀고 회군하겠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한 번 움직여 조나라를 구원하고 위나라를 피폐케 하는 방법이지요." "그럴 듯하오." 전기는 손빈의 계략을 따르니 과연 한단(한鄲: 趙의 수도)에서 철수해 버렸다. 제군이 계릉(桂陵: 山東省 荷澤縣)에서 위군과 맞딱뜨렸는데 사기가 꺾인 위군은 대패하여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났다. 이번에는 위나라와 조나라가 한(韓)나라로 쳐들어갔다. 한은 위급함을 제에 고해 왔다. "이번에도 볼 거 없겠지요. 위의 대량으로 쳐들어갑니다." 전기가 손빈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손빈은 가만히 있었다. 과거 제의 군사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위군은 한나라를 버려 두고 본국으로 군사를 돌렸다. 그런데 기고만장했던 전기는 군사를 너무 깊숙이 위나라에 들어가 있었다. 손빈이 말했다. "저들 삼진(三晋: 韓.魏.趙. 원래 晋의 鄕이었는데 세 집안이 晋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나눠 가짐. 그 후로도 三晋이라 불렀음)의 병사는 원래가 사납고 용맹스럽습니다. 필시 제나라를 겁쟁이라 얕보고 있을 테지요. 우리가 도망치면 저들은 사정없이 쫓아올 게 틀림없습니다." "아니, 군사(軍師)! 대량이 코앞인데 방연과 싸워 보지도 않고 도망치잔 말이오?" "그러나 전쟁을 잘하는 자는 적의 세력을 이용해 이쪽을 유리하도록 이끄는 법입니다. 병법에, 눈앞의 이익에 팔려 백 리 밖을 달려나가면 그 군대는 상장군(上將軍)을 죽게 만들고, 오십 리 밖으로 달려나가면 그 군대의 절반만 도착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슬금슬금 군사를 물리며 그들을 추격해 오게 만드는 겁니다. 첫날에는 10만 개의 아궁이를 만들고 물러나 이튿날에는 5만 개, 사흘째는 3만 개로 줄이는 겁니다. 그러면 저들은 무방비 상태로 죽자사자 우리를 추적해 올 것입니다. 다음 계략은 그 때 세우겠습니다." 전기는 도망치는 일이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으나 손빈의 설득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제군의 아궁이 숫자가 줄어 가는 것을 감지한 방연은 몹시 기뻤다. "가차없이 추격해 몰살시켜라. 나 본래 제나라 놈들이 겁쟁이인 줄은 알았지만 남의 땅에 들어와 사흘 만에 절반 이상이 도망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 보병까지 따라올 건 없다. 정예 기병만 추격해 간다." 한편으로 손빈은 방연의 행군 속도를 계산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때쯤이면 방연이 마릉(馬陵: 河北省 大名縣의 남동)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도 빨리?" 손빈의 말에 전기는 놀라 눈을 치떴다. "그 자는 교만하고 주의력이 없으며 성격이 급해서 필시 기마병만 질타해 올 것 같습니다." "마릉은 길이 좁고 양옆의 산이 험조(險阻)한데." "그렇기 때문에 매복병을 두기엔 절묘한 곳이지요." 그래서 제나라 군사 중 활 잘 쏘는 병사를 골라 일만 장의 쇠뇌(弩)를 준비시켜 산기슭 양편에다 매복시켰다. "나머지 군사들은 언덕 아래로 돌더미를 굴린다. 해가 져서 어둠 속에서 불빛이 보이거든 일제히 사격하라!" 손빈은 군사를 시켜 큰 회나무를 깍아 오게 했다. 그는 몸소 붓을 들어 나무판에다 이렇게 썼다. -방연, 이 나무 밑에서 죽다. 손빈. "이 팻말을 좁은 길 복판에다 세워 두어라." 손빈의 예측대로 방연은 어둑어둑해졌을 때 마릉의 협로를 통과하게 되었다. "장군님, 길 복판에 요상한 나무기둥이 세워져 있습니다. 무슨 글귀가 새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부싯돌을 쳐서 불을 밝혀 보아라." 한 병사의 말에 방연은 명령했다. 부싯돌의 불씨가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방연이 통나무 기둥판의 글자를 미처 다 읽기도 전에 사방에서 우뢰와 같은 함성이 울리며 쇠뇌가 비처럼 쏟아지고 거대한 바위들이 굴러떨어졌다. "앗, 복병이다." 그러나 방연의 군사가 피하기에는 이미 늦어 있었다. 우왕좌왕 피하려다가 말들의 처절한 울음소리와 함께 그들은 하나 둘씩 죽어 갔다. 방연은 하늘을 우러러 크게 외쳤다. "손빈, 이 수자(수子: 더벅머리 아이새끼) 놈이 아직도 살아 있었더란 말이지! 한사코 저놈을 천하에 명성을 떨치게 만들었구나!" 방연은 지혜와 운세가 다한 것을 알고 스스로 칼로 목을 찔러 죽었다. 승세를 탄 전기군은 머리를 돌려 위나라를 급습해 군대를 대파하고 태자 신(申)까지 붙잡아 제나라로 개선했다. 이 승리로 인하여 손빈의 명성은 천하에 떨쳤으며 그의 병법도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
오기(吳起)는 위(衛)나라 사람이며 용병술에 뛰어났었다. 일찍이 증자(曾子: 曾參, 孔子의 高弟)에게 배웠으며 노(魯)나라의 왕을 섬겼다. 제(齊)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해 오자 노나라에서는 오기를 장군으로 삼아 막게 하려고 했다. "그것은 불가합니다." "오기는 뛰어난 병가(병가)요. 어째서 안 된다는 거요?" 신하의 반대에 노왕은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를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제나라 여자를 아내로 맞고 있습니다." 오기가 그 소문을 들었다. 명성을 날리고 뜻을 얻고 싶었는데 제나라 출신 아내가 걸림돌이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아내를 죽여서 내가 제나라를 이롭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해 주면 될 게 아닌가!" 오기가 아내를 죽여 버리자 그제서야 노에서는 그를 장군으로 기용했다. 과연 오기의 용병술은 탁월하여서 군사를 끌고 나가 제군을 크게 쳐부수었다. 그렇듯 그의 전공이 혁혁하여도 그의 인간성에 대해서는 세상의 비난을 면치 못했다. "오기는 사람됨이 시기심도 많고 또 잔인하다. 젊었을 때 집에는 천금이 있었는데 벼슬자리 구하러 돌아다니면서 가산만 탕진하고 빈손으로 돌아온 자이다. 고향에서 그를 비웃자 오기는 자신을 비방하는 고향 사람 서른명을 죽이고 동쪽으로 도망쳤다. 위나라 성문을 빠져 나오면서 몰래 전송하러 온 모친에게 제 손가락을깨물며 맹세하지 않았던가 '어머니, 제가 재상이 되기 전에는 위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그런 후 증자를 스승으로 섬겼으며, 얼마 후 모친이 죽었다. 제 어머니가 죽어도 끝내 귀국하지 않는 오기를 증자는 박정하고 불효막급하다 하여 그를 파문해 버렸다. 별수 없이 이에 오기는 노로 가서 병법을 배워 노왕을 섬겼으나 왕이 제나라 출신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을 의심하자 아내를 죽이면서까지 장군이 되었다. 이제 노와 같이 작은 나라가 제와 같이 큰 나라를 이겼다고 이름이 났으나 제후들의 공격의 표적이 될 것이다. 게다가 노와 위는 형제국인데 우리 왕이 오기를 기용하게 되면 이는 위와의 정분을 끊게 되는 것이 아닌가. 어쨌거나 오기는 위험한 인물이다." 그런 소문을 듣고 노왕은 끝내 오기를 내치고 말았다. 궁지에 몰린 오기는 할 수 없이 위(魏)나라로 갔다. 문후(文侯: B.C.424-387 在位)가 현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섬기려 했기 때문이다. 오기가 찾아오자 문후는 재상인 이극(李克: 子夏에게서 배움. 農業政策을 실시하고 刑法典<法經>을 편찬함)에게 물었다. "오기란 도대체 어떤 인물이오?" "탐욕스럽고 호색합니다. 그러나 귀신 같은 용병술은 사마양저라도 못당합니다." "그렇다면 좋소. 그의 용병술만 사겠소." 문후는 그를 장군으로 삼았더니 과연 오기는 진(秦)나라를 쳐서 다섯 성을 함락시켰다. 장군이 된 오기는 가장 계급이 낮은 병졸과 함께 입고 먹었다. 잘 때는 요를 깔지 않았으면 외출 때에도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출전 때에는 자신의 양식을 몸소 지녀 병졸의 노고를 덜어 주었다. 병졸 중에 종기를 앓는 자가 있어 오기는 입으로 그 고름을 빨아 주었다. 병졸의 모친이 그 소문을 듣고 소리내어 울었으며 어떤 사람이 이상해서 물었다. "일개 병졸인 당신의 아들한테 장군이 몸소 그 종기를 빨아 주는데 무엇이 슬퍼서 그토록 서럽게 우시오?" "내 아들은 죽소." "무슨 말이오?" "전날에도 오 장군은 저 애 아비의 고름을 빨아 주었소. 감격해서 몸을 돌보지 않고 적지로 뛰어들었다가 그렇게 전사했소. 내 아들도 필시 지아비처럼 장렬하게 죽을 게 뻔하지 않소. 그래서 슬피 우는 거요." 문후는 오기가 용병에 능하고 청렴.공평.근면할 뿐더러 사졸들한테 인망이 있는 것을 보고 서하(西河: 陜西省 黃河의 서쪽 기슭 일대)의 태수(太守)로 삼아서 진(秦)과 한(韓)의 침공을 막게 했다. 문후가 죽은 뒤에 오기는 문후의 아들 무후(武侯: B.C.386-371 在位)를 섬겼다.
어느 날 무후는 서하에 배를 띄우고 물결 따라 내려오다가 중간쯤에서 문득 오기를 돌아보며 감탄했다. "오, 절묘함이여! 이 험준한 산하의 요새여. 그렇기에 이 곳이 위나라의 보배가 아니겠소!" 잠깐 무언가를 생각한 뒤에 오기가 대답했다. "대왕, 나라의 보배는 산하의 험고(險固)함에 있지는 않습니다." "그럼, 어디에 있다는 말씀이오?" "옛적 삼묘씨(三苗氏: 예부터 淮.荊州, 오늘의 湖南.湖北.江西省에 할거하던 민족)의 나라는 동정호(洞庭湖)가 왼쪽에 있고 팽려호(彭려湖: 심陽湖)가 오른쪽에 있는 험고한 땅이었으나 우(禹)임금이 이를 멸망시켰습니다. 하(夏)의 걸왕(桀王)의 거처는 황하의 제수(濟水)가 왼쪽에 있고 태산과 화산(華山)이 오른쪽에 있고 이궐(李闕: 洛陽 남쪽의 斷崖)이 남쪽에 있고 양장산(羊腸山: 山西省 交城縣 南쪽)의 험고함이 그 북쪽에 있었으나 은(殷)왕조의 탕왕(湯王)에게 징벌되었습니다. 또 은의 주왕(紂王)의 나라는 맹문산(孟門山: 太行山의 동쪽)이 왼쪽에 있고 태행산이 오른쪽에 있고 상산(常山)이 그 북쪽에 있고 대하(大河:黃河)가 그 남쪽을 지나고 있었으나 주(周)왕조의 무왕(武王)이 그를 죽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근거로 관찰해 보건대......." "알 것 같소. 무릇 나라의 보배란 산하의 험고에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덕(德)에 있다는 말을 하실 참이잖소?" "그렇습니다. 임금이 덕을 닦지 않으면 이 배 안의 사람들도 모두 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옳은 말이오."
오기가 서하의 태수가 되었는데 평판이 매우 좋았다. 그런데도 위의 재상으로 전문(田文)을 앉힌 사실에 대해서 오기로서는 불만이었다. 만날 기회가 있어 오기는 전문을 붙들고 늘어졌다. "보시오, 위나라를 위해 누가 더 공적을 많이 쌓았는가? 당신과 비교해 보고 싶은데, 어떻소?" 전문은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좋습니다." "삼군의 장군이 되어 그 사졸들이 나라를 위해 기꺼이 죽게 만들며, 그럼으로써 적국이 감히 우리 나라를 넘볼 수 없게 만든 점에 있어서 그대와 나 둘 중에 누가 더 낫소?" "저가 당신만 못합니다." "백관(百官)을 다스리고 만민을 친근하게 하고 국고를 충실하게 한 점에서는 당신과 나 둘 중 누가 더 낫겠소?" "물론 제가 당신만 못합니다." "서하의 땅을 지키며 진병(秦兵)이 감히 동쪽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고 한.조(韓.趙)를 복종케 한 점에 있어서는 당신과 나 둘 중 누가 더 낫소?" "역시 제가 당신만 못합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선 이 세 가지 점에 있어서도 당신이 나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거늘 무엇 때문에 당신은 내 윗자리에 있는 거요?" "나름대로 그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은 있습니다. 지금 임금은 어려서 온 나라가 불안해 하고 있으며, 대신들 역시 따르려 하지를 않고, 백성들도 믿을 데가 없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런 때에 재상 자리를 그대에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까, 아니면 저 같은 사람이 맡는 게 좋겠습니까?" 오기는 한참 동안 생각한 뒤에 대답했다. "역시 그대에게 맡기겠구려." "그렇습니다. 이게 바로 그대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는 제가 재상의 자리에 앉게 된 이유입니다." 그 때부터 오기는 자신이 전문보다 무덕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전문이 죽고 나자 공숙(公叔)이 재상이 되었다. 공숙은 위왕의 사위였다. "오기가 자신이 재상 자리에 못 앉은 걸 불평한다 말이야......." 공숙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그의 하인이 역시 혼자말하듯 내뱉았다. "그까짓, 쉽게 제거할 수 있는걸." "너 이제 뭐라고 말했나?" "승상께서 오장군을 꺼리시는 말씀을 독백으로 하시기에 소인 역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네 얼굴을 보니 오기를 추방할 수 있는 묘책이라도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은 간단합니다." "어서 말해 보아라." "오기의 사람됨은 절조가 있고 청렴하며 명예를 중히 여깁니다. 바로 그런 성품이 그의 허점이 되는 것입니다. 우선 대왕께 이렇게 말씀드려 주십시오." "어떻게?" "대왕, 오기는 훌륭한 인물이지만 우리 나라는 작은 데다 강대국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그가 과연 이 나라에 오래 머무를 수 있을지 그것이 걱정입니다......." "그렇게 말씀드리면 대왕께선 무어라 대답하실까?" "아마 이렇게 되물으시겠지요.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소?" "그렇게 하문하시면?" "시험삼아 공주를 오기에게 시집보낸다고 말씀해 보라 하십시오. 그가 우리 나라에 머물 생각이라면 왕의 부마(駙馬)가 될 것이고 떠날 생각이라면 공주를 마다 할 것입니다." "이놈아, 그게 오기를 제거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이냐?" "아닙니다. 대왕께 미리 그렇게 말씀드린 후 승상께선 오기를 집으로 초대하십시오." "그건 왜?" "승상께선 바로 부마가 아니십니까. 오기가 보는 앞에서 공주께서 승상을 무참하리만큼 모욕을 주도록 미리 약속을 해 두십시오. 그런 꼴을 본 오기는 진절머리를 내고 부마 될 것을 사양할 것입니다." "만일 일이 그대로 진행되면?" "다음 일이야 뻔하지 않습니까. 무후(武侯)께선 오기를 언짢게 여기실 것이고 그를 의심하실 것이며 더불어 모든 벼슬을 떼어 버릴 것이고, 버림받은 오기는 이 땅을 떠날 것입니다." "좋은 계략이다!" 공숙이 하인의 말대로 했더니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일이 그대로 진행되었다. 죄 입을 것이 두려워진 오기는 서둘러 위를 떠나 초(楚)나라로 갔다. 초나라의 도왕(悼王: B.C. 401-381 在位)은 오기의 현명함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도착하자마자 재상으로 삼았다. 재상이 된 오기는 심기일전하여 이제야말로 좋은 정치로 자신의 뜻을 펴고자 하였다. 우선 법을 자세히 밝히고 명령을 확실히 하였다. 필요하지 않은 관직들을 가차없이 페지시키고, 왕실과 먼 촌수의 왕족들의 녹봉을 없애 버리고 거기서 얻어진 재원으로 전투에 쓸 군사를 양성했다. 무엇보다 강병책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때문에 합종(合從)과 연횡(連衡) 따위를 주장하는 공허한 유세객들을 가장 멸시했다. "요것봐라? 엉뚱한 자가 찾아와서 재상이 되더니 제 마음대로 놀아난다!" 기득권을 상실한 귀족들의 불만이 대단했지만 오기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남쪽으로 백월(百越: 越의 諸侯로 華中.華南에 살던 南方民族)을 평정하고 북으로는 진(陳)나라와 채(蔡)나라를 병합했다. 삼진(三晋)을 물리쳤으며 서쪽으로 진(秦)을 쳤다. 천하의 제후들이 초가 점점 강해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에 도왕이 죽었다. "오기를 없애는 절호의 기회닷!" 모든 영화를 빼앗겼던 왕족과 대신들이 오기를 그냥 둘 리가 없었다. "무엇이? 그 자들이 나를 치러 온다고?" 도왕이 장례도 치르기 전이어서 마침 오기는 궁전 안에 있다가 귀족들의 반란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손쓸 여력이 없었다. 반도들이 궁전 안으로 뛰어들어 오기를 찾으며 아무데나 화살을 쏘아대고 있었다. "살아날 길은 없는가! 그렇다면 좋다. 나 혼자 죽지는 않겠다!" 오기는 재빨리 도왕의 시체 뒤로 가서 물었다. 눈이 뒤집힌 반도들이 드디어 오기를 찾았다. "오기 놈, 바로 저기에 있다!" 반도들은 앞뒤 재어 보지도 않고 오기를 향해 화살을 쏘아 댔고 창으로 찔러댔다. 많은 화살을 맞아 고슴도치처럼 된 오기는 도왕의 시체 위에 엎어져 숨이 끊겨 있었다. 도왕의 장례식이 끝나자 태자 장(臟: 肅王)이왕위에 올랐다. "이유 여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조리 도륙하라! 왕의 시신에 활을 쏘고 창을 찌른 자는 용서받을 수가 없다!" 새 영윤(令尹: 楚의 재상 이름)은 왕의 엄명을 착실히 이행했다. 반란에 연루된 종실과 대신들 거의가 주살당했다. 70여 가문이 멸족되었는데, 모두가 오기를 미워한 자들이었다. 오기가 죽음의 장소를 도왕의 시체 옆으로 선택한 것은 교묘한 복수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에서 군사(軍事)에 대해서 논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손자> 13편과 오기의 <병법>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들의 경력과 시책에 대해서만 논했다. 옛말에 '잘 행하는 사람이 반드시 잘 말하는 사람이 아니며, 말 잘하는 사람이라 해서 반드시 실행을 잘하는 바도 아니다'라고 했다. 손빈이 방연을 해치운 계략은 실로 절묘하다. 그러나 자신의 다리를 잘리우는 형벌을 미연에 방지하지는 못했다. 오기는 무후에게 산하의 험고함을 인간의 덕만 못하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은 온정이 없었다. 더구나 초나라에서 행한 정치는 각박하고 포악했다. 그 탓으로 제 목숨을 잃었으니 누구를 원망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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