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영토를 버린 대왕 - 양왕
대왕 단보*가 빈에 살 때 적인이 침입하였다. 가죽과 비단을 보내 섬겨도 받지 않았고, 개와 말을 보내 섬겨도 받지 않았으며, 구슬과 옥을 보내 섬겨도 받지 않았다. 적인이 요구하는 것은 토지였다. 대왕 단보가 말했다.
"남의 형과 함께 살면서 그 아우를 죽이고, 남의 아비와 함께 살면서 그 아들을 죽이는 짓은 나는 차마 할 수 없다. 모두 힘껏 살아라. 내 신하가 되는 것과 오랑캐의 신하가 되는 것이 무엇이 다르겠느냐? 또 나는 '기르는 데 쓰는 것*으로 기르는 것을 해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는 채찍을 짚고 떠나갔다. 백성이 서로 이어서 쫓아가 드디어 기산 밑에 나라를 이루었다. 대왕 단보는 생명을 귀하게 여겼다고 말할 수 있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비록 부귀를 누려도 그를 위해 몸을 상하게 하지 않고, 비록 빈천해도 그 때문에 몸을 괴롭히지 않는다. 요즘 세상 사람들은 높은 벼슬과 높은 지위에 있게 되면 모두 잃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 이를 보고 가볍게 그 몸을 망친다. 어째 잘못 된 것이 아니겠는가!
* 단보 : 주문왕의 조부. 고공단보라고도 한다. * 기르는 데 쓰는 것 : 원문은 소용양으로서, 즉 토지와 재물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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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단보가 빈이란 땅에 머물러 살 때, 인접해 있는 적이란 이민족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싸움을 피하기 위해 단보는 털가죽과 비단을 보내어 화친을 청했으나 적은 듣지 않았다. 대왕은 다시 개와 말 등 가축을 보냈으나 마찬가지였고, 귀한 보물들을 보내도 역시 응하려 하지 않았다. 적의 야심은 영토에 있었던 것이다. 달리 방법이 없게 된 대왕은 신하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백성들을 싸움터로 끌어냄으로써 사람들이 육친을 잃고 슬퍼하는 소리를 차마 들을 수 없다. 그대들은 모든 것을 견디고 이 땅에 머물러 살아라. 그대들로서는 내 신하가 되나 오랑캐의 신하가 되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나는 '땅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있는 것이나 그런 땅을 위해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교훈에 따르려 한다."
말을 마친 대왕은 채찍을 짚고 표연히 정든 땅을 버리고 떠나갔다. 그러나 그의 덕을 사모하는 백성들은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 대왕의 뒤를 따랐다. 이리하여 대왕이 새로 자리 잡은 기산 기슭에 새로운 나라가 생겨났다. 대왕 단보야말로 인간의 생명을 소중히 여긴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생명을 존중하는 사람은 비록 부와 귀를 누리는 지위에 있더라도 향락을 위해 몸을 해치는 일이 없고, 가난하고 비천한 환경에 놓여 있어도 이익이나 욕심으로 인해 육신을 괴롭히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지위를 잃을까 걱정하여 명예와 이익을 위해 가볍게 몸을 망치는 일이 수없이 많다. 이야말로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