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3 - 반덕진
제1부 서양 문학의 흐름과 고전
제1장 서양문학의 흐름과 고전
<신이 인간에게 책이라는 구원의 손을 주지 않았더라면 지상의 모든 영광은 망각 속에 파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 (리처드 베리)
모든 정신문화가 그러하듯이 문학은 시대와 함께 변천과 발전을 거듭하여 수많은 작가와 작품을 배출시키면서 한 시대의 정신적사상적 문화유산으로 축적된다. 이러한 문학을 각 나라별로 혹은 각 시대별로 그 공통성을 추출하여 분석해보는 일은 중요한 문학 연구방법이 될 수 있다. 그것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의식이 작품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표출되고, 그것이 종합되어 당대 문학의 주된 흐름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예사조에 대한 맹신에도 문제가 있다. 이것은 문학작품의 분석에서 얻어진 결과를 토대로 분류하는 방법론이 되지 못하고, 반대로 이에 대한 선입견이 문학작품을 보는 시각을 도식화해버리기 때문이다. 문학작품 가운데는 어느 하나의 시조에만 국한시킬 수 없는 것도 적지 않고, 작가의 경우도 다양한 작품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어느 한 경향의 작가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이것은 대상을 인식하는 정신작용의 편의주의적 메커니즘으로 경계해야 할 일이다. 또 한가지, 문예사조는 칼로 물 베듯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을 뿐 아니라 선후가 중첩되거나 상호 혼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학자들간에 의견일치가 어렵다는 점도 지적해두고 싶다. 특히 신비평구조주의, 해체주의 등, 최근의 현기증 나는 문학비평은 문예사조의 존대 자체를 거부하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상을 인식하는 정신작용은 어차피 대상을 규범화시키는 인식단계에 익숙해 있으므로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서 각 문예사조를 통해 문학 작품, 특히 고전을 분석해보는 일은 의미 있는 작업으로 생각된다. 동서문학의 흐름을 기술하기에 앞서 먼저 독자들에게 이상의 두 가지 점에 대해 주의를 환기해두고 싶다.
서양문학의 원류
서양문학은 민족과 지역에 따라 다양하지만 그 원류로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거론된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가 헬레니즘의 부활이라면 종교개혁은 헤브라이즘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헬레니즘이 문학에 있어 사실주의 영향을 주었다면 헤브라이즘은 낭만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은 때로는 대립되기도 하고 때로는 융합하기도 하면서 서양문화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헬레니즘
그리스 인은 어느 민족보다도 이성과 지성에 뛰어났고 예술을 사랑했다. 그들은 이성과 결합된 미를 사랑했고, 예술에는 지적 요소가 필수적이라고 믿었기에 예술표현양식에 있어서도 명쾌함을 존중했다. 이른바 <숭고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이 그리스 고전미의 극치였다. 한편 이성과 지성을 중시하고 객관적 정신에 뛰어났던 그리스인은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도 공정한 관점을 잃지 않고 사물들을 별개의 것으로 보기보다는 유기적으로 결합된 것으로 보았다. 그 결과 미의 생명인 조화와 균형, 그리고 통일을 중시했다. 그리고 그리스 인은 인간 세상을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보아 현세의 삶을 소중히 여겼다. 그들이 목적으로 하는 바는 <교양의 완성>으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모든 능력이 아무런 구속없이 발현되기를 원했다. 그리스 인의 이런 인간과 삶에 대한 강렬한 관심은 인간 본위로서 휴머니즘 정신으로 연결된다. 이상과 같은 그리스 정신에서 비롯된 헬레니즘 내지 고전문학은 후에 서양문학의 지속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되고 문예사조의 한 주류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문학을 모범으로 그 양식을 따르려는 경향이 14~16세기 르네상스와 17~18세기 고전주의인데, 이는 인간의 지적 충동과 헬레니즘의 부활이었다. 뿐만 아니라 근대문학의 사실주의현실주의주지주의 등도 헬레니즘의 한 양상으로 볼 수 있다.
헤브라이즘
또 하나의 서양문학의 흐름은 히브리적인 흐름 즉, 헤브라이즘이다. 헤브라이즘은 약소민족이었던 히브리 민족(이스라엘 인, 유대인)의 신앙으로 그리스의 다신교와는 달리 유일신인 여호와 하나님을 숭배하는 종교이다. 이러한 기독교 사상의 본질은 <여호와를 경배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니라>(잠9:10)라는 표현 속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인간 자신의 의지가 아닌 신의 의지에 대한 복종이 헤브라이즘의 기본 관념이다. 따라서 인간적인 자유주의는 배제되고 신에 대한 경배와 신앙이 무엇보다 선행되며 육체 및 그 욕망은 올바른 행위의 장애물로 간주되고 금욕적이고 정신적인 미가 예찬된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12:1).> 이것이 그들의 행복의 관념이다. 그들은 죄를 미워했고, 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항상 자신을 구속하는 계율의 굴레를 만들어 <양심의 엄격함>속에서 생활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리스 인처럼 현세의 삶을 존중하기보다 내세를 중시했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찬미했다. 이러한 정신은 훗날 낭만주의와 신비주의, 상징주의 및 표현주의 등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들의 신앙의 원천인 <성경 Bible>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39권의 구약과 예수의 생애와 제자들의 전도 및 서신기록인 27권의 신약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시인이 <이사야 서>와 <히브리 서>를 읽고 나서는 호모로스나 베로길리우스는 나에게 하찮은 것으로 느껴졌고 밀턴조차도 읽을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 말한 것처럼 성경에는 문학적으로도 가치있는 작품들이 많다. 구약의 <시편> <잠언> 등과 신약의 <마태복음>에 나오는 <산상수훈> 등은 문학적 매력이 넘치는 대목들이다. 그리고 서울대 선정 동서고전 200선 중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단테의 <신곡>, 괴테의 <파우스트>,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등의 작품은 물론 밀턴의 <실락원>, 번연의 <천로역정> 등도 기독교의 역사와 사상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 진수를 맛볼 수 없다.
고대문학
1. 그리스 문학
서양인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은 그리스다. 그리스 문학을 전범으로 삼고 있는 서양문학은 기원전 8세기경 호메로스의 서사시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로마문학을 거쳐 중세와 르네상스, 그리고 고전주의 문학으로 이어졌다. 초기에는 서사시와 서정시가 발전하게 되고 아테네 전성시대에는 비극과 희극산문의 확립에 이른다. 그러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시절부터 쇠퇴하기 시작하다가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면서부터 고전시대의 그리스 문학은 종말을 고한다.
호메로스
그리스 문학의 최초의 형식은 서사시 epic였으며 이를 대표하는 위대한 시인은 호메로스다. 호메로스는 이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오던 신화들을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로 정리하여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두 작품 모두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트로이 전쟁이 시작된 지 10년째 되던 해의 사건을 취급하고 있는 <일리아드>는 특히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사랑과 분노, 그리고 트로이의 장군 헥토르의 국가에 대한 충성을 다룬 작품이다. <오디세이아>는 전쟁이 끝난 후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귀환하던 중 겪게 되는 10년간의 방랑과 모험, 그리고 20년간 정절을 지키고 있던 부인 페넬로페와 극적 상봉을 줄거리로 하는 서사시다. 이 과정에서 호메로스는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들을 반신의 위치로 격상시켜 보통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운명과 시련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위대함을 그려내고 있다. 이 두 시는 다 용의주도하게 짜여진 플롯, 시적 음악성, 상상력에의 호소, 성격묘사의 박진감 등에 있어서 인류의 영원한 고전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서사시에 뒤이어 리라 lyra라는 현악기에 맞추어 낭송되는 서정시가 헤시오도스에 의해 큰 발전을 보게 되나 아직 서사적인 국민문학 수준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헤시오도스는 농사에 대한 교훈을 담은 <일과 나날>, 그리스 신화에 관한 <신통기>를 남겼다.
사포
대표적인 여류시인 사포는 사랑과 비극적 감정을 심오하고 아름다운 서정시로 썼다. 또 다른 시인 핀다로스는 귀족생활을 시로 표현하고 올림픽 선수들을 찬미하는 송시를 썼다.
3대 비극시인
그리스 인들의 최고의 문학적 성취는 비극에 있었다. 그리스 비극은 기원전 534년경 국가의 번영과 풍요를 기원하는 디오니소스 축제의 일환으로 상연되기 시작했다. 술과 풍요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찬미하던 일종의 종교적 축제가 5세기경부터 본격적인 예술의 성격을 띤 비극으로 발전한 것이다. 초기의 비극은 배우의 대화 부분과 코러스, 그리고 춤이 교대로 이어지는 형식을 취했다. 그리스 비극의 아버지 아이스킬로스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등장하고 있는 <아가멤논>을 포함하는 <오레스테이아> 3부작과 하늘에서 불을 훔치다 인간 세상에 전해준 죄로 제우스의 분노를 사 그 벌로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를 그렸다. 그리스 비극은 소포클레스에 와서 더욱 심화된다. <오이디푸스왕>에서는 저주받은 오이디푸스가 신탁의 내용과 같이 부친을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는 비극적 운명이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가 크레온 왕의 부당한 입법을 반대하여 생매장된다는 <안티고네>는 궁극적으로 숙명적인 인간의 비극을 암시하고 있다. 에우리피데스는 이전처럼 신과 영웅을 주제로 하지 않고 인간적인 욕망과 불타는 복수심이 지배하는 현세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고독한 성격으로 여성을 혐오했던 <오이디푸스 왕>처럼 일방적인 운명의 희생이 아니라 인간적인 사랑과 원한에 얽힌 애증에 기초하는 <메데이아>를 대표작으로 남겼다. 그리스 희극은 아리스토파네스로 대표된다. 그는 <리시스트라테>에서 풍부한 유머와 우스꽝스러운 소동을 통하여 인간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건강한 정신을 잃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외에 이 시대작품으로 <이솝 우화>와 <플루타크 영웅전>이 전해온다.
2, 로마 문학
원래 로마 인은 실질적인 국민으로서 강력한 군대롤 조직하고 치밀한 법률을 제정하여 대제국을 건설했으나 장쾌한 신화세계와 웅대한 서사문학을 만든 그리스 인만큼 예술적 기질이 풍부하지 못했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정복당한 그리스는 오히려 광포한 로마를 문화로써 재정복했다>고 말할 정도였는데, 한마디로 로마문학은 그리스 인들을 모방하는 수준이었다. 로마 인들이 그리스의 선진문화를 모방하려고 노력한 것은 사실이지만 상호의 민족정신이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그리스의 문화 자체가 로마의 것이 될 수는 없었다. 즉 로마의 정신이 그리스처럼 고원하지 못한 것은 로마 인들의 의무와 규율성취를 생활모토로 하는 실용적인 국민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 문학이 시적이라면 로마의 문학은 산문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방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로마문학은 후세 유럽의 문학사상언어 등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어 그리스 문학이 라틴어 번역을 통해서 보존되었기에 유럽사상의 매개체로서의 라틴문학의 역할은 높이 평가될 수 있다. 이러한 라틴 문학사를 기원전 300년부터 기원후 100년까지 3단계로 나누어 관찰할 수 있는데 그 이후는 로마사회의 정치적 불안정과 병행하여 문학도 조락기에 들어선다.
키케로 시대
이 시기는 라틴문학 황금기의 전반부로 이 시기를 대표하는 사람은 로마 최대의 웅변가이자 산문의 대가인 키케로, 서정시인 카툴루스, 정치가이자 산문작가인 케사르 등이 있다. 특히 키케로의 지적 활동영역은 문학비평정치사상과 철학 등에 걸쳐 다양했다. 그의 문체는 르네상스 휴머니스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18세기 영국의 저술가인 기번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의 라틴 어는 아름다움과 고전적 취향으로 인해 <키케로 라틴>이라고 불린다.
아우구스투스 시대
기원전 31년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면서 라틴문학의 진정한 황금기가 도래한다. 아우구스투스 대제는 새 제국에 정치적 안정을 가져오고 시와 산문의 발달에 알맞는 사회적지적 풍토를 이루어놓았다. 로마문학은 서정시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송시나 풍자시를 지은 호라티우스를 비롯하여 오비디우스베르길리우스 등의 일급 시인을 배출했다. 그리스의 호메로스에 필적하는 베르길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의 후원을 받으며 로마의 건국 서사시인 <아에네이스>에서 호메로스의 서사시 전통을 이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가 주인공이 개인의 명예회복을 위해 투쟁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데 반해, <아에네이스>는 미래의 국가건설이라는 보다 원대한 목표를 쟁취하려는 인물로 그려진다. 도시 출신 오비디우스는 그리스로마 신화 중에서 변형(변신)에 관한 내용 246편을 모은 그리스로마 신화집 <변신 이야기>에서 그리스의 서정시인 사포를 계승했다. 로마의 시 이론가인 호라티우스는 그리스의 서정시인 알카이오스와 사포의 시풍을 모방한 풍자와 위트유머가 담긴 서정시를 썼다. 그는 고대의 모범적인 정신에 이성적 규범을 두어 문학에 질서와 조화를 도모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은 시대
이 시기의 문학작품은 이전 시대에 비길 바가 못되고 문학은 점차 쇠퇴했다. 이 시기에 폭군 네로의 가정교사였던 세네카는 철학적 에세이와 비극작품을 저술하여 르네상스 이후의 프랑스영국에 영향을 미쳤다. 이런 흐름을 거쳐 로마문학은 결국 중세 초까지 이어져 내려왔고, 그리스 문학은 전적으로 라틴 전통 속에 포함되어 르네상스에 이르러 재발견되었다. 그후 <고전적>인 전통은 특히 17세기 작가들이 주제와 문체에서 그리스와 로마 작가들을 그대로 본받을 정도로 강력했다. 극, 서정시, 풍자시, 역사, 전기, 산문 등 문학의 모든 주요 분야가 고대 그리스로마 작가들에 의해 이미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후에 발전한 분야는 대부분 이것으로부터 파생된 것에 불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