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2 - 반덕진
제2부. 고전 해제
제1장 서양문학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Brat'ya karamazovy) - 도스토예프스키(F. M. Dostoevskii, 1821-1881)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정신적 탐구과정의 집대성으로, 육욕적인 아버지 표도르와 그의 세 아들인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 그리고 사생아 스메르자코프를 중심으로 부친살해라는 사건을 두고 벌이는 심리적 갈등과, 고난을 통한 인간영혼의 구원문제가 심도있게 그려지고 있다. 인간의 본질과 종교적 문제에 관한 사색을 담은 이 작품에서, 특히 이반과 알료샤 사이에 벌어지는 대심문관 논쟁은 백미를 장식한다. 이 작품은 복잡다단했던 그의 일생에 모처럼 찾아온 평온한 노년에, 일생의 문학적 탐구를 차분히 정리하면서 쓴 것이어서 문학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생애와 작품활동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는 모스크바의 빈민구제 병원의사의 차남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도시적인 환경 속에서 자랐다. 부친은 엄격한 사람으로 몹시 신경질적인데다가, 만성 알코올 중독자였다. 반면 어머니는 남편의 정신적인 학대에도 불구하고, 항상 밝고 명랑한 성품을 잃지 않는 여성으로, 음악과 시에도 조예가 깊었다. 냉엄한 아버지가 군림하는 분위기 속에서, 신. 구약성서에서 발췌한 104가지 이야기 를 교재로 하여, 러시아어의 읽고 쓰기를 가르친 어머니의 자애스러운 모습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년시절에 마음 깊이 새겨져 있었다. 부친이 귀족이긴 했으나, 대지주나 귀족 출신인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와는 달리 집안의 생계는 어려운 형편이었다. 16세 때에는 그의 정신적 안식처였던 모친의 죽음을 당하고, 17세에 육군 중앙공병학교에 입학하여, 재학중 발자크, 위고, 괴테, 호프만 등의 작품을 탐독하였다. 19세에는 부인 사별 후 은둔생활을 하고 있던 부친이 숲 근처의 노상에서 농민들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양친의 죽음으로 도스토예프스키는 심신상실을 수반한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프로이트는 이 사건을 취급하여 도스토예프스키와 부친살해 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논지는 도스토예프스키는 강렬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경향을 가지고 있어서 내심 은근히 부친의 사망을 바라고 있었는데, 그것이 현실화됐기 때문에 자기가 실제의 범인인 양 착각하게 되어, 훗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나타난 낭비벽과 도박병 등의 이상한 행동양식으로 표출되었으리라는 것이다.
오늘날은 당시의 그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의 관념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암시를 해준 것만은 사실이다. 부친의 죽음에 대해 평생 입을 열지 않았던 도스토예프스키가 가장 만년의 걸작인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에서 부친살해에 대한 테마를 취급한 것은, 그의 가슴에 새겨진 손톱자국의 깊이를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특히 이반과 스메르자코프(농노의 뜻)의 관계, 즉 이반의 사주에 의해 스메르자코프가 부친살해의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는 이야기의 설정은, 도스토예프스키와 부친을 살해한 농부와의 공범관계를 시사하여, 그가 의식의 심층에서 부친살해에 가담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24세 때 그는 네베강의 환영 이라는 기이한 체험을 한다. 그것은 창조적 계시의 순간으로, 자신의 내부에서 새로이 탄생하려는 소설의 전모를 일순간에 엿보았던 것인데, 그는 이 계시에 따라 실패한다면 목을 매든가, 네베 강에 몸을 던진다 는 각오로 창작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가난한 늙은 관리와 의지할 곳 없는 불행한 아가씨의 깨끗한 사랑의 이야기인 그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 이 완성되었다. 이 작품을 읽은 그리고로비치, 네크라소프 등이 감동한 나머지 새로운 고골리의 출현을 외치며 성공적인 문단 데뷔를 축하했다. 당대의 평론가인 벨린스키의 격찬이 뒤따라 그의 문단데뷔는 화려한 것이었다. 훗날, 도스토예프스키는 '그것은 내 생애 최고의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나는 유배지에서도 그때의 일을 회상하면 힘이 솟았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나 처녀작의 성공과는 반대로, 이후 발표한 10여 편은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았다. 그후 유토피아 사회주의자 집단인 어느 서클에 참가하였는데, 동료 30명과 함께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사형직전에 황제의 특사를 받아 4년간 시베리아 유형을 떠난다. 이때 죽음에 대한 공포의 체험은 그 뒤의 백치 에서 미슈킨 공작의 입을 통하여 생생하게 묘사되고 잇다. 유배중 러시아 민중들의 정서를 체험하기도 하고, 그곳에서 허용된 책은 신약성서 뿐이었는데, 그는 이 책을 거듭 읽었다. 이로 인해 젊은 시절의 급진주의 사상은 기존질서에 대한 존중과 민중의 메시아적 사명에 대한 믿음으로 바뀌었다. 고통을 통해 세상을 구원한다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러시아 영성주의가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감옥은 굴욕당하고 상처입은 사람들을 더 깊이 연구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풍부하게 해주었다.
1857년 폐병환자인 미망인 마리아와 비참한 결혼, 그후 20세 연하인 아폴리나랴와의 사랑, 잡지사 경영의 실패 등으로, 그는 도피생활을 계속하는 기구한 일생을 보내게 된다. 1871년 유럽여행에서 돌아온 후 10년간은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다. 그의 생애를 통한 사색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을 썼다. 이어서 바로 알료샤가 주인공이 되어 활약하는 속편을 써서 전쟁과 평화와 같은 대장편을 구상했으나, 그의 죽음으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예술적 가치와 심오한 사상을 지닌 세계 최대의 고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죽기 직전에 푸슈킨 동상제막식에서 행한 기념연설은 러시아의 세계적 소명을 힘차고 분명하게 예언함으로써 청중들을 감동시켰다.이것은 불우했던 그의 만년을 보상해준 사건이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과 도스토예프스키
19세기 러시아 문학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가 누군가 하는 문제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사이에서 판가름날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초 러시아의 바이런이라고 일컬어지는, 로망주의 시인인 푸슈킨도 있었다. 그는 러시아 풍경미를 서정시로 묘사하고, 민속담에서 시의 원천을 발견하였다. 일상생활을 주제로 하여 대중의 사랑을 받은 푸슈킨은 소설을 쓰기도 하고 희극을 남기기도 했다. 푸슈킨보다 더 젊은 고골리는 사신 이란 소설에서 러시아의 전원생활을 풍자하였다. 그의 걸작 희곡은 검찰관 이며, 그는 여기서 러시아의 정부와 부패관리를 풍자 비판하였다.
위대한 러시아의 문학은 19세기 중기 이후 투르게네프,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에의해서 창조되었다. 이들의 작품 경향은 로망주의. 리얼리즘. 이상주의가 융합되어 있다고 보는 편이 옳다. 투르게네프는 파리에서 대부분의 생애를 보냈으며, 서양사회에 처음으로 알려진 러시아 소설가였다. 그의 대표작 아버지와 아들은 과학적 사회이념을 가진 젊은 세대와, 현상유지를 원하는 낡은 세대와의 갈등을 묘사한 것이다. 전쟁과 평화 (1862-1869)라는 장편소설에서, 1812년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원정을 다루면서 러시아 사회를 묘사한 톨스토이(1829-1910)는 도스토예프스키에 비해 덜 운명론적이긴 하지만, 역시 강력한 운명 앞의 나약한 인간을 묘사하고자 하였다. 안나 카레니나 에서는 두 연인이 공공연한 관습에 도전하는 비극을 그리고, 결국 세속생활의 허영에서 신비적인 인간애로 위안을 찾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공산적 무정부주의자이며 소박한 생활을 예찬한 톨스토이는 부활에서는 더욱더 사회복음적 설교를 통하여, 문명을 비판하고 단순 소박한 육체노동 생활을 권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적 세계
그는 심리소설의 대가로 비참한 러시아 민중들의 생활을 리얼리즘 수법으로 묘사하였다. 동시에 그는 인간의 영혼이 고통으로 정화된다는 깊은 신비주의적 신념을 표현하였다. 죄와 벌 로 시작되는 그의 후기의 대작은 당시의 정치적. 사상적 문제를 예민하게 반응시키면서, 동시에 인간존재의 근본문제를 제기한점에 그 특색이 있다. 이론적 살인자 라스콜리니코프적인 인간을 그린 죄와 벌, 조화와 화해를 추구한 아름다운 인간 미슈킨 공작의 패배를 묘사한 백치, 네차예프 사건에서 소재를 얻어 혁명의 조직과 사상의 병리를 지적한 악령, 청년의 야심적 형태를 다룬 미성년, 친부 살해범을 주제로 신과 인간의 문제를 정면으로 대결시킨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 각 작품에서 다룬 소재는 각기 다르지만, 내면적인 통일성으로 굳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적 세계 라고 일컬을 수 있다. 기구한 운명, 즉 일생 동안 괴롭힌 불치의 간질병, 사형집행 직전의 특사, 시베리아 유배생활, 광적인 도박병, 빈곤 및 가정불화 등에서도 불굴의 창작력을 발휘하였다. 그의 창작과정은 크게 두 계열로 나눌 수 있는데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죽음의 집의 기록' 까지가 전반기의 계열에 속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전반기의 창작을 통해 주로 학대받는 민중들의 숨은 고뇌와 한숨을 대변하는 인도주의적인 리얼리스트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시베리아 유배에서 돌아온 후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기점으로, 그의 문학은 철학과 사회문제를 다룬 사상소설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의 '죄와 벌'은 이러한 창작경향을 완전히 구상화한 장편소설이었다. 그후 백치, 악령, 미성년 등을 거치는 동안 도스토예프스키의 철학적인 사색. 인간관. 세계관은 더욱 원숙미를 더해갔고, 마침내 그의 최후의 대작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에서 완성의 극치에 달했다.
주요 등장인물
이 작품은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하고 있는 선과 악의 투쟁을 주제로 펼쳐지고 있는데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표도르 카라마조프 : 음탕하고 물욕이 강한 지주로, 한 여인을 두고 아들과 경쟁하다가 그가 낳은 사생아 스메르자코르에게 살해당하는 인물. 드미트리 : 장남으로 거칠고 난폭한 반면, 정열적이고 순진한 면과 직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인물. 이반 : 2남. 허무적이고 철저한 무신론자. 이지적 인물. 알료샤 : 3남. 순진무구하며 신앙적인 인물. 행동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미래의 새로운 세대로 상징되는 인물. 그루센카 : 드미트리가 모스크바에서 데려온 여인으로 드미트리의 마음에 감회되어 그와 결혼하여 살게 되지만 배신당하는 여인. 스메르자코프 : 파블로비치 집안에서 하인으로 생활하다가 자신의 출신에 대해 부란을 품고, 아버지를 살해한 뒤 자신의 뜻과 연결되지 않자 자살하는 표도르의 사생아.
작품의 주요내용
세계 최대의 고전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은 죄와 벌 과 함께 가장 널리 알려진 소설이기는 하나, 그것을 끝까지 다 읽은 우리 나라의 독자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도스토예프스키 특유의 심오한 사상성. 내면세계의 다양성, 인간심리의 부조리적인 갈등 등 그의 문학세계의 난해성이 그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독자는 우선 그 소설의 방대한 규모와 양에 위압당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일단 잡으면, 끝가지 읽지 않고서는 놓을 수 없는 것이 또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줄거리
이 소설의 무대는 러시아의 어느 시골 도시이다. 카라마조프의 집안은 늙은 홀아비 표도르 카라마조프와 그의 자식들, 즉 장남 드미트리, 둘째 이반, 셋째 알료샤, 그리고 사생아 스메르자코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는 그 이전의 어느 작품에서 보다 많은 유형의 상이한 성격소유자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다 같이 각양각색의 인간적인 특질과 본성을 인격화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몰락한 시골귀족의 후예인 아버지 표도르는 방탕한 호색한이다. 독설가로도 유명하고, 선악의 경계를 완전히 초월한 리비도(성애)의 소유자이며 육욕과 물욕의 화신이라 할 수 있다. 장남인 드미트리는 카라마조프 가의 정열 의 세계를 대표한다. 그는 아버지와 비슷한 정열적인 감정과 야성적인 생명력을 물려받고 있지만, 명예와 진리를 존중하는 고상한 일면도 지니고 있다. 둘째아들인 이반은 카라마조프가의 탐욕스런 생명력을 지성의 영역으로 바꾸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모스크바의 최고의 하부에서 교육을 받고 재기발랄한 논문을 발표하고 있는 그는 허무주의적 견지에서 신과 종교를 부정하는 무신론자다. 드미트리가 육체적으로 부친을증오한다면 이반은 이론적으로 증오한다. 셋째아들 알료샤는 신앙심이 강하고 누구에게나 사랑과 동정을 베푸는 착하고 어진 청년이다. 그러나 그의 내부에도 카라마조프적인 피가 흐르고 있음은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아버지와 세 아들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이지만, 그들은 육친에 대한 애정에서 모인 것이 아니라, 유산상속을 둘러싼 분쟁 때문에 찾아든 것이다. 그러나 이 세 아들 중 모스크바에서 찾아온 이반만 아버지의 집에 머물고, 퇴역장교인 드미트리는 밖에 숙소를 정한다. 한편 견습 수도생으로 수도원에 들어가 기거하고 있는 알료샤는 조시마 장로 밑에서 참된 신앙의 길을 배우고 있다. 이 집안의 사정을 어둑 복잡하게만드는 것은, 부친 카라마조프와 백치나 다름없는 여인과 사이의 사생아인 간질병 환자 스메르자코프가 하인으로 이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메르자코프는 자기자신의 저주스러운 출생을 원망하면서 세상을 분노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이 가족의 운명은 단지 이 소설의 중심을 이루고 있을 뿐, 이 광대하고 감동적인 작품 속에는 그밖에도 수많은 모티브와 테마가 교향악처럼 조화되어 부수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드미트리와 이반은 자기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증오라는 공통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루센카라는 여자 때문에 질투에 불타는 드미트리는 공공연히 아버지를 죽인다고 협박한다. 한편 보다 교묘한 수단을 취하는 이반은 스메르자코프에게 모든 것은 허용된다는 사상을 불어넣고 반쯤 의식적으로 이 탐욕스런 노인을 죽이도록 교사한다. 드미트리가 그루센카를 찾아헤매던 어느날 밤, 스메르자코프는 정말로 카라마조프 노인을 살해한다. 드미트리는 마을의 술집에서 그루센카와 함께 한창 흥겹게 소동을 벌이고 있던 한밤중에 체포된다. 그러나 이반은 아버지를 죽인 진범이 드미트리가 아니라 자기가 교사한 스메르자코프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한편 스메르자코프는 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이반에게 고백하고, 목을 매 자살한다. 이반은 법정에서 드미트리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드미트리는 오판에 의해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받는다. 드미트리는 자신이 실제 살인자는 아니지만 마음속으로 언제나 살해하리라는 생각을 한 것은 사실이므로 자기의 죄를 인정하였다.
대심문관 논쟁
이상이 외면적인 줄거리이나, 작품의 내면적인 줄거리는 알료샤를 둘러싸고 조시마 장로와 이반 사이에 전개되는 크리스트교와 무신론의 사상적 대결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논리와 이성으로 신을 거부하는 이반에게 조시마 장로는, '우주의 비밀은 머리가 아닌 가슴과 감정, 그리고 믿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 설득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핵심은 이반의 극시 대심문관에 있다. 목로주점에서 알료샤와 자리를 함께한 이반이 이 극시를 읽는 것으로 되어 있다. 카톨릭의 이단심문이 가장 전성기를 이루던 15세기, 스페인의 세빌랴 마을이 그 무대다. 이단자들을 화형에 처하는 광장에 홀연히 그리스도가 강림한다. 대심문관의 명령으로 그리스도는 체포되어 투옥된다. 그날 밤 대심문관은 왜 우리를 방해하러 왔는가? 하고 힐난한 뒤 그리스도가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물리쳤다고 비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주제는 마태와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가 악마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는 문제이다.
"당신은 양심의 자유를 위해 빵을 거절했기 때문에, 인간은 빵을 곁눈질하며 시비와 선악의 판단에 괴로워해야만 하게 되었다. 또한 당신은 자유로운 신앙 때문에 기적을 거부했는데, 그것 때문에 인간은 기적과 더불어 신도 거부하고 말았다. 그리고 당신은 지상의 권력을 거절했는데, 지상의 인류가 추구하는 것은 하나의 권력 아래 전 세계적으로 결합하여 평화와 행복의 왕국을 지상에 건설하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가 인간을 너무 높이 평가하고 인간에게서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인간에게 부여한 자유, 즉 선악 선택의 자유는 인간의 의식으로는 무거운 부담이어서, 이것은 축복이 아니라 크나큰 재앙이라고 본다. 그래서 화형에 처하겠다고 규탄한다. 이 대심문관의 규탄에 대해 그리스도는 한마디 말도 없이 시종 침묵을 지킨다. 그리고 마지막에 말없이 대심문관에게 입맞춘다. 이러한 이반이라는 인간의 이름에 의한 그리스도의 말에 대해서 알료샤는 당신의 극시는 그리스도의 찬미이지 결코 비방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 이 대심문관은 빵과 자유의 문제, 신앙과 이서의 문제, 정치권력의 문제 등 지상에서의 인간성의 역사적 모순 전체를 포함시키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여기에 신에 대한 반역의 근거가 있다. 그러나 알료샤의 말처럼 작가는 자유스러운 양심의 선택과 하나님 앞에 홀로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하려 한 것이다.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이상에서 본 것처럼 이 작품은 음탕한 아버지와 그의 네 아들을 중심으로 아버지와 아들, 형과 아우의 애욕의 갈등을 묘사하는 한편, 이반과 조시마 장로 사이에 벌어지는 사상의 갈등을 전개한 소설이다. 심리적인 깊이에다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비극성, 신에 대한 대담한 저항과 사회생활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
그리스도의 주제
부친의 방탕무비한 생명력이 맏아들에게는 무절제한 정열과 감정적인 충동으로, 둘째에게는 왕성한 지적 욕구로, 셋째에게는 종교적 감정으로 변형되어 나타나는데, 그들의 내재적인 본성인 카라마조프시치나(카라마조프적 기질: 인간의 도덕적 완성을 방해하는 본능)에 항거한다. 이러한 카라마조프적 기질인 탐욕과 조소는 3형제가 각각 가지는 정열. 이지. 신성의 세계에서 선악의 투쟁 으로 나타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최후의 작품에서 추구하려고 한 내면적 주제가 현대의 그리스도 였다는 점은 거의 확실한 것 같다. 이 주제는 그가 평생을 두고 추구해온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도 이상으로 아름답고, 깊고, 자비롭고, 총명하고, 용기있고, 완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령 그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는 진리의 밖에 있다고 말할지라도 나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머룰러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 시베리아 감옥에서 나온 직후 작가는 이렇게 고백했다. 결국 이 작품은 끊임없이 작가의 머릿속을 자리잡고 있던 문제, 곧 인생의 부조리 때문에 신을 거부하는 러시아의 무신론적 지식인들과 대결하여, 그것을 초월하고 극복하는 인물을 창조하는 것이 그의 의도였던 것 같다.
부친살해
그리스도의 주제와 더불어 도스토예프스키의 평생의 십자가로 되어온 것이 부친살해의 주제다. 아내의 죽음으로 시골에 은거하며 14~5세 소녀들을 차례로 임신시켜, 마을 주민들에 의해 살해된 부친의 치욕적인 죽음은 작가의 가슴에 평생토록 지울 수 없는 멍에로 남았다. 이 작품의 중심 주제의 하나인 부친살해의 테마가 우연히 떠오른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고정 관념처럼 그의 내부에 응고되어 있었던 것이다. 흔히 도스토예프스키의 리얼리즘을 환상적 리얼리즘 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그의 리얼리즘이 보통 리얼리즘과는 달리, 보다 고차원의 현실, 즉 정신적 세계의 현실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러시아 최초의 도시작가 출신이며 직업작가였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둠이 깔린 러시아의 고뇌와 인간의 내면세계에 깃들인 비밀의 곡절을 투시하고, 동포의 내적 번뇌와 눈물을 그린 인도주의적 리얼리스트였다.
영향
도스토예프스키가 유럽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그는 유럽 전역에 여러 가지 문학조류를 불러일으켰고 수많은 작가들이 그를 모방했다. 특히 인간존재의 부조리 속에서 실존을 추구한 그의 실존주의적 발상은 프랑스 실존주의에 영향을 주었고, 헤르만 헤세, 츠바이크, 앙드레 지드 등도 그에 대해 미신적인 존경을 표했다. 영국의 한 평론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을 아편 이라고 평한 바 있다. 한번 그의 문학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좀처럼 발을 빼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그것은 문학의 한계를 초월한 형이상학적 문제들, 예를 들면, 신과 인간, 신앙과 불신, 복종과 반역의 갈등 속에서 몸부림치는 주인공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실존의 부조리, 출구 없는 현실에 고민하는 현대인의 산 초상을 보기 때문이리라. 인간의 부조리와 불합리 속에서 숨은 진리를 발견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사상가적 면모가 있고, 예언자적 현대성이 있다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