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2 - 반덕진
제2부. 고전 해제
제1장 서양문학
파우스트 (1부) (Faust) -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괴테 개인의 성장사일 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의 보배인 이 작품은, 괴테가 젊은 질풍노도시대로부터 출발하여 고전주의를 거쳐, 만년의 종합적 완성기에 이르는 전 생애를 담고 있다. 즉 괴테 자신의 모든 인생체험과 사상을 바탕으로 인간존재의 방황. 갈등. 구원 등의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거대한 노력의 산물로, 이 작품의 메시지는 인간은 자기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방황하지만, 이것을 계속하는 한 결국에는 하늘에 의해 구원된다는 그의 종교관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인간영혼의 구원과 구원을 향한 구도자로서의 괴테의 총체적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생애와 작품활동
여기 인간다운 인간이 있다. 이 말은 나폴레옹이 괴테를 만나고 난 후 한 말이다.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영원한 로맨티스트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신성 로마제국의 추밀원 고문관을 지낸 부친에게서 엄격한 기풍을, 프랑크프르트 시장 딸인 모친에게서 상상력이 풍부한 예술가적 성격을 이어받았다. 또한 부유한 상류가정에서 철저한 교육을 받아 뒷날 천재적 대성을 이룰 바탕을 마련하였다. 부모의 나이 차이는 21년이었고, 괴테는 학교가 아닌 아버지한테 교육을 받았다. 15세에 그레첸이라는 소녀와 첫사랑을 경험한 이후 생애 동안 9명의 여성과 애정관계를 가졌다. 라이프치히 대학 법대 재학시절에는 미술과 문학에 심취하여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겼으며 1768년 중병에 걸려 고향에 돌아왔다. 요양중 46세의 경건주의적 신앙이 두터운 노처녀인 클레텐베르크를 만났고, 건강을 회복한 그는 슈트라스부르크로 유학, 학위를 받았다. 여기서 5년 선배인 헤르더를 알게 되어, 민족과 개성을 존중하는 문예관의 영향을 받아 후일 슈트품 운트 드랑(질풍노도) 문학운동의 기초가 되었다. 이때 순진한 목사의 딸인 브리온과의 연애는 숱한 새로운 사상의 원천이 되었으나, 괴테는 이상한 강박관념에 쫓겨 연인을 버린다. 이것은 괴테의 가슴에 언제나 지워지지 않고 남아, 그의 시작의 테마가 되었다.
1771년 변호사 자격증을 얻었고, 이즈음 베츨라르에서 샬로테 부프라는 여인을 알게 되었는데, 이 여인은 이미 약혼자가 있어 이들의 사랑은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막을 내린다. 직후 그의 친구인 빌헬름 예루살렘이 유부녀와의 사랑 끝에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 두 사건을 혼합시켜 주인공 베르테르가 이미 약혼자가 있는 여인을 사랑하다가 실패하고 결국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으로, 전 유럽의 독서계를 강타했다. 이처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도 있지만, 질풍노도라는 문학운동의 시발로서 큰 문학적 의의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75년초 괴테는 셰네만과 사랑하여 약혼까지 했으나, 곧 파혼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초청되어 그곳에 갔는데, 결국 이곳이 그의 평생 안주지가 되었다. 이곳은 인구 10만에 지나지 않는 소국이었으나, 문화에 대한 의욕과 학문적 분위기가 가득 찬 곳이어서, 영주의 고문관이 되어 많은 치적을 쌓았다. 이즈음 괴테는 슈타인이라는 부인을 만난다. 26세의 괴테에 비해 33세인 그녀는 괴테의 누나이자 연인이고, 조언자였다. 이미 7자녀를 둔 그녀와의 사랑은 지금까지의 어느 사랑과도 달랐으며, 이들의 관계는 괴테의 질풍노도적인 격정을 진정. 순화시켜 질서를 존중하는 고전주의로 향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10년에 걸친 바이마르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이탈리아로 떠났다. 이탈리아는 그에게 고대예술과 고대인의 생활이 어떤 것인가를가르쳐주었다. 한편 그는 독일의 동시대인과의 연대를 상실해갔다. 괴테는 독일에 대해 냉정한 태도로 임했다. 동시대인도 괴테를 백안시했다. 요컨대 이탈리아는 괴테를 독일로부터 격리시킨 것이다. 1788년에 크리스티아네를 만나 결혼, 자녀도 두고 비로소 가정의 행복을 맛보았다. 1794년부터 시작되는 실러와의 교우관계는 침체했던 그의 창작활동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괴테가 직관적이고 소박한 데 비해, 실러는 사변적이고 의식적이었다. 이처럼 정반대의 기질을 가진 이 두 천재의 협력은 독일문학사에 새로운 고전주의시대를 초래했다. 특히 파우스트 (1부)와 빌렐름 마이스터는 실러의 격려가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쉴러가 타계했을 때 괴테는 내 존재의 절반을 잃었다 면서 탄식했다.
1816년 아내가 죽었으나, 70이 넘은 괴테는 심신의 쇠약을 보이지 않고 그 정신적 시야는 점점 확대되었다. 74세 때 19세의 꽃다운 처녀 레베초를 만나 열렬히 구애했으나 거절당했는데, 그가 만년에 쓴 마리엔트바의 비가는 이 사랑을 표현한 서정시의 백미다. 1829년에 빌헬름 마이스터를 완성했고, 23세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무려 60년이나 걸린 생애 최고의 대작인 파우스트 (2부)를 1831년에 완성했다. 그는 혁명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으나, 인류의 진보와 행복에 대해서는 정열을 바쳤으며, 낭만주의의 병적 경향을 싫어하여 고전주의로 전향하였으나, 만년의 작품에는 다분히 낭만적 요소가 실려 있다. 요컨대 괴테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금욕주의자도, 신비주의자도, 성인이나 은자도 아니며, 돈 주앙과 같은 호색한도 아니다. 다만 그는 절제된 감성적 인간 의 지고한 단계에 이르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분투했던 것이다.
파우스트의 전설
파우스트는 비극 제1부(1806)와 비극 제2부(1831)로 구성되어 있다. 이 희곡의 소재는 파우스트 전설에서 유래했다. 원래 15세기 말에 살았다는 학자 파우스트의 이야기가 각 지방에 여러 형태로 전해내려오던 것을 16세기 말 영국의 작가 말로가 연극화하면서부터 널리 민중극과 인형극으로 퍼졌다. 그는 약간의 과학적 지식을 이용한 마술사로 각지를 유랑한 인간인데, 여기에 갖가지 마술사 전설이 부가되면서 소위 파우스트 전설 이 등장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모든 학문을 섭렵하고도 만족을 얻을 수 없었던 파우스트는 마력의 힘을 빌어 천지의 신비를 캐고 거부를 얻으며 향락을 맛보면서 잠시만이라도 신과 필적하는 자가 될 것을 염원하여 악마와 계약을 체결한다. 계약에 따르면 24년간은 악마가 그에게 봉사하지만 이 기간이 지나면 반대로 파우스트를 악마가 마음대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부터 파우스트는 악마를 따라 여러곳을 구경하고, 마법의 힘으로 여러가지 향락을 맛보며, 공작의 궁전에 살면서 죽은 사람을 살리고 공작부인을 유혹하기도 하지만, 결국 마음속으로부터의 만족은 얻지 못한다. 회개할 생각이 든 그가 신에게 간구하려 하였으나, 그때는 벌써 계약기간이 지나 폭풍이 휘몰아치는 밤에 그는 악마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마치고 영혼은 지옥에 떨어진다는 내용이다.
이상과 같은 전설이 비로소 저서 형식으로 나온 것은 1587년. 괴테의 고향인 프랑크푸르트의 서점인 쉬피스에서 간행한 것인데, 이것이 영역되어 영국의 배우 겸 극작가였던 말로의 눈에 띄어, 포스타스 박사의 비화 라는 비극이 탄생하였다. 이것이 영국 여행자에 의해 독일에 역수입되어 민중극과 인형극으로 공연되기에 이른 것이다. 소년시대에 이미 인형극이나 민중극을 통해 파우스트의 전설과 친했던 괴테가 자신도 파우스트 를 써보기로 결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주요 등장인물
노력하며 방황하는 인간의 구원을 그린 이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파우스트 : 16세기의 전설적인 마술사, 학자, 지칠 줄 모르는 인생 탐구자. 제1부에서는 학문에 대해서 절망을 느끼고 사랑에서 보람을 찾는다. 제2부에서는 미와 행위의 단계를 체험하고 승천한다. 메피스토펠레스 : 파우스트 전설의 악마. 파우스트의 길동무가 되어 그의 영혼을 빼앗으려고 한다. 중간 무렵에 추하게 생긴 마녀 포르키아스가 된다. 바그너 : 파우스트의 심부름꾼으로 공부를 하는 심리주의자. 제2부에서는 대학자가 된다. 마르가레테(그레첸) : 청순하고 매력적인 서민의 딸. 헬레네 : 그리스의 최고의 미인. 파우스트와 결혼한다.
작품의 주요내용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존재다. 참된 인간은 잠시 어두운 충동에 동요할지라도, 옳은 길을 망각하지 않는 법이다. 항상 노력하는 자는 구원받을 수 있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파우스트 는 비극 제1부(1806)와 비극 제2부(1831)로 구성된 총 1만 2천여 행의 극시이다. 그 제1부만 놓고 본다면 다른 명작이나 다름없다. 파우스트의 사상적 고민, 거기서부터 자연과 인간생활에의 탈출, 그리고 그 유명한 그레첸의 비극 의 사랑체험 등 작은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제2부가 되면 거대한 세계의 체험이 되면서 무대는 더욱 확대되는 것이다. 제1부의 그레첸의 비극에 대응하는 헬레나의 비극을 거쳐, 파우스트는 드디어 간척지를 개간하여 이상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2부는 너무 난해하여 작가자신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썼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 작품은 천상의 서곡으로 시작된다. 분량은 짧지만 작품 전체의 형이상학적 의미를 요약하고 있어 중요하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주님 앞에 나타나, 신의 걸작인 인간도 대단한 것이 못되며 허락만 한다면 신의 종인 파우스트마저 신에게서 뺏을 수 있다고 장담한다. 이 말에 신은 그가 지상에 살고 있는 한, 네가 무슨 짓을 하든 말리지 않겠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것이다'라면서 파우스트를 유혹해도 좋다고 허락한다. 의기양양한 메피스토펠레스는 '그 친구에게 쓰레기를 먹일 것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파우스트에게 무가치한 향락으로 유혹하여, 그의 영혼을 지옥에 떨어뜨리겠다는 것을 의미한다.만물의 주인인 신이 왜 신의 위업을 부정하는 악마의 존재를 인정하는가 하는 문제도 여기에서 설명된다. 인간의 활동은 원래 이완되기 쉬운 것이어서 무제한의 휴식을 바란다.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매개물을 내세워 그들을 자극하고 재촉하는 악마로서의 일을 시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천상에서의 신과 악마와의 내기 대화를 통해, 인간의 욕구는 일시적으로 잘못을 낳을 수 있지만, 결국에는 신이 다스리는 세계의 질서와 조화하게 된다는 괴테의 낙관적인 신념을 드러내고 있다.
제1부
제1부의 막이 오르면서 하늘 위에서의 내기 따위는 전혀 모르는 파우스트 교수가 서재에서 독백하는 장면이 시작된다. 아! 어느새 나는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게다가 쓸데없는 신학까지도 속속들이 연구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 가엾은 바보꼴이구나, 그렇다고 예전보다 똑똑해진 나라는 인간은 조금도 현명해지지 않았다. 그는 우주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인간의 지혜가 미칠 수 있는 모든 학문에 통달하였으나, 이에 실패했음을 한탄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우주와 인간존재의 규명에 대한 학문적 노력에 회의를 느끼면서 새로운 충동을 느낀다. 즉 천국에 올라가고 싶은 욕망과 땅 위의 쾌락에 빠지고 싶은 욕망으로 번민한다. 그때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나 그를 땅 위의 쾌락으로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파우스트는 악마와 목숨을 건 계약을 맺고 정욕의 세계로 빠져든다. 악마는 그의 종이 되어 그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되, 만약 파우스트가 향락에 빠져서 정진을 그만두고 거기에 만족해버리면 그 순간에 그의 영혼을 빼앗아도 좋다는 것이었다. 즉 내가 어느 순간을 보고,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하고 말하면, 너는 나를 꽁꽁 묶어도 좋다. 그대로 나는 망해도 좋다. 고 파우스트는 약속한다. 이리하여 파우스트를 타락시키고 그 영혼을 앗아가려는 악마와, 오히려 그 악마를 노예처럼 부리며 넓은 세계를 마음껏 체험하고 학문으로써 도달치 못한 우주의 근본이치를 규명해보려는 파우스트는 인생수업의 길을 떠나게 된다.
악마의 힘으로 젊어진 파우스트는 순수한 처녀인 그레첸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것은 악마의 예상과는 달리 너무도 진실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이 진정한 사랑을 통해, 지식보다 중요한 삶의 의미와 행복을 깨닫게 된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내면에 잠재해 있던 사랑의 정열을 그레첸을 통해서 깨닫게 되고, 자아세계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다. 그녀의 절대적 헌신성과 숭고한 사랑을 경험하면서 진정한 사랑을 인식하게 되고 보다 높은 차원으로 비상하는 계기를 맞게 된다. 악마의 농간으로 파우스트는 그레첸과 육체관계를 맺게 되고, 그레첸은 임신하게 되어 사생아를 살해한 죄로 감옥에 갇힌다. 파우스트는 그레첸에게 함께 도망가자고 설득하지만, 그녀는 이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린다. 하늘로부터 그 소녀는 구원되었다. 는 소리가들리고, 승천하는 그레첸은 하인리히! 하인리히! 하고 파우스트를 부른다. 이러한 그레첸의 구원은 인간의 어떠한 죄도 진실한 인간성과 양심으로써 정화될 수 있다는 괴테 특유의 종교관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이렇게 해서 제1부는 막을 내리고, 파우스트와 그레첸의 영원한 인간적인 사랑이 다음 제2부의 마지막에서 파우스트를 궁극적으로 구원하는 열쇠가 된다.
제2부
제2부는 5막으로, 제1부에 비해 내용이 훨씬 복잡하다. 제1부가 주인공의 가슴 속에 사는 두 영혼의 상극, 사랑의 기쁨과 거기에 유래하는 죄라는 개인적 체험(소세계)을 주요 테마로 하고 있는 데 비해, 제2부에서는 주인공의 개인적인 세계가 아닌 넓은 외부세계(대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성장해가는 도정이 그려진다. 파우스트와 악마는 신성로마제국의 궁전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파우스트는 재정난에 빠진 로마제국을 위해 지폐를 마구 찍어내게 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황제의 궁정에서 영화를 누리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황제는 파우스트를 현자로 믿고, 그리스의 대표적 미남미녀인 파리스와 헬레네를 불러내보라는 분부를 한다. 이에 따라 파우스트는 악마와 상의하여 우주의 끝에 가서 헬레네의 형태만을 불러온다. 헬레네를 사랑하게 된 파우스트는 그녀를 소생시키기 위해 고전미의 세계인 그리스로 간다. 이 장면에서는 특히 괴테의 해박한 지식과 기발한 상상력이 종횡무진으로 발휘되고, 전대미문의 스펙터클이 벌어진다. 이곳의 묘사는 극의 진행과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괴테의 세계관과 그리스의 미의 발생과정이 엿보인다.
드디어 현실의 연인이 된 헬레네는 파우스트와 결혼하여, 그들 사이에 오이포리온이 태어난다. 이 오이포리온은 영국의 천재시인 바이런을 암시하고 있다. 이 아이는 즉시 날 수 있게 된다. 자, 저를 뛰어오르게 해주세요, 아무리 높은 공중에서라도 치솟고 싶은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벌써 그런 소원에 사로잡혀버렸어요 하며 하늘 높이 날아다니다가 그리스의 이카루스처럼 언덕에 떨어져 죽는다. 오이포리온의 죽음을 계기로 파우스트와 헬레네의 사랑도 끝을 고한다. "행복과 아름다움은 줄곧 합쳐 있을 수 없다는 옛말이 섭섭하게도 이 한 몸으로 증명되었습니다" 라고 헬레네는 말한다. 그리고 그 여자의 육신은 사라지고 의상과 면사포만 그의 팔에 남는다. 그러나 고전주의적 세계의 방문으로 이상이 풍부해져서 돌아온 파우스트는 미적 탐닉으로 이루지 못한 만족을, 인류사회의 공익을 위한 자신의 헌신적 노력으로써 얻으려 한다. 이 지구에는 아직도 위대한 일을 할 여지가 남아 있어. 놀랄 만한 일을 해내겠다. 사업이 전부일 뿐 명성은 허무한 것이다 고 말하며 건설사업에 착수한다. 그는 황제로부터 광대한 습지를 받아 개간하여 만인을 위한 옥토로 만들어보려는 의욕에 불탄다. 그리하여 그는 자유로운 민중과 함께 자유로운 토지에서의 삶을 꿈꾸고 전력을 다해 노력함으로써 지상에서의 정신적 만족을 얻는다.
100세가 된 파우스트는 요녀가 뿜어낸 입김으로 눈까지 멀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되지만, 마음의 눈은 더 밝아져 그때야 비로소 인생의 참된 의의를 발견한다. 이제 곧 완성될 새 땅에 오곡이 무르익고 만백성이 살아갈 모습을 상상하고 행복한 예감에 싸여, 자유도 생명도 싸워서 차지하는 자만이/그것을 무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나는 그러한 인간의 집단을 바라보며/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함께 살고 싶은 것이다/그렇게 되면 나는 순간을 향하여 이렇게 부르짖어도 좋을 것이다/ 멈추어라, 순간이여, 너는 진정 아름답구나! 라고.
하고 숨을 거둔다. 악마는 당연히 파우스트의 영혼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코 파우스트가 악마의 유혹에 빠져 향락이나 물질적 만족을 얻은 것이 아니라, 최후까지 시련을 잘 이겨낸 것이다. 그래서 그의 영혼은 구원될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때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와, 항상 노력하는 자는 우리가 구원할 수 있다 고 약속하며 파우스트의 영혼을 악마로부터 보호하면서 그의 시체 위에 꽃송이를 뿌린다. 그러나 인간영혼의 궁극적 구원은 자력으로서는 한계가 있고, 천상의 은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괴테의 구원관이었다. 그의 영혼이 천국에 오르기까지에는 하늘로부터의 은총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때 속죄하고 있던 옛 애인이자, 단테에게 있어 구원의 여인상인 베아트리체에 해당하는 그레첸이 파우스트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성모 마리아에게 은총을 빈다. 성모는 그 기원을 들어주며 자, 이리 오너라, 보다 높은 하늘로 오르라! 그 사람도 너인 줄 짐작하면 따라오리라! 고 말한다. 뒤이어 영원히 여성적인 것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는 신비의 합창으로 장편시극 파우스트는 막을 내린다.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세계문학사의 거인 괴테는 유럽인으로서는 마지막으로 르네상스 거장다운 다재다능함과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 인물이다. 그는 80년의 생애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서 신의 경지를 넘나들었고, 사랑이나 슬픔에 기꺼이 그의 존재를 내맡기곤 했다. 내적 혼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일상적인 생활규율을 엄수하면서도 삶. 사랑. 사색의 신비가 투명할 정도로 정제되어 있는 마술적 서정시들을 창조하는 힘을 잃지 않았다. 마침내 그에게는 원하는 대로 창조력을 샘솟게 하는 자신조차도 신비스럽게 여긴 재능이 생겨나, 60년 가까이 노력해온 작품을 완성하게 되었다. 죽기 불과 몇달 전에 완성한 파우스트의 마지막 2행 "영원히 여성적인 것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인간존재의 양극성에 대한 작가자신의 감성을 요약한 말이다. 여성은 그에게 있어 남성의 영원한 인도자요, 창조적 삶의 원천인 동시에 정신과 영혼의 가장 숭고한 노력의 구심점이었다.
파우스트적 인간
중세에 신에게만 향해졌던 사랑과 정열이, 르네상스 이후로 인간적이며 지상적인 것으로 지향하게 된다. 나아가 인간은 자연계의 비밀을 끝까지 탐구하려 하였고, 정신면이나 물질면에서 인간성을 확장하여 그 해방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간은 만족을 모르고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데, 이런 인간을 가리켜 파우스트적 인간 이라 한다. 괴테는 이러한 파우스트를 영원히 생성. 변화되어가는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당시 유행했던 인본주의적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아 인간은 무한히 노력하고 발전할 수 있으며, 그러는 한 인간은 구원된다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파우스트의 형상속에 인간존재의 본질적인 사랑의 모티브를 적용시켜 인간한계의 극복과 구원의 문제를 제시했던 것이다. 자기의 영혼을 최고의 향락, 최고의 지식과 맞바꾼 전설의 파우스트 박사가 분에 넘친 욕망 때문에 파멸한 비극적 운명의 어두운 이야기를, 괴테는 밝은 빛으로 다시 조명하여 무한한 높이를 찾아 인간능력의 한계에 도전하며, 고난 속에서 정진을 계속하는 진취적 인생의 드라마로 바꿔놓고, 여기에 청순한 처녀 그레첸의 참사랑과 고전적인 헬레네의 이야기를 곁들여 근대문학의 최고 걸작품을 탄생시켰다.
이 작품은 심오한 깊이와 서로 뒤섞여 진행되는 구성으로 작품해석이 어려워, 오늘날까지 작품평가가 극히 어려운 상태이나, 문학언어의 가능성을 전대미문의 방식으로 완벽하게 보여준 극이라는 점에서는 비평사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신의 은총에 의한 인간구원
그러나 독자들은 악마에게 혼을 판 파우스트가 어떻게 구원될 수 있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결국 이 작품에서 파우스트의 영혼구원의 문제는 대두될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대해 만년의 괴테는 파우스트를 천상으로 인도하는 천사들의 노래인 "영의 세계의 귀하신 분이/악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언제나 노력하며 애쓰는 자를/우리는 구할 수가 있습니다/게다가 이분에겐 천상으로부터의/사랑의 은혜가 관여하여 왔으니/축복받은 사람들의 무리가 진심으로 환대할 것입니다"의 구절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시구 속에 파우스트 구원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있다. 파우스트 그 사람 속에는 점차로 높은 차원에 올라가 순수하게 되는 활동이 마지막 날에 이르기까지 행해지고, 또 하늘로부터는 그를 도우려고 하는 영원한 사랑이 내리고 있다. 그것은 우리들의 종교적 관념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고, 그것에 따른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하늘의 은총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은총이 내려질 때 그것이가능해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