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2 - 반덕진
제2부. 고전 해제
제1장 서양문학
적과 흑(Le Rouge et le Noir) - 스탕달(Stendhal, 1783~1842)
1830년의 연대기 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프랑스의 1830년 7월 대혁명 직전의 지배자 교체에 따른 격동의 시대에, 한 평민 청년의 야심을 통하여 귀족. 승려. 대부르주아의 3자가 서로 세력 다툼을 벌이는 사회의 반동성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심리학과 역사철학의 연구서다. 주인공 쥘리맹 소렐이 가진 야심의 좌절과 옥중에서 성취되는 그의 내면적 구제를 통하여 역사를 통찰하는 작가의 리얼리즘과 그 역사를 넘어서는 낭만주의가 명확하게 표현되고 있다.
생애와 작품활동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 살았노라, 썼노라, 사랑했노라. 전자는 로마의 영웅인 시저가 소아시아를 점령하고 로마에 보낸 전보의 내용이고, 후자는 스탕달의 유언에 따라 몽마르트 언덕의 묘비에 새겨져 있는 그의 묘비명이다. 스탕달은 19세기 전반기 프랑스 소설가로서, 발자크와 함께 근대소설의 개조로 불리며, 문필활동 외에도 나폴레옹 시대에 군인. 외교관을 지내고 수많은 연애편력으로 점철된 그의 생애는 파란이 많았다. 본명은 마리 앙리 베일레. 그는 부유한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다. 소년 베일레의 정신생활은 매우 특이해서, 어머니를 열애했고 아버지를 증오했다. "어머니는 매력적인 사람이었고,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우리의 키스를 방해하러 올 때는 몹시 얄미웠다" 는 자서전의 한 구절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어머니를 7세 때 잃었다. 아버지와 그 친척인 셰라피 아주머니, 가정교사였던 랠란 신부 등 세 폭군을 평생 동안 싫어한 반면, 외가 쪽 사람들은 좋아했다. 특히 그가 진정한 아버지 로 생각했던 외조부는 그에게 18세기의 합리주의적 사상을, 외숙부는 돈 주앙적(쾌락주의적)인생관을, 외종 조모는 고매한 영웅주의를 심어주었다.
그는 17세에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원정군에 참가하여, 그곳에서 자유와 사랑. 쾌락. 미와 음악을 알았다. 이때부터 이탈리아는 그의 정신적 고향이 되었다. 그는 19세부터 문학수업에 정진, 22세부터는 여배우 멜라니와 동거하면서 수입 식료품상의 점원, 27세에는 나폴레옹 제정에 참가, 29세에는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원정에 종군, 나폴레옹이 몰락한 31세부터는 문필생활로 생계를 유지하는 휴직 군인, 38세에는 사랑에 빠지나 계속적인 실연, 43세에 작가생활, 48세에 다시 관직으로 들어가 이탈리아 주재 프랑스 영사를 지내는 등 다채로운 경력을 소유했다. 35세에 달게 된 메틸드 덴보스키는 생애 최고의 애인이었지만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경험으로 연애론 을 탄생시킨다. 1814년(31세),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실직한 그는 이탈리아로 이주하여 문필활동을 계속한다. 1821년 이탈리아로부터 추방당하여 영국을 여행하고 파리로 돌아온다. 영국여행에서 셰익스피어의 문학을 발견한 것은 큰 소득이었고, 파리에서는 사교계에 출입하여 르라크루아, 메리메 등과 사귀었다.
왕정복고하의 파리에서 그는 실의에 빠진 문단의 방랑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 동안 몇몇 작품을 쓰지만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적과 흑(1830)은 그의 대표작이었지만, 발자크와 소수의 독자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냉담한 반응이었다. 기나긴 불우한 생활이 끝나고, 1830년 7월혁명과 더불어 반동정치가 붕괴됨에 따라 그는 오랫동안 숙원이던 외교관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진보사상과 자유주의는 곧 오스트리아 당국의 경계를 받게 되어 이탈리아 통일운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협의로 축출되었다. 그후 10년 동안을 교황령의 소항구인 치비타 베키아 영사로 주재하면서 권태롭기 이를 데 없는 세월을 보냈다. 차츰 노쇠를 자각하고 고독을 느끼기 시작하여 몇 차례에 걸쳐 결혼을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한 권태기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가끔 파리로 돌아오거나, 영국여행을 하며 에세이류를 집필했다. 1839년 단시일에 명작 '파름의 수도원' 을 탈고했는데, 그는 생전에 문명을 떨치지는 못했지만, 단 두 편의 소설로써 백 편이상을 쓴 발자크와 비견할 만한 자리를 문학사에서 차지하게 되었다. 오히려 20세기에 들어오면서는 위고, 발자크보다 더 많은 애독자를 가졌고, 보다 더 현대인에 가까운 선구적인 천재로서 각별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그는 동시대의 냉담과 몰이해에 대해서 끝까지 경멸했으며, 자신의 굳은 신념을 잃지 않았다. 친구가 많지는 않았지만 메리메는 시종일관하여 그를 높이 평가하였고, 특히 1840년에 발자크는 스탕달을 찬양하는 기사를 발표하여 문인으로서 불우했던 그에게는 더없는 위안과 기쁨을 주었다. 그러나 괴팍하고 자존심이 강한 그도 만년에 이르러서는 연애와 방랑 속에서 추구하던 행복의 획득에도 지치고, 고독의 무게를 덜 길이 없어, 자기가 기르던 두마리 개에게 애정을 쏟으며 삭막한 만년을 담담하게 살아갔다. 1841년 요양차 파리에 머물다 이듬해 거리에 쓰러진 채 사망, 몽마르트르 언덕에 안장되었다. 사망 당시 주머니 속에는 나는 백년 후에나 유명해질 것이다 라는 유서가 들어 있었다. 그의 예언대로 당시 언론은 그의 죽음을 철저하게 외면했으나, 19세기 말에 와서 어느 날 갑자기 세인들은 그의 작품을 주목하게 되었다.
시대적 배경과 문학세계
시대적 배경
이 작품은 프랑스 역사상 1814~30년 사이의 루이 18세와 샤를 10세에 의한 왕정복고기 라는 시대적 배경하에 씌어진 작품이다. 1799년부터 1814년까지의 유럽사는 프랑스 역사, 특히 나폴레옹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나폴레옹 시대는 둘로 구분할 수 있는데, 곧 1799~1804년의 공화정시대와 1804~1814년의 제정시대다. 전자는 나폴레옹이 제1 집정관으로 프랑스혁명의 성과를 보존하면서 프랑스를 군사적. 정치적 측면에서 강화한 시대이며, 후자는 나폴레옹이 정치체제를 주로 군사력으로 유지하며 전쟁. 정복. 동맹이란 수단에 의해 프랑스 혁명 정신을 유럽 전역으로 전파한 시기였다. 프랑스 혁명은 주권재민. 국민개병. 국민교육제도. 애국심. 대의제, 특히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나폴레옹은 이러한 모든 것들을 자의로, 혹은 타의로 유럽 각지에 전달하였고, 그 반응은 심대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폴레옹은 자기가 정복한 국가 안에 자유주의와 내셔널리즘의 씨를 뿌림으로써 마침내는 자기자신의 운명을 재촉하는 결과를 낳았다. 영국에 대한 대륙봉쇄령, 각국의 저항운동, 러시아 전쟁의 실패, 유럽 각국의 해방전쟁으로 1814년 나폴레옹은 엘바 섬으로 유배되고, 프랑스 혁명중 처형된 루이 16세의 동생 루이 18세가 즉위하여 왕정이 부활되었다. 망명귀족들이 속속 귀국하여 혁명 이전의 특권적 지위를 향유하였고, 왕은 무능하여, 많은 사람들은 물러난 지 9개월도 안된 나폴레옹을 동정하게 되고, 이러한 분위기에 자극받은 나폴레옹은 재집권의 뜻을 불태워 에바 섬을 탈출, 군중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파리에 입성했다. 그러나 유럽국가들은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격파하여 나폴레옹의 백일천하 는 막을 내린다. 이후에도 부르봉 왕가의 원정은 1830년 7월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계속된다. 적과 흑은 이러한 왕정복고의 후반기, 샤를 10세 시대를 그 배경으로 삼고 있다.
문학세계
소설가 스탕달의 공적은 근대소설에서 사실주의의 한 형태를 수립했다는 점에 있다. 적과 흑의 부제인 1830년 연대사 가 암시하는 대로 작가는 프랑스의 현실묘사를 과제로 했다. 이것은 인간은 이제 소설을 통해서만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 는 성찰과 소설, 그것은 거리에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거울이다 라는 그의 유명한 경구에서 확인된다. 확실히 그의 소설은 발자크의 소설처럼 사회전체의 파노라마를 묘사하려는 것은 아니고, 단 한사람의 주인공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많다. 스탕달의 거울은 시대와 사회를 비추기는 했지만, 그것은 대부분 주인공이라는 렌즈를 통해서였다. 작품 중에서 내적 독백을 많이 사용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또 창작 노트에서 풍속의 묘사는 소설 중에서 재미없는 것이다. 묘사를 놀랍게 바꾸는 것이 좋다. 묘사는 하나의 감정이 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현실에 직면해서 흔들리는 주인공의 내면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신속하게 글로 옮긴다는 것이 스탕달의 창작의 최대 비밀, 즉 심리적 사실주의의 뼈대였던 것이다. 그런데 소설 안에서 특권적인 렌즈에 지나지 않는 스탕달의 주인공은 작가의 이상화된 모습이라고 흔히 말하는데, 작가 자신의 내면의 모순과 명민을 지향하면서도 감성의 발작에 발이 걸려 넘어진 실패의 패턴은, 작중인물에서 조금도 완화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소설의 줄거리는 대부분 주인공의 실패에서 그 원동력을 얻는다. 주인공에 대한 야유 또는 주석이라는 형태로 가끔 나오는 작가 개입의 기법, 내적 독백의 다양함, 인물의 놀람을 표현하기 위해 원인을 빼고 결과만을 서술하거나, 반대로 결과를 생략하는 도약적 문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는 심리적으로는 매우 사실적인 서술법과 여러 비연속적 수법으로 자신의 소설을 구축해갔다. 발상과 수법의 참신함 때문에 생전에 많은 이해는 얻지 못했지만 죽은 뒤 그의 작품은 점차 폭넓은 독자를 획득하였다.
주요 등장인물
이 작품은 인간의 행복은 외적인 사랑보다, 내적인 자아로부터 얻을 수 있음을 말하고, 아울러 위계화된 사회의 모순과 부당성을 폭로하고 좀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질서에 대한 염원을 불러일으킨다.
쥘리앵 : 지적인 성품의 소유자로, 귀족에 대한 불만과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고 애를 쓰다 실패하는 비련의 인물. 레날 부인 : 읍장의 부인으로 귀족적인 삶에 예속된 남편을 버리고 쥘리앵을 사랑하다, 오해로 그의 총에 맞아 죽게 되는 여인. 마틸드 : 라몰 후작의 딸로 창백한 귀족을 싫어하고 쥘리앵을 사랑하는 여인.
작품의 주요내용
이 작품은 작자의 고향인 도피네 지방에서 1827년에 일어난 베르테 사건에 토대를 두고 있다. 미남 청년인 베르테는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서 미슈 가의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그런데 미슈 부인을 사랑하게 되어 이번에는 코르동 가에 들어가는데, 여기서도 그 집 딸과 문제를 일으켜 쫓겨났다. 출세길이 막힌 그는 분노와 질투로 미사중인 미슈 부인을 피스톨로 저격하였으나 미수에 그쳤고, 그는 사형을 당했다. <법정> 신문에 연재된 이 사건의 기록을 보고 베르테를 쥘리앵으로, 미슈 부인을 레날부인으로 하여 이 소설을 썼다. 주인공 쥘리앵은 목재상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난폭한 아버지와 두 형에게 학대받으며 성장한다. 그러나 그의 연약한 몸과 섬세한 외모의 그늘에는 불굴의 의지와 강인한 에너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이 도시를 지배하고 있는 탐욕스런 지배계급에 대한 끈질긴 증오가 숨어 있었다. 그는 나폴레옹의 숭배자로 노사제 셸랑 신부에게 접근하여 라틴어와 신학을 공부하면서, 신부가 되려고 결심하게 된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석권하던 시절에는 빈민도 재능이 뛰어나면 출세할 수 있었지만, 왕정복고 시대에는 성직자만이 유일한 출세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사제의 추천으로 시장 레날 씨의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된다. 레날 부인은 신앙심이 두터운 정숙한 부인이었는데, 남편이나 남편의 동료들에게서 볼 수 없는 순진한 청년의 인품에 감동하게 되고, 격렬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쥘리앵은 처음엔 그녀를 경계했지만, 무례한 레날 씨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부인과 친하게 되고, 나중에는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부인도 쥘리앵이 신분은 낮지만 의연한 태도와 인품에 있어서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숨은 영웅을 만난 듯 대한다. 그러나 변덕스러운 그녀는 곧 자기가 노예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냉담한 태도를 취하여 쥘리앵으로 하여금 질투심을 느끼게 한다.
한편 쥘리앵은 그토록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실연의 괴로움에 부대껴 그녀의 사랑을 되찾는 데 온 정력을 쏟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레날 씨는 그를 더이상 집에 머물지 못하게 한다. 다시 쥘리앵은 부장송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피라르 신부의 총애를 받게 된다. 그는 피라르 신부의 추천으로 파리에 있는 라몰 후작의 비서가 된다. 후작의 딸인 마틸드는 기품이 높은 여성으로 사교계의 창백한 귀공자들을 경멸하는 여성이었고, 좀 별난 쥘리앵을 마음에 두고 있다가 밀회를 청하게 된다. 쥘리앵은 마틸드를 정복하게 되지만, 두 사람은 증오가 섞인 묘한 연애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마틸드가 임신을 하게 되자 후작은 하는 수없이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여, 쥘리앵은 출세의 길이 열리게 된다. 이때 쥘리앵의 과거를 폭로한 레날 부인의 편지가 날아들어 모든 것은 끝장이 나고 만다. 화가 난 쥘리앵은 성당에 있던 레날 부인을 저격하여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옥중에서 그는 레날 부인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되고, 자신을 진실로 사랑한 여인은 레날 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미련없이 단두대에 오른다. 쥘리앵은 세상에서 흔히 불리어지는 식의 단순한 출세주의자는 아니다. 그는 항상 자기의 존엄을 중히 여기고 그러한 자기를 긍정하는 것을 최대의 목적으로 하는 정신적인 귀족이다. 그러니 만큼 그는 최후의 순간에서도 고고한 마음으로 단두대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물질보다 정신세계에 사는 시골청년 쥘리앵은 가정교사로 들어가 시장 부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파리에 가서는 후작의 딸 마틸드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쥘리앵은 이 두 여성을 대상으로 사랑의 꿈을 추구함으로써 자기가 멸시하는 지배계급에 대하여 복수하고 있다. 레날 부인에 대한 사랑도 따지고 보면 레날 시장에 대한 반발에서였다. 레날 부인은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쥘리앵을 사랑함으로써 행복감에 젖는다. 신앙심. 정절. 모성애 때문에 자책하면서도 쥘리앵의 사랑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때문에 내심의 갈등을 안고서도 절대적인 헌신과 애정으로 쥘리앵을 대한다. 쥘리앵은 이 괴로워하는 여성에게서 영혼의 위대성을 발견한다. 그는 후에 마틸드와의 사랑의 체험을 통해서 레날 부인의 참된 사랑의 추억을 되살려내는데, 독자들은 이 작품에 나타난 쥘리앵의 두 번의 연애과정을 검토함으로써 그의 행복추구가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쥘리앵과 마틸드는 연애관계는 호감보다는 반감에서 시작되고, 두 자존심의 상극과 친화력으로서 나타난다. 즉 마틸드는 머리로서 사랑하는 여성인 데 반해, 레날 부인은 가슴으로 사랑하는 여인으로 대립된다.
살해사건으로 감옥에 갇힌 쥘리앵은 감옥 속에서 사회와 자기를 대립시키면서 살아온 자기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나 자신에게 말하면서도 아직 위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라는 말로 있는 그대로 자기 를 보지 못하고 위선에 빠져 있는 자기를 비판한다. 쥘리앵은 외부세계와 연결되는 사회적 존재일 때는 날카로운 이성의 소유자이고 유물론자이며 반항자이지만, 자기자신과 대면할 때는 자신이 진실하게 살지 못하고 참된 사랑을 저버린 것을 후회하는 인간인 것이다. 쥘리앵의 생애는 이처럼 외면적. 물질적 행복, 파리. 미녀. 지위. 명성. 돈에 대한 동경으로 시작되어 외부와 격리됨으로써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행복에 도달하고 있다. 작품의 줄거리에서는 한 개인의 행복추구라는 문제와 특정한 시대환경을 살면서 겪는 인간의 본질적인 과제인 자아문제에 대한 작가의 훌륭한 고찰이 엿보이고 있다.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그는 이 작품에 1830년대사 라는 부제를 달아놓고 있는데, 이것은 왕정복고 시대에 대한 그의 정치적 견해가 이 작품에 반영되어 있음을 뜻한다. 열렬한 나폴레옹 숭배자였던 그는 나폴레옹 실각 후 귀족. 성직자. 중산계층의 3자가 좌지우지하는 왕정복고 시기의 정치적 현실을 철저하게 비판했다.
리얼리즘과 낭만주의
주인공 쥘리앵은 사회에 저항하다가 그 대가를 받는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현실주의자로서 작자의 관점이 있으나, 낭만주의자로서의 작자는 비극의 쥘리앵을 몹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위선에 젖어버릴 수 없는 순결한 심정과 불굴의 의지, 또 거기에 존재하는 총명함과 행운을 가지고서도 도리어 불행한 최후를 마치지 않으면 안되는 주인공을 설정함으로써 작자는 오히려 프랑스 당시의 사회풍조를 매섭도록 비판하고 잇는 것이다. 그러나 작자는 비속한 독자에 대한 경계심과 타고난 수치심에서 간결하고 비정한 문체를 쓰고 있음을 아울러 알 수가 있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하류계층 츨신이지만 재능이 뛰어나고 야심에 불타는 한 청년의 성공과 좌절의 이야기를 통해 왕정복고 시대의 암흑기를 묘사한 소설로, 작가의 대표작인 동시에 사실주의의 선구로 평가되고 있다. 심리소설의 걸작으로서 정평이 나있으나, 부제가 암시하듯 사회소설. 정치소설로서의 측면도 있다. 시대를 생생하고 자세하게 묘사하였지만 발자크 풍의 사회조감도와는 달리, 명석하고 냉철하게 그리고 위선을 무기로 출세와 영달을 위해 사회와 맞서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양심과 감수성에 굴복하게 되는 주인공의 눈을 통해, 모든 것이 표현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주관적 사실주의의 구현이다.
책 제목의 뜻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적' 은 제정시대의 영광을, '흑' 은 왕정복고시대의 암울의 상징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한편 작가는 평소 정열을 예찬했다. 이 정열 예찬은 그로 하여금 나폴레옹과 16세기의 이탈리아를 좋아하게 했다. 한 개인 속에 가장 많은 정열이 응집된 모델을 나폴레옹에게서 보고, 열광적인 정열의 나라를 16세기 이탈리아에서 보았던 것이다. 여기에 묘사된 주인공 쥘리앵의 정열과 반항은 프로메테우스적 인간상을 동경하는 오늘의 우리에게 야심에 찬 19세기 청년의 한 모습을 보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