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소든 말이든 - 천도
사성기가 노자에게 물었다. "저는 선생이 성인이라 들었기에 먼 길을 사양하지 않고 와서 뵙기를 원했습니다. 백 집을 지나 발이 부르터도 감히 쉬지 못했습니다. 지금 제가 선생을 보니 성인이 아닙니다. 쥐가 있는 곳에도 남은 음식이 있는데, 누이를 돌보지 않는 것은 인이 아닙니다. 날것과 익은 것이 떨어지지 않고, 쌓고 거두는 일이 끝이 없습니다." 노자는 아득하여 대답하지 않았다. 사성기가 이튿날 다시 와서 뵙고 말했다. "어제 제가 선생을 비난했으나 지금은 마음이 가라앉은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노자는 말했다. "무릇 교지 신성한 자는 자기 스스로 벗었다고 생각하오. 어제 당신이 나를 소라 불렀다면 소라 했을 것이고, 말이라 불렀다면 말이라 했을 것이오. 적어도 존재하는 실상에 사람이 이름을 붙여주는데, 이를 받지 않는다면 다시 재앙을 받게 되오. 나는 언제나 굴복하지만 굴복해야겠다고 의식적으로 굴복하는 일은 결코 없소." 사성기가 뒤를 좇아 그림자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나아가 물었다. "어떻게 몸을 닦아야 합니까?" 노자가 말했다. "당신은 얼굴이 애연*하고 눈이 날카롭소. 이마는 툭 튀어나오고, 입은 감연하오. 형상이 의연하여 말을 붙들어 매어둔 것 같소.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어 나가기만 하면 빠르고, 살피는 바가 자세하오. 또한 지식과 기교에 있어서는 거만하게 보이는 등 모두가 불신을 낳게 하니, 변경에 그런 자가 있다면 도둑이라고 할 것이오."
* 그림자를 밟지 않도록 : '안행'은 원래 기러기가 줄지어 나는 모습을 말한다. 여기서는 '기러기처럼 비스듬히 조금 뒤떨어져 간다'는 뜻으로 쓰였다. * 애연 : 홀로 우뚝하다. 즉 '돋보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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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기는 노자를 만나게 되자 대뜸 그를 힐난했다.
"저는 선생이야말로 참다운 성인이라는 소문을 그대로 믿고 있었습니다. 선생을 뵙기 위해 먼 길을 마다 않고 밤낮 없이 몇날을 걸어, 발이 부르터도 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뵙고 보니 실망스러울 뿐입니다. 댁에는 쥐구멍 근처에까지 먹다 남은 음식들이 흩어져 있으나 피를 나눈 누이동생은 돌보려 하지 않으시니, 이래서야 어디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선생은 여전히 재산을 모으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노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한 마디 대꾸조차 하려 들지 않았다. 그 이튿날, 사성기는 다시 노자를 찾아와 사과했다.
"어제는 선생께 대단히 실례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부끄러움으로 몸이 죄어드는 것만 같으니, 이건 대관절 어떻게 된 영문입니까?"
"당신은 지자니 성인이니 하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모양인데, 나는 그런 것을 벗어난 지 이미 오래요. 어제 만일 당신이 나를 소라고 했다면 나는 자신을 소라고 인정했을 것이며, 말이라고 했다면 역시 말인 줄 알았을 것이오. 남이 그렇게 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니오?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반대하고 나서면 더 심한 봉변을 당하게 되는 거요. 나는 조금도 저항하는 법이 없소. 그러나 그것은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지 의식적으로 저항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오."
사성기는 깊이 깨달은 듯 머리를 숙인 채, 일어나 나가려는 노자의 그림자를 피하면서 따라나가 공손히 가르침을 청했다.
"저는 어떻게 몸을 닦으면 좋겠습니까?"
"당신의 풍채는 당당하고 위압적이오. 엄숙한 얼굴, 날카로운 눈초리, 반듯한 이마, 용맹스런 입 언저리, 뜯어보아도 어느 것 하나 가슴속의 달리는 말을 억누를 길이 없는 무엇인가가 있소. 당장 움직일 것만 같은 만반의 태세를 취하고, 한번 놓아버리기만 하면 화살처럼 재빠르오. 또한 날카로운 관찰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지혜로운 계략을 자랑하는 오만한 인물이오. 그러나 그런 것은 모두 인간 본래의 모습이 아니오. 당신 같은 사람이 국경 근처를 어물거리면 당장 도둑으로 오인받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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