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백락의 죄 - 마제
무릇 말은 땅에 살면서 풀을 먹고 물을 마신다. 기쁘면 목을 맞대고 서로 비비며, 화가 나면 등을 돌리고 서로 발길질을 한다. 말의 지혜는 여기까지밖에 이르지 못한다. 그런데 굴레를 씌우고 재갈을 물려 월제*로 다스리려 하자 말이 꾀를 내게 되었다. 가로대를 부수고, 멍에를 벗고, 재갈을 물어뜯고, 고삐를 끊는다. 따라서 말의 지혜를 도둑의 모습에까지 이르게 한 것은 백락의 죄다. 저 혁서씨* 시대의 사람들은 머물러도 할 바를 몰랐고, 가려 해도 그 갈 데를 몰랐다. 배불리 먹고 즐기며, 배를 두드리며 놀았다. 이렇게밖에 할 줄 모르던 백성들이 성인이 나타나서 몸을 굽혀 예악을 지키게 하고, 천하로 하여금 치장하게 하면서 인의로써 천하의 마음을 사려 들었다. 백성들은 이때부터 애써 지혜를 좋아하고 이익을 좇아 다투며, 그 멈출 바를 모르게 되었다. 이것 역시 성인의 죄이다.
* 월제: 말의 이마에 박는 장식. 이마치레. * 혁서씨: 태고의 제왕. *************************************************************************************
말은 땅에 살면서 풀을 먹고 물을 마신다. 흥이 나면 서로 목을 마주 비비고, 노여우면 서로 발길질을 한다. 말의 지혜란 것이 기껏 이 정도이다. 그런데 그 말에게 굴레를 씌우고, 재갈을 물리고, 이마에 월제를 박아 괴롭히면서도 말도 또한 갖은 꾀를 다 내게 되었다. 가로대를 부러뜨리고, 멍에를 벗어던지고, 재갈을 물어뜯고, 고삐를 끊어버리려 하는 것이다. 별다른 지혜가 없었던 말을 이렇게 만든 것은 모두 백락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다. 혁서씨가 지배하던 태고적만 해도 사람들은 집에 있어도 할 일이 없고, 길을 떠나려 해도 갈 곳이 없었다. 입이 미어지게 음식을 먹고 즐기며, 배를 두들기며 만복감을 누렸다. 그렇게 살던 백성들이 이른바 성인이 출현하면서부터 괴로워지게 되었다. 성인들은 백성들에게 예악을 지키게 하고, 겉치장에 신경을 쓰게 하면서도 인의를 내세워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사려 들었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애써 꾀를 생각해내고 앞을 다투어 이익을 좇게 되었으니, 이것은 곧 성인이 저지른 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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