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천일 합일 - 대종사
옛 진인은 그 모습이 높아도 무너지지 않고, 다하지 않은 듯해도 덧붙일 것이 없었다. 유연하며 고고한 듯해도 고집하지 않고, 마음이 넓어 청허한 듯해도 가볍지 않았다. 즐겁다 해서 그것이 기쁨과 같을 것인가? 재촉한다 해서 하는 수 없는 것인가? 안락함이 내 얼굴빛에까지 나타난다지만, 서로 즐기며 내 덕에 자리한 것뿐이다. 넓다 하여 그것이 세상일과 같을 것인가? 고원하여서 제약에 얽매임이 없는 것이다. 오래도록 침묵한다지만, 보고 듣지 않기를 좋아하는 것과 같을 것인가? 무심한 상태여서 말을 잊은 것뿐이다. 형벌을 제 몸처럼 여기고, 예의를 날개처럼 여긴다.
앎은 시대를 따르고, 덕은 섭리를 따른다. 형벌을 제 몸처럼 여긴다는 것은 남을 죽이는 것에 관대하고, 예의를 날개처럼 여긴다는 것은 세상에서 하는 대로 따른다는 말이다. 앎으로써 시대를 따른다는 것을 일을 하지만 마지못해서이고, 덕으로써 섭리를 따른다 함은 발이 있는 자와 함께 언덕에 도달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인이 노력해서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좋아하는 것도 하나고, 좋아하지 않는 것도 하나다. 하나라고 여기는 것도 하나고, 하나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도 하나다. 하나라고 함은 하늘과 함께 하는 것이고, 하나가 아니라 함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하늘과 사람이 서로 이기려 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이런 사람을 진인이라 한다.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고, 밤과 낮이 일정한 것은 하늘의 법칙이다. 사람이 관여할 수 없는 만물의 실상이다. 사람들은 특히 하늘을 아비라 하여 몸으로 사랑하는데, 하물며 그보다 탁월한 자이겠는가! 사람들은 특히 임금이 자기보다 낫다 하여 몸을 바치는데, 하물며 그보다 참된 자이겠는가! 못의 물이 말라 물에 함께 있게 된 물고기가 습기를 뿜어내 서로의 몸을 적시는 것은 강이나 호수에서 서로를 잊고 있음만 못하다. 요를 칭찬하고 걸을 비난하는 것은 둘을 잊고 도와 일체가 됨만 못하다.
무릇 자연은 나에게 형체를 주어, 노력하여 살다가 늙어서는 편안하게 하고 죽으면 쉬게 한다. 그러므로 내 삶을 좋은 것이라 여김은 나의 죽음을 좋은 것이라 여김과 같다. 배를 골짜기에 숨기고 산을 못에 감추고 견고하다고 생각한, 밤중에 힘있는 자가 지고 달아난다. 그러나 우매한 자는 이를 모른다. 작은 것을 큰 것에 감추면 적당하기는 하나 달아날 수가 있다. 그러나 천하를 천하 안에 감추면 달아날 수가 없다. 이것이 만물의 실정이다. 사람의 형체를 한 것을 특히 기뻐하지만 사람의 형체는 한없이 변화하여 일찍이 다함이 없었다. 그 즐거움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인은 장차 만물이 달아나지 못하는 곳에서 노닐며 모든 것을 그대로 두려 한다. 죽는 것도 좋다 하고, 늙는 것도 좋다 한다. 시작도 좋다 하고, 끝도 좋다 한다.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본받으려 한다. 하물며 만물이 매어 있고 큰 변화가 나오는 것이겠는가!
무릇 도란 정이 있고 믿을 수 있는 것이지만, 작위하지 않고 형체가 없다. 전할 수는 있어도 받을 수 없고, 얻을 수는 있어도 볼 수가 없다. 스스로 근본이 되고 뿌리가 되어 천지가 없던 태곳적부터 이미 존재하였다. 귀신과 상제를 신으로 만들었으며, 하늘과 땅을 낳았다. 태극보다 위에 있어도 높지 않고, 육극보다 밑에 있어도 깊지 않다. 천지 이전에 생겼으나 오래된 것이 아니며, 상고보다 오래되었으나 늙은 것이 아니다.
상고의 희위씨*는 이를 얻어 천지를 합했고, 복희는 이를 얻어 기모를 이었다. 유두는 이를 얻어 어그러짐이 없었고, 해와 달은 이를 얻어 그 운행을 그치는 일이 없었다. 감배는 이를 얻어 곤륜산신이 되었고, 풍이*는 이를 얻어 황하에서 노닐었다. 견오는 이를 얻어 태산에 거주했고, 황제는 이를 얻어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올랐다. 전욱*은 이를 얻어 현궁에 들어갔고, 우강은 이를 얻어 북극에 살았다. 서왕모는 이를 얻어 소광에 앉았으나, 그 시작도 알 수 없고 끝도 알 수 없었다. 팽조는 이를 얻어 위로는 순으로부터 아래로는 오백*의 시대에까지 살았다. 부열은 이를 얻어 무정의 재상으로 천하를 지배하다가 동유에 올라 기성과 미성을 달려 열성에 끼게 되었다.
* 희위씨 : 전설상의 황제. * 풍이 : 하백의 이름. 물을 다스리는 신. * 전욱 : 오제의 하나. 황제의 손자로서 20세에 즉위하여 고양에 나라를 일으켰으므로 '고양씨'라고도 한다. * 오백 : 오패라고도 한다. 하의 곤오, 상의 대팽, 시위, 주대의 제나라 환공, 진문공의 다섯 패자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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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진인은 그 모습이 지극히 높아도 절대로 무너지는 일이 없으며, 어딘가 모자라는 듯하면서도 덧붙일 것이 없었다. 유연하여 고고한 듯하면서도 완고하지 않고, 그 마음이 청허하고 크건만 가벼운 법이 없었다. 즐거워한다 해서 그것을 진인의 기쁨이라고 말할 수 없고, 세상일에 재촉받는 것 같지만 자연의 도리에 따르는 것뿐이었다. 안락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도 본성을 잃는 일이 없고, 사색에 잠겨 침묵하는 것은 무아의 경지에서 노닐기 때문이었다. 진인은 형벌을 자기의 몸처럼 생각하고 예의를 날개처럼 여기며, 지식은 시대의 흐름을 따르는 것으로, 덕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으로 알았다.
형벌을 자기 몸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남을 죽이려 할 때 관용을 베풀 수 있고, 예의를 날개처럼 여기기 때문에 자유로이 세속적인 규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식이 시대의 흐름에 따른다는 것은 필연적인 움직임에 순응한다는 것이고, 덕이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라 함은 덕이 이를 수 있는 곳에 남과 함께 도달할 수 있음을 말한다. 진인은 이와 같이 자연 그대로의 존재이나, 남이 보기에는 그것이 노력의 결과 도달한 것처럼 생각된다. 진인은 자연 그대로를 따르기 때문에 차별이 없으므로 모든 것이 동일하다고 본다. 모든 것을 동일하게 보는 것은 하늘의 도리를 따름이요,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것은f 사람의 작위를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도리를 따르든 사람의 작위를 따르든, 진인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할 뿐인 것이다. 이렇게 하늘의 도리와 사람의 작위가 대립하는 일이 없는 사람을 진인이라고 한다.
낮과 밤이 바뀌는 것처럼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법칙이다. 만물의 근본 법칙은 인간의 지혜가 마칠 수 없는 곳에 있다. 사람들은 이 하늘을 어버이로서 존경하고 사랑한다. 하물며 그 하늘이 만들어낸 자를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 나라의 지배자에 불과한 임금도 높게 보고 목숨까지 바치는데, 하물며 만물의 참된 주재자에게 귀의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말라붙은 연못의 고기는 진흙 위에 몸을 모아 서로의 입김으로 목숨을 지탱한다. 그러나 이렇게 서로 돕고 사는 것보다는 넓은 강이나 호수 속을 헤엄쳐 다니며 서로를 잊는 편이 훨씬 자유로운 것이다.
인간 역시 질서의 테두리 속에서 착한 것을 칭찬하고 악한 것을 비난하며 사는 것보다 선악을 초월하여 도에 따라 사는 편이 훨씬 자유스럽다. 인간의 형체를 하고 태어나 고생하며 살다가, 늙어서는 마음을 편안히 하고 죽어서 영원히 휴식하는 것이 인간의 한평생이니, 삶을 긍정한다면 죽음도 긍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삶에 집착한 나머지 삶을 유지하기에 급급하고 있다. 이것은 배를 깊은 골짜기에 감추고, 산을 연못 속에 숨겨두고는 안전하다고 믿는 어부와 같다. 그러나 아무리 교묘하게 숨겼더라도 더 큰 힘을 가진 자가 어둠을 틈타 훔쳐갈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작은 것을 큰 것 속에 감추었다고 안전하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천하를 천하 속에 감춰둔다면 아무것도 잃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도 단순히 인간의 탈을 얻어 썼음을 기뻐한다. 그러나 인간의 형체는 무한히 변화하는 것이니, 그 변화에 마음을 맡기면 기쁨도 한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일체를 있는 그대로에 맡기고,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는 경지에서 노닐고자 한다. 일찍 죽는 것과 오래 사는 것을 동일하게 여기고, 삶과 죽음을 똑같이 긍정하는 성인은 모든 사람의 사표로서 숭앙을 받는다. 따라서 만물을 통괄하고 무한한 변화를 낳는 도야말로 진정한 스승이라 할 수 있다.
도란 어떤 것인가? 변화하는 만상의 근원을 생각해보면 도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무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는 것으로, 마음으로 느낄 수는 있으나 감각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그것은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것으로, 천지가 창조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다. 귀신과 상제, 하늘과 땅의 근원은 모두가 도이다. 태극(천지가 나누어지기 전의 상태)보다 더 위에 있으면서도 위가 아니고, 육극의 밑에 있으면서도 밑이 아니다. 유구한 과거로부터 존재하였으나 오래되었다고 할 것이 없고, 늙었다고 할 것도 없다. 이 도를 얻었기 때문에 희위씨는 하늘과 땅을 연결시켰고, 복희는 기모(원기의 근원)를 관장했으며, 유두(북두신)는 영겁에 걸쳐 천체 운행의 지표가 되었고, 해와 달은 그 운행을 그치는 일이 없었다.
감배는 도를 얻어 곤륜산신이 되었고, 풍이는 황하신이 되었으며, 견오는 태산신이 되었다. 또 황제는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올랐고, 전욱은 현궁(북방의 궁전)의 왕이 되었으며, 우강은 북해신이 되었고, 서왕모는 소광산에 살면서 불로 불사의 신선이 되었다. 팽조도 도를 얻어 순에서 오백의 시대에까지 살았으며, 부열은 무정을 보좌하여 천하를 평정한 다음 동쪽 하늘에 올라가 빛나는 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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