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之道, 其猶張弓與, 高者抑之, 下者擧之, 有餘者損之, 不足者補之,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孰能有餘以奉天下, 唯有道者, 是以聖人爲而不恃, 功成而不處, 其不欲見賢.
천지도, 기유장궁여, 고자억지, 하자거지, 유여자손지, 부족자보지, 천지도손유여이보부족, 인지도칙불연, 손부족이봉유여, 숙능유여이봉천하, 유유도자, 시이성인위이불시, 공성이불처, 기불욕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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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일곱째 장
직역
하늘의 도는 활을 당기는 것과 같다. 높은 것을 억누르고, 아래것을 들어 올린다. 남음이 있는 것을 덜어 내고, 부족한 곳을 보충한다. 하늘의 도는 남는 것을 덜어내고,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것이다. 사람의 도는 즉 그러하지 않다. 부족한 것을 덜어내어서 남는 것을 받든다. 누가 능히 남음으로써 하늘 아래 받들어 지는가. 오직 도가 있는 자 이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행하되 기대지 않는다. 공이 이루어 져도 자리 잡지 않는다. 그 슬기로움이 드러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해석
활을 당기면 위에 실이 묶여 있는 부분은 아래로 내려온다. 그리고 아랫 부분은 위로 올라온다. 그래야 활이 나간다. 이것이 하늘의 도이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 그래서 부족한 곳을 채운다. 자연계는 모두 이와 같다. 그러나 인간은 이렇지 않다. 가진곳으로 높은 곳으로 모든 것이 몰려간다. 이제는 돈이 돈을 번다. 거대 자본이 있는 곳으로 작은 소자본들은 모여든다. 자연의 법칙과는 완전히 상반된 행위이다.
바다는 넘치면서도 더욱 모여든다. 이것은 도에 있는 자이다. 그는 스스로 낯춘다. 바다와 같다. 바다는 남음이 있지만 강물들이 계속 모여든다. 그 이유는 낮게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주기 때문이다. 바다는 수증기를 하늘로 보낸다. 그래서 비가 오게한다. 바다가 수증기를 뿌리지 않는다면 모든 육지는 마르게 된다. 그리고 결국은 강물도 마르고, 강물로 살아가는 바다도 마르게 된다. 바다는 하늘에 수증기를 주기 때문에 낮게 처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낮은 것은 가장 높은 것과 서로 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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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하늘의 이법은 활을 메우는 것과 같은 것인가. 높은 데를 억누르고, 낮은 데를 올려 주며 남은 부분은 덜어내어 부족한 부분에 채워 준다. 하늘의 이법은 이와 같이 남은 것을 덜어내어 모자라는 것에 보태 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는 일은 이것과 달라 모자라는 사람의 것을 덜어내어 넉넉한 사람에게 보태어 주는 것이다. 자신의 남은 것으로 이 세상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오직 도를 체득한 성인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일을 하고 나서도 자랑하지 않으며, 공을 이루고 나서도 자부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탁월함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주
공성이불처: 공을 이루고나서도 자신의 것으로 자부하지 않는다는 뜻임. 역경에도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겸괘 93의 효사에는 노고 하면서도 겸손하다. 군자에게는 끝까지 길한 일이 있을 것이다. 공자는 말하기를 노고 하여도 자랑하지 않고 큰공을 세우고도 자신의 덕으로 자만하지 않으니, 독실한 마음가짐의 극치인 것이다. 이것은 큰 공을 세우고도 남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을 이른 말이다. 겸손의 미덕을 강조함에 있어 노자와 역경은 그 발상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기불욕현현: 자신의 탁월함과 훌륭한 점을 나타내고자 하지 않는다는 뜻임. 현은 현과 같음.
해
하늘의 섭리는 넉넉한 것을 덜어내어 부족한 것에 보태어 준다. 그것은 언제나 만물을 평등하게 대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행위는 이것과는 딴판이다. 가난한 백성의 재물을 갖가지 명목으로 빼앗아서 위정자의 사치와 향락에 쓰이게 한다. 그러므로 부유한 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진다. 이와 같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자신의 남은 것을 덜어내어 천하의 만백성에게 보태어 줄 사람이 있겠는가. 이 일은 오로지 성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성인은 언제나 겸허하다. 그러므로 자신이 세운 공을 내세우거나 자신의 탁월함을 나타내고자 하지 않는다. 도를 터득한 그는 하늘의 섭리를 인간 사회에 실행해 보이는 것이다. 이 장 역시 하늘의 섭리의 공평무사함에 대한 찬양과 인간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비판으로 일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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