用兵有言, 吾不敢爲主而爲客, 不敢進寸而退尺, 是謂行無行, 攘無臂, 잉無敵, 執無兵, 禍莫大於輕敵, 輕敵幾喪吾寶, 故抗兵相加, 哀者勝矣.
용병유언, 오불감위주이위객, 불감진촌이퇴척, 시위행무행, 양무비, 잉무적, 집무병, 화막대어경적, 경적기상오보, 고항병상가, 애자승의.
|
예순 아홉째 장
직역
병사를 쓰는데 이런 말이 있다. 나는 감히 주인이 될려고 하지 않고 객이 될려고 한다. 감히 촌보를 나가려 하지 않고 한 척을 물러날려고 한다. 이것을 일컬어 감이 없는 감이오, 팔이 없이 치고, 병기 없이 잡고, 이에 적이 없게 된다. 화는 적을 가벼이 여기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적을 가벼이 여기면 거의가 자신의 보물을 잃게된다. 그러므로 싸우는 병력이 서로 비슷할 때는 슬퍼하는 자가 이긴다.
해석
객은 그 집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제 삼자의 입장에 서야 적과 나를 비교할 수 있다. 적과 나를 동등한 위치에서 놓고 볼 수 있기 위해서는 객이 되어야한다. 그리고 이길려고 성급히 나가지 않는다. 싸움은 희생을 부를 뿐이다. 이기는 것은 자신의 병력이 적게 희생하는 것이다. 이김만 생각하고 자신의 병력을 많이 희생하는 것은 결국 지는 것이다. 적의 병사가 모두 죽고 자신의 병사도 거의 죽었다면 승리는 누가 한 것인가. 자신의 병사와 자기는 이긴 것이 아니다. 살아 남았을 뿐이다. 전쟁은 싸워서 적을 많이 죽이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의지를 적에게 관철 시키는데 있다. 살육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병력이 희생하는 것을 애통이 여기는 사람이 이기게 된다.
|
69.
용병술에 대하여 이런 말이 있다. '나는 감히 전쟁의 주동자가 되지 아니하고 피동자가 되겠다. 감히 한치를 나아가기보다는 한자씩 물러나겠다.' 이와 같은 것을 가르켜 행군을 하지만 행군을 하지 않는 듯하고, 소매를 걷어붙이지 않으니 팔이 없는 듯하고, 치고 들어가지 않으니 적이 없는 듯하며, 무기를 잡아도 잡지 않은 듯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적을 업신여기는 것보다 더 큰 화근은 없다. 적을 업신여기면 나의 삼보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군사를 일으켜 싸우게 될 때는 싸움을 슬프게 여기는 쪽이 이기게 된다.
주
주: 주동자, 전쟁 주동자. 객: 마지못해 싸우는 응전자, 전쟁의 피동자. 행: 행군 . 행무행: 마지못해 싸움터에 나아가기 때문에 행군을 하기는 해도 행군이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함. 잉: 치고 들어가는 것. 항병: 군사를 일으키는 것, 병력 동원. 상가: 서로 맞부딪쳐 싸우는 것. (왕필의 주석 참조)
해
노자는 이 장에서 전쟁의 주동자가 되지 말고 피동자가 되라고 역설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전쟁의 참상과 그 파괴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먼저 도발하는 것의 잘못을 지적한 말이다. 전쟁 도발이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는 없다. 다만 상대방의 침략으로 이쪽의 자위와 방어 목적에서만이 전쟁의 정당성은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못해서 싸움터에 나가는 쪽은 먼저 적의 진영으로 쳐들어가는 일이 없으며, 무기를 잡아도 살상을 즐길 일이 없으므로 잡지 않는 것과 같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전투에 임하여 상대를 업신여기는 것은 큰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상대를 업신여기면 그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하기 쉽다. 함부로 전쟁을 도발하는 것은 막대한 희생을 백성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된다. 비록 나라가 크고 강하다고는 해도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하게 된다는 경고는 사실인 것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상대의 침략으로 군사를 동원하여 싸우게 될 때에는 전쟁의 참상을 애통해 하는 쪽이 이기게 되는 것이다. 지도자가 이와 같은 자애로운 마음을 보여 준다면 그를 따르는 백성들과 병사들은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전 주의자요 평화주의자인 노자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가 춘추 전국의 난세였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인간의 생활을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전쟁의 참화일 것이다. 전쟁 도발을 규탄하는 노자의 지론에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외경이 짙게 깔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