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니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령도는 곡도(鵠島), 곧 고니섬이었다. 고구려의 땅이었으며 뒤로 오면서 고려 태조가 하얀 고니에 뒤덮이는 섬이라 하여 백령(白翎)이라 하였을 터. ‘곡’ 자가 나타내듯이 이 섬은 온갖 철새들의 낙원이었고, 특히 고니가 많이 살았다. 바다에 배를 띄우고 멀리 나가서 보면 섬 전체가 모두 날개로 덮인 듯하다. 고니는 언제 보아도 흰빛을 띠고 날아든다. 바탕이 아름다운 것은 꾸미지 않아도 아름답다. 해서 ‘고니는 멱을 감지 않아도 희다’(鵠不浴而白)라는 말이 생겼다. 고니가 울 때 ‘곡곡’(鵠鵠) 하며 운다고 했다. 곡(鵠)의 반절식 한자의 소리는 ‘고’(姑沃切)였으니 ‘곡곡-고고’가 됨을 알겠다. 오늘날의 중국 한자음으로는 ‘구구’가 되지만. 그러니까 곡곡은 ‘고고’로 소리를 내야 옳다. 하면 고니는 고고 하고 우는 새라 하여 그리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 꾀꼬리나 뜸부기 혹은 방울새도 녀석들이 우는 소리를 따서 새의 이름으로 삼는 일이 있으니 그러하다. 고니는 흔히 백조라 부른다. 진도에 가면 바닷가에서 겨울을 난다. 고니가 날아드는 장소는 진도 수유리 일원의 담수호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101호로 지정되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고니가 많이 찾아들면 좋은 세월이 된다는데. 정호완/대구대 명예교수·국어학
마진 대기업들이 기업형 슈퍼마켓을 동네 골목골목에 두려고 하면서 소규모 가게를 운영하는 지역의 개인사업자들과 벌이는 신경전이 한창이다. 기업형 슈퍼마켓을 옹호하는 쪽은 소비자의 선택권 보장과 자율경쟁이라는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근본 원리를 내세우고, 반대쪽은 경제적 강자가 약자를 보호하여 상생을 도모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도덕률을 주장한다. 자본력을 앞세운 기업형 슈퍼마켓이 더욱 싼 가격을 제시할 것이고, 개인의 소규모 점포들이 이에 맞서려면 ‘마진’을 충분히 남기지 못하므로 지역 상권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마진’은 영어 ‘margin’을 따온 것으로 ‘상거래 결과로 생기는 금전적 이익’, 즉 이문(利文)을 뜻하는데, 실은 영어엔 이런 뜻이 없어 이른바 콩글리시에 속한다. 영어 ‘마진’은 ‘여유, 여백, 가장자리, 차액’ 정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문’을 뜻하는 영어 표현은 ‘프로핏 마진’(profit margin) 또는 ‘마진 오브 프로핏’(margin of profit)이다. 그런데 ‘마진이 없다’라는 어설픈 표현보다는 ‘남는 것이 없다’ 또는 ‘이익/이문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마진이 얼마다’는 ‘얼마가 남는다’ 또는 ‘이익/이문이 얼마다’ 정도로 충분히 쉽게 말할 수 있다. 한편 ‘마진’은 경제 용어로서 ‘판매 가격과 매출 원가의 차액’, ‘생산비를 메울 만한 최저 수익’, ‘증권 거래에서의 위탁증거금’을 뜻하기도 한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알비 <동국신속삼강행실 효자도>에서는 두 분의 ‘알동이’를 기리고 있다. 문천 사는 ‘알동이’는 열여덟 나이에 아버님이 병들어 죽게 되자 넓적다리 살(股)을 베어 약에 타 바쳤고, 안동 사는 알동이는 어머님이 병이 나자 손가락을 잘랐다(斷指). 나라에서는 그들을 기려 효자각을 세웠다. ‘알’은 새나 뱀, 물고기 따위가 낳는 둥근 것을 이르기도 하고 ‘낟알·안경알’에도 쓰인다. 속이 찬 것을 알차다고 한다. 이름의 밑말로 ‘알’(卵乙·卵·謁·阿乙)이 쓰였으며 ‘알가이·알금이·알단이·알도·알만이·알부·알비·알삼이’란 이름도 있다. <동국신속삼강행실 열녀도>에는 ‘알비’의 행적이 보인다. 밀양 사람인 알비는 정병 김순강의 아내였다. 버림을 받자 부모가 개가시키려 하였으나 알비는 울며 한 몸으로 두 남편 섬기는 것은 죽어도 못 할 일이라며 목을 베고 죽었다. 이에 나라에서 열녀문을 세워 주었다. 한 남자만을 섬기겠다는 여인의 정절, 요즘에 보기 드문 일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알비의 행적을 요즘 어찌 생각해야 할까? ‘얌전이’에게 물어야 할까, ‘얌심이’에게 물어야 할까? ‘얌’이 든 이름에 ‘얌덕이·얌선이·얌상개’도 보인다. 얌전하다는 말과 비슷한 말에 음전하다는 말도 있으며 사람이름에도 ‘음전이’가 보인다. 말이나 행동이 곱고 우아한(음전한) 여인일 터이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싸드락싸드락 묵소! ‘싸드락싸드락’은 표준어 ‘천천히’에 대응하는 고장말로, 주로 전라도와 충남 일부 지역에서 쓰인다. ‘싸드락싸드락’은 ‘조금씩 시들어 가거나 시든 모양’을 나타내는 말 ‘사들사들’에 ‘-악’이 결합된 ‘사드락사드락’이 ‘사드락사드락>싸드락싸드락’과 같은 소리의 변화와 함께 의미 전용이 이루어져 생겨나게 된 어휘인 것으로 보인다. ‘사드락사드락’은 국어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에서 그 쓰임을 찾아볼 수 있다. “붉은 노을 노란 노을 능선 사이사이 내려앉아 사드락사드락 빈 가슴 다독이며 초곤히 내리는 비”(<억수로 안고 싶은 그대> 장순금) “싸드락싸드락 가도 해 다 가기 전에는 갈 수 있을 거유.”(<작은 새 바람을 타고> 이미노) “밤은 싸드락싸드락 깊어 갔다.”(<불의 나라> 박범신) ‘싸드락싸드락’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전라도 고장말로 ‘싸득싸득’과 ‘싸룩싸룩’이 있는데, ‘싸득싸득’은 전라남북도에서 두루 쓰는 반면 ‘싸룩싸룩’은 전남 지역에서만 쓴다. ‘싸득싸득’은 ‘싸드락싸드락’이 줄어진 말로 보이며, ‘싸룩싸룩’은 ‘눈이나 낙엽이 천천히 내리거나 떨어지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싸륵싸륵’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구경 삼아 가씨오. 싸득싸득.”(<섬을 걷다> 강제윤) “싸룩싸룩 묵으란께 왜 그렇게 싸게싸게 묵어 부냐?”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진보적 우리나라 학생들이 영문법 공부에 쏟는 시간이 국문법 공부에 쏟는 시간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무랄 일은 아니다. 국어야 모국어이므로 문법을 모르더라도 사용하는 데 불편이 없지만, 외국어인 영어를 익히자면 문법에 매달릴 수밖에 없을 터이다. 다만 국문법을 잘 모르다 보니 국문법 체계를 영문법 체계로 이해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글을 쓰면서 수식어를 너무 많이 쓰지 말라는 뜻으로 “형용사를 너무 많이 쓰지 말라”고 말할 때처럼 말이다. 이는 영어 형용사와 국어 형용사의 차이를 모르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영어 형용사는 부사와 함께 꾸밈말로 쓰인다. 하지만 우리말 형용사는 동사와 함께 풀이말로 쓰인다. “진보주의라는 개념은 역사상 없으며, 오직 ‘진보적’이란 형용사로 존재한다.” 신문 칼럼에서 따온 구절이다. 이 주장의 시비를 가리는 것은 이 글의 취지가 아니다. 다만 ‘진보적’이란 낱말을 형용사라고 한 것은 영문법 체계에 휘둘렸기 때문이다. 영어 단어 ‘progressive’는 형용사이지만 우리말 ‘진보적’은 명사이거나 관형사이다. “그 사람은 진보적이다”에서는 명사, “진보적 사고를 가져라”에서는 관형사이다. 임자씨(체언)를 꾸미는 기능에서 우리말의 관형사는 영어의 형용사와 흡사하다. 그러나 영어의 형용사는 ‘be 동사’와 어울려 문장의 보어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말의 관형사는 조사도 붙지 않고 어미 활용도 하지 않는 매우 폐쇄적인 품사이다. 우재욱/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