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1 가족 어머니와 보신탕 - 하근찬 나는 보신탕을 먹는다. 그러나 혹시 어머니 앞에서 보신탕 이야기가 나오면 시치미를 뚝 떼고 전혀 안 먹는 체한다.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이시다. 매일 아침 염주를 헤아리며 염불을 하신다. 그리고 낮으로는 심심하면 관음경을 읽으신다. 절에 자주 가시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부처님에 대한 신심이 두터운 어머니께서 내가 개고기를 먹는다는 걸 아시면 큰일이다. 불교에 있어서 개고기는 절대 금기인 것이다. 한 번은 내가 취중에 "아, 그놈의 보신탕 맛 좋더라" 하고 입 밖에 냈던 모양이다. 어머니의 노기는 대단하셨다. 노기라기보다 슬픔이라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맨날 운수가 없는 것이며, 지금까지 집 한 칸 장만하지 못한 것이 다 왜 그런지 아느냐며, 집 없는 것까지 보신탕 탓으로 돌리시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는 뒤부터 나는 어머니 앞에선 보신탕 배격주의자인 것처럼 시치미를 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내게 처음으로 개고기를 먹인 사람이 다름아닌 어머니라는 사실이다. 어머니가 손수 개고기를 솥에 고아서 먹으라고 주셨던 것이다.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국민 방위군에 나갔다가 돌아온 나는 반병신이 되어 있었다. 국민 방위군은 1.4후퇴 때 조직된 반군 반민의, 말하자면 예비 군대였다. 일명 '보따리 부대'라고도 했었다. 제각기 이불 보따리를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국민 방위군에 나갔다가 나는 팔 하나를 전혀 못 쓰는 불구자 비슷한 상태가 되어 귀향했다. 다친 일이 없는데도, 어떻게 된 셈인지 팔 하나가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냥 밑으로 가만히 내리고만 있어도 쩌릿쩌릿하고 뻐근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새끼를 주워 가지고 붕대처럼 묶어 팔을 목에 걸고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다친 일이 없다면 그건 영양 부족 탓이라는 게 이웃 사람들의 말이었다. 그런 데는 무엇보다도 개고기가 최고라고 했다. 아닌게아니라 나는 팔 하나를 못 쓸 뿐 아니라, 여윌 대로 여위어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 말을 듣고 어머니는 서슴없이 개 한 마리를 사시는 것이었다. 그때 역시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도이셨다. 보신탕을 먹을 때마다 나는 그때 일이 생각난다. 그것을 먹고 희한하게도 팔의 기능을 회복했으며, 몰골도 차츰 사람같이 되어 갔다. 어머니께서 지금은 보신탕이라고 하면 질겁을 하시지만, 만일 자식들 가운데 누가 중병에라도 걸려서 그 병에는 개고기가 최고라고 한다면 20년 전 그때와 마찬가지로 거침없이 또 개고기를 구하러 나서실 것이다. "관세음보살!" 하면서 말이다. 모성은 이렇게 신심에 앞서는 것이다.
Board 삶 속 글 2014.12.29 風文 R 9929
芒刺在背(망극재배) 芒(까끄라기 망) 刺(가시 자) 在(있을 재) 背(등 배) 한서(漢書) 곽광( 光)전의 이야기다. 서한(西漢)시기. 기원전 87년, 한무제가 세상을 떠나자, 여덟살 된 아들이 소제(昭帝)로서 제위를 계승하였다. 공신의 후손인 대장군 곽광은 한무제의 뜻을 받들어 황제을 보좌하며 국정에 관여하였다. 한소제가 21세로 죽자, 곽광은 한무제의 손자인 창읍왕(昌邑王) 유하(劉賀)를 제위에 앉혔다. 그런데 그는 음란하고 놀기만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국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에 곽광은 유하를 폐하고, 한무제의 증손자인 유순(劉詢)을 제위에 앉혔다. 새로 제위를 계승한 한선제(漢宣帝) 유순은 국권(國權)을 주무르는 곽광을 몹시 두려워하였다. 한선제가 선조의 사당에 제사를 지내러 갈 때, 곽광은 직접 수레를 몰고 그를 모셨다. 한선제는 기골이 장대하고 날카로운 눈에 엄한 표정을 한 곽광을 보며, 수레 안에서 마치 등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若有芒刺在背) 참기 어려운 모습으로 떨고 있었다. 기원전 68년, 곽광이 죽자, 한선제는 비로소 이러한 느낌을 갖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芒刺在背(A thorn in the flesh)란 몹시 불안한 상태 를 비유한 말이다. 경제 대란에다 정치 대란이라는 말이 나돈다. 시원찮은(?) 리더 덕분에 국민들은 늘 바늘방석에 앉은 느낌이다.
Board 고사성어 2014.12.29 風文 R 11480
레스쿨제라블 대한민국 학원은 휴일에도 쉬지 않는다. 직장인이 숨 돌릴 시간에 적잖은 학생들은 학원에 가야 하는 것이다. 지난 주말 학원 다녀온 중학생 딸이 상기된 표정으로 ‘아빠, 그거 봤어?’ 한다. 학원에서 벗들과 함께 본 동영상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레밀리터리블’을 패러디한 ‘레스쿨제라블’이다. ‘거금 120만원’을 들여 한 달 반 만에 만들었다는 작품이 예사롭지 않은 까닭은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흥미와 극적인 재미를 위하여 가상으로 연출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레미제라블>의 ‘룩 다운’(Look Down)을 ‘야자! 야자!’로 개사해 사실상 ‘타율’인 ‘야자’(야간자율학습)의 실상을 드러내며 시작하는 이 작품에서 여고생 판틴 양은 ‘1등급의 꿈’이 사라진 안타까움을 노래하고(I Dreamed a Dream), 장발장 군은 선도부원 자베르와 맞서 “(만난 지) 100일 안 된 여자친구와 헤어질 형편”임을 호소한다(The Confrontation). 재치가 엿보이는 합창 “레드(Red) 빨간 펜 줄치고, 블랙(Black) 핵심요약 정리…”(Red & Black)에 이어, “해도 해도 너무하는 대한민국 입시전쟁/ 하지만 곧 봄이 와”(Do You Hear The People Sing)가 교정에 울려 퍼지며 작품은 끝난다. “지도교사 없이 청소년들이 만든” 기특하고 대견한 작품에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자막 실수가 눈에 띄어서이다. ‘그녀의 며리(머리) 핀’, ‘졸업하기길(하길) 기원하며’ 같은 단순 오타에서 생긴 잘못이 그렇다. ‘답지 보고 했잖아/ 남몰래 배껴(베껴) 왔잖아’, ‘돌아가길 바래(바라)’, ‘완전히 삐졌습니다(삐쳤습니다)’처럼 규범에 어긋난 게 또한 그러하다. 교사 감수를 거친 영어자막처럼 한글자막에도 신경 썼으면 금상첨화였겠다. ‘동영상 조회수 30만 넘으면 즉흥공연’을 약속한 학생들의 뜻은 곧 이뤄질 것 같다. 즉흥공연에 맞춰 ‘자막 실수’ 바로잡은 개정판을 기대해 본다. 나발질 나팔은 나팔이고 나발은 나발이다. 원말의 한자 ‘라(喇, 나팔 라), 팔(叭, 입 벌릴 팔)’은 하나지만 두음법칙에 따른 형태가 ‘나팔’이고 이 말소리가 변한 게 ‘나발’이다. ‘관악기의 하나’인 나팔은 ‘끝이 나팔꽃 모양으로 된 금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옛 관악기인 나발’을 가리키기도 한다.(표준국어대사전) 북한에서는 ‘(반드시 악기가 아니어도) 소리가 크게 울려 나오게 만든 기구’도 나팔이라고 한다.(한민족 언어정보화 누리집) 나발은 ‘놋쇠로 만든 긴 대롱같이 만든 악기’이지만 악기가 아닌 것을 이를 때 쓰기도 한다. 나팔과 나발은 뿌리는 같지만 뜻과 쓰임이 다른 것이다. ‘나발’에는 ‘지껄이거나 떠들어대는 입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란 뜻도 있다. ‘개나발’은 사리에 맞지 아니하는 헛소리나 쓸데없는 소리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고, ‘병나발’은 (나발 불듯이) 병째로 들이켜 마시는 것이다. ‘죽나발’은 숟가락으로 떠먹지 않고 그릇을 들고 훌훌 죽을 마시는 것을 낮잡아 이르는 북한말이다. ‘나발질’은 무슨 뜻일까. 어제치 여러 매체에서 ‘괴뢰역적들이 개성공업지구가 간신히 유지되는 것에 대해 나발질(헛소리)을 하며…’라는 내용의 북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 담화를 전하며 ‘나발질’을 괄호로 묶어 ‘헛소리’로 풀었다. 지난달 30일 북한이 발표한 담화문에 ‘나발’이 들어간 문장은 세 개였다. ‘헛나발을 불어대며…, 모략 나발을 불어대는 것이야말로…, 나발질을 하며…’이다. 북한말 ‘헛나발’은 ‘허튼소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 사실보다 터무니없이 과장하여 말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니 ‘헛소리’와 비슷한 표현이다. ‘나발질’은 표제어로 오르지 않은 말로, 비하하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질’이 붙은 ‘나발+질’의 형태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위 담화문에 ‘가소롭기 그지없는 망발질…, 존엄을 모독하는 망발질…’처럼 ‘-질’이 두 차례 더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