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밤 - 허혜정
썰물이 벌거벗은 갯벌에 남겨놓은 여윈 조개껍데기의 얼굴 
차갑게 식어버린 바닷물이 그 곳에 담겨 있다 
탁한 먼지가 날아드는 남산 터널 끝에서 
저 달을 본 적이 있다. 복사지를 잔뜩 안고 나오던 
도서관 밖에서. 자 빨리 걸어, 저녁 먹을 거야 안 먹을 거야 
아이를 재촉하며 돌아오던 아파트 소로에서 
그리고 그 날 
파란 시약을 달빛에 비춰보며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었다. 우와, 아기다! 
얼마나 오래도록 그들은 껴안고 춤추었던가 
침대 위에서 뛰노는 아이처럼 
기꺼이 따랐다. 저 달의 명령을 
금속의 저울과 몸 속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기계 
로켓에 샘플을 채취 당한 달처럼 수많은 채혈과 검진 
자 가는 거야. 공포와 싸우면서 걸어 들어갔던 
그 하얀 고통의 방 
더 가까이 오라 
도시의 안테나에 얼굴이 엉망으로 찢기며 
유리창 가까이 볼이 닿도록 
느낄 수 있다. 네 속에 서서히 몰아치는 우박 
너는 무수한 소혹성이 때리고 간 두창 걸린 계집이다 
네 몸이 깨어지고 깨어지고 깨어질 때 
거만한 도시와 기계와 이념과 모든 것을 삼키며 
시바의 춤처럼 소용돌이치는 바다 
하지만 지금 너는 
지독한 밤훈련을 요구하는 엄격한 코치다 
마지막 옷이 서랍으로 들어가고, 아이가 가까스로 잠들고 
밤드리 노닐던 네 남편이 창녀를 찾아갈 때 
저 달의 고통을 말 속으로 모아라 
식어 있던 몸이 다시 뜨거워지고, 모든 잡념이 깨져나가는 시간 
얼음 위에 난폭하게 긁혀나간 스케이트 자국처럼 
어지러운 노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