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비 - 박서영
빗방울이 적시는
기억의 방은 모두 다르다
폐허의 모든 것
만신창이의 모든 것
비는 골고루 시원하게 할퀴어준다
허덕이면서
세차게
엄마의 젖을 빨아대는 아이처럼
구름은 입술을 움직인다
이렇게 할퀴는데도 조금 젖을 뿐이다
너무 빨리 몸이 말라 버린다
적어도 건물의 한 귀퉁이는 찍어내야
패망이라고 할 수 있다
목에 걸린 옷은 짐승처럼 핏방울을 떨어뜨리며
대원동 시절 미쳐 집 나간 언니처럼
사지를 비틀어댄다
만신창이의 모든 것
웃음소리인 듯
울음소리인 듯
창 밖에는 여전히 빗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