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창客窓 - 정원숙
석양의 냄새가 나무의 눈 속으로
흘러들어 붉은 잎새로 떨어진다.
나를 버린 도시와
당신에게 잊혀진 섬 사이에 낀
무명無名의 울음이라고 이름 붙여준다.
바람의 무게가 붉은 잎새에
외상을 입히고 성급히 떠난다.
당신의 아비가 물질하는 바다와
내 어미가 노동하는 들녘을 가로지르며
바람의 계보가 씌어지고 있다고 명명한다.
당신이 나를 떠나 내딛는
발자국 속으로 빗방울이 서성댄다.
서녘 하늘을 붉히우는 시간이
사람의 마음 우물에 떨어뜨리는
돌멩이 한 알의 실존實存을 묵상한다.
적막을 닮은 염소의 눈망울은
제 울음의 흔적을 핥는다.
그때 당신과 나의 서러운 환부가
고스란히 뼈를 드러내며 운다고 쓴다.
길을 잃고 절뚝거리는 갈매기와
눈을 잃어버린 고양이의 오류를
어떤 외경畏敬으로 동정할 수 있을까
저녁이 지상의 방마다
붉은 장기를 꺼내 창가에 걸어둔다.
눈물이나 슬쩍 훔치고
호주머니 깊숙이 참회의 재를
쑤셔넣어야 한다고 되새긴다.
주객酒客이 공전하는 지상의 저녁
구름이 뱉어내는 음습한 맹목을
가까스로 모방한다. 그리고
나의 인연들에게 서서히
늙어가고 있다고 띄엄띄엄 읽어준다.
가을엔 나무의 체온도 말라가는 시절이므로
내내 누워 바라보는 창 밖의 침묵이
벙어리 발성으로 밤을 학습한다.
흐릿한 몽고반점처럼
빗방울 속을 뛰어다니는 바람의 종種은
변종의 혈통을 잇고 있다고 쓴다.
바람의 계보와 구름의 맹목 너머
죽은 새가 싸늘히 젖는다.
구도求道의 강을 건너는
죽은 새의 가슴에서 눈물 한 방울 꺼내
다만 내가 죽었다 다시 불 밝힌
불귀의 창窓이라고 입술을 깨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