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 하나 - 김남주(1946∼94)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 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나 제방을 걸으며
돌멩이 하나 되자고 했다
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맣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멩이 하나
날 저물어 캄캄한 밤
친구와 나 밤길을 걸으며
불씨 하나 되자고 했다
풀밭에서 개뽕벌레쯤으로나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세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혁명가는 예민한 사람이다. 시대의 변화에 예민할 뿐 아니라 자기 양심에 예민하다. 양심이란 스스로를 속이지 못하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감수성이 무딘 자, 자기 자신에게 너그러운 자는 혁명가가 될 수 없다. ‘죽음 하나 같이할 벗’이 있다면, 그 혁명은 이미 성공한 것이다. 혁명은 ‘혁명 이후를 같이할 벗’들에 의해, 완성되는 순간, 훼손되기 시작한다.
<이문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