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 김기택(1957∼ )
텔레비전을 끄자
풀벌레 소리
어둠과 함께 방 안 가득 들어온다
어둠 속에서 들으니 벌레 소리들 환하다
별빛이 묻어 더 낭랑하다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그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한다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드나드는
까맣고 좁은 통로들을 생각한다
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린
여린 마음들을 생각한다
발뒤꿈치처럼 두꺼운 내 귀에 부딪쳤다가
되돌아간 소리들을 생각한다
브라운관이 뿜어낸 현란한 빛이
내 눈과 귀를 두껍게 채우는 동안
그 울음소리들은 수없이 나에게 왔다가
너무 단단한 벽에 놀라 되돌아갔을 것이다
하루살이들처럼 전등에 부딪쳤다가
바닥에 새카맣게 떨어졌을 것이다
크게 밤공기를 들이쉬니
허파 속으로 그 소리들이 들어온다
허파도 별빛이 묻어 조금은 환해진다
엊그제 중학교에 다니는 조카를 만났다가 깜짝 놀랐다. 새벽에 열리는 프랑스 전을 응원하고 오라며, 늦게 등교해도 좋다는 것이었다. 축구는 축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경기가 열리지 않는 경기장에 수만 명이 몰리는 사태는 축구 이상이다. 관중석이 텅텅 비는 K리그 경기장은 축구 이하다. 월드컵 시즌이 지나면, 잠시 텔레비전을 꺼보자. 작은 귀를 찾아보자.
<이문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