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散骨)을 하며 - 박찬(1948∼ )
오늘따라 하늘이 너무 맑습니다
산색(山色) 더욱 푸르러 여름입니다
당신은 저에게 집을 한 채 지어 주셨으나
저는 당신에게 山집 한 채 지어드리지 못합니다
너무 오래 한 곳에 머물러
고단하고 싫증이 났을 터이므로
저는 당신을 훠이훠이 풀어드립니다
더러는 바람과 함께 멀리 날아가십시오
더러는 주린 날짐승의 먹이가 되었다가
먼 땅에 다시 태어나십시오
더러는 빗물에 씻겨가 물색 산천어와 노니십시오
더러는 나무와 풀도 기르십시오
그리고 더러는 꽃으로 피어 가을날
저희들 찾아오는 길 따라 손을 흔들어주십시오
당신은 꽃을 많이 기르고 싶다고 하셨지요
매양 그렇지만 또 눈물납니다
이제 세상이 모두 당신 집이지만
당신은 어디에도 안 계십니다
어디에도 남아 있지 마십시오
그리움 속에도 그리워하는 마음속에도
부디 계시지 마십시오
부모님의 오래된 유택을 열게 된 모양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몸이라는 집 한 채 받아 살아 있는 아들은 유택이 답답하셨을 것이라며 자기 합리화를 하지만, 그것은 불효의 다른 말이었습니다. 자식들은 불효로써 살아갑니다. 이제 어디에도 안 계신 부모님. 그러나 부모님은 계십니다. 부모님이 들어가신 새 집 주소는 그리움, 자식들의 그리움입니다.
<이문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