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 함민복(1962~ )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식탁이 있는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실내 공간이 비좁은 데다, 식구 또한 예전처럼 많지 않아 큰상 펴놓을 일이 없어졌다. 집안에서 치르던 '큰 행사'가 모두 집 밖으로 나갔다. 관혼상제를 서비스업체가 다 알아서 해 준다. 돌잔치는 물론 집들이까지 무슨 무슨 뷔페나 홀에서 한다. 아무래도 긴 상 함께 들 일이 없어져서, 이혼율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간 것 같다.
<이문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