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희덕(1966∼ )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꽃과 분홍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말에도 빛깔이 있고, 몸이 한번 움직일 때에도 빛깔이 있다. 내가 나를 보아도 여러 겹의 마음이요, 여럿의 빛깔이다. 나를 유심히 보건대 마치 꼬마 네댓이 공깃돌 놀이를 하는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나로부터 변심하는 애인이다. 이러한 나를 당신이 바라볼 적에 당신은 얼마나 짐작하기 어려웠을까. 그러나 사랑은 그럼에도 이 여러 겹의 빛깔을 ‘눈부시다’라고 찬란하게 말하는 것 아닌가.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