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불 때는 저녁'- 김창균(1966~ )
장마철이 되면
어김없이 바닥에서 물이 치솟는 부엌에 앉아
저녁 내내 군불을 때거나
하릴없이 청솔가지를 툭툭 꺾어
손톱 밑 때를 파거나 이런 날
아귀가 맞지 않는 문틈 사이로 온몸을 밀어내며
햇살과 그 햇살을 향해 달려드는 먼지를 구경하다
나도 문득, 옹이가 많은 불쏘시개처럼
오래오래 타고 싶었다.
대뜸 어릴 때 기억이 새롭다. 찬 마루에 앉아 있다 투덜대며 군불 때러 가는 소년이 있다. 불쏘시개에 성냥불 댕겨 넣고 입김 연방 불어넣으며 불을 지피고 있다. 맵고 젖은 연기에 두 손으로 눈물 닦아가며 간신히 불을 살리고 있다. 그러다 어느결에 장작불이 환하게 일어 숯검정칠 한 소년은 아궁이 앞에 두 무릎을 대고 가만히 앉아 있다. 그래, 그때 두 팔로 껴안았던 뜨거운 무릎! 불길이 나에게 선물한 뜨거운 무릎! 그것을 뭐라 말할 순 없지만, 어른이 된 나는 세상살이 힘들 때 캄캄한 부엌에서 혼자 군불 때던 가난한 소년으로 되돌아간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