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금기 사항’- 신달자(1943∼ )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그저 마음 깊은 그 사람과
나란히 봄들을 바라보아라
멀리는 산 벚꽃들 은근히
꿈꾸듯 졸음에서 깨어나고
들녘마다 풀꽃들 소근소근 속삭이며 피어나며
하늘 땅 햇살 바람이
서로서로 손잡고 도는 봄들에 두 발 내리면
어느새 사랑은 고백하지 않아도
꽃 향에 녹아
사랑은 그의 가슴속으로 스며들리라
사랑하면 봄보다 먼저 온몸에 꽃을 피워내면서
서로 끌어안지 않고는 못 배기는
꽃술로 얽히리니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무겁게 말문을 닫고
영혼 깊어지는 그 사람과 나란히 서서
출렁이는 생명의 출항
파도치는 봄의 들판을
고요히 바라보기만 하라
봄바람이 불어 온다. 물가에도 뚝배기 같은 집의 안뜰에도 죽은 무덤에도 봄풀 봄잎이 온다. 걸음마를 막 익히는 돌 무렵 꽃망울 아이처럼 천천히 천천히 우리에게로. 봄풀 봄잎은 수식이 없어도 생기가 돈다. 당신은 봄풀 봄잎의 말을 뒷무릎 접고 앉아 들어보라. 사랑은 그처럼 낮고 여린 빛깔을 빚어 보이는 것. 남녘의 봄들로 손잡고 가 사랑의 고백을 바라보아라.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