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에게 묻는 길 - 이은봉
푸르고 곧은 길, 너무도 거칠고 사나워
더는 네게 아무 것도 묻지 않기로 한다
대나무에 관해서는
대나무한테 배우라는 말
아직 잊지 않고 있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네 독한 가슴
자그마한 허공 속에서도
새끼손가락만큼씩 여무는 초승달
맑게 닦이는 슬픔
떠오르는 것 보인다 그것들
네가 키우는 오랜 꿈이면서도
진주알이라는 것, 왜 모르랴
하늘 향해 악착같이 머리칼 흔들면서도
어디에도 길은 없다, 라고
너는 으스러지는 목소리로
또 말하겠지 멈칫멈칫 뒤돌아보며
내 텅 빈 가슴 속에도
새끼손가락만큼 여무는 초승달
뽀얗게 떠오르고 있다, 잘 닦인 슬픔
몰래 키우는 오랜 꿈
아침 이슬로, 진주알로
방울방울 맺히고 있다, 라고
너는 또또 말하겠지 동병상련의 젖은 목소리로
울먹이겠지 울먹이며 하소연하더라도
푸르고 곧은 길, 휘어지기 쉬운 길
너무도 거칠고 사나워
더는 네게 아무 것도 묻지 않기로 한다
배우지 않기로 한다 이젠.